씻는다는 것의 역사 - 우리는 왜 목욕을 하게 되었을까?
이인혜 지음 / 현암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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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하면 신윤복의 단오풍정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19세기 단오는 세시풍속이었다. 세시풍속은 지금도 국가적 혹은 지역적으로 행해지는 풍속인데 설날에는 떡국을 먹고 정월대보름에는 부럼을 깨먹는 전통을 말한다. 5월 단오엔 창포에 얼굴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이는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평안을 기원하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였다. 단오풍정엔 멱을 감는 여인네와 그네 타고 수다 떠는 아낙네들이 등장한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조선시대 목욕은 심신의 피로를 달래는 것과 더불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온천으로 확대되었다. 좋은 온천을 찾으면 상을 준다고까지 했으니 씻는 것에 대한 위로는 왕으로부터 신하까지 특별한 행사이자 치유의 수단이었다.

 

누구나 목욕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있다. 어렸을 적 엄마를 따라가 욕탕에서 물장구치던 추억을 잊기 어렵다. 당시엔 목욕보단 때를 벗기는 게 우선이었다. 시커멓게 뭉그러진 때를 물로 씻을 때의 쾌감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목욕 문화도 크게 바뀌었다. 그런데 목욕은 언제부터 인간에 유래된 것일까? 또한 목욕은 어떤 방식으로 흐름을 이어온 것일까? 목욕은 새벽마다 다니는 동네 목욕탕으로부터 최신식 사우나까지 여전히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본 책은 씻는 것의 역사를 소개한다. 씻지 않고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역사엔 수백 년 동안 씻지 않았던 시간이 기록되어있다.

 

1347, 검은 죽음이라 불리던 흑사병의 창궐은 질병과 범죄의 온상이라 불렸던 공중목욕탕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흑사병은 19세기까지 유럽을 덮쳤는데 당시 유럽인구의 1/3인 액 2,500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흑사병의 원인이 물에서 솟아나는 공기에 있다는 파리대학교 의학부 교수들의 발표는 목욕문화를 완전히 거부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15~16세기 유럽 왕들의 문헌엔 목욕에 대한 자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목욕 대신 옷을 자주 갈아입었는데 특히 앙리 4세는 악취를 감추기 위해 필요이상의 향수를 뿌리고 다녔다고 한다.

 

목욕의 기원은 3000년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존하는 모헨조다로 유적은 당시의 관개시설이 얼마나 발달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상하수도는 물론 실내 배수관과 목욕을 위한 방까지 구비되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적과 마찬가지로 침략과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무너뜨려 버렸다. 그리스도 목욕을 활성화시켰지만 목욕문화가 꽃을 피운 때는 로마시대였다. 공화정을 추종했던 로마는 목욕을 통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다루었다. 4세기 로마에는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테르미아(대중 목욕탕)이 존재했다. 황제는 권력 유지를 위해 목욕권과 오일, 이발권을 남발했다. 당시 목욕에 대한 로마인의 열정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본 책은 목욕에 관한 거의 모든 역사를 다루고 있다. 1부에서는 모헨조다로의 목욕문화로부터 중세유럽을 거쳐 인도의 쿰브 멜라와 일본의 센토까지, 세계목욕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2부에서는 삼국시대로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한국의 목욕문화를 다루고 있다. 다양한 삽화와 사진, 고증적 자료가 이야기의 재미를 덧붙인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목욕 문화는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제례의식과 풍속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눈여겨 볼 대목이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 서등이 남긴선화봉사고려도경의 문구다. ‘남자와 여자의 분별도 없고, 의관을 언덕에 놓고 물굽이에 따라 몸을 벌거벗되 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려의 자유분방한 목욕문화를 서술한 내용이다. 고려의 목욕문화는 성리학이 주를 이루었던 조선시대엔 완전히 폐지되었고 목욕은 질병을 치유하거나 심신의 피로를 푸는 용도로만 이용되었다.

 

21세기 목욕은 다양한 방법으로 확장되었다.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집에서 간단한 샤워로 대체한다. 혼밥이나 1인가구의 증가와 같은 사회구조의 변화와 다양한 사회적 관점이 대체한 까닭이다. 또한 기존의 목욕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질병치료에 집중되었다면 현대인에게 목욕은 피로를 풀거나 씻는 것 이상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앞으로 목욕이 지속될 것인가? 저자는 목욕문화를 마무리하면서 전 세계적인 물 부족문제를 꺼내든다. 물 부족에 대한 이해관계는 국가마다 다를 수 있지만 결국 한정된 자원은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가끔 목욕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한국사회는 물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하지 않는다. 목욕의 낭만을 추억하기엔 우리가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일까? 하지만 목욕의 역사엔 인간의 농밀한 내면이 가득하다.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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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한다는 착각 - 나는 왜 어떤 것은 기억하고 어떤 것은 잊어버릴까
차란 란가나스 지음, 김승욱 옮김 / 김영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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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하는 생각과 행동 그리고 선택이 어떤 기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을까? 그 기준은 자유의지, 즉 본인의 선택에 의한 것일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한 것일까? 우린 스스로의 선택을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행동은 대부분 기억이라는 틀에서 만들어진 시스템적인 반응이다. 뇌는 에너지 사용에 진심이다. 에너지를 무한정 공급받을 수 없기에 최대한 효과를 얻기 위한 방법을 강구해왔다. 기억 역시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루 24시간, 그중 12시간이상을 정보의 물결에 휩싸여 있다. 우리의 모든 감각은 뇌를 통해 인식되고 기억되며 재생된다. 하지만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없다. 대부분은 버려지거나 폐기된다. 특히 반복적인 정보는 순간적으로 사라진다. 뇌의 이런 기능은 정말 중요한 사건이나 상황을 인지하고 기억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자 활용방법이다. 뇌는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저자는 이를 우리가 생각하는 뇌에 대한 전제가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뇌는 기억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다. 뇌는 망각하기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은 왜 방금 한 일을 쉽게 잊어버리고 혼란에 빠지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준다.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지 어떤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보관하고 어떤 정보를 프로그램화 할 것인지를 순간적으로 결정한다. 흔히 경험하는 자동차 키를 찾는 오류는 뇌 기능의 이상이나 노화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뇌의 작용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작용을 정보간의 우위를 다투는 간섭현상이라 말하는데 문제는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기억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뇌의 획기적인 발견은 감각에 대한 뇌의 반응이 연쇄적이고 통합적이라는 것이다. 신경세포간의 연결과 신경 가소성은 환경변화나 유전적 발현에 따라 뇌 기능이 얼마든지 조절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눈에 띄는 기억을 만드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저자는주의력의도를 강조한다. 주의력은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에 뇌가 우선순위를 매기는 방식이다. 수많은 정보들 중 무엇에 주의력을 가질 것인가? 이를 보충하는 것이 의도다. 의도는 주의하고자하는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1972년 에스토니아태생의 심리학교수 툴빙은 인간이 두 가지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기억은 단순히 정보를 저장하는 개체로만 인식되었다. 툴빙은 지식을 얻기 위한 의미기억과 특정 시간과 사건으로 돌아가 정신적 시간여행을 가능케 하는 일화기억으로 구분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일화기억은 경험이다. 인간의 기억은 학습과정 중 변형이 일어나더라도 기능 상실이 일어나지 않으며 사건을 서로 다르게 저장하고 색인을 붙여 통제한다. 또한 기억 저장소라 알려진 해마와도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인공지능의 역할이 의미기억을 강화한다면 일화기억은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기억이 아닐까?

 

본 책은 기억에 대한 오류와 착오, 잘못된 고정관념을 제시하고 있다. 1부는 신경세포의 역할과 전전두엽피질의 의미, 일화기억등 기억의 기본원리를 소개한다. 특히 기억의 회상이 인상적이다. 우린 어떻게 과거로 돌아가 당시를 기억할 수 있는가? 뇌의 공감각적 기능은 일화기억을 통해 이루어진다. 2부는 기억 그 이상의 효과와 현상을 이야기 한다. 특히 기억은 상상에 불과하다는 이론을 통해 환경과 신경구조와의 상관관계를 파헤친다. 우리의 기억이 진실일까? 뇌 과학자들은 단호히 거짓이라 말할 것이다. 뇌는 편의적으로 작동한다. 정보의 파편이 흩어지고 모여 새로운 정보를 생성한다. 또한 감정, 장소, 현재 상황에 따라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우리의 일상은 현재의 기억으로부터 시작되고 새로운 기억으로 형성된다. 이는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르쳐주고 선택의 기준이 되며 신념을 만든다. 즉 기억은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라는 것이다. 기억한다는 착각은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일상일수 있다. 하지만 기억은 서서히 그리고 순간적으로 우리의 고정관념을 해체해 버린다. 우린 기억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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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 - 세상의 흐름을 결정할 혁신기술의 거대한 충격 17 10년 후 세계사 3
구정은.이지선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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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사회화, AI에 급가속이 붙은 것 같다.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챗GPT가 대세로 자리를 잡는 줄 알았는데 량원펑의 딥시크가 판도를 바꿔버린 것이다. 같은 성능인데 가격은 1/30 정도라고 한다. 그동안 엔비디아의 독점에 속앓이를 했던 국가들과 기업들에겐 그야말로 희소식이다. 만약 올 한해 딥시크와 같은 플랫폼이 수개 이상 출현한다면 AI는 전혀 다른 시나리오를 전개할 것이다.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불확실성을 제거한다는 심리적 안정감 못지않게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10년 후 세계사, 미래의 역습 역시 이러한 기대를 충분히 반영하며 17가지의 미래에 관한 질문을 펼쳐놓는다.

 

1부는 기술이 이끄는 우리의 미래다. 로봇, 자율주행, 드론, 그리고 산업 전반에 펼쳐질 기술의 미래를 다룬다. 무엇보다 이들의 중심에 AI가 활용될 것임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치, 경제 사회적 구조 또한 기존과는 다른 방법을 요구할 것이다. 그런데 중심은 문화의 변화가 아닐까싶다. AI는 수많은 콘텐츠를 통한 다양한 생성형 AI를 탄생시킬 것이다. 문화는 인간 삶의 방식과 밀접한 연관을 맺기에 AI의 활용도는 더욱 미래 산업을 알 당길 것이다..

 

2부에서는 미, 중간의 패권 정책을 다루고 있다. 최근 고율의 관세정책이 서로간의 벽을 쌓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미래 먹거리의 싸움이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이익 앞에선 오늘의 적이 아군이 되고 아군이 적이 될 수 있다. 중국 반도체의 성장속도도 놀랍지만 달러를 앞세운 미국의 패권 정책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적, 경제적 이슈로 부각될 것이다. TSMC를 앞세운 대만은 세계 화약고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는 세계 반도체 시장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헤게 머니의 중심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술의 진보는 인류를 어디로 이끌 것인가? 두렵기도 하지만 인간의 한계에 대한 시험대가 될 것이다. 도덕적 윤리적 문제가 새게 부각될 것이며 이는 국가 간, 지역 간, 기업 간의 패권전쟁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3부의 주제 녹색 혁명이다. AI는 세상을 녹색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인가? AI를 제하고서 미래를 논하기 어려운 시대다. 엄청난 자본과 과학 기술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지, 또한 인류는 이에 대한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지, 너무도 가파르게 다가오는 미래를 먼저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10년 후, 미래의 역습을 통해 그 질문을 먼저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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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다양한 우주가 필요하다 - 삶을 아름답고 풍부하게 만드는 7가지 우주에 관하여
앨런 라이트먼 지음, 김성훈 옮김 / 다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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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당연성이 존재할까? 인간 존재의 의미를 찾기 전에 우주와 지구의 존재의미를 찾는다면 훨씬 수월하게 인간의 본 모습을 알 수 있지는 않을까? 이론 물리학자들의 발걸음이 바쁘다. 백 년 전 발표한 양자물리학도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린 오류가 있어서는 안 되는 절대적인 진리라 여겼던 자연법칙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다.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지만 자연법칙에 대한 새로운 고찰이 인간에 주어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은 실재에 대한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고 과학기술의 발전이 결국 또 다른 법칙을 탄생시키기 때문이다.

 

서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는 모든 관찰자에게 자연법칙은 동일하게 관찰된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이다. 1632년 갈릴레이가 제안하고 아인슈타인에 정립된 물리학의 기본원리는 수백 년 동안 절대적인 신념과 같았다. 또한 자기모순이 없는 한 우주는 오직 하나만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영원한 급팽창이론과 끈이론은 기본 원리들이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니면서도 자기모순이 없는 수많은 우주를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절대적이었던 자연법칙의 무효용성을 의미한다. 멀티버스 개념은 지식 한계를 넘어서 실재와 비실재에 대한 고찰을 요구한다. 다원우주, 멀티버스에 대한 개념은 우리의 상상력과 상관없이 확률이론의 비중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우리의 생존이 확률에 결정된다면, 생명체 탄생이 무한 반복에 의한 확률적 계산이라면 우리가 그토록 찾던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다원우주는 다른 나를 만난다는 영화의 한 장면보다는 생명체의 근원적인 고찰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본 책은 물리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앨런 라이트먼의 우주에 관한, 저자 특유의 풍부한 경험과 연구가 축적된 과학적 인문서적이다. 저자는 오전에는 과학자로 합리적 법칙을 가르치고 오후엔 문학을 가르치는 통섭을 실천하는 MIT 유일의 교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우리가 기존에 알던 우주론과는 전혀 다른 관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우주로의 확장을 통해 앎의 범위를 넓히고 삶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준다.

 

암흑에너지는 우주에너지의 3/4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토록 흔한 에너지임에도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그 진면목을 알지 못했다. 물론 지금도 암흑에너지의 실체를 거의 알지 못한다. 헌데 다중우주 이론이 진행되면서 암흑에너지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암흑에너지의 양이 실제보다 조금 더 컸더라면 우주는 팽창속도가 너무 빨라 항성이 생성 할 수 없었고 양이 적었더라면 우주 팽창속도가 급격히 줄어 원자는 생상이 되기도 전에 붕괴되었을 것이다. 암흑에너지의 미세조정은 말 그대로 확률이다. 그런데 누가, 어떤 경로로 이러한 미세조정이 일어났을까? 무수한 우주가 존재한다면 가능하다. 다중우주이론은 우리가 우연히 탄생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우주에 대한 해석을 이토록 다채롭고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수백경의 시간이 흐른 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은 우리에게 별 쓸모가 없다. 하지만 인간이 물리적 분자의 집합체에 불과하다거나 우리를 통제하는 뇌 기능이 전기, 화학작용이 전부라면 너무 삭막하고 건조하지 않은가? 우리에겐 기계적 이론 못지않은 심적이고 영적인 감동이나 경외감이 존재한다. 저자는 이를 인간은 합리성을 찬양하고 비합리성을 사랑한다라는 멋진 말로 표현하고 있다. 합리적인 인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우린 비합리적 사고와 생각을 훨씬 중요하게 여기기도 한다. 힉손보손과 대칭적우주, 영적우주와 시간에 대한 재해석, 어쩌면 우리가 알던 모든 지식을 해체해 새로운 우주에 대한 개념을 기억해야할지 모르겠다. 하늘의 별만큼 많은 우리의 신경세포 역시 우주와 가깝다.

 

본 책은 다양한 우주에 관한 이야기가 풍부하게 전개된다. 7가지의 우주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처럼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결국 우주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지구가 지금처럼 존재하는 덕분에 인간이 존재이유가 설명이 된다. 확률이론은 삶에 더욱 애착을 갖게 만든다. 우연에 불과한 삶일지라도 인간은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며 특별한 의미를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만난다. 깊은 밤, 아름다운 별을 바라보는 순간에도 우리의 마음은 과학적 호기심과 영적 경외심을 동시에 갖는다. 인간에 대한 성찰을 이보다 아름답게 표현 할 수 있을까? 우주의 신비를 통해 본 인간 존재의 의미, 과학과 철학, 인문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탁월한 우주론을 만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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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의 먹는 노트 - 자, 오늘은 뭘 먹어 볼까?
마츠시게 유타카 지음, 아베 미치코 그림, 황세정 옮김 / 시원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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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조름한 김치찌개, 구수한 생선구이, 갖은 채소 섞어 풍미 가득한 보리밥까지 한국인의 정서를 꼭 빼닮은 음식들은 서민들과 평생을 같이 해왔다. 음식만큼 우릴 웃고 울리는 것이 있을까? 배부르면 풍요롭고 자애로워진다. 뭐든 더 주고 싶고 먼저 양보하고 싶다. 하지만 배고픔은 다르다. 오죽했으면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옛말이 아직까지 회자되고 있겠는가? 한국인에 먹는 것은 곧 삶이고 생존이다. 그래서 유독 먹는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인간이 먹는 걱정을 내려놓은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하지만 양이 풍족하다고 내용까지 넉넉하지는 않는 것 같다. 쌀 한 되 퍼주던 인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가치보단 가격과 효율이 우선시되는 사회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동네 곳곳을 돌며 서민적 음식을 찾는 이들에게 더욱 애착이 가고 정감을 느낀다. 고독한 미식가 역시 옆 동네 아저씨의 이야기라 하기엔 우리네 정서와 너무도 닮았다.

 

마츠시게 유타가씨의 먹는 노트가 출간되었다. 일본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을 통해 맛깔스러운 연기를 펼쳐온 연기자로서 본인이 좋아하는 일본음식과 일본맛집을 선보이며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 먹는 노트는 일본 및 아시아 국가를 방문하며 그곳의 음식을 통해 개인적 에피소드를 담백하게 전달한다. 일본에는 이미 개봉되었고 한국에도 곧 영화로도 개봉한다고 하니 그만의 솔직하고 담백한 연기가 무척 기대된다. 마츠시게 유타가씨는 고로상의 이미지가 무척 강하다. 먹는 노트 역시 고독한 미식가의 연출이 다분히 베어난다. 고로상은 자신에 무척 솔직하다. 특히 음식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마치 맛난 음식을 앞에 둔 어린아이와 같다. 그래서인지 먹는 노트를 읽는 내내 즐거움과 정겨움 그리고 조용히 스며드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본 책은 7파트로 저자의 음식에 관한 에세이로 가득차있다. 다양한 레퍼토리와 이를 연결하는 음식과 맛집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추억과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는 시금치를 통해서 뽀빠이를 회상하고 통조림 파우치 때문에 세일러복에 얼룩이 묻지 않을까 걱정한다. 하지만 최종결론은 윔피의 햄버거다. 다소 엉뚱하게 결론이 나지만 마츠시게 유타가씨와 공동 작업을 한 아베 미치코씨의 일러스트가 구성을 잡아준다. 버터에 살짝 볶은 시금치위에 반숙프라이를 올려놓고 노른자를 터뜨려 먹는 느낌, 절로 군침이 돈다. 파트1은 다양한 식재료를 둘러싼 저자만의 독특한 시각을 만날 수 있다. 하얀 아스파라거스를 처음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는 나물로 주로 먹는 머윗대를 설탕에 절여 파운드케이크로 만드는 것도 무척 신기하다. 저자의 오랜 추억과 손때 묻은 기억들이 절로 동심을 불러일으킨다.

 

이젠 굳이 일본여행을 하지 않더라도 일본식 카츠나 규동, 카레가게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가게마다 특색이 있듯이 카레 맛도 서로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카레는 원래 인도가 본 고장이다. 저자 역시 인도카레의 맛을 잊을 수 없어 밀스를 꺼낸다. 일곱 가지의 알록달록한 음식과 밥과 전병, 보자마자 머릿속이 엉망이 되어버리고 접시를 뒤적이는 자신을 발견한다. 먹는 것은 상상력이다. 섞어먹든 그냥 먹든 배속은 풍요롭기만 하다. 요즘엔 죽도 다양하게 출시되는데 저자는 홍콩의 노점상 죽을 강력 추천한다. 하얀 죽 위에 놓인 튀긴 빵도 깊은 맛을 내지만 닭고기 육수의 진한 풍미를 느끼는 국물은 고로상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밀키트, 혼밥, 편의점 도시락, 혼자서 먹을 수 있는 편안한 한 끼다. 하지만 가공된 음식에 따뜻함과 정겨움을 느끼기 어렵다. 먹는 것만큼은 진심이었던 사람들은 왜 갑자기 먹는 것의 본질을 잃어가는 것일까? TV엔 연예인들의 먹방이 자주 방송된다. sns는 그야말로 먹방과 식재료, 음식의 천국이다. 하지만 이들 모두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소란스럽고 부담스럽기만 하다. 먹는 것엔 분명한 개인편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대다수는 먹는 것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오히려 즉흥적이고 본능에 가깝다. 그래서 고독한 미식가의 존재감이 더욱 특별하다. 우린 같이 먹음으로서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한다. 일상의 소소함은 먹는 것으로 시작해 삶을 공유하고 공감을 배운다. 고로상은 고독한 미식가를 통해 혼밥을 통한 힐링만을 이야기하진 않는다, 그 안에 담긴 정성어린 음식과 이를 만드는 이들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그 가운데 서있는 자신을 만나고 있다. 마치 그가 어떤 음식이든 입에 넣으면 풍미 가득한 삶의 의미가 튀어나오듯이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를 말하는 것처럼, 고독한 미식가 노트는 마츠시게 유타가씨의 일상이다. 음식을 전달하는 그만의 특유한 위트와 고지식함이 돋보이지만 알지 못한 무언가 조용히 다가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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