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오리지널 초판본 고급 양장본) 코너스톤 착한 고전 양장본 4
조지 오웰 지음, 박유진 옮김, 배윤기 해설 / 코너스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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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 전쟁의 휴우증이 전 세계를 휘감았다. 20세기를 열었던 화려한 부흥이 몰락하고 세계는 전쟁의 화염에 휩싸였으며 대공황은 인간의 삶에 근원적인 질문을 제시하였다. 하지만 인류의 운명은 가혹하리만치 평화와 거리가 멀었다. 더욱 질기고 혐오스러운 전쟁이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전쟁은 삶의 모든 터전을 앗아갔고 인류에 커다란 상실과 상처를 남겨주었다. 당시를 전횡했던 조지 오웰은 세상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았을까? 지친 몸과 상처 입은 마음, 의지할 곳 없는 정신은 인간 내면을 파고드는 치열한 생존전략으로 치솟지 않았을까? 1949년 조지오웰은 먼 미래를 내다보았다. 1984. 그의 혁명적인 시나리오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전체주의는 자본주의, 혹은 민주주의에 대항하는 공동체적 삶의 방향으로 제시되었다. 만인의 평등을 주장하는 말도 되지 않은 논리가 전쟁을 겪은 세대에겐 그 무엇보다 달콤한 말로 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엔 질서와 규칙이 요구된다. 디스토피아 세상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겪어보지 않았던 미래는 적지 않은 희생을 강요한다. 결국 집단체제의 허상은 독재를 탄생시킨다. 만인의 평등이 독재와 소수 집단을 위한 대체제로 전락한다. 감시와 통제, 이는 디스토피아를 꿈꾸었던 이상주의자들에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다가온다. 실상을 알지만 말하지 못하고 온갖 음모와 배신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하는 모순이 삶을 지배한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그들이 원하는 평온과 평화는 어디에 존재하는가?

 

1984는 인간의 한계를 의심한다. 무의미한 작업의 반복, 의미를 이해해서도 해석해서도 안되는 세상, 기록되는 모든 순간을 의심하고 과거를 지우며 현실을 왜곡하는 세계, 왜 이런 세계가 필요하고 이런 삶이 존재해야하는 걸까? 집단광기를 해소하고 집단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선 전쟁이 필요하다. 일어나지 않은 전쟁을 만들고 존재하지 않는 적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필요한 사상을 주입시킨다. 무엇보다 스스로의 경험을 탈색하고 철저히 과거를 부정한다. 시스템의 일부로 평생 서류를 조작하며 살아온 윈스턴은 자신의 삶에 강한 의문을 품게 된다. 항상 눈앞에 놓여있는 텔레스크린은 디스토피아의 인공지능이다. 오웰은 100년 앞을 내다보았던 것일까? 교묘한 눈속임으로 자신의 일거수를 흡수하는 인공지능 앞에서 윈스턴이 그토록 혐오했던 텔레스크린이 겹쳐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1984는 세계적 작품이다. 개인적 의견은 얼마든지 논할 수 있지만 담론은 해석하기 쉽지 않다. 너무 많은 사건이 펼쳐지며 현실로 흡수되고 있기 때문이다. 경우는 다르지만 인간에 대한 심리적 고찰은 여전히 유효하다. 믿음에 대한 배신, 자유에 대한 갈망, 사랑의 열정, 해석은 자유로울 수 있지만 자유가 박탈당한 상황에선 존재적 가치마저 희박하다. 우린 실시간을 살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순간엔 그리 충실하지 못하다. 정의는 인류 공통의 의제인가? 자신 앞에 놓인 문제는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이해를 달리한다. 나의 정의가 타인엔 공포와 두려움을 안길 수 있다. 대체적으로 서구 심리학은 대중심리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오랜 연구과정을 수행해왔다. 전체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선 탁월한 지도력이 필요한 독재자의 출현이 필수적이다. 그들은 권력유지를 위해 갈등과 분리, 불안을 조장한다. 특히 언론 장악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1984는 수많은 주제를 논제로 삼을 수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 언론장악이다. 텔레스크린을 비롯한 당의 모든 일은 개인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는데 집중된다. 혹시나 일어날지 모르는 반란에 대한 씨앗을 미리 제거하는 작업이다. 출판물의 소거, 모든 문화적 산물의 제거, 과거와의 단절을 위한 교육, 인류는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뉴스를 흡수한다. 오웰은 인간을 통제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현세대를 짓누르는 알고리즘은 어떠한가? 당신의 선택은 정말로 스스로의 의지인가? 1984엔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는 구절이 있다. 빅브라더는 과거를 지배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과거를 떠 올리지 못한다. 1984의 틈새는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모든 것엔 틈이 있고 틈새엔 빛이 새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빛으로 인해 다른 세상을 꿈꾼다. 영원한 고전 1984,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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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이들에게
박상률 지음 / 특별한서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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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에는 수많은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자신의 선택일수도 있고 우연치 않게 누군가의 흔적이 삶에 얹히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흔적은 삶을 이어가는 징검다리를 만들어갑니다. 모든 것이 얽히고 설켜 새로운 무늬를 만들고 자신이라는 거대한 삶을 형성합니다. 인간을 우주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무한한 생각과 이상이 현실의 벽을 허물고 새로운 변화를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엔 시와 소설, 수필, 산문등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습니다. 오늘의 내 모습이 과거로부터 시작되었듯이 우리의 생각 또한 수많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는 글들, 박상률님의 전하는 거인들의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자신을 일으킨 거인들이 있습니다. 생각은 현실을 만들고 현실엔 그들의 삶이 남아있습니다. 우린 그들에 의해 자신을 반추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합니다. 상실과 아픔의 고통, 기쁨과 행복이 번갈아가며 마음을 채웁니다. 잔잔한 시가 삶의 그림을 그린다면 투박한 산문은 읽을수록 맛깔스럽습니다. 특별한 소설엔 특별한 작가만의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저자는 자신을 이끌어준 인물로 마크 트웨인과 현진건을 추천합니다. 허클베리핀으로 알려진 마크 트웨인은 시대적 상황을 가장 잘 대변하며 자신에 충실한 글을 쓴 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상을 따라 하기는 쉬워도 비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만큼 삶에 자신감이 있어야하고 말과 행동에도 변함이 없어야합니다. 저자는 탁월한 작품과 더불어 자신만의 삶을 살아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세상을 두루 살핀다고 이야기합니다.

 

시 한권으로 자신을 증명한다면 정말 대단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지 않았을까요? 님의 침묵은 한용운님의 산문시로 널리 알려진 작품입니다. 그런데 저자의 해석이 눈길을 끕니다. 언어 자체에 의미가 담긴 운문과는 달리 한용운님은 사실이나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산문시를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민족의 독립을 위해 님을 선택했고 그의 소망은 오직 조국의 독립이었습니다. 님은 한용운님의 현실이자 이상이었고 영혼이었습니다. 온갖 고통과 수난을 겪었지만 스스로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자기비판, 갱신, 저항이 사라져가는 세상입니다. 님이 존재했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전병석 시인의 시는 읽을수록 가슴이 저립니다. 시 마디마다 시인의 마음이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는 마치 대화하듯이 시를 씁니다. 병상에 있는 어머니를 향한 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관하는 자신을 부끄럽게 합니다. 시는 존재 이유와 타인과의 관계의미를 새롭게 설정합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새롭게 다가오지 않습니다.‘내가 버틴 것은 네가 있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는 네 말 한마디죽음을 앞둔 부모의 사랑이 깊은 울림으로 전해집니다.‘어느 바람에 떠나더라도 슬퍼하지 마라. 흩날리는 벚꽃처럼 아름답게 빌어라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간절하고 애틋하게 다가옵니다. 그는 시를 통해 가족에 대한 간절하고 깊은 사랑을 고백합니다.

 

본서는 박성률님과 평생을 같이한 작가들의 삶과 작품을 다룬 글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나의 거인들, 그리움이 안겨 준 사랑, 아름다움을 찾는 여정 그리고 언제나 열 아홉등 소제를 달리한 주옥같은 작품들이 벚꽃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따뜻한 글을 만나면 다른 세상을 보게 됩니다. 글은 여유와 감동을 선물합니다. 어떤 글은 얽힌 마음을 풀어주고 어떤 글은 희망을 보여줍니다. 우린 누구에게나 희망이고 선물이 되고 싶습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힘 된다면 가슴 뿌듯한 삶이 될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삶의 세계를 살아가지만 우리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삶은 과정의 연속입니다. 어제와 같은 오늘이 없듯이 글을 대하는 자신의 마음도 달라질 것입니다. 문학과 삶의 감동을 전하며 조금씩 그리고 깊이 자신에 다가오는 작품들을 통해 내면적 성찰을 이루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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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베네딕토회 : 캐드펠 수사의 등장 캐드펠 수사 시리즈 21
엘리스 피터스 지음, 박슬라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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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시리즈 21번째, 십자군 전쟁을 마친 캐드펠의 등장입니다. 1120년 헨리왕의 정복이 마무리되면서 지역 영주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떠나게 되고 특별히 의지할 곳이 없었던 캐드펠은 노샘프턴 영주 로제 모뒤를 따르게 됩니다. 로제는 캐드펠과 함께 법률적 지식을 갖춘 알라드를 함께 데리고 가는데 둘은 비슷한 나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라드는 전쟁 전 잠시 수도원에 있었고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참회하고 다시 수도원에 복구할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제는 수년간 슈르즈베리 수도원과 땅 문제로 소송을 진행했고 이제 우드스톡에서 왕의 주제아래 재판을 받을 예정입니다.

 

캐드펠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슈르즈베리를 떠올립니다. 자신의 인생 중 가장 황홀했고 행복했던 시절이라 기억합니다. 알라드는 캐드펠에게 로제와 슈르즈베리 간의 소송내용을 이야기하며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로제의 승리가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젊은 부인을 둔 로제는 불안하기만 합니다. 로제부인은 남편에게 확실하게 소송에 이기기 위해선 특별한 수단이 필요하다고 속삭입니다. 그들은 수도원 대표로 참석하는 부수도원장을 납치할 음모를 꾸미고 우드스톡 숲속에서 대기합니다. 그런데 로제가 칼을 맞고 쓰러집니다.

 

사건은 반전을 거듭하며 소송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캐드펠은 로제의 계략을 눈치 채고 부원장을 구하며 슈르즈베리에 큰 선물을 안겨줍니다. 성당을 찾은 캐드펠은 고요한 적막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울리는 조용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의 고립을 깨운 것은 조그만 손이었고 아이는 근엄한 목소리로여기서는 무기를 내려놓으라말합니다. 캐드펠의 근심은 희망과 환호로 바뀝니다. 마음의 평온이 찾아옵니다.

 

캐드펠 수사의 등장은 세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첫 번째 내용이 캐드펠이 슈르즈베리 수사로 삶을 바꾼 계기에 관한 스토리였다면 두 번째는 종교의 정의와 진리에 대해서 문을 두드립니다. 슈르즈베리에서의 10, 캐드펠은 수도사로서의 임무와 역할에 충실합니다. 특히 구휼에 특별한 신경을 쓰는데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적지 않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대개 자신에 우호적인 사람은 타인에 무자비한 행동을 보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추종하지만 타인을 의식하고 권위에 복종하며 주변을 무시합니다. 지역 영주이자 땅 부자인 리디어트의 하모 피츠하몬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는 사후에 대한 두려움으로 수도원에 은백합 촛대와 농장 임대료 기부를 결정합니다. 그런데 수사들 간의 말이 많아집니다. 그의 행동과 태도를 미덥지 않게 생각하는 이들은 표면적인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지만 빛나는 은촛대위에서 성모를 밝히는 불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하지만 캐드펠은 은촛대를 팔아 다른 방식으로 기부를 했다면 가난한 이들이 겨울을 나기에 훨씬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은촛대는 다양한 사람의 생각으로 전개됩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수도사에겐 빛으로 도둑에겐 장물로 수도원은 성모의 은총으로, 캐드펠에겐 가난한 이들을 구해줄 구호물품으로 해석됩니다. 그런데 은촛대가 사라집니다.

 

캐드펠은 문제를 해석하는데 탁월한 분석능력을 보여줍니다. 사건을 해결하는데 현장의 중요성을 이해하며 조그만 단서를 통해 큰 그림을 그립니다. 또한 왜 라는 질문을 통해 서로 간에 얽힌 이해관계를 풀어갑니다. 무엇보다 그는 명분을 중시여기고 자신에 주어진 삶의 규정에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의 진실하고 정직한 행동은 모든 사건을 풀어가는 중심이 됩니다. 캐드펠 시리즈는 종교와 속세라는 경계선을 넘나들며 인간의 본질적인 욕구와 욕망에 다가갑니다. 상상이상의 것을 만날 수 있는, 하지만 매혹적인 캐드펠시리즈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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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드펠 수사의 참회 캐드펠 수사 시리즈 2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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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초 다소 싸늘한 늦가을이다. 잦은 혼란을 겪었던 슈르주베리에 래스터셔 백작의 전령이 도착한다. 수년간 이어온 전쟁은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지만 스티븐 왕과 모두황후는 서로의 칼끝을 접지 않고 있다. 왕권전쟁을 틈타 이슬람이 모술을 점령했다. 양분된 기독교 세력은 다시 십자군 원정을 꺼내들었다. 코번트리 수도원의 로저드 클린턴주교는 이를 이용해 둘의 관계 회복을 시도하고자 한다. 다행히 왕과 황후는 겉으로나마 회담을 허락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황후를 돕던 클로스터백작의 아들 필립이 자신이 관리하던 페링던 성을 스티븐 왕에게 넘겨준 것이다. 끝가지 항전하던 수비대원들은 왕의 포로가 되어 이곳저곳으로 팔려갔다. 그런데 단 한사람, 수비 대원이었던 올리비에 드 브르타뉴의 이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휴는 캐드펠을 찾아가고 올리비에의 이름을 꺼낸다. 올리비에의 소식을 들은 캐드펠은 생각이 막히고 숨을 쉴 수 없었다. 올리비에는 십자군 원정에서 만난 여인을 통해 얻은 캐드펠의 아들이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아들의 독립적 삶을 위해 모든 사실을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수도원에 머물 수 없었다. 결국 라둘푸스 원장을 만나 자신에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며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평생을 수도원에 귀의하고 수도원의 규칙과 규범을 지킬 것을 서약했다. 무엇보다 어려웠던 시절, 신은 큰 은총을 내려주셨다. 그런데 속세의 인연 때문에 수도원과의 약속을 파기하게 된 것이다. 캐드펠은 원장의 기도가 절실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수도원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생각이 스며든다. 캐드펠은 휴와 함께 세기의 회담이 열리는 코번트리로 향한다.

 

캐드펠 수사의 참회는 캐드펠 시리지의 대미를 장식하는 20번째 작품이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사건은 변함없이 독자의 시선을 이끈다. 본서에는 왕과 황후를 중심으로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코번트리에 등장한 캐드펠, 그는 과연 자신의 의도대로 아들을 찾을 수 있을까? 회담에 모인 왕과 황후는 의견을 조율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황후는 헨리왕의 순수혈통임을 내세우고 왕은 자신을 추종한 세력들과의 통합을 통한 정당성을 앞세운다. 둘의 관계는 왕에 귀의한 필립에 의해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는데 필립을 주종으로 모시던 패링던의 성주 드 술리스가 대미사 도중 시체로 발견된다. 회담 첫날

드 술리스에 무모한 도전을 시도했던 이브가 범인으로 지목되나 황후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간다. 하지만 필립은 포기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의미 없는 회담이 결렬된 후 디어허스트로 향하던 황후의 행렬에서 기어코 이브를 납치한다.

 

소설의 중심이 필립이 성주로 있는 라 뮈자르데리성으로 이동한다. 코번트리 회담을 주시했던 캐드펠은 등장인물들의 성향과 성격, 배경을 파악하고 살인사건의 배후를 파악하기 위해 이브가 갇힌 라 뮈자르데리성으로 향하게 된다. 소설은 왕과 황후의 권력다툼으로 피페해져가는 농민들의 삶을 디테일하게 소개한다. 무엇을 위한 다툼인가? 세력 간의 다툼에 끼인 서민들은 누가 이기든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캐드펠은 그들의 도움으로 성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모든 사태를 일으킨 필립을 만나게 된다. 필립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인재였다. 그 역시 왕과 황후의 지난한 전쟁에 커다란 환멸을 느꼈고 황후를 버리고 왕을 선택했던 것은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캐드펠은 필립이 진실을 말하며 정직한 사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아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캐드펠은 아들을 대신해 목숨을 내놓는다. 하지만 필립은 한사코 거절하며 캐드펠과 올리비에 관계를 캐묻는다. 그런데 사건은 다시 거대한 흐름으로 바뀌게 된다. 필립을 제거하기 위한 황후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필립은 이복오빠이자 글로스터백작인 로버트의 둘째아들이자 황후의 사촌조카이다. 하지만 황후에겐 배신한 신하에 불과하고 그녀는 필립의 죽음을 통해 흩어진 권력을 재정비하고자 한다. 소설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필립을 신뢰하게 된 캐드펠은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모든 상황을 정리하는데, 과연 그는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

 

캐드펠은 눈에 띄지 않지만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있다. 위기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해 사건의 맥락을 주도한다.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의견에 충실하며 의지대로 행동한다. 필립은 캐드펠의 과거를 물어보는 도중에 그가 십자군 원정에 다녀왔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고 고무된다. 십자군은 내분에 멍들고 있는 기사들에게 충분한 명분을 줄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수도원에 대한 권위다. 왕과 황후도 수도원장의 말에 고분하며 수도사들에 호의적이다. 중세를 아우르는 신의 역할은 소설을 이끄는 핵심주제다. 인간사를 통해 권력을 추구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신에 대한 정당성의 확보다. 캐드펠시리즈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무척 세심하고 재미있게 표현한다. 슈르즈베리를 향해 달리던 캐드펠은 죄인으로서 참회하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20번째의 내용은 정의와 자비다. 눈을 뗄 수 없는 캐드펠 수사의 참회, 멋진 소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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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도둑 캐드펠 수사 시리즈 19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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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4, 펜지방을 차지하기 위한 제프리 백작의 공격은 어이없는 실수 때문에 스티븐 왕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하지만 수년간의 제프리의 폭행과 폭력은 램지 수도원을 비롯한 펜지방을 초토화 시켰고 백성들은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진 땅을 보며 통곡을 금할 수 없었다. 승리는 왕의 차지였지만 피해를 복구하는 것은 전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서민의 몫이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램지 수도원은 뼈대만 남은 수도원을 신속히 재건해야했다. 도움이 절실한 월터원장은 슈르즈베리 수도원에 헤를루인 부원장과 견습수사를 보내 지원을 요청한다.

 

슈르지베리 수사들은 서로를 형제라 부르며 램지수도원을 돕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안한다. 기도회를 통해 모금을 준비하고 개인적 후원금을 모집한다. 그리고 임종을 얼마 남기지 않은 도나타 부인을 방문한다. 그녀는 헤를루인 부원장과 같이 온 견습수사 투틸로 바라보며 자신을 위한 연주를 부탁한다. 투틸로의 연주는 삶에 갈증을 느끼는 도나타부인의 심금을 울리고 죽음 앞에선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게 된다. 그녀는 보답으로 자신이 지녔던 보물을 램지 수도원에 기부한다. 견습수사를 개인의 즐거움을 위해 부른 도타나 부인이 다소 원망스러웠지만 기부로 인해 헤를루인 부원장의 얼굴이 다소 밝아졌다.

 

슈르즈베리 수도원인 지대가 낮다. 특히 여름철 우기엔 침수가 잦아 비가 오기시작하면 대규모 이동이 시작된다. 또한 기적을 일으킨 위니프리드 성녀를 모시고 있다. 위니프리드 성녀는 슈르즈베리 수사들에 크고 작은 기적을 일으켰고 절대적인 성인으로 추앙을 받고 있다. 한 여름 저수지가 범람해 수도원이 잠기기 시작한다. 수사들과 접객인 들은 모두 물건을 옮기기 시작하고 떠내려 온 잔해를 치운다. 복구는 빠르게 이루어졌지만 뭔가 꺼림칙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감한다. 위니프리드 성녀의 관이 사라진 것이다. 캐드펠은 신속하게 복구 작업을 되짚어보며 상황을 정리해본다. 비가 오기시작하자 급하게 램지수도원으로 보낸 보물과 목재를 실은 마차를 주목한다.

 

잠시 후 마차를 가지고 떠났던 이들이 만신창이가 된 채 수도원에 되돌아온다. 강도를 만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 지방을 다스리던 로베르백작이 관여하며 사건은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로베르 백작은 우연치 않은 계기로 성녀의 관을 보관하고 있었다. 권위를 중시하고 풍모가 넘치는 백작은 자신도 성녀를 모실 권리가 있음을 강조하며 먼저 수도원으로 성녀를 모시기로 합의한다. 결국 성녀의 관은 슈르즈베리, 램지수도원,백작의 요구를 중심으로 이해관계를 따지게 된다. 그들은소르테스 비블리카를 선택한다. 각자 성경을 펼쳐 구절이 뜻하는 바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자는 의미다.

 

성녀의 관을 훔친 범인은 누구일까? 캐드펠은 사건의 전후관계, 수도원 인사들의 개인적 이해관계를 파헤친다. 그런데 수도원 인근 숲속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성녀의 관 도난 사건과 연결이 짙은 살인사건의 배후로 한 인물이 지목되고 그는 결국 자백을 하는데, 범인은 성녀의 관을 훔친 것은 사실이지만 살인은 저지르지 않았다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캐드펠은 지역 장관이자 동료, 휴의 도움으로 사건을 풀어 가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만남을 통해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소설은 시작이 마지막이란 메시지를 주며 반전을 거듭한다. 캐드펠의 노련함과 세밀한 추리력, 휴의 치밀한 계산과 로배르백작의 담대함이 사건을 풀어가는 묘미를 제공한다.

 

놀라운 상상력과 추리력, 지속적인 반전을 거듭하는 캐드펠 수사 시리즈는 수많은 독자들을 양산하며 추리소설의 명성을 이어왔다. 앨리스 피터스는 열아홉 번째 작품으로성스러운 도둑을 선보인다. 본서는 인간의 욕망과 어리석음, 자신에 놓인 호불호를 따지는 권위의 상스러움,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생각의 중요성을 중심으로 사건을 펼쳐나간다. 임종순간에 투틸로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고자했던 도나타부인의 암시가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음유시인한테는 세 가지가 필요한데, 악기하나, 말 한 마리, 그리고 여인의 사랑이다. 성스러운 도둑은 도나타 부인의 예언을 충족시킨다. 세밀한 구성과 디테일한 배경,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내면적 이해관계와 치밀한 구성이 재미를 배가한다. 소설의 백미는 즐거움이다. 매혹적인 소설, 성스러운 도둑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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