인생, 한 곡 - 김동률 교수의 음악 여행 에세이
김동률 지음, 권태균.석재현 사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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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도 많은 애독자들이 있는 리 차일드의 인기 스릴러 소설인 잭 리처 시리즈의 주인공인 거구의 퇴역 군인 잭 리처는 올드 재즈의 무대나 배경으로 등장하는 마을들을 순회하면서 미국 각지를 유유자적하게 떠도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문화가 일정 수준 이상 질적이나 양적으로 풍부해지면 거기에서 파생된 연관 취미나 새로운 문화 사조가 이어서 나타나는데, 근대화 이후 100, 해방 이후 7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각 세대와 연령층의 마음을 사로잡고 심금을 울렸던 대중가요의 무대나 노래 속에서 언급되었던 추억의 장소들이 이제는 하나의 문화적인 이정표이자 상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서양 클래식 음악의 역사보다는 다소 짧지만, 그래도 두어 세대가 지나는 동안 우리 대중 가요의 무대와 흔적들도 이제는 순례와 탐방의 목적지가 된 것입니다. 마치 클래식 매니아들이 베토벤이나 바흐, 모짜르트의 남겨진 흔적들을 쫓아 유럽 각지를 여행하듯이 말입니다.

 

 

언론인이자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인 저자 김동률YTN의 인터뷰 프로그램인 <만나고 싶은 사람>의 진행자로 일반인들에게도 낯이 익은 인물입니다.

 

저자는 해방 이후부터 1980년대까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우리 대중가요들 중에서 20을 가려 뽑아 각 노래들이 처음 만들어져 발표될 당시의 사연과 곡이 탄생한 장소, 작곡가와 작사자에 대한 이야기, 곡이 그리고 있는 특정 장소들을 사진작가인 권태균, 석재현과 함께 일일이 직접 찾아가 답사의 결과물들을 글과 사진으로 엮어 월간 <신동아>에 연재해 왔는데, 잡지에 연재된 원고를 다듬고 축약되었던 부분들을 되살려 단행본으로 엮어낸 것이 바로 이 책 <인생, 한 곡>입니다.

 

 

장년층 이상을 대상으로 한 보수신문사의 월간지에 연재되었던 것인 만큼 처음에는 예상했던 대로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박태준의 <오빠생각>,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처럼 무난한 곡들에 대한 회고조의 소개로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정지용의 <향수>와 안치환의 <부용산>을 소개하면서 월북 문인들의 작품에 대한 숨겨졌던 이야기들을 풀어놓기 시작한 저자는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이야기하면서 그 배경이 되었던 유신 시대 젊은이들의 암울했던 현실을 끄집어내어 이야기하며, 그 시절 암울했던 현실에 눈감고 낭만적인 작품들만을 발표했던 최인호의 작품들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직접 겪었던 그 시절에 관한 생생한 이야기들을 풀어나가기 시작합니다.

 

앞의 글들 중간중간에서 쪽방에 기거하며 맨손으로 산업을 일으켰던 여공들과 억압된 현실 속에서 떨쳐 일어났던 젊은 대학생들의 이야기들을 간간히 내보였던 저자는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으로 386 세대였던 자신이 직접 겪었던 군부독재 시대의 억압적이었던 우리 사회의 암울했던 모습들과 그에 정면으로 맞서 분연하게 일어섰던 7`80년대의 청년 문화를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 김종률의 <님을 위한 행진곡>, 정태춘의 <북한강에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이야기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리고 직접적으로 털어 놓습니다.

 

저자 스스로도 겪었던 암울했던 현실에 때로는 혈기로, 때로는 풍자로 정면으로 맞섰던 청년문화 시대의 상징으로써 7~80년대의 대중가요들을 정의하면서, 그 노래들 속에 그리고 그 뒤에 담겨져 있던 노동자와 학생들의 참혹했던 희생과 격렬했던 투쟁의 기억들을 열기 띤 목소리로 이야기해 나갑니다.

 

만일 이 책이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대중적으로 유행했던 노래들의 흔적을 찾아 그것을 낡은 앨범 사진처럼 그대로 담아내기만 했더라면 이 책 역시 또다른 음풍농월의 결과물로 남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그 노래들을 직접 즐겨 불렀던 그 시절, 386 세대였던 저자의 젊은 시절인 70년대와 80년대의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의 삶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그 노래가 불려졌던 시대의 생생한 모습과 그 당시 그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의 진정 뜨거웠던 속내들을 꾸밈이나 감춤없이 솔직하게 표출시킴으로써 유행했던 노래를 통해서 본 시대의 자화상들을 진솔하고 설득력있게 그려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 소개된 노래들이 막 발표되어 한창 유행했던 시절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던 역시 격동의 386 세대였던 본인 또한 이 책에 언급된 노래들과 저자가 그려낸 당시의 풍경들을 되돌이켜 보면서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노래들 속에 당시에 우리가 겪었던 분노와 좌절, 결의와 용기, 우정과 정의가 올올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유유자적하고 가치중립적인 음풍농월이 아닌, 시대와 사람들의 삶과 그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던 노래들 만큼이나 깊은 의미를 담고있는 진중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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