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공화국 일본여행기 - 만화평론가 박인하의 일본컬처트래블
박인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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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인 2007년 늦여름 경에 도쿄와 오사카를 각각 1주일씩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테마파크 건립 기획과 관련된 리서치를 위해서였는데, 도쿄에서는 디즈니랜드와 디즈니씨, 지브리 박물관, 남코 난쟈타운, 도쿄 돔시티 등을, 오사카에서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오사카성, 니죠성. 도에이 스튜디오 등을 중심으로 나름대로 미리 세세하게 사전 조사를 한 후에 출발했었습니다.  

일본 영화와 애니메이션 평론도 상당히 오래 전부터 해 온 만큼 자신있게 목적지를 선택하고 여러 권의 가이드북과 인터넷 게시판들을 참조하여 일정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몇 년 만에 다시 밟은 일본은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변해있어 혼란스러웠고, 우리가 대상으로 삼았던 장소들 중에서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은 목적지들은 참고할 수 있는 정보 자체가 적거나 가이드북에 실려있는 정보가 잘못되었거나 아예 아무런 정보를 찾아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결국 길거리에서 낭비한 시간이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지브리 박물관의 경우에는 국내에서의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매우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적지않은 입장료를 내고 어려운 예약 과정을 거쳐 도쿄 외곽의 미타카까지 애니메이션 관련 명소를 보라가는 가는 경우가 예상했던 것보다 많지 않아서인지 가이드북마다 실려있는 정보들이 거의 똑같은 기본적인 정보들 뿐이고 그나마 최근에 변경된 사항들은 전혀 업데이트되어있지 않아서, 정작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팬이라면 그곳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무엇을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하고 어디에 어떤 것이 숨겨져 있는지 박물관 내 기념품점에서는 무엇을 파는지 같은 애니메이션 전문가의 상세하고 전문적인 정보가 정말 아쉬웠습니다.
 

이런 아쉬움은 도쿄보다도 상대적으로 관광객이 적은 오사카-교토-나라는 더욱 심해서 덴덴 타운의 애니메이션이나 음반 전문점들에 대한 정보는 아키하바라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적었고, 가이드북이나 인터넷 게시판의 정보들도 관동 - 도쿄와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문화적 토양을 지닌 관서 - 오사카의 문화 특징들을 소개하고 설명해주는 책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해외 여행이 보편화됨에 따라 이제는 여행사 상품이나 패키지 여행 같은 유명 관광지 위주의 단순 관람형 여행에서 여행자 각자의 취미나 기호에 따른 주관성이 강한 여행이나 맞춤형 여행으로 넘어가는 추세이고, 특히 젊은 층에서는 이러한 관광 형태가 상당히 보편화되었음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개정판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국내의 가이드북이나 여행 책자들을 볼 때마다 매번 아쉬웠던 점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 관광지들이 아닌 영화나 음악, 문학, 미술, 건축, 연극, 무용, 만화, 식도락, 민속 등 세분화된 취미나 기호를 가진 사람들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해외 여행길에 오를 때 그들을 위해 신뢰할 만한 그 방면의 전문가나 애호가가 특정 문화 분야에 초점을 맞춰 집중적으로 탐구하여 정확하고 풍부하면서도 세밀한 정보를 담아놓은 책이 의외로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번에 발간된 [ 만화공화국 일본여행기 ] 는 우선 국내에 몇 되지않는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의 전문가인 박인하 교수가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바라본 일본 문화 탐사기’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일단 제가 바라던 형태를 갖추고 있어서 기본적인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추천사와 인사말들을 넘어 목차 쪽을 펼쳐 보면 흔히 예상되는 대중적인 만화들이 아니라 < 명가의 술 > 이나 <바텐더 >, < 현시연 >, < 캣 스트리트 >, < 어시장 3대째 >, < 갤러리 페이크 >, < 산 > 같이 최근 진지한 만화 매니아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있는 전문적인 직업과 소재를 다룬 작품들을 선정하고, 각 작품과 작품 속에 그려진 직업의 배경이 되는 장소들을 중점적으로 소개한 것이 눈에 띄어 지나치게 대중적이거나 보편적인 방향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2~30대의 진지한 만화 애호가들의 시선에 맞추겠다는 방향성이 명확하게 보이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저자가 현재 교토에 거주하고 있어서 인지 일본 만화의 다수가 다루고 있는 도쿄가 아닌 오사카와 교토 등의 관서 지역을 먼저 다루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드는데, 특히 오사카의 우메다와 도톰보리, 덴덴타운, 오사카성과 니죠성, 만국박람회장과 다카라즈카 극장 등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는 점이 매우 흡족합니다. 

도쿄로 와서도 긴자의 바와 쇼핑 문화, 오모테산도의 건축물들과 캣스트리트의 잡화점들, 도쿄 곳곳의 박물관과 미술관들, 츠키지 시장 등을 일반적인 가이드북들과는 다른 만화와 애니의 배경이 되는 공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들 위주로 소개하는 방법이 돋보이고, 아키하바라와 이케부쿠로의 오타쿠와 동인지 문화를 설명하는 장에서는 일반인들에게는 무척이나 낯설고 이해하기 힘들 ‘전문용어’들까지 쏟아져나와 슬며시 웃음을 지게 만듭니다. 

토이와 피겨, 건프라 등을 소개하는 장에서는 국내의 어떤 가이드북들에서도 언급조차 하지 않는 나카노 브로드웨이와 토이러저스 등의 매니아틱한 명소들을 소개하고 있는 점이 특히 주목할 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4부인 테마파크 편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일본 각지에 흩어져 있는 각종 테마파크들을 모두 소개하지 않은 점은 다소 아쉽지만, 만화-애니메이션 관련 테마파크들에 대해서는 충분한 분량을 할애하여 소개가 되어있고(교토역 안에 테즈카 오사무 기념관이 있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지 못해 교토역 바로 전 역에서 기차를 갈아타는 실수를 한 안타까움이 지금도 뼈에 사무치는 저로써는 특히 와닿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만화 - 애니메이션 기반의 테마 파크 개발과 건설의 구체적인 예로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던 돗토리현의 사례를 자세하게 소개한 부분은 특히나 유익했습니다.

커피나 카페 같은 여성적인 기호를 테마로 한 일본 기행문들은 많은 반면 서브 컬쳐에 초점을 둔 기행문은 비교적 다양한 일반 서적에 비해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희소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라는 서브 컬쳐의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가 같은 작품들을 좋아하는 진지한 애호가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눈으로 직접 둘러본 것 같은 체험을 들려주는 이 책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해 친숙해진 일본을 방문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비행기 표를 예매하기 전게 꼭 한 번 먼저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풍성한 책’입니다.

단, 일본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익숙하지 않거나 작가가 예로 든 만화들을 전혀 읽어보지 않은 초보자에게는 내용이 감이 안 잡힐 수 있겠고, 여백을 너무 많이 주다보니 글자 크기가 작아져서 가독성을 떨어트리는 편집상의 문제점은 지적하고 싶네요.

ha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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