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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 강의 - 세기를 뛰어넘은 위대한 통찰
피터 드러커 지음, 이재규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가 막연한 의심을 품고 있던 경영 컨설팅 업체와 MBA 학위의 허구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매튜 스튜어트의 < 위험한 경영학 >을 보면, 현대 경영학의 선구자인 프레데릭 테일러에서부터 인간 관계론의 엘턴 메이오, 경영 전략학의 마이클 포터, 경영 컨설팅의 톰 피터스 등 경영학계의 대가들의 숨겨진 비사들을 속속들이 파헤치면서 그들의 이론과 실제의 허구성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줄줄이 이어집니다. 하지만 이처럼 경영학과 전략 컨설팅의 허상을 비판하는 매튜 스튜어트조차 20세기 경영학 최고의 대가인 피터 드러커에 대해서는 안의 다른 대가들과는 달리 그의 비범함과 다방면에 걸친 박학함을 인정할 정도로 전혀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은 역시 경영 기획이나 전략 기획의 무의미함을 상세한 예시와 통계를 동원하여 실증해 보여준 <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을 파는 사람들 >의 저자 윌리엄 A. 서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학이나 연구소의 강의실에서 세운 이론을 실제로 적용하기 위해 현실 경영계로 직접 뛰어들거나 경영 컨설팅으로 경영자들로부터 막대한 보수를 챙겼던 톰 피터스 등과는 달리 피터 드러커는 순수하게 대학 강단에서의 강의와 강연, 저술과 기고만으로 20세기 후반 경제학의 굵은 축을 쌓아올림으로써 모든 경영자와 경제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인정하는 경영학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드러커가 1940년대부터 꾸준히 펴낸 39권의 저서들은 이제는 경영학의 고전들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이번에 나온 < 피터 드러커 강의 >는 피터 드러커가 직접 쓴 저서가 아니라 드러커 인스티튜트의 소장인 릭 와츠만이 1940년대에 베닝턴 대학교의 교수로 첫 강의를 시작한 때부터 2003년 클레어몬트 대학교 대학원에서 은퇴한 후에 발표한 최후의 미출간 논문까지 드러커가 60년 동안 했던 수많은 강의와 미출간 원고들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들을 194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매 10년 단위로 묶어 정리해 놓은 피터 드러커 생애의 강의의 핵심들을 집대성한 것입니다.
드러커의 경영 사상의 발전을 거시적으로 조망해 볼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1940년대의 드러커의 강의들을 읽어보면 그의 사상의 토대가 의외로 경영학이 아닌 철학과 인문학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관심은 50년대에 들어서서는 사회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기울게 되고, 그의 사상의 핵심이 되는 기술 혁명과 거대 조직에 대한 고찰은 60년대에 와서야 비로소 본격화됨을 알 수 있습니다.
70년대에는 다른 경제학자나 사회학자들보다 한 발 앞서 환경의 중요함과 교육의 기능성에 주목하였고, 80년대에 들어서서는 정보의 중요성과 정보화 사회에 대해, 90년대에는 이를 좀 더 발전시킨 지식 근로자와 지식 사회, 자기 관리의 두 가지 테마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에 드러커가 도달한 주제는 세계화와 비영리 조직에 대한 것인데, 이는 정보와 지식이 미래 사회에서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을 예견한 것입니다.
드러커는 보통 학자들이 은퇴하는 나이인 65세 이후에 주요 저작과 사상들을 본격적으로 펼친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 책의 목차를 보아도 장년기인 4~60년대보다 80년대 이후의 강의가 훨씬 더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드러커 스스로 평생을 배우고 연구하고자 하는 의지를 불태웠고, 스스로 지식과 정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에 고령의 나이에도 경영학과는 거리가 먼 분야들을 3~4년씩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스스로 연구하고 탐구하는 지성인의 모범을 보여준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서 드러커가 안톤 베베른으로부터 직접 작곡을 배운 작곡학도였고, 말러가 빈 필하모닉과 빈 국립 가극장을 개혁한 사실을 언급할 정도로 수준 높은 클래식 음악 전문가였다는 사실을 안 것이 작은 충격이었으며, 책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사회와 인간에 대한 다양한 관심을 가지고 심도깊게 연구하는 그의 학자적인 자세에 감동하였습니다.
피터 드러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의 저서를 읽어보고자 하는 분들게 가장 먼저 권할 수 있을 만큼 피터 드러커의 평생에 걸친 연구의 궤적과 핵심 사상들을 정리해 놓은 입문서와 같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번역이 조금 매끄럽지 못하고, 오탈자들이 간혹 보이지만, 독해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ha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