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 파이어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5-4 존 코리 시리즈 4
넬슨 드밀 지음, 김홍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넬슨 드밀은 우리에게는 이름 자체로는 그다지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존 트라볼타 주연의 영화로 유명한 <장군의 딸>의 원작자라고 하면 대부분 아! 하고 아실 것입니다. <장군의 딸>은 넬슨 드밀의 폴 브레너시리즈 중의 한 권인데, 넬슨 드밀의 대표작은 바로 존 코리시리즈입니다.

 

 

존 코리는 전직 NYPD로 현재는 대테러 특별 기동대 요원으로 활동하는 존 코리를 주인공으로 하는 액션 스릴러 시리즈로, 1997년에 1편인 <플럼 아일랜드>가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콜럼비아 영화사에 판권이 팔리는 대성공을 거둔 후, 2<라이언스 게임>에 이어 발간된 3<나이트 폴>1,700만부나 판매되는 초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국내에도 <플럼 아일랜드><라이언스 게임>이 각각 랜덤하우스 코리아(최근에 RHK 코리아로 사명이 바뀌었죠)를 통해 발간되었고, 이번에 발간된 <와일드 파이어 Wild Fire>는 시리즈 제4편에 해당됩니다.

 

 

시리즈 3편인 <나이트 폴>보다 4편이 먼저 나온 것은 번역 때문인데, 3편과 4편의 이야기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존 코리 시리즈는 뒷 권에서 앞 권의 이야기들을 반복해서 언급하기 때문에 시리즈 순서대로 발간되지 않은 점은 다소 간의 아쉬움을 줍니다. 특히 3편에서는 9.11을 다루면서 그 날 노스 타워에서 모임이 있었던 관계로 존 코리의 직장 상사와 동료들이 한꺼번에 몰살을 당하고, 아내인 케이트 메이필드마저 생사가 불명인 상태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뉴요커들에게 9.11이 미쳤던 엄청난 정신적 상처가 4권 내내 언급되고, 당시에 상사와 동료들이 전부 사망해서 존 코리의 직장인 대태러 특별 기동대의 인력 구성마저 완전히 새로운 얼굴들로 교체되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3권이 나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1권에서는 치명적인 전염병 바이러스의 유출 의혹에 관한 수사를 하고, 2편에서는 미국에서 연속적으로 대규모 살인을 저지르며 전직 대통령의 암살을 시도하는 이슬람 전사를 저지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존 코리는 4권에서는 마침내 미국 뿐만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중대한 지구 규모의 범죄자를 저지해야 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음모 속으로 뛰어듭니다.

 

 

 

 

 

 

앞에서 지구 전체의 운명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감안한다면 절대로 과장이 아닌데, 그 핵심적인 키워드는 바로 제목인 와일드 파이어입니다.

 

 

미소냉전 시대에 미국과 소련은 서로 상대방으로부터 핵미사일 공격을 받으면 아무런 논의도 없이 곧바로 자동적으로 대대적인 대응 핵공격을 하게끔 핵미사일 발사 시스템을 프로그램 해놓은 상호확증파괴 (MAD)’로 인해 강제적인 핵억지력이 효과를 발휘한 바 있습니다.

 

와일드 파이어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입니다. ‘와일드 파이어미국 내에서 이슬람에 의해 핵이나 생물학, 화학 공격으로 대대적인 피해가 발생할 경우, 자동적으로 중동의 주요 도시들을 향해 수 십에서 수 백기의 핵미사일이 자동으로 발사되도록 프로그램 해놓은 것을 말합니다. 그 규모는 생물학이나 화학 공격을 받았을 경우 A 목록에 있는 50여개의 대도시를 향해 핵미사일이 발사되며, 핵공격의 경우는 A 목록에 B 목록을 포함한 총 122개의 대도시를 향해 핵미사일이 자동 발사되도록 해놓았습니다. 122개의 대도시에 핵미사일이 쏟아질 경우 1차 사망자는 2억명에 달하고, 6개월 이내의 추가 사망자 역시 1억명 이상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레이건 시절에 이 와일드 파이어계획을 입안한 사람들은 이 계획의 발동에 대통령이나 행정부의 선택을 일절 배제하여, 공격을 받으면 자동적으로 핵미사일이 발사되고, 일단 입력시킨 계획이나 목표는 대통령이라고 할 지라도 차후에 변경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음으로써 통제불가능한 절대적인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미국은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할 때마다 이 와일드 파이어의 존재를 중동 국가의 대통령이나 왕에게 통보해 왔는데, 중동 국가들이 자국 내의 테러리스트들을 색출하거나 축출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했던 데에는 바로 이 와일드 파이어의 위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와일드 파이어계획이 위험한 것은 일단 미국 내에 대규모 핵이나 생물학, 화학 공격이 발생하면, 그 범인이 누구이고 주모자나 배후가 누구인지 색출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이 무조건적으로 중동의 122개 도시를 향해 수 백기의 핵미사일들이 발사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목록의 목표물들은 점점 더 늘어나서, 최근에는 비중동 국가들인 파키스탄이나 아프카니스탄, 인도네시아까지 포함되었고, 쿠바와 북한도 중요한 목표물로 추가될 확률이 높습니다.

 

 

자신들이 공격받을 경우 확실한 근거나 증거도 없이 수 억명이 살고있는 중동을 비롯한 미국 외의 수 백개의 도시들에 무차별적으로 핵미사일을 자동적으로 발사하도록 해놓은 이러한 야만적이고 비문명적인 프로그램의 존재에 대해 저자 넬슨 드밀은 자신이 입수한 정보에 근거한 것이며, 실제로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들이 존재한다고 믿는다고 이례적으로 책 앞머리에 쓴 서문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근본적인 설정은 바로 이 와일드 파이어계획에 근거한 것이며, 여기에 막대한 자산을 토대로 구 소련으로부터 4개의 핵가방을 구입한 일단의 극우주의자들의 집단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의 전개는 간단하게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직접 구입한 4개의 핵가방을 미국 내 주요 도시에 설치해서 폭파시키면 자동적으로 와일드 파이어가 발동해 중동 국가들을 향해 수 백기의 핵미사일이 발사되어 중동 국가를 초토화시키고, 미국은 강력한 힘을 뽐내며 전세계 위에 군림할 수 있다는 극도로 이기적인 과대망상이 실제로 추진됩니다.

 

극우파들이 미국 내에서 핵폭발을 일으켜서 중동에 대한 대규모 핵보복을 획책한다는 이야기 자체는 <24>류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설정입니다. 이 소설의 가장 돋보이는 점은 그런 설정을 구체적인 내용으로 실체화시켜놓고 진행시킨다는 점이죠.

 

 

여기에서 주인공 존 코리는 처음부터 사건의 중심으로 뛰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존 코리의 직장 동료인 해리 멀러가 우연히 존 코리 대신에 감시 임무에 투입되었는데, 사실 그 부분은 존 코리의 라이벌인 CIA의 테드 내시가 존 코리에 대한 개인적인 보복을 위해 설치한 덫이었습니다(이 작품에서 테드 내시는 다른 중요한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CIA의 전설로 급상승하게 되는데, 이 부분이 솔직히 전혀 와닿지 않습니다 ^^). 동료의 행방을 찾기 위해 문제의 극우주의자들의 집회 장소를 찾아간 존 코리와 아내 케이트가 특유의 능글능글한 유머를 곁들인 본능적인 추리력을 발휘해 차츰차츰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 마침내 대부분의 내막을 파악하고, 핵폭발까지 24시간도 채 남지 않은 장면에서 소설은 갑자기 끝이 납니다.

 

 

제가 처음 받았던 이 책의 초판은 591쪽에서 끝이 났습니다.

이렇게 어중간하게 끝난 이유에 대해 독자들 사이에서는 이야기가 후속 편으로 이어지고, 2권에 나왔던 이슬람 전사인 라이언이 다시 등장한다는 이야기까지 퍼졌었죠. 그런데 한 독자가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여겨서 아마존에서 원서를 e-book으로 구입해서 비교를 해보니 원서는 국내판이 끝난 대목의 뒤에 60쪽 분량이나 더 있고, 사건이 완결된 형태로 마무리지어 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내용이 출판사 카페에 올려지고 얼마 후에 편집부에서 번역 과정에서의 누락 사실이 있었다고 밝히고 누락된 부분을 추가한 제대로 된 책을 새로 인쇄해 재배포하고, 기존 출판분은 전량 교환 처리하겠다는 공지가 올라왔습니다.

사실 일반적으로는 거의 발생하기가 힘든 사태인데, 이 시리즈는 원서가 워낙 두껍다보니 편집부에서도 미처 끝까지 다 읽지를 못한 상태에서 필자에게 번역 의뢰를 했고, 그 과정에서 뒷부분이 누락된 상태로 인쇄까지 되어버린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공지 이후에 출판사에서 새로 보내준 책을 받아서 살펴보니, 새 책은 총 683쪽으로 기존판보다 92쪽 분량이 더 늘어났습니다. 결말은 결국 존 코리와 케이트가 커스트 힐 클럽으로 가서 매독스와 그의 부하들과 일전을 벌인 끝에 핵폭발을 아슬아슬하게 저지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007 영화를 방불케 할 만큼 거대한 스케일의 음모에 비해 피날레의 규모는 다소 아기자기한 편이 아닌가도 싶지만, 이 시리즈는 처음부터 존 코리의 원 맨 히어로물이지 군대가 동원되는 대규모 블록버스터는 아니니까요.

 

그리고 이 책이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와일드 파이어라는 대중동 말살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이고 말입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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