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는 고전이 된 작가가 아닌 현대 일본의 장르 문학 작가로 가장 먼저 접한 이가 바로 히가시노 게이고였습니다. 랜덤하우스에서 발간되었던 [ 게임의 이름은 유괴 ] 와 [ 호숫가 살인사건 ] 등과 창해에서 출간되었던 [ 비밀 ] 과 [ 변신 ], [ 아내를 사랑한 여자 ] 등을 시작으로 히가시노 게이고가 아직 일반적으로 널리 읽히지 않던 시절부터 국내에 번역, 출간된 그의 작품들을 빼놓지 않고 탐독했습니다. 
 

그러다가 [ 백야행 ] 과 [ 탐정 갈릴레오 ] 시리즈, [ 유성의 인연 ] 등이 차례로 드라마화되면서 국내에서 그의 인지도가 대중적으로 높아져 그의 작품들이 여러 출판사들을 통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오게 되자 그 양과 구입 비용이 부담스러워져서 소프트커버로 나온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게 되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그는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입니다. 데뷔 이후 현재까지 발표한 작품 수가 무려 60편 이상으로 한 해 평균 3~4 작품씩을 꾸준히 발표해 온 편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렇게 다작을 하면서도 각각의 작품들이 대부분 평균 수준 이상의 높은 완성도를 일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그의 작품들 중에서 적지않은 수의 작품들은 참신한 발상에만 의존하여 도식화된 전개와 존재 자체가 예측가능한 반전이 기계적으로 배치되어 매너리즘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지속적으로 받아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 비밀 ] 이나 [ 용의자 X의 헌신 ], [ 백야행 ] 등 일정한 주기를 가지고 나오는 마치 더 높은 단계로 훌쩍 도약한 듯한 발전상을 보여준 히가시노 게이고의 탁월한 작품들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인기작 [ 백야행 ]은 분명히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걸작이지만, 그 이후에 나온 [ 환야 ] 는 [ 백야행 ]의 여성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재탕에 가깝다는 지적이 있었고, [ 변신 ] 과 [ 레몬 ]처럼 유사한 느낌을 주는 작품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한동안 그가 상투적으로 구사하였던 휴머니즘적인 결말 처리 방식이 확연하게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승화되어 구사됨으로써 큰 감동을 주었던 [ 용의자 X의 헌신 ]은 매우 인상적이었지만, 이 작품이 TV 드라마와 영화로 제작되면서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지자 줄줄이 시리즈로 이어서 나온 후속편들에 대해서는 평가가 분분한 점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대중적인 컨셉의 작품들이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2008년 연말 일본 베스트셀러 집계의 소설 부문에서 그의 작품이 10위 권 안에 네 작품이나 들었고, 현재도 교보 문고 외서부의 일본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 10위권 안에 그의 작품이 다섯 권이나 올라가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적지않은 작품들이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발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도식적인 전개와 예측가능한 반전의 기계적인 반복으로 매너리즘을 느끼게 하였다면, 반대로 전개 과정의 군더더기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빠른 속도로 결말을 향해 돌진하는 단편이라면 그러한 비판을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평소에 종종 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깔끔하고 임팩트감 있는 단편들을 기대했었지만, 연작인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와 ‘~소’ 시리즈 정도를 제외하고는 국내의 여러 출판사들을 통해 경쟁적으로 쏟아지고 있는 무수한 그의 책들 중에서 의외로 단편의 묘미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은 바로 얼마 전에 발간된 [ 범인없는 살인의 밤 ] 밖에 없어 무척 아쉬웠던 참에 초창기부터 히가시노 게이고의 책들을 꾸준히 발행해 왔고 [ 범인없는 살인의 밤 ]을 내주었던 랜덤하우스에서 [ 수상한 사람들 ] 이라는 제목 아래 다양한 인물과 상황, 장르의 단편들을 모아놓은 또 한 권의 단편집을 내놓아 그의 팬들을 기쁘게 해주었습니다.

 

[수상한 사람들]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활동 시기에서 비교적 초기에 속하던 시기에 쓴 모두 7편의 단편들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각 단편들의 분량은 40쪽 정도로 비슷한데, 공간적 범위가 좁은 작품에서 넓은 작품 순으로 배열되어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각 작품들의 주인공이나 배경, 사건들은 거의 겹치는 부분이 없이 다양해 전체적인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데, 당연히 모두 추리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구조나 전개에 있어서는 첫 번째 작품인 [ 자고 있던 여자 ] 와 [ 결혼 보고 ], [ 달콤해야 하는데 ] 가 빼어나고, [ 판정 콜을 다시 한 번 ] 과 [ 등대에서 ], [ 코스타리카의 비는 차갑다 ] 는 결말은 훌륭하지만 구조가 다소 단순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 죽으면 일도 못해 ] 는 추리 소설적인 면보다는 사회적인 측면의 메시지가 더 인상적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입니다.

 

장편이나 중편이 아닌 각각 독립적인 40쪽 분량의 짧막한 단편들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히가시노 게이고 특유의 신선한 발상과 놀라운 반전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전개와 탄탄한 구성으로 펼쳐져 부담없이 상쾌하게 읽는 즐거움을 줍니다.

이 단편들을 다 읽고나면 초기에 벌써 이정도로 완성도 높은 단편들을 발표했다면 필력이 원숙기에 이른 지금은 또 어떤 단편들을 창작해 내었을까 하는 궁금증에 그의 최근 단편집의 출간을 간절히 기다리게 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단편집의 경우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각 작품들의 발표년도와 발표된 매체에 대한 정보가 누락되었다는 점입니다. 워낙 그의 작품이 많은 만큼 일본 사이트를 통해서도 쉽게 파악하기 힘든 만큼 출판사에서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면 하는 바램이 남습니다.

 

hajin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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