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역사, 버냉키와 금융전쟁
데이비드 웨슬 지음, 이경식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18세기에 발아하여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발전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산업 자본주의는 ‘자유 시장 원칙’이라는 도그마에 근거하여 거의 아무런 제어장치없이 급격한 성장 일변도로만 치달은 결과,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마르크스가 예측한 대로 자본주의 발전의 최종 단계에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었고, 그것이 유럽 대륙에서는 식민지 쟁탈 경쟁의 확대인 세계 대전으로, 그 전쟁에 휩쓸려 들지 않은 미국에서는 대공황이라는 형태로 실현되었습니다.

 

2차 대전의 결과 양쪽 진영으로 나뉘어 다투었던 유럽의 강대국들이 모두 동반 몰락하는 와중에 그 반사 이익을 누리며 단숨에 세계 최강의 자본주의 종주국의 자리에 올라선 미국은 필연적으로 예정되어 있던 대공황을 피하기 위해 수정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단계로 혁신적인 전환을 하면서 뉴딜 정책으로 파국을 모면하고, 이후 20세기 후반 전체와 21세기에 접어든 현재까지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최강국으로써의 지위를 굳건하게 유지하게 됩니다.

 

수정 자본주의의 핵심인 시장의 자율 조정 기능을 신뢰하고 거기에 모든 것을 맡겨두는 고전적인 원칙을 전격적으로 타파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을 규제하는 중핵 역할을 담당하는 기구가 바로 미국의 중앙 은행 격인 연방 준비 제도입니다.

 

주식 투자를 하시는 많은 분들이 주가에만 집중하곤 하는 것과는 달리, 넓은 시각으로 경제를 보시는 분들은 단기적인 주가 지수나 개별 종목의 거래가보다 금리와 채권 수익률, 금과 석유 등의 현물 가격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그것들을 장기적인 경제 전망의 지표로 활용하곤 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금리인데, 대출을 받아본 경험이 있으신 분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금리가 일반 가정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전체 주가나 개별 주식의 등락보다도 훨씬 더 직접적입니다. 이것은 가게보다 대출이 훨씬 더 많은 기업에서는 더욱 중요하고, 그래서 매 달 발표되는 한국 은행의 기준 금리나 지불 준비율의 변동이나 추세에 기업을 하시는 분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별 국가들의 금리에 가장 크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미국의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매 달 발표하는 기준 금리입니다.

 

 



[ 살아있는 역사, 버냉키와 금융 전쟁 ] 은 바로 현재 미국 연방 준비 제도의 의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벤 버냉키와 그가 이끄는 연방 준비 제도가 2008년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부터 비롯되었던 초유의 금융 공황 사태의 한 복판에서 어떻게 행동하여 파국의 위기를 헤쳐 나갔는지를 서술한 책입니다.

 

이 책은 1900년대 초 미국의 경제 상황을 설명한 뒤 1907년의 대공황과 그 여파로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가 창설되게 된 배경과 과정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연방 준비 제도가 설립된 얼마 후에 닥쳐 온 대공황의 발발 원인 중의 중요한 한 가지가 바로 연방 준비 제도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여러 학자들의 지적을 소개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였던 벤 버냉키이며, 대공황에 대한 심도깊은 연구는 버냉키로 하여금 연방 준비 제도에 관한 확고한 원칙과 행동 규범을 스스로의 내면 속에 확립하게끔 합니다.

 

버냉키의 선임자인 앨런 그린스펀은 무려 22년동안이나 의장직에 장기 집권하면서 연방 준비 제도를 백악관과 국회, 대법원에 이은 제4의 권력 기관으로 확립시켰고,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의 의장을 스타로 부각시킨 인물입니다. 그린스펀이 집권하던 시기 동안 미국은 1987년의 주가 대폭락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큰 공황 사태없이 급속한 경제 발전을 누려 왔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성장을 가능케 하기 위해 그린스펀이 유지해 온 저금리 정책은 경제 발전과 주가 상승에 못지않게 신용 대출의 증가라는 시한폭탄을 키워왔고, 그것이 결국 버냉키 시대에 들어와 금융 공황의 방아쇠를 촉발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그린스펀은 2001년 1월부터 금리를 공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였는데, 2001년 초에 6.5%이던 기준 금리가 9. 11 사태 때는 3.5%였고, 2001년 말에는 1.75%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린스펀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이후도로 지속적으로 금리 인하 정책을 고수하여 마침내 45년 만의 최저 수준인 1%까지 끌어내리고, 이 수준을 2004년 6월까지 쭉 유지해 나갑니다. 2005년부터 금리를 매 달 0.25%씩 소폭으로 올려나가기 시작했지만, 2005년 5월까지 3% 선까지 밖에 올리지 않았으며, 자신의 임기가 끝나던 무렵인 2006년 2월까지도 4.5% 내외의 낮은 수준으로 금리를 유지했습니다.

 

낮은 금리는 필연적으로 통화량의 증대와 신용 대출의 폭등이라는 거시 경제에 위협적인 뇌관을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평균 2%대인 인플레이션보다도 낮아 실질적으로는 마이너스 금리 수준인 1% 대의 낮은 금리 조건에서 소득 수준 이상의 대출을 받아 집을 사거나 집을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은 서민들은 금리가 3~4.5% 선으로 3배~4.5배 이상 오르게 되자 매 달 은행에 갚아야 할 이자도 큰 폭으로 오르게 되어 급기야는 이자를 납입하지 못하는 가게 파산 상태로 내몰리게 됩니다. 이것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그런데 2008년에 미국을 덮친 금융 공황의 확산 요인은 이 모기지 문제가 전부가 아닙니다. 은행들은 대출된 부채를 모기지 채권이라는 형태의 대출 증권으로 만들고, 이것을 토대로 다양한 파생 상품을 개발해 유통시키는 편법을 발명하였습니다.

은행으로써는 위험도가 높은 대출금을 증권 형태로 바꿔 유통시킴으로써 대출이 불량으로 판명되더라도 손해를 볼 위험을 햇지하게 되지만, 문제는 이 불량 대출에 토대를 둔 채권 증서가 폭탄처럼 은행권을 떠돌아다니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너무나 복잡한 파생 상품의 구조와 내용으로 인해 은행조차 그 정확한 가치와 위험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 규모와 비중이 급격하게 불어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은행들은 자신들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복잡한 구조의 이 파생 상품들을 별도의 구조화 투자 기구를 설립해 은닉했는데, 이때 소요되는 비용과 자금은 은행의 장부에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금액이 이러한 부실 채권과 파생 상품에 투입되어 있는 지를 은행 내부에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해서 시티뱅크 한 곳만 살펴보더라도 2006년 기준으로 장부에 기록하지 않고 구조화 투자 기구에 빌려준 금액은 총 2조 1000억 달러 규모로, 이는 장부에 기록된 시티은행의 총 자산인 1조 8000억 달러를 훨씬 상회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인 것입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부실은 곧바로 그것에 근거한 부채 채권과 파생 상품들의 부실로 이어지고, 이 어마어마한 자산의 붕괴와 소멸은 결국 은행과 증권사, 투자사의 막대한 부채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2008년에 미국에서 촉발되어 전세계를 휩쓴 금융 공황의 실체입니다.

 



그린스펀의 뒤를 이어 연방 준비 제도의 의장직에 오른 지 채 2년이 되지 않았던 버냉키는 당초에는 전임자인 그린스펀의 방침을 존중하고 답습하여 시장과 은행이 자체적으로 충격을 흡수하기를 기대하며 금리를 5% 내외로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저금리에서 고금리로의 전환으로 인한 모기지 부채의 부실 규모를 과소평가하여, 금리를 낮추어야 한다는 일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느린 템포로 서서히 금리를 낮춰나가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유럽 중앙 은행이 먼저 미국의 모기지 금융사에 대출을 한 유럽 은행들의 담보가 위험하다는 경고를 발하였고, 이어서 모기지 금융사에 대출을 해 준 미국 내 대형 은행과 증권사, 투자사들의 현금 유동성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태가 이렇게 급변하자 버냉키는 곧바로 자신의 상황 판단 실수를 깨닳고, 금리를 전격적으로 대폭 인하하였고, AIG를 비롯한 대형 금융 업체의 도미노 부도를 막기 위해 무려 2억 8천만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현금을 쏟아 부음으로써 1907년과 1929년의 대공황에 필적할 만한 대재앙이 될 뻔했던 금융 공황 사태를 단기간에 안정시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대공황을 연구했던 학자로써 대공황 직전에 연방 준비 제도가 신속하고 과감하게 시장을 통제했었더라면 대공황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신념을 지녔던 버냉키는 자신이 마침내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의 의장이 되고 곧이어 금융 공황이 일어나자, 자신의 신념을 곧바로 행동으로 옮겨 자칫 부시 정부의 마지막 업적(?)으로 미국 금융계 붕괴라는 파멸적인 사태로까지 치달을 수 있었던 위기 상황을 거의 도박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과감하게 총동원하여 사태를 조기에 진정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현재로써는 보입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이 금융 위기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이고, 금융 공황의 원인이 되었던 은행과 증권사들의 부실 채권과 파생 상품 개발 및 유통에 대한 책임 소재 규명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2조 8천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신규 달러의 시장 투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위협이 버티고 있는 상태인 것은 사실인 만큼, 아직 버냉키의 역할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는 이르다고 보여지는 시점입니다.

 

하지만 이 책 [ 살아있는 역사, 버냉키와 금융 전쟁 ] 은 불과 2년 전에 전세계를 뒤흔들었고 아직 그 여파가 잔존해 있는 금융 공황의 원인과 전개 양상, 그리고 버냉키가 이끄는 연방 준비 제도 이사회의 대응 방법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 줌으로써, 연방 준비 제도와 기준 금리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심어줍니다.

 

현재 국내외 경제계에서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될 출구 전략도 결국은 미국 연방 준비 제도의 금리 정책에 의해 결정되는 만큼, 경제를 거시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분들에게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hajin81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