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드펠 수사의 참회 캐드펠 수사 시리즈 20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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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초 다소 싸늘한 늦가을이다. 잦은 혼란을 겪었던 슈르주베리에 래스터셔 백작의 전령이 도착한다. 수년간 이어온 전쟁은 다소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지만 스티븐 왕과 모두황후는 서로의 칼끝을 접지 않고 있다. 왕권전쟁을 틈타 이슬람이 모술을 점령했다. 양분된 기독교 세력은 다시 십자군 원정을 꺼내들었다. 코번트리 수도원의 로저드 클린턴주교는 이를 이용해 둘의 관계 회복을 시도하고자 한다. 다행히 왕과 황후는 겉으로나마 회담을 허락했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남아있었다. 황후를 돕던 클로스터백작의 아들 필립이 자신이 관리하던 페링던 성을 스티븐 왕에게 넘겨준 것이다. 끝가지 항전하던 수비대원들은 왕의 포로가 되어 이곳저곳으로 팔려갔다. 그런데 단 한사람, 수비 대원이었던 올리비에 드 브르타뉴의 이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휴는 캐드펠을 찾아가고 올리비에의 이름을 꺼낸다. 올리비에의 소식을 들은 캐드펠은 생각이 막히고 숨을 쉴 수 없었다. 올리비에는 십자군 원정에서 만난 여인을 통해 얻은 캐드펠의 아들이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아들의 독립적 삶을 위해 모든 사실을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수도원에 머물 수 없었다. 결국 라둘푸스 원장을 만나 자신에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며 아버지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평생을 수도원에 귀의하고 수도원의 규칙과 규범을 지킬 것을 서약했다. 무엇보다 어려웠던 시절, 신은 큰 은총을 내려주셨다. 그런데 속세의 인연 때문에 수도원과의 약속을 파기하게 된 것이다. 캐드펠은 원장의 기도가 절실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선 수도원이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는 암울한 생각이 스며든다. 캐드펠은 휴와 함께 세기의 회담이 열리는 코번트리로 향한다.

 

캐드펠 수사의 참회는 캐드펠 시리지의 대미를 장식하는 20번째 작품이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사건은 변함없이 독자의 시선을 이끈다. 본서에는 왕과 황후를 중심으로 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코번트리에 등장한 캐드펠, 그는 과연 자신의 의도대로 아들을 찾을 수 있을까? 회담에 모인 왕과 황후는 의견을 조율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황후는 헨리왕의 순수혈통임을 내세우고 왕은 자신을 추종한 세력들과의 통합을 통한 정당성을 앞세운다. 둘의 관계는 왕에 귀의한 필립에 의해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는데 필립을 주종으로 모시던 패링던의 성주 드 술리스가 대미사 도중 시체로 발견된다. 회담 첫날

드 술리스에 무모한 도전을 시도했던 이브가 범인으로 지목되나 황후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간다. 하지만 필립은 포기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의미 없는 회담이 결렬된 후 디어허스트로 향하던 황후의 행렬에서 기어코 이브를 납치한다.

 

소설의 중심이 필립이 성주로 있는 라 뮈자르데리성으로 이동한다. 코번트리 회담을 주시했던 캐드펠은 등장인물들의 성향과 성격, 배경을 파악하고 살인사건의 배후를 파악하기 위해 이브가 갇힌 라 뮈자르데리성으로 향하게 된다. 소설은 왕과 황후의 권력다툼으로 피페해져가는 농민들의 삶을 디테일하게 소개한다. 무엇을 위한 다툼인가? 세력 간의 다툼에 끼인 서민들은 누가 이기든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캐드펠은 그들의 도움으로 성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모든 사태를 일으킨 필립을 만나게 된다. 필립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난 인재였다. 그 역시 왕과 황후의 지난한 전쟁에 커다란 환멸을 느꼈고 황후를 버리고 왕을 선택했던 것은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빨리 끝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캐드펠은 필립이 진실을 말하며 정직한 사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아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캐드펠은 아들을 대신해 목숨을 내놓는다. 하지만 필립은 한사코 거절하며 캐드펠과 올리비에 관계를 캐묻는다. 그런데 사건은 다시 거대한 흐름으로 바뀌게 된다. 필립을 제거하기 위한 황후가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필립은 이복오빠이자 글로스터백작인 로버트의 둘째아들이자 황후의 사촌조카이다. 하지만 황후에겐 배신한 신하에 불과하고 그녀는 필립의 죽음을 통해 흩어진 권력을 재정비하고자 한다. 소설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필립을 신뢰하게 된 캐드펠은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모든 상황을 정리하는데, 과연 그는 아들을 만날 수 있을까?

 

캐드펠은 눈에 띄지 않지만 모든 사건의 중심에 서있다. 위기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해 사건의 맥락을 주도한다. 권위에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의견에 충실하며 의지대로 행동한다. 필립은 캐드펠의 과거를 물어보는 도중에 그가 십자군 원정에 다녀왔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고 고무된다. 십자군은 내분에 멍들고 있는 기사들에게 충분한 명분을 줄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수도원에 대한 권위다. 왕과 황후도 수도원장의 말에 고분하며 수도사들에 호의적이다. 중세를 아우르는 신의 역할은 소설을 이끄는 핵심주제다. 인간사를 통해 권력을 추구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신에 대한 정당성의 확보다. 캐드펠시리즈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무척 세심하고 재미있게 표현한다. 슈르즈베리를 향해 달리던 캐드펠은 죄인으로서 참회하고픈 마음이 간절했다. 20번째의 내용은 정의와 자비다. 눈을 뗄 수 없는 캐드펠 수사의 참회, 멋진 소설을 소개한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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