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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아키하바라 1
이시다 이라 지음, 권남희 옮김 / 이가서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신세대 일본 작가들 중 한 명이 이시다 이라입니다. 
비슷한 톤이지만 음습한 어두움을 감추고 있는 요시다 슈이치와는 달리
언제나 공허한 상실감을 내면에 지니고 있는 젊은 세대의 심경을
젊은이의 정서와 눈높이에 맞춘 진솔하고도 날카로운 감수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인데,
개인적으로는 거기에 더해
SF적인 감각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추가로 가산점을 주게 됩니다.
이시다 이라는 고전 SF에 경의를 표하는 오마쥬가 내포된
본격 SF 장편인 < 블루 타워 >를 2004년에 발표하기도 했는데,
일본에서는 같은 해에 나란히 발표되었던 < 도쿄 아키하바라 >는
서구적인 시각을 배제하고 순수하게 현대 일본 젊은이들의 시각에서 그려낸
현대적이고 현실적인 감각이 살아 숨쉬는 멋진 SF입니다.

원제목이 < 아키하바라@DEEP >인 이 작품은
각각 정서적 혹은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6명의 오타쿠 젊은이들이
아키하바라에서 의기투합해 아키하바라@DEEP이라는 IT 벤처를 만들고,
그곳에서 새로운 A.I를 창조해 내는 과정을 그립니다.
특정 분야에서는 천재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일상적인 사회 생활에는 치명적일 수 있는 결함을 가진 이 오타쿠 젊은이들이
인터넷상에서 고민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는 '유이'를 매개로 만나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결함과 단점들이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해
지나치게 과적응된 현대인들이 도달할 수 없는 경지로 나가는 과정이 깊은 인상을 주며
그들끼리 서로 돕고 의지하며 우정을 키워나가는 과정이나
무일푼으로 시작해 오직 노력과 열성, 재능만으로 회사를 키워나가는 과정
등도 유쾌하고 진지하게 그려지며,
특히 아키하바라 오타쿠들의 독특한 생활 풍경과 묘사가
매니아들에게는 재미와 동질감을 안겨줍니다.
(이 책에 나오는 단어들이 어색하지 않고 친숙하다면 당신도...?
)
검색 엔진과 A.1의 개발 컨셉과 과정도 흥미진진한데,
무엇보다도 이들의 개발품인 새로운 검색 엔진이자 스스로 진화하는 A.I인 크루크를
거대 IT 기업인 디지캐피가 훔쳐가고
아키하바라@딥 맴버들을 감시하고 협박하며
크루크를 자신들의 개발품인 양 발표하려는 계획에 맞서
디지캐피 본사에 돌입하여 격투를 벌인 끝에
마침내 크루크를 찾아내는 순간 크루크가 스스로 자아를 발현하여
인간과 A.I가 처음으로 조우하는 순간의 묘사는
A.I 창세 설화의 하이라이트를 보는 생생한 느낌을 안겨줍니다. 
마치 < 미지와의 조우 >의 마지막 우주선과의 만남 장면처럼 말입니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는데,
일본 드라마답게 원작의 진지한 모습은 대부분 사라지고
가볍고 유희적인 모습으로만 그려져있어
아예 우리나라에서 이 작품을 리메이크하면
훨씬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 블루타워 >의 경우 잘 나가다가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너무 쉽게 고전 SF에의 오마쥬로 안이하게 종결을 지어버려서
일본 SF에 상당한 실망감을 주었는데,
오히려 가볍게 접근한 이 작품이
훨씬 더 일본적인 SF에 가까운 재미와 감동을 주어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기시 유스케의 < 신세계에서 >는 어떨지가 새삼 궁금해지네요. 
ha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