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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리더십 - KBS스페셜, 나를 행복하게 할 리더는 누구인가?
이재혁.KBS 스페셜 제작팀 지음, 서승범 정리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9월
평점 :

대학교 신입생 시절, 첫 해에 정경계열 전공 기초로 들었던 <정치학 개론>의 교수님은 소르본느에서 유학하신 옛 선비같이 꼿꼿한 분이셨습니다. 프랑스, 그것도 소르본느에서 유학을 하신 분인 만큼 근대 민주 정체에 중심을 두고 수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짐작과는 달리 교수님은 교과서를 펴시더니 첫 장의 제목이 뭐냐고 물으셨습니다. 학생들은 정치학 교과서인 만큼 당연 첫 장에는 역사적인 정치 제도의 변천사가 서술되어 있을 것이라고 여겼던 것과는 달리 첫 장의 제목이 ‘리더십’인 것에 다소 의아해 했는데, 교수님은 ‘정치학은 정치 체제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 즉, 리더십에 대한 학문’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학생들의 선입견을 첫 시간부터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리고 이런 학문적 충격은 행정학 시간에 근대 행정의 시초로 처음 배운 것이 바로 ‘엽관제’였던 것으로 다시 한 번 재연되었습니다.
근대 시민 혁명의 발원지이자 중심에서 오랫동안 유학하신 교수님이 정치학의 근본은 정치 체제에 대한 학문적인 교습이 아니라 정치의 주체와 객체 사이의 긴장 관계라고 갈파하셨던 것처럼, 아무리 제도가 민주적이 되더라도 결국 그 정치 공동체의 방향과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강력한 리더십과 그에 호응하는 국민들의 선택이라는 충격적이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카이사르나 히틀러의 역사적인 예에서나 <삼국지>나 <은하영웅전설> 같은 책들을 통해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헌법 체계를 지녔던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히틀러라는 괴물이 탄생했고,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가장 민주적이었던 대통령과 함께 10년을 보냈던 우리 국민들이 정반대인 현정권을 선택한 데에서 정치는 이상과는 정반대로 돌아가는 냉혹하고 어리석은 현실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KBS 스페셜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던 내용을 책으로 옮겨놓은 <행복의 리더십>은 표면상으로는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리더십’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기획되었다고 합니다. TV에서 늘상 접하는 찡그리고 고뇌에 찬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기쁨과 안도감을 주는 정치인, 이것이 프로그램이 추구하던 의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예로 지지율 83%라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역사상 가장 강력한 리더십의 예로 가장 자주 거론되곤 하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의 처칠 수상, 그리고 가장 최근의 시민 혁명인 이집트 민주화 혁명과 우리 주변의 예인 구글과 시스코, 엔씨소프트의 예들을 들고, 이러한 소통의 정치학과는 정반대인 단절의 정치의 예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일본 정치인들의 모습과 홀로코스트를 일으켰던 히틀러의 예를 대조군으로 듭니다.
국민과 소통하는 정치적 리더십에 이은 행복의 리더십 두 번째 조건은 ‘정의와 책임’입니다. 2007년 전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던 금융 대공황의 진원지였던 월가가 당시와 그 이후에 보여준 도덕적 해이를 테제로 정의와 공정함을 들고, 그 대조군으로 고객들과 가치를 공유하고 무한 책임을 지는 모범적인 기업들과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의 예를 듭니다.
그리고 리더십의 세 번째 조건으로는 국민과의 소통과 높은 책임감 위에 사회를 변혁시키고 경제적, 정치적 발전을 이끄는 ‘혁신’을 듭니다. ‘사우나 리더십’으로 불리는 핀란드의 할로넨 대통령과 유누스 그라민 은행 총재의 ‘인간 경제학’, 그라민폰, 그리고 슘페터의 ‘창조적 혁신’을 예로 들며 리더는 혁신의 능력이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결코 민주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싱가포르와 이스라엘의 정치인들을 마지막 예로 든 것은 개인적으로 수긍하기 조금 어렵습니다만...)
소통과 책임, 그리고 혁신.
사실 이 책인 요구하는 세 가지 리더십의 요건들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이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현실은 세 가지 중 하나만이라도 된다면 최소한 비난은 면할 것이고, 둘 만 된다면 도덕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첫 번째 단계인 국민과의 소통 자체가 아예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책임과 혁신은커녕, 부정부패와 구시대적인 관제 토목 산업으로 나라의 뿌리를 휘청거리게 했던 지난 5년 간을 되돌아본다면, 이 세 가지가 얼마나 중요하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리더십의 덕목인가는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이지요.
그리고 올해 연말의 대통령 선거에서 선택할 새로운 대통령의 기준도 이 세가지 요건으로 삼는다면 답은 어느 정도 명확하게 나온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ha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