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헨지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4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
버나드 콘웰 지음, 유소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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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세계 7대 불가사의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스톤헨지는 실제로는 그보다도 훨씬 더 이전 시대에 만들어진 훨씬 더 규모가 큰 불가사의라고 할 수 있는 수수께끼의 석조 건축물입니다. 세계 7대 불가사의가 BC 300년 경에 이루어진 알렉산더 대왕의 동장 원정 이후 그리스인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여 선정한 ‘반드시 보아야 할 거대 건설물들’을 의미하고 있지만, 스톤헨지는 피라미드를 제외한 다른 모든 건축물들보다도 무려 1000~1500년이나 더 이전인 BC 1800~1400년 경의 고대에 건설된 거대 거석 구축물이기 때문입니다. 

4,000년에 가까운 세월동안 영국의 월트셔 주 솔즈베리 평원에 우뚝 서있는 이 거석들은 우리나라의 고인돌과 마찬가지로 신석기 시대 말기부터 청동기 시대와 철기 시대 초기에 걸쳐 건설된 원시 농경 문화의 산물로써, 종교적 신전이나 무덤의 용도로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고인돌 - 선돌 - 거석렬 - 환상석렬의 형태로 발전되어 온 이러한 거석 유적의 완성형이자 가장 거대하고 유명한 것이 바로 스톤헨지인데, 지름 114m의 말발굽형 도랑과 제방을 따라 82개의 입석이 세워져 있고, 그 가운데에 2중의 열석과 5쌍의 삼석탑이 중앙의 제단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 건설되어 있습니다. 

스톤헨지의 환상석렬들은 하지의 태양이 입구 쪽의 힐스톤에서 떠올라 중앙 제단을 정확하게 비추고 동지 때는 정확하게 그 정반대쪽으로 일몰을 하도록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고, 네 방향에 세워져 있는 스테이션 스톤들도 하지의 일몰과 동지의 일출과 정확하게 일치하도록 되어 있어, 고대의 태양신 숭배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피라미드를 제외하고는 인간이 만든 모든 건축물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거대한 이 스톤헨지는 아직 건설용 대형 장비나 도구가 개발되기 전에 오직 인간의 노동력과 기본적인 도구만으로 먼 곳으로부터 수 백 톤이 넘는 거대한 암석들을 옮겨와 수직으로 세우고 그 위에 또다른 거대한 암석을 수평으로 올려놓는 경이적인 작업을 해내었다는 점에서 고대의 흥미로운 미스테리로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해 왔는데, 버나드 콘웰 역시 그 대열에 합류한 한 명이었습니다. 

영국 여왕으로부터 훈장을 수여받을 정도로 현대 영국을 대표하는 역사 소설가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버나드 콘웰이 영국의 고대 문명을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은 이 거석 건축물을 소재로 하여 2000년에 발표한 작품이 바로 [ 스톤헨지 BC 2000 ] 입니다.

문자나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무려 기원전 20세기 경의 일이기 때문에 어떠한 역사적인 기록의 도움을 얻을 수 없었던 콘웰을 소설을 구상하면서 문화인류학과 고고학적인 전문 지식을 토대로 몇 가지 논리적인 설정들을 먼저 짜놓았습니다. 

이처럼 거대한 암석들을 먼 다른 지방에서부터 옮겨오고 장기간에 걸쳐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권력을 가진 족장이나 제사장 집단이 존재하고, 그들이 건설을 주도해야 한다. 남아있는 유적의 설계와 구조로 보아 스톤헨지는 태양신 신앙을 토대로 건설된 것이므로, 이 유적을 건설한 부족은 강력한 태양신 신앙을 가졌을 것이다. 시기적으로 석기와 청동기, 철기가 뒤섞여 있는 시기이고, 아직 중앙 집권적인 왕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부족 단위의 사회들이 서로 대립하거나 연합하던 시기였을 것이다. 족장과 제사장은 아직 분리되어 있고, 인간 공물의 제사가 행해지던 시기일 것이다. 금이나 호박같은 귀금속들이 고가의 화폐로 교환되기 시작하던 시기일 것이다 등등... 

이러한 학구적인 설정들을 기본 토대로 하여 콘웰은 어떠한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처럼 거대한 거석 기념물을 만들어 놓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이야기를 펼쳐 나갑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세 명의 형제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같고 어머니는 서로 다른 배다른 형제들인 그들은 각각 부족장, 제사장, 전사-노예-건축가 역할을 맡아 서로 반복하고 대립하거나 협력하며 각자의 힘을 키워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주변에서는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를 가진 여러 개의 고대 부족들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대립하거나 연합하면서 세 형제와 관계를 맺어갑니다. 이것이 기본적인 큰 뼈대입니다. 

이야기는 라사린 부족의 부족장인 헨갈의 막내 아들인 사반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갑니다. 맏형 렌가에 의해 부족장인 아버지가 살해되면서 자신의 신부를 렌가에게 빼앗기고 자신은 노예로 팔려가게 된 사반은 불구로 태어났으나 강력한 마법사가 된 둘째 형 카마반의 안배에 의해 죽음을 면하고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어 다시 상인 겸 전사가 되고, 최종적으로는 건축가가 됩니다. 그 과정에서 과거의 연인인 데레윈과 ‘태양의 신부’ 아우레나 두 여인을 만나 그녀들의 사랑을 얻은 사반은 카마반과 함께 마침내 렌가를 죽이고 이웃의 적대 부족인 카살로와의 전쟁에서 이긴 후, 태양신 슬라올을 다른 모든 신들보다 우월한 지위에 올리기 위한 태양 신전 건설의 총 책임자가 되어 오랜 시간에 걸쳐 거대한 환상열석 신전을 건설합니다. 그것이 바로 스톤헨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부족장이자 제사장이 된 카마반의 권력욕에서 비롯된 광기에 대항하고, 과거와 현재의 아내들인 데레윈과 아우레나의 신에 대한 맹신과 맞서며, 자신의 아들인 리아와 데레윈의 딸인 하나가 열어가는 새로운 시대를 지켜보며, 소용돌이치는 배신과 복수, 정복, 희생의 피비린내 속에서 사반은 묵묵히 일생을 바쳐 수 십년 동안 거대한 신전을 건설해 갑니다. 철기조차 없던 시기에 수 십, 수 백 톤에 달하는 거대한 거석들을 옮기고 세우고 돌 위에 돌을 올린 고대 건축의 비밀도 콘웰의 탁월한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되어 마치 눈 앞의 일처럼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콘웰은 역사 기록조차 남아있지 않은 까마득한 선사 시대을 배경으로 한 장대한 이야기과 그 배경이 되는 거대한 고대 세계를 오직 상상력 하나만으로 생생하게 재창조해 놓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세 형제와 여러 부족들, 그리고 신들은 서로 죽고 죽이며 배신하거나 결합하며 새로운 세대로 자신들의 생명을 이어갑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마치 고대의 서사시처럼 장엄한 배경 아래에서 옛 기록물을 읽듯이 상세하고 생동감있게 생명력을 얻어 움직일 수 있게 된 원동력은 바로 콘웰의 필력입니다. 그가 팬으로 창조해 낸 BC 2000년의 고대 세계와 인물들은 읽는 이를 흥미진진한 고대 대서사시 속의 모험 속으로 단숨에 끌어들입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면 우리는 스톤헨지가 단순한 거석들의 무리가 아니라 수많은 부족과 사람들의 애환이 뒤얽힌 장대한 이야기를 담은 거대한 기록물처럼 여겨질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지닌 힘입니다.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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