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에 속지 마라, 블립>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
-
행운에 속지 마라 - 기대하지 마라, 예측하지 마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지음, 이건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저자인 나심 니콜라스 탈렙은 2008년에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촉발된 금융 대공황을 예언한 [ 블랙 스완 ] 으로 일약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경제학자입니다.
레바논 출신으로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 워튼 스쿨에서 경영학 석사를 취득했고 프랑스 파리 제9 대학에서 금융 공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이후 월가에서 10여 년 동안 증권분석가이자 투자전문가로 일한 탈렙의 전문 분야는 바로 파생 금융 상품인데, 이 파생 금융 상품과 그 기초 원리를 제공한 금융 공학이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주된 원인으로 지적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탈렙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그에 따른 금융 공황을 예언한 것은 단순한 운이 아니라 자신의 전문적인 지식을 토대로 과학적으로 예측해 낸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탈렙은 [ 블랙 스완 ] 에서 다분히 모순된 표현인 ‘검은 백조’란 첫 번째로 예측이 불가능하고, 두 번째로 엄청난 충격을 동반하며, 세 번째로 일단 현실로 나타나면 사람들은 뒤늦게 설명을 시도하여 마치 설명 가능하고 예견 가능했던 것처럼 여기게 만든다는 세 가지 특징을 갖는 매우 개연성이 희박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검은 백조’의 이러한 세 가지 특징을 지적하면서 사람들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을 측정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기만하면서, 극히 예외적인 사건, 즉 ‘검은 백조’의 가능성을 애써 회피하곤 하는 월가의 ‘전문가’들에게 날카로운 독설을 날리며, “앞으로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파국이 월가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탈렙은 이러한 치명적인 ‘검은 백조’가 출현하기 전까지 사람들이 이를 감지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보편적인 인간의 하드웨어는 전체를 보아야 할 때에도 부분에 집착하도록 짜여져 있으며, 이미 알고 있는 것에만 집중할 뿐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지 못하는 오류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고 말하면서, 일반적인 인간들이 자신의 무지를 얼마나 모르는지를 속속들이 논리적으로 설명하였습니다.
탈렙이 이처럼 월가와 경제계의 전문가들을 상대로 대담하게 비판의 칼을 휘두를 수 있었던 데에는 보편적인 인간들의 지각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부정확하며,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안다고 스스로를 기만하는 현상에 대해 그 자신이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로 단단한 토대를 구축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탈렙의 이러한 연구들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 블랙 스완 > 보다 3년 전인 2004년에 출간된 이 책 < 행운에 속지마라 >입니다.

< 행운에 속지마라 >에서 탈렙은 월가를 비롯한 세계 증권가와 금융계를 지배하고 있는 잘못된 통계 해석에 근거한 낙관적인 인식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들을 쏟아냅니다.
탈렙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지혜에서부터 통계학과 행동 경제학 등을 통해 도출해 낸 결론은 사실 무척 간단합니다.
증권 시장은 주기적으로 붕괴하게 되어 있으므로 증권에 모든 것을 투자한 트레이더나 투자자는 필연적으로 이런 공황 때 자산을 몽땅 날릴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인 기록을 살펴보더라도 미국 증권 시장은 1929년 대공황 이후 주기적으로 공황 수준의 붕괴를 반복해 온 것이 분명하고, 이런 공황이 1987년과 2008년에도 어김없이 반복된 것임을 누구라도 명백하게 알 수 있는데, 왜 사람들은 이러한 명확한 통계와 사실을 무시하고 앞으로 반드시 닥쳐올 공황에도 불구하고 모든 재산을 주식에만 쏟아 넣을까요?
탈렙은 이러한 행동의 배후와 밑바탕에 깔려있는 원인들로 사람들은 주가가 상승할 때의 군중 심리에서 절대로 자유롭게 벗어나 독립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심리적 한계, 과거의 실적에 현혹되어 자신에게 운이 붙어 있다고 생각하거나 믿는 착각,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일의 원인을 사후에 거론하며 자신이 예측할 수 있었다고 우기는 후견지명, 그리고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언론의 부추킴 등을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근거로 인간은 전체보다 부분에 집착하고,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에 집착하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탈렙은 단 한 번의 공황으로 모든 투자 자본을 한꺼번에 잃게 되는 주식 시장의 특성상 평생동안 시장을 떠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증권 거래를 해야하는 트레이더나 전업 투자자라면 주식에 모든 자산을 올인하기보다는 안정성있는 채권을 병행하거나, 아니면 자신처럼 시장의 흐름과 반대되는 콜 옵션이나 풋 옵션을 행사하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들며 다수의 예측이나 전반적인 흐름과 상반되는 옵션은 드물지만 확실하고 이익폭이 큰 수익을 안겨준다고 말합니다.
사실 제 관점에서 볼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장이 비정상적으로 과열되어 공황이 임박했다고 느껴지면 주식을 처분하고 시장에서 빠져나왔다가 하락장에서 저가에 다시 매입하는 방식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주가가 연일 상승하는 폭등장에서 스스로의 원칙을 고수하여 매입을 중지하거나 빠져나온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전업 트레이더나 투자자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탈렙은 신문이나 뉴스를 보지 않고 장기 전략만 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원칙을 과감하게 행동을 옮긴 유일한 사람이 바로 워렌 버핏인데, 그 버핏조차도 IT붐 때 시장에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말함으로써 투자자로써 거의 사형선고에 가까운 비판을 감수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탈렙은 이러한 이야기를 하면서 통계학과 논리학, 심리학에서부터 행동경제학과 신경생물학에까지 이르는 매우 방대한 분야의 자료들을 논거로 제시하고 있는데, 그 수준이 예상보다 높을 때가 많아서 초보 독자들에게는 이해가 쉽지 않을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거기에다가 필자 스스로(와 번역자)가 밝혔듯이 전체적인 구성과 전개가 체계적이지 않고 산만하며 문체도 불친절해 읽기가 쉽지 않은데, 거기에다가 칼 사강(세이건), 카프카의 <소송>(심판) 같이 눈에 띄는 고유명사의 오역까지 겹쳐져 전체적으로 난삽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하지만 일단 탈렙 특유의 어투와 논리 전개에 익숙해지고 나면 일반적인 경제서나 자료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날카롭고 통렬한 지적과 독창적인 혜안을 만끽할 수 있으므로 개인적으로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개성있는 책입니다.
ha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