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볼 1 - 워런 버핏과 인생 경영
앨리스 슈뢰더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막스 베버가 [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을 통해 중세의 청교도주의나 배금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혜안으로 근대적 자본주의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한 이래, 기업가는 이전 시대의 정복자나 개척자와 비견될 만한 역사적인 지위를 획득하였다. 무력에 의한 영토의 확장이나 미지의 새로운 영토의 발견과 식민화라는 중세적인 수단이 불가능해진 근대 이후 가장 치열한 권력과 헤게모니의 다툼은 경제라는 비지리적인 지평에서 벌어졌고, 기업가는 자본과 재화 그리고 혁신이라는 무기로 시장이라는 전쟁터에서 무자비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하였고, 이는 곧 전지구적인 전장으로 확대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현대의 기업가와 자본가는 중세의 제후나 귀족, 기사의 위치에 놓일 것이고, 카네기나 록펠러와 같은 전설적인 부자들은 알렉산드로스나 나폴레옹, 혹은 메로빙거 왕조나 부르봉 왕가와 비견될 만한 존재감을 가진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의 연장선상에서 던져지는 ‘현대 최고의 부자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답변이 지니는 의미는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 확장을 한 정복왕은 누구인가’와 비슷하다고 말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는 사상인 자본주의의 패자(覇者)라고 할 수 있는 세계 최고의 부자를 묻는 질문에 매년 세계 최대의 부자 400명을 선정하여 발표하는 [ 포브스 ] 2008년 판은 ‘워런 버핏’이라는 답을 보여주었다. 

1990년대 후반 이후 한 두 차례를 제외하고는 빌 게이츠와 매년 세계 1위 부자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 경쟁을 벌였던 워런 버핏인 만큼 1위 발표에 대한 위화감이나 의구심은 없지만, 그의 1위 소식은 빌 게이츠의 1위 소식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빌 게이츠는 현대 IT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시피 한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세계 최대의 매출을 독점적으로 향유해 온 초거대 기업의 창업자이자 회장이었기 때문에 그가 세계 최고의 부자라고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되지만, 워런 버핏은 그와는 달리 세계적인 기업의 총수나 소유자도 아니고 중동의 부호들처럼 천문학적인 천연 자원을 물려받은 것도 아니며, 심지어 그가 소유하고 있는 대표적인 회사인 버크셔 헤서웨이가 정확하게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조차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라는 타이틀을 십 여년 째 보유하고 있는 만큼 서점에 가보면 그의 이름을 내세운 경제학이나 재테크 서적은 물론 위인전까지 수 십권의 책들이 쌓여있고, 이중 상당 수가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올라있지만, 자신이 직접 쓴 저서만도 여러 권인 빌 게이츠나 잭 웰치와는 달리 버핏은 단 한 권의 책도 직접 저술한 바가 없고, 심지어 그의 공인을 받은 자서전이나 투자지침서조차 없을 정도로 그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 책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그에 대한 책들 중에서 그나마 가장 워런 버핏을 가까운 곳에서 관찰한 측근에 의한 책은 아들인 피터 버핏의 이혼한 아내, 즉 전 며느리인 메리 룰로 버핏이 쓴 책 정도인데, 이 책은 버핏이 인정하기는 커녕 불같이 화를 내었다는 뒷이야기가 있고, 실제로 워런은 메리 버핏이 피터와 이혼한 이후 데려와 피터의 양녀로 입적시킨 두 딸을 자신의 손녀로 인정조차 않을 정도로 며느리 메리를 싫어했던 만큼 책의 신뢰성은 그다지 높다고 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런만큼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거나 회사를 세워 수익을 창출해 내지 않고, 대공황 이후 자신의 돈 100달러와 가족과 친구로부터 투자받은 10만 5천 달러로 본격적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한 이래 60여년 동안 무려 60억 달러 이상이라는 천문학적인 수익과 그 수 십배인 2천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오직 주식 시장에서만 벌어들이고 확장시킴으로써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으며, 석유 파동과 전쟁, 테러, 금융 공황 등 세계적인 규모의 돌발 사태가 빈번했고 제조업의 몰락과 IT 혁명 등 변화의 속도가 눈부셨던 20세기 말~21세기 초라는 격변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기적이라고까지 여겨질 만큼 믿기 어려운 성공을 꾸준히 이어간 그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궁금증은 대단히 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당연히 그가 거둔 엄청난 경제적 성공에 대해서도 경제학자와 주식 전문가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버핏의 투자 방식을 꼼꼼하게 분석하였지만, 컴퓨터를 이용한 수학적, 통계학적 분석을 앞세우거나 복잡한 파생 금융 상품을 생성시켜 내는 월 스트리트의 기술적인 투자 경향이나 투자전문가들의 통례적인 지침과는 전혀 다른 ‘버핏톨로지’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그만의 투자 방식은 '가치 투자'라는 고전적인 대명제 외에는 명확하게 정리된 바가 없다. 

 기업의 실질적인 내제 가치보다도 주 당 가격이 낮게 저평가되어 있는 주식을 구입해서 되도록 장기간 보유한다는 버핏의 가치 투자 개념은 이론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지극히 상식적인 방법일 뿐이지만, 수많은 투자자들이 버핏처럼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주식을 인플레이션보다 좀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자산 축적 방식이라고 보지않고 요행의 대박을 노리는 자본 투기로 보기 때문이고, 자신이 투자하는 회사의 자산 상태와 해당 시장의 장기 동향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연구가 선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워런 버핏의 이제는 전설이 된 투자 성공과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던 비결은 획기적인 이론이나 비공식적인 방식이 아닌 버핏이 평생동안 해 온 투자의 궤적을 뒤따라가 거시적으로 통찰함으로써 그 비결을 유추해 낼 수 밖에 없는데, 그러기에는 버핏 자신에 관한 신뢰할 만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이다.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공개하기를 단호하게 거부해 왔던 버핏은 2003년에 전격적으로 마음을 바꾸어 앨리스 슈뢰더라는 모건 스탠리 출신의 여성 애널리스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쓰도록 허락하고 이를 위해, 버핏 자신이 그동안 모아두었던 방대한 량의 자료들을 과감하게 제공하였음은 물론, 필요한 만큼 무제한의 인터뷰를 허락하는 전폭적인 지원을 하였고, 이를 토대로 이후 무려 5년 간에 걸친 집필 작업 끝에 2008년 버핏이 인정한 최초의 자서전[ 스노볼 - 워렌 버핏과 인생 경영 ]이 발간되었다. 

그리고 1년 후에 마침내 랜덤하우스를 통해 국내판이 발간되자마자 주요 신문들과 인터넷 서점들이 한결같이 프론트페이지에 이 책에 대한 소개와 추천들을 앞다투어 내걸었을 만큼 이 책에 대한 관심이 엄청난 데에는 ‘단순히 세계 최고 부자의 첫 공식 평전’이어서가 아니라 앞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이유들이 배경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두터운 두 권의 하드커버에 합쳐서 총 1,834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은 위압감마저 줄 정도이지만, 내용은 복잡한 경제나 투자 이론들은 의외로 많지 않고 워런 버핏의 일생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인물 평전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의외로 쉽고 재미있게 잘 읽힌다.

평전의 첫 장은 상투적인 워런 버핏에 대한 찬사나 통속적인 가계도 나열이 아니라 1999년 7월 선 밸리에서 열렸던 연례 컨퍼런스에서 버핏이 했던 연설을 소개함으로써 시작한다. IT 기술의 대도약 시기를 맞아 월스트리트가 IT 기술주의 폭등으로 열광하던 시점에 버핏은 IT 기술주 열풍에 엄청난 거품이 끼여있으며, 자신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고 자산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기술주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폭탄 발언을 한다.  

그리고 그 근거로 새로운 기술 자체는 분명히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지만, 그것과 그 기술을 지닌 회사의 성장은 별개의 문제라고 하면서, 자동차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명품임은 분명하지만 초기에 2,000개가 넘었던 자동차 회사의 목록은 현재는 3개 밖에 살아남지 못했으며, 20세기 초에 200개가 넘던 비행기 산업 관련 회사들 중 현재 수익이 나는 항공 회사 주식은 단 하나도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예로 들었다. IT 산업 전성기의 한 복판에서 버핏이 말한 이 주장은 당시 최악의 수익률을 기록하던 버핏과 버크셔 헤서웨이의 현실과 대비되면서 월스트리트와 산업계 전체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었지만, 얼마 후 IT 기술주의 거품이 대붕괴를 일으킴으로써 월스트리트 전체가 대공황 이후 최대의 폭락을 겪게 되자 ‘오마하의 현인’ 버핏의 통찰력은 모든 이의 존경의 대상이 된다.

2장부터 시작되는 버핏의 가계와 어린 시절의 경험들은 버핏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려했던 이유를 일정 부분 짐작케 한다. 17세기에 미국으로 이주해 19세기 중반에 네브래스카의 오마하에 정착한 버핏의 가문은 아버지인 하워드가 하원 위원이 됨으로써 지역 사회에 탄탄한 기반을 갖추게 되었지만, 외가쪽으로 유전된 정신병적인 기질은 어머니 레일라의 난폭하고 가학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어 버핏에게 평생동안 깊이 내재된 트라우마의 원인이 되었다.

어린 시절부터 갖가지 통계 수치로 가득찬 책을 통째로 외우기 좋아했던 버핏은 서른 다섯 이전에 백만장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신문 배달과 마권 줍기 등을 통해 모은 돈으로 11살 때 첫 주식 매입을 하였다.

대학 졸업 때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나이로써는 막대한 자금을 모은 버핏은 벤저민 그레이엄의 [ 현명한 투자자 ]를 읽고 합리적이고 수학적인 기술적 분석에 매료되어 존경하는 그레이엄이 강의를 하던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 입학해 그레이엄의 제자가 되었고, 이후 그레이엄의 투자 회사에 입사해 그레이엄의 지론인 ‘가치 투자’를 평생의 투자의 기본으로 몸에 익혔다. 회사가 지닌 자본과 자산의 청산 가치가 그 회사의 주식의 총액보다 크다면 비록 최악의 경우 그 회사가 망하더라도 결코 손해는 보지않는 최소한의 ‘안전 마진’을 확보한 것이므로 실제 자산 가치보다 주가가 낮지만 안정적인 수익을 내고있는 기업을 골라 투자하여 장기간 보유하는 가치 투자 전략은 단순하고 원칙적이지만, 위험은 극히 낮고 수익률은 안정적으로 보장되는 정석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이다. 

그레이엄의 은퇴 이후 그레이엄의 후계자 권유를 고사하고 오마하로 돌아온 버핏은 가족친지와 동료,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투자 회사를 세운 후 저평가된 회사의 주식을 사모은 후 수익을 배당하지 않고 계속해서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불려나간다. 직물 회사인 버크셔 헤서웨이를 비롯하여 버핏이 지배 주식을 가진 회사들은 개별적으로는 큰 수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주식 교환을 통한 지속적인 주식 매입과 재투자, 차익 거래 등을 통해 꾸준히 자산을 확대시켜 나간 결과 월스트리트의 평균적인 수익률을 훨씬 능가하는 높은 수익률을 매년 기록하고, 그 결과로 막대한 투자자와 자금들이 버핏에게 몰려들기 시작한다.
  

2권에서는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하여 살로몬 브러더스, 코카콜라 등 월스트리트의 굵직굵직한 대기업들의 이사로 참여하여 직접 경영에 관여하고, 그 과정에서 겪은 복잡한 경영권 다툼과 법적 소송을 통해 월스트리트와 미국 금융계의 숨겨진 모습들을 상세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특히 1999년의 IT 기술주에 대한 예언에 이어 서브프라임 부실로 인한 금융 부실에의 경고, 월스트리트에 만연한 분식 회계와 장부 조작에 대한 비판, 테러나 자연 지진에 대비한 모험 상품의 설계 등에서 보여준 버핏의 시대를 앞선 혜안은 경제 원칙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진정한 자본주의자의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부자들의 상속세 면제를 앞장서서 반대하고 경영자들에 대한 막대한 스톱 옵션 지급을 비판한 그의 목소리는 엄청난 자산을 가진 부자들의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강조함으로써 전 미국인의 존경을 받는 계기가 된다. 

그 연장선 상에서 버핏과 부인 수지, 그리고 자녀들의 이름으로 각각 재단을 설립하여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고, 나아가 자신이 사망한 후에는 자신의 막대한 재산의 대부분을 자신의 재단이 아닌 빌 게이츠의 재단에 기부하도록 함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보다 더 잘 활용해 줄 곳에 위탁하는’ 이상적인 기부 문화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현대 자본주의의 현인’다운 모습을 실천적으로 제시하였다.



책에는 버핏의 투자나 경영에 관한 이야기들에 못지않게 버핏 개인의 특이한 성향과 생활 모습, 사고 방식과 성격상의 장단점들, 수지를 비롯한 여러 여성들과의 독특한 관계들, 자식들을 대하는 모습 등을 자세하게 그려냄으로써 버핏을 성인이 아닌 피와 살을 가진 장점만큼이나 결점과 특이점도 많은 인간으로 형상화시켜 보여준다.  

극도로 주관적인 성격과 인색함, 깊은 트라우마를 지닌 버핏의 사실적인 모습과 수지와 애스트리드, 케이, 샤론 등 그의 주변 여인들과의 관계에 대한 폭로로 인해 이 책이 출간된 이후 버빗과 저자의 사이가 크게 벌어졌다는 말도 들려 왔지만, 본인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의 성공과 기부를 신화화했을 때 가졌을 거부감보다는 오히려 인간적인 결점들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여주었을 때 오히려 그의 삶이 진솔하고 투명하게 그려져 친근감과 호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평전의 모범적인 사례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버핏이 지닌 모든 인간적인 장단점들에도 불구하고 그가 성공을 거둔 가장 큰 비결은 바로 엄청난 집중력 때문이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도 있지만, 이 책에는 그런 단순한 요약 이상의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주식이나 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강력하게 추천할 매우 중요한 책이다. 

(특히 버핏이 한국과 한국 기업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분석한 대목은 반드시 읽어두어야 할 부분이다). 

haji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