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기 좋은 날이 따로 있느냐 - 영원의 숲으로 떠나는 아주 오래 기다린 여행
정휴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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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혼자됨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었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라는 말이 있죠.
 

그런데 죽음에 대한 공포증은 사춘기 이전의 어린 아이 때는 누구나 한 번 쯤은 겪곤 하는 통과 의례와 같은 것이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는 평소에는 까맣게 잊고 지내는 ‘아직 멀고 실감나지 않는’ 미래의 일처럼 여겨져 망각하고 사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죽음과 생전의 행위가 향방을 결정짓는 죽음 후의 세계를 평상시에도 인지하고 산다면 평소의 행동에 훨씬 더 깊은 주의를 기울일 테지만, 이처럼 죽음을 먼 나중에나 닥칠 일이고 천국이나 지옥 같은 죽음 뒤의 사후 세계를 미신으로 여기는 인식이 일반적이 되었기 때문에, 살아 생전의 언행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라는 극단적인 상벌이 기다린다는 협박(?)이 별다른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평균 연령이 3~40세이고 사소한 병도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지던 시대와는 달리 어지간한 병은 대부분 발달된 현대 의학의 힘으로 완치가 가능하고, 성 전환이나 전신 성형 같은 이전까지‘신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일마저 과학의 힘으로 가능해진 데다가, 특별한 일이 없다면 거의 8~90세까지 수명이 길게 연장되는 현대에는 과거에 비해 죽음이 주는 공포가 현저하게 적어질 수 밖에 없는 점도 이러한 인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불교계의 주요 직책을 두로 거치신 ‘큰 스님’이신 정휴 스님이 쓰신 이 책을 읽어보면 현대 한국 사회, 아니 현대의 모든 나라들을 좀먹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의 근본이 바로 이 죽음에 대한 경시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정휴 스님은 이 책을 ‘죽음’을 맞이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스님은 불교의 존경받던 고승과 선승, 법사들이 보여주었던 다양한 입적 행태들을 열거하여 들려주는데, 대부분의 고승들은 앉아서 혹은 서서 입적을 맞이했으며, 많은 분들은 제자들이나 신도들과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홀연듯 입적에 드셨으며, 드물게는 길을 떠나듯 두어 발자욱을 걷다가 혹은 산책하듯 마당을 거닐다가 나뭇가지를 손에 잡은 자세 그대로 입적하신 분도 있으셨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본인의 입적을 예감하고 물구나무를 선 채로 입적하시거나 관을 미리 준비해 놓고 그 속에 들어가 누워 입적을 하시거나 스스로 다비용 장작을 쌓아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 직접 불을 붙여 입적하시는 믿기 힘든 모습마저 보여주신 고승들도 계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고승들께서 세상에 별다른 미련이 없으신 듯 홀연히, 혹은 평상시에 행동을 하시던 그대로, 심지어는 자신의 죽음 자체를 희화화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육신과 이승에 아무런 미련과 얽매임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정휴 스님은 말씀하십니다. 낡고 더럽고 추한 육체를 오래된 옷을 태워 버리듯이 훌훌 벗어 던지고 더 높은 차원의 법신으로 나아가는 것이 즐거움이 되면 될 지언정 무어 그리 꺼리낌과 아쉬움을 있을 것이냐는 말씀이십니다.

 

평소에 죽음을 경시하던 현대인들 중의 상당 수가, 그리고 부와 권력과 지식이 많은 소위 권력층과 지식층의 대부분이 정작 죽음에 직면하게 되면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억지로 조금이라도 연장하려고 무리하게 애를 쓰는 것은 따지고 보면 결국 이승에서 가지고 있는 것들에 미련이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를 비롯한 전세계를 좀먹고 있는 부와 권력의 불균등과 과도한 편중은 결국 소수의 사람들이 부와 권력과 지식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 비극인데, 이들이 자신들이 이승에서 온갖 노력과 고생, 권모술수로 쟁취한 것들이 정작 죽음이라는 절대 명제 앞에서는 결국 모두 다 놓아두고 빈손으로 떠나가야만 하는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는다면 그렇게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주변과 사회에 나누어주어 보다 자비로운 세상이 될 터인데, 가지고 가지도 못하는 헛된 것에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기에 세상이 이처럼 평온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평범하지만 진리에 가까운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거기에 더해 고승들은 자신의 죽은 육신을 위해 화려한 장례식이나 다비식을 치르거나 거창한 탑이나 부도를 만들지 많고, 자신의 남은 육신을 산에 내다버려 짐승이나 벌레들의 먹이가 되도록 하라는 믿기힘든 유언을 남김으로써, 껍데기 뿐인 육신을 훌훌 벗어 던짐은 물론 이승에 남은 흔적까지도 짐승이나 벌레같은 생물들에게 망설임없이 공양함으로써 범인들은 생각조차 하기 힘든 더없이 큰 자애심의 본을 몸소 보이셨습니다. 이 역시 자신이 감당하지도 못할 만큼의 재물과 권력을 끌어안고 탐닉하는 세상의 권력자와 부자들의 삶과 진정으로 비교되는 우주와 공감하는 한 차원 높은 삶과 죽음을 직면하는 참된 자세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정휴 스님은 이 책에서 고금의 고승과 선승들의 선례를 거듭 들어 말하면서 세상의 모든 번뇌와 망상의 근원, 그리고 깨달음을 훼방하는 것이 바로 ‘집착’이며, 바로 이 집착을 끊고 법아를 직면함으로써 더 높은 세계로 나아가고자 노력함이 수행자의 본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얻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고승들이 통찰력을 담아 남긴 법어와 화두들을 열거하며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법아의 경지에 도달하는 다양한 방법과 모습들을 비유와 실례로 들려 줍니다.

정휴 스님의 이야기들 중에는 황제와 황후, 고관대작의 청을 거듭 고사하며 권력을 멀리한 고승들의 예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정신적인 초월의 경지를 추구하는 수행자가 세상의 권력에 구애되지 말아야 한다는 가르침은 종교가 세속의 갈등을 도발하고 부추키는 현재의 실상에 대한 따끔한 꾸짖음으로 들립니다.
 

 


앞부분이 일반적인 삶과 죽음에 대한 수필로 읽힐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법아와 깨우침에 대한 법어들이 등장하는 부분부터는 불교라는 종교 특유 모습이 많이 드러나지만, 저처럼 불교에 대해 거의 아무런 지식이 없는 외부인이 읽더라도 큰 어려움 없이 받아들여질 정도로 보편적인 문체로 평이하게 씌여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본문에 나오는 내용들 중에서 크리스트교의 성서에 나오는 것과 깜짝 놀랄만큼 동일한 문장이나 표현들이 상당 수 보이는데, 우리나라 일부 개신교의 완강한 부정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종교와 성자들의 말씀에는 근본적으로 통하는 부분이 많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실 이 책의 제목인 ‘떠나기 좋은 날이 따로 있느냐’는 말도 정휴 스님 본인이나 불교의 고승이 남기신 말씀이 아니라 뜻밖에도 교황 요한 23세가 선종하시기 전에 남기신 말씀이라는 데에서 그런 점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데, 본문 중에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테레사 수녀님의 예도 나와서 큰 스님의 종교를 아우르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정휴 스님이 이전에 쓰셨던 여러 권의 저서들 중에서 가장 나중에 쓰신 책을 랜덤하우스 측의 요청으로 재간한 것인데, 불교 사진에 정평이 높은 백종하 사진 작가가 찍은 아름다운 선방과 사찰, 자연의 풍경사진들이 곁들여져 있고, 글과 사진이 매우 깔끔하게 편집되어 있는 덕분에 시각적으로 보기에도 좋은 점이 두드러지는 장점입니다.

 

이 책은 저처럼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인이 읽기에도 별다른 거부감이나 어려움없이 불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삶과 죽음, 깨우침과 해탈, 집착과 초탈 등의 명제들을 간명하게 풀어 보여주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책을 많이 읽은 불교 신자들보다는 오히려 불교에 관심은 있으나 어디에서부터 접근해야 할 지 모르는 비신자분들에게 훨씬 더 유용하고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hajin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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