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폐업할 것처럼 팔아라
김종언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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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빈 가게들이 부쩍 늘어나는 것 같다. 개업보단 폐점이 많아지며 간판도 자주 바뀐다. 장사가 쉽지 않다는 것을 체감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게들은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동일한 인테리어와 품질로 까다로워진 소비자의 욕구를 채우기 어렵다. 사회변화는 욕구의 기준을 재평가한다. 주제가 바뀌면 방향도 재설정해야한다. 한국사회는 압축경제를 통해 성장했다. 때문에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혼재하며 과거와 미래가 교치되는 다양한 소비가 진행 중이다. 다양해진 만큼 복잡하고 예측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는 고정적이지 않다. 수많은 변수에 의해 새로운 질문과 해답을 요구한다.

 

이제 자신을 직시해야할 때다. 과거의 생각과 습관을 인지하고 새로운 사고를 형성해야한다. 문제는 반복될 것이며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즉답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무엇이 진행 중이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해야하는지에 대한 인식은 가지고 있어야한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바뀌는 시대다. 오늘의 가치가 내일까지 유지된다는 보장이 없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당장에 혈안이 되어 가치를 놓치고 있다. 결국 소모적 게임에 올인하며 극도의 피곤함과 공허, 무기력을 느낀다. 같은 생각, 같은 목표, 같은 결과가 짜인 시스템에 구속되어 삶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이다. 조금 벗어났다고 삶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을까? 개인의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빠르고 급박하게 변하는 세상이 자신을 기다려줄 리도 만무하다.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본 책은 20, 빠른 성공을 이루었지만 자기 착취와 내면의 붕괴를 겪으며 성과 너머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젊은 CEO의 기록이다. 저자는 정해진 답안지로 살아온 시간에 대한 회의감으로 가짜 나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다. 인생의 반전은 계산기가 멈춘 그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된다는 저자의 고백은 그가 그동안 느꼈을 세상의 기준이 얼마나 허망하고 자신을 가로막고 있었는지를 실감케 한다. 내일 당장 문을 닫아야한다면 마지막 손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시장은 차가운 숫자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윤활유는 인간의 뜨거운 기억이다. 세상은 수많은 조건으로 이루어져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이 조건의 대상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늘 베푼 대가없는 호의는 결국 가장 절박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형태로 돌아올 것이다.

 

세상은 갈수록 평평해지고 있다. 이젠 누구나 어렵지 않게 창업이 가능하고 선택기회를 부여받는다. 반면에 일률적인 아이템들이 반복되면서 성공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자신을 다시 세우는 리브랜딩은 그동안 경험했던 가짜 시간들과의 결별로부터 시작된다. 타인의 질문이 아닌 나만의 문장으로 답하는 삶의 과정을 만드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가까이 있지만 가장 몰랐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 삶의 주인공으로 살고자하는 선언일 것이다. 우린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 것이 아닌 것은 결국 미래를 만들지 못한다. 나만의 것은 무엇인가? 나만의 이야기가 유일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기술혁명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아직은 크게 변한 게 없지만 물밑에선 미래를 준비하는 치열한 전쟁에 펼쳐지고 있다. 영국이 산업혁명을 통해 세계패권을 지배했듯이 미국 역시 기술혁명을 통해 영원한 강자를 꿈꾸고 있다.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진국들도 이번기회를 놓치지 않게 엄청난 자본과 인프라를 투자하고 있다. 해자기업과 패권국을 향한 집념은 전방위로 확산중이다.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기대와 두려움이 상존한다. 국가전략은 개인의 삶에도 강한 영향을 미친다.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또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설만 난무하다. 산업혁명 초기에 영국인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지금이 그 시대와 같지는 않을지라도 혁명은 분명 예기치 않은 고통과 고난을 수반할 것이다. 무엇을 준비하든, 이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인식해야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자신을 세울 특별한 무기가 필요하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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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잠 못 드는 위험한 인문학 - 인류학적 오답 연구
다크모드 지음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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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인문학은 인간과 인간의 근원, 내면의 본질과 가치를 사상과 문화를 통해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을 대변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인문학은 대부분 따뜻한 관계의 인문학이다. 불안과 두려움은 단지 감정에 불과한 것일까? 오히려 감정은 인문학적 사유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감정의 동요에 의해 이성과 합리적 생각이 무너지고 전혀 다른 인간의 형태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과 형벌은 사회가 죄인을 어떻게 보았는지, 권력이 고통을 어떤 방식으로 사용했고, 정의를 말하면서 어디까지 폭력을 정당해 왔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죽음에 앞선 형벌은 가혹하리만치 인간의 존엄성을 부정한다. 죄에 대한 판단은 시대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극한방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특히 존속살해는 로마인들에 최악의 금기였다. 차라리 교수형이나 참수형이면 고통 없이 끝날 텐데, 죄인을 커다란 자루에 네 마리의 동물과 함께 넣어 물속에 던져버린다. 자루 안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고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로마는 가장에 대한 뚜렷한 위계가 존재했다. 가장의 권위는 국가와 같았기에 존속에 대한 공격은 곧 사회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었던 포에나쿨레이는 너는 인간이 아니다란 메시지를 형벌의 형식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는 죽음을 집행하는 사람에게도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형벌과 죽음은 특정 시대의 합의에 따라 전개되었고 정의는 상징이나 정화의식이란 이름으로 포장되었다.

 

권력의 정점은 자비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코끼리는 매우 영리한 동물이다. 감정을 느끼고, 소통하며, 뛰어난 기억력으로 주변 환경을 완벽하게 파악한다. 16C, 무굴제국황제는 반란군에 코끼리를 활용한 무시무시한 형벌을 가했다. 코끼리는 통제자의 의도에 따라 죄수의 신체를 하나씩 부러뜨린다. 즉사는 차라리 관대한 사형방식이었다. 코끼리 처형은 형벌의 잔인함과 잔혹함, 그리고 상대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권력의 유연성을 보여주었다. 황제는 원하면 자비를 베풀어줄 수도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면의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상황을 지켜보았던 수백, 수천의 군중은 왕의 권력을 확인하게 된다. 그들은 형벌의 공포와 왕의 경외심을 동시에 느낄 것이다. 이제 모든 것은 왕의 뜻에 결정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완벽한 지배는 권력의 도구를 확대하는 것이다.

 

패배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전쟁은 승리할 것이란 전제를 두고 시작한다. 전쟁의 목적이 무엇이든 전쟁은 빨리 끝낼수록 피해가 적고 사상자가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최근 전쟁의 양상이 빠르게 전환되고 있지만 전쟁에 대한 합리적 이성은 종종 계획에서부터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연합군의 유럽 상륙작전을 앞두고 독일군의 대서양 방벽을 파괴할 전략이 요구되었다. 방벽에 다가가기 위해선 지뢰를 통과하고 기관총 세례를 넘어야했다. 영국 해군성은 무거운 폭약을 바퀴에 싣고 로켓으로 굴려 방어선까지 보내는 판젠드럼을 개발했다. 판젠드럼은 초기의 기대와 달리 어이없는 실수가 반복되어 결국 폐기되었다. 한시가 급박한 전쟁 상황에서 어리석은 선택이 큰 실패를 만든 것이다. 인간은 문제가 크고 급박할수록, 해결책도 그만큼 과감해야한다고 믿는다. 간혹 해결책이라 믿었던 것이 가장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거대한 문제는 거대한 착각으로부터 비롯된다.

 

본 책은 그동안 베일에 가려있었던 인간의 위험한 발상이 어떻게 현상을 왜곡하고 있는지를 다루기 쉽지 않았던 문제들을 소재로 디테일하게 표현한다. 정의와 폭력으로 포장된 형벌, 통제와 역설로 얼룩진 감옥, 완벽과 균열의 경계선을 넘나는 완전범죄, 그리고 해답을 찾지만 재앙을 일으키는 전쟁무기를 중심으로 인간이 반복해온 오류의 기록을 추적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가옥을 불태우기 위해 루스벨트 대통령이 허락한 박쥐폭탄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실패로 끝났을 뿐더러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 인간의 교만함을 그대로 드러낸 특유의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은 자유지만 통제는 예외다. 인간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이란 특별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인류문명을 발전시킨 원동력이었지만 오류를 무시할 수 있다는 자만심도 가져왔다. 인문학에 대한 접근은 무오류의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이기에 수많은 실패를 통해 하나의 결과를 완성한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선택은 끊임없이 반복될 것이다. 왜 우린 실수를 반복하고 엉뚱한 곳에서 무너지는가? 우린 결코 내면의 패턴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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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수훈 언덕에서 말씀 듣기 - 삶의 자리를 바꾸는 예수의 말씀 13
권종렬 지음 / 샘솟는기쁨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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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읽는 이마다 해석을 달리하는 경전인가? 대부분 기독교 공동체는 성경 무오류를 이야기하며 성경해독에 생애를 보낸다.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이야기하신 적이 없다. 성경은 오랜 과정을 통해 수많은 수사와 지도자들의 영적체험이 필사로 전달되어 후세에 전해지고 있는 경전이다. 기독교는 본래 의도와는 달리 암울한 중세 암흑기를 보냈지만 누구도 자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산업이 발전하며 특유의 전파력을 중심으로 시세확장에 온 힘을 기울여왔다. 기독교의 근본원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종교의 자유를 말하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진정한 목소리를 듣고 싶을 뿐이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이 모든 이들에게 전달하고자하는 진정한 복음이다.

 

작은 언덕,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모인 이들이 특별하다. 대중이 아닌 아프고 병든 자들이다. 너무 아프고 가난해서 한 끼라도 해결해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을까? 생리적 욕구는 모든 이성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예수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신다. ‘이다. 예수님의 설교를 듣자, 누구든 배부르게 먹고 아프지 않으며 평생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복에 대한 환상이 산산이 부서진다. 복은 하나님 나라를 영접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하나님이 통치하고 하나님의 가치관이 실제가 되는 땅에서의 복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어떤 가치를 따라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알려주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에베소서 122절은 예수님의 권위와 통치, 교회의 충만함에 대해 서술한다. 예수님을 믿음에 죄 사함을 받고 산상수훈의 가치에 따라 이 땅을 살아갈 때 세상은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현대인에게 복은 물질적인 욕구나 욕망을 대변한다. 오래 사는 것, , 강녕, 유호덕, 고종명은 누구나 누리고 싶은 오복이다. 하지만 오복이 한꺼번에 들어올 리 만무하고 하나를 얻는다고 만족하는 법이 없다. 가질수록 허무하고 무기력해지며 공허가 삶을 짓누른다. 복에 대한 진정성이 빠졌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복을 누리려 하는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서너는 복이 될지라는 말씀을 하셨다.

 

기나긴 고난의 과정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브라함의 인생은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을 알아가는 복되는 과정이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복을 받을 것이다 라 말씀하지 않으셨다. 복을 주거나 받은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렇게 되어야 하는 존재로 아브라함을 인정하신 것이다. 산상수훈의 복 되어라 란 말씀도 소유가 아닌 하나님 앞에 엎드린 존재 그 자체라는 의미다. 흔히 팔복을 복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자격이나 조건이라 말하기도 한다. 팔복은 자격조건이나 탁월한 성품, 교회공동체가 지녀야할 삶의 태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팔복의 말씀은 복된 존재에게 복된 은혜가 이미 임했다는 확증이다. 예수님 앞으로 나온 제자 됨이 복이고 예수님 앞에 엎드린 그들이 복 있는 사람이다.

 

본 책은 산상수훈의 교훈을 통해 13가지의 은혜를 함께한다. 일상적으로 대하고 고민하는 문제들을 산상수훈의 교훈을 통해 말씀을 전달한다. 수많은 교회들이 기독교 위기를 이야기한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체요 실체적인 장소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교회위기는 과학문명의 발전으로 막힌 것이 아니다. 또한 인간의 욕망이 더욱 거대해져 교회를 찾지 않는 것도 아니다. 원인은 교회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산상수훈의 복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을 말씀하신다. 차별과 차이를 다름으로 인정하는 사회에선 어떤 종교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신성과 실체의 경계선을 저울질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교회는 그 기능을 잃어갈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언제나 한결 같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진실을 이야기 하셨고 공생애과정을 통해 진리를 보여주셨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는 누구인가? 너는 복이 될지라. 산상수훈의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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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에게, 별로부터 - 12개 별이 전해준 138억 년 우주의 소식
우주먼지(지웅배)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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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불러준 사람의 별이 되었다. 고대 인류는 별을 보며 희망을 꿈꾸지 않았을까? 별은 그 광대함과 웅장함만으로도 시선을 압도한다. 끝없이 펼쳐진 무한의 공간은 인간의 이성이 닿을 수 없는 상상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영원과 무한을 동경해왔다. 신앙의 주축인 영생과 윤회사상도 영원한 삶에 구속되어있다. 별은 생애동안 변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이름이 붙여진 별은 불러준 이를 기억한다. 인간은 별을 바라보며 삶의 번잡함과 생의 고달픔을 잊고자 했을 것이다. 또한 탄생과 죽음의 경계선을 이해하고자했다. 별을 보며 탄생의 기쁨을 누렸고 별의 움직임을 통해 죽음을 해석했다. 별은 인간이란 존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이토록 장엄하고 신비한 별의 세계는 인류에게 또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별의 서사는 광활하고 웅장하다. 별을 만난다는 것은 삶의 본질을 깨닫는 과정이다. 왜 인간은 이토록 강렬한 감정을 별에 투영해 왔을까?

 

시리우스는 북반구 밤하늘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 중 하나다. 18C, 칸트는 시리우스 가 우주의 중심일 것이라 생각했다. 가장 밝게 빛나던 별이었기 때문이다. 시리우스는 고대인들에 강한 영감을 주었다. 이집트 11왕조 시대, 테베의 하늘에서 오리온이 모습을 드러내면 사냥개가 등장한다. 여름이 깊어질수록 사냥개는 태양을 앞지르기 시작하고 태양과 동시에 지평선 위로 모습을 드러낸 순간 나일강이 차오른다. 시리우스의 이동은 나일강의 부활을 의미했다. 또한 시리우스와 함께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고 거침없는 왕조의 찬란한 문명이 태동하게 되었다. 19C, 독일 천문학자 베셀은 시리우스의 연주시차를 직접 관측했다. 시리우스는 고정된 별이 아니었다. 천천히 위치를 바꾸며 광대한 우주를 부유하고 있었다. 천문학의 발전으로 시리우스에겐 동반성, 시리우스B가 곁에 붙어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시리우슨 B는 매우 높은 밀도로 압축되어있고 표면온도가 25천도에 달하는 백색왜성으로 크기가 너무 작아서 밝기가 시리우스A보다 훨씬 어둡게 보였다. 시리우스는 원자의 세계를 지배하는 양자역학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또한 엄청난 밝기만큼 인류의 영원한 상상의 세계였다. 시리우스는 지금도 미래를 알려주는 위대한 별이다.

 

민간신화나 토속신앙엔 점성술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떨어지는 유성을 보고 불운을 감지하거나 별의 밝기나 이동을 예측해 신의 계시를 예측했다. 천문을 이용한 점성술은 왕권강화에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을 것이다. 별에 대한 상상은 존재의 미약함을 대변한다. 하지만 깜깜한 바다를 가로지르는 바다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랜 기간 서양문화권에서 카노푸스는 배와 항해의 별이었다. 아르고호의 전설 속에 자리 잡은 카노푸스는 배의 키와도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선원들은 카노푸스에 의지했고 카노푸스는 바다를 항해하는 이들에게 등대와 같았다. 그리스 신화는 수많은 별자리를 통해 상상의 영웅을 불러들였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인간의 욕망이 가장 깊게 세긴 별이 카노푸스가 아닐까? 카노푸스는 현재, 50년 전 지구를 떠난 보이저1호와 2호의 우주 여정의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탐사선의 길잡이가 되기 위해선 밝기가 일정해야하고 별의 위치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카노푸스는 헬륨 핵융합이 안정적으로 진행되면서 큰 변광없이 일정한 밝기를 유지하고 있다. 우주에 다가갈수록 인간은 자신이 처한 위치와 생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지구가 얼마나 작고 소중하며 그 안에서 아웅다웅 살아가는 인간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인식하게 된다. 우주는 마치 거대한 공허와 같다. 하지만 광대한 넓이와 알 수 없는 깊이만큼 비밀로 가득하다.

 

영화 토탈리콜은 화성을 배경으로 한 SF영화다. 붉은 암석과 모래로 뒤덮인 대지를 탈출하려는 주인공의 잔상이 꽤 인상적이었다. 화성은 그 후로도 수많은 소설과 영화의 주제로 등장했다. 화성은 발을 닿기 전 전쟁과 파괴의 상징으로 알려져 왔다. 지금이야 붉게 녹슨 표면이 태양빛에 반사한 결과라는 것을 알지만 고대인들은 화성을 가장 호전적인 별로 상상했다. 그리고 서사는 화성에 필적할만한 별을 등장시킨다. 안티 아레스라 불렸던 안타레스다. 안타레스는 우리은하 중심부 전갈자리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이다. 둘의 이야기는 전설만큼 흥미롭다. 안타까운 건 안타레스의 크기다. 워낙 멀리 떨어져있어 점으로 보이지만 안타레스는 태양지름의 680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별이다. 화성은 돌멩이에 불과하다. 안타레스와 화성은 우주에 대한 인간의 이해를 한정한다. 이제 인간은 별의 수를 알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또한 별의 밝기와 크기를 해석할 수 있다. 신화와 함께 지구의 대지를 뜨겁게 달구어온 수많은 별들, 그들은 그 찬란한 이름만큼 친숙하다. 별은 더 이상 낭만적이지도 이상적이지도 않다. 시간과 공간이 왜곡되고 알 수 없는 차원이 펼쳐진 곳이다. 우주의 신비는 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고 별의 죽음은 새로운 탄생의 신화가 될 것이다. 영겁의 시간동안 인류 곁을 지켜온 별도 언젠간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별은 여전히 뜨겁고 황홀하게 우리를 비추고 있다. 짧은 생애에 별을 이해한다는 것은 삶의 목적을 이해하는 일이다. 12개 별을 통해 만난 인간과 별의 조우, 그 오래된 세계를 추억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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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을 위한 수학의 세계
드니 반 와레베크 지음, 다미앙 페르티에 그림, 샘 리 옮김, 김용관 감수 / 생각의길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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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반석위에 세워놓은 수학은 하루아침에 태어난 지식이 아니다. 수많은 철학자의 관심과 연구, 끝없는 학문적 호기심이 자연과학을 통해 수학으로 연결되었다. 수학은 기호와 연산만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논증이 확산되었다. 현대수학은 데이터를 중심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시사한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팅이 실체화된다면 수학은 새로운 혁신의 중심이 될 것이다. 수학은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학문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수학은 빠르게 인류의 삶을 규정하고 미세로부터 우주까지 생각의 지평선을 무한히 넓혀가고 있다. 수학을 이해하기 위해선 수학의 실체를 만나야 한다. 수식을 벗어난 수학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날아가는 화살은 정해진 순간만 보면 정지해 있는 것이다. 기원전 5C, 제논은 운동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역설을 만들었다. 시간은 순간의 연속으로 이루어져있고 각각의 순간마다 화살은 정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살은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운동은 관찰자의 눈에서 일어나는 착시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속도는 불과 4세기 전만해도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속도는 시간과 높이의 함수다. 순간속도 값을 무한히 가깝게 다가가게 한다면 시간에 따른 위치함수를 미분으로 표현할 수 있다. 미분은 위치를 보여주는 지도를 속도를 알려주는 속도계로 바꾸는 도구다. 뉴턴과 라이프니츠에 의해 확산된 미분 덕분에 속도와 관련된 대부분의 현상을 계산할 수 있게 되었다. 속도를 시간에 따라 미분하면 변하지 않는 값, 하나의 상수인 가속도가 된다. 가속도는 중력을 설명해준다. 미분은 현실의 복잡함 뒤에 숨은 규칙성을 발견하게 해준다.

 

경계가 없고 단일 연결된 모든 콤팩트 3차원 다양체는 3차원 구와 위상동형이다’19C, 프랑스 수학자 앙리 푸앵카레는 자신의 이름을 딴 푸앵카레 추측을 발표한다. 위상동형은 찢거나 붙이지 않은 모형의 형태는 서로를 변형하여 만들어지면 모두 동일하다고 간주한다. 공은 큐브가 될 수도 있고 피라미드나 비행접시, 감자와도 같다. 2차원 구는 무한히 뻗어나가지 않고 더 큰 구안에 집어넣을 수 있다. 이런 상태를 콤팩트라 한다. 구가 단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올가미를 통해 증명된다. 2차원이면서 경계가 없고 콤팩트한 다양체는 도넛모양을 한 토러스와 뫼비우스 띠, 클라인병처럼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문제는 3차원에서도 똑같은 법칙이 성립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해답은 한 세기가 지난 후 러시아 수학자 그레고리 패렐만에 의해 증명되었다.

 

무한하다는 개념은 이성과 상상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다양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크기가 작아질수록, 숫자의 개념이 복잡해지며 우주로 나간다면 숫자 개념은 무의미해진다. 1080승에 이르면 우주를 구성하는 모든 원자개수를 넘어선 크기에 도달한다. 무한의 개념은 상상을 초월한다. 집합론의 창시자 게오르크 칸토어는 자연수는 무한을 향해 뻗어나가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우리가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파악해야만 하는 하나의 집합이라고 주장한다. 집합 안에 들어있는 원소의 개수를 기수라 부른다. 18세기부터 자연수 집합N의 기수를 무한대라는 기호를 사용해 왔다. 무한대의 두 집합은 일대일 대응이 존재한다. 그런데 문제는 부분이 전체만큼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칸토어는 무한 보다 더 큰 무한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01사이의 실수(R)은 자연수 N보다 더 많은 숫자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점점 더 커지는 무한집합들이 무한히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온종일 공식을 대입하며 문제풀이에 올인 한다. 수학이 어떻게 세상을 형성해왔고,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수학은 삶의 모든 부분에 적용된다. 자연과학을 탐구해왔던 철학자들은 세상의 규칙과 패턴을 찾고자 노력했다. 본 책은 수학의 본래적 의미를 탐구한다. 수식을 벗어난 수학의 깊이와 넓이를 끌어낸다. 16개의 에피소드는 놀라울 정도로 디테일하고 세밀한 그래픽과 함께 수학의 묘미를 한껏 맛보게 한다. 존 폰노이만의 상상이 콘웨이를 통해 대립하는 세계를 가로지르며 단순하고 결정된 규칙만을 사용하면서도 어떻게 예측할 수 없는 복잡하고 풍부한 패턴들을 탄생시킬 수 있는지를 연결시켜주었다. 콘웨이의 생명게임은 수십억 개의 형태 중에는 스스로 복제하고, 증식하며, 진화하는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가능케 한다. 수학은 무한한 상상의 영역이다. 또한 형언할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두려움에 맞선 인간의 특별한 메커니즘이기도 하다. 본 책은 호기심 가득한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를 결합한 새로운 수학 콘텐츠를 소개하고 기호를 벗어난 수학언어를 독창적인 그림으로 표현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물한다. 수학을 어렵다고 느낀다면 첫 페이지를 열어보라. 수학의 본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이 리뷰는 출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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