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씻는다는 것의 역사 - 우리는 왜 목욕을 하게 되었을까?
이인혜 지음 / 현암사 / 2025년 2월
평점 :

목욕하면 신윤복의 단오풍정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19세기 단오는 세시풍속이었다. 세시풍속은 지금도 국가적 혹은 지역적으로 행해지는 풍속인데 설날에는 떡국을 먹고 정월대보름에는 부럼을 깨먹는 전통을 말한다. 5월 단오엔 창포에 얼굴을 씻고 머리를 감았다. 이는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평안을 기원하기 위한 조상들의 지혜였다. 단오풍정엔 멱을 감는 여인네와 그네 타고 수다 떠는 아낙네들이 등장한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조선시대 목욕은 심신의 피로를 달래는 것과 더불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온천으로 확대되었다. 좋은 온천을 찾으면 상을 준다고까지 했으니 씻는 것에 대한 위로는 왕으로부터 신하까지 특별한 행사이자 치유의 수단이었다.

누구나 목욕에 대한 아련한 기억이 있다. 어렸을 적 엄마를 따라가 욕탕에서 물장구치던 추억을 잊기 어렵다. 당시엔 목욕보단 때를 벗기는 게 우선이었다. 시커멓게 뭉그러진 때를 물로 씻을 때의 쾌감은 아직까지 잊히지 않는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목욕 문화도 크게 바뀌었다. 그런데 목욕은 언제부터 인간에 유래된 것일까? 또한 목욕은 어떤 방식으로 흐름을 이어온 것일까? 목욕은 새벽마다 다니는 동네 목욕탕으로부터 최신식 사우나까지 여전히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본 책은 씻는 것의 역사를 소개한다. 씻지 않고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역사엔 수백 년 동안 씻지 않았던 시간이 기록되어있다.
1347년, 검은 죽음이라 불리던 흑사병의 창궐은 질병과 범죄의 온상이라 불렸던 공중목욕탕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흑사병은 19세기까지 유럽을 덮쳤는데 당시 유럽인구의 1/3인 액 2,500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흑사병의 원인이 물에서 솟아나는 공기에 있다는 파리대학교 의학부 교수들의 발표는 목욕문화를 완전히 거부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된다. 15~16세기 유럽 왕들의 문헌엔 목욕에 대한 자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목욕 대신 옷을 자주 갈아입었는데 특히 앙리 4세는 악취를 감추기 위해 필요이상의 향수를 뿌리고 다녔다고 한다.
목욕의 기원은 3000년 인더스 문명의 모헨조다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존하는 모헨조다로 유적은 당시의 관개시설이 얼마나 발달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상하수도는 물론 실내 배수관과 목욕을 위한 방까지 구비되었다고 하니 놀랍기만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적과 마찬가지로 침략과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고 무너뜨려 버렸다. 그리스도 목욕을 활성화시켰지만 목욕문화가 꽃을 피운 때는 로마시대였다. 공화정을 추종했던 로마는 목욕을 통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다루었다. 4세기 로마에는 2,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테르미아(대중 목욕탕)이 존재했다. 황제는 권력 유지를 위해 목욕권과 오일, 이발권을 남발했다. 당시 목욕에 대한 로마인의 열정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본 책은 목욕에 관한 거의 모든 역사를 다루고 있다. 1부에서는 모헨조다로의 목욕문화로부터 중세유럽을 거쳐 인도의 쿰브 멜라와 일본의 센토까지, 세계목욕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2부에서는 삼국시대로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한국의 목욕문화를 다루고 있다. 다양한 삽화와 사진, 고증적 자료가 이야기의 재미를 덧붙인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목욕 문화는 불교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제례의식과 풍속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눈여겨 볼 대목이 고려시대 송나라 사신 서등이 남긴‘ 선화봉사고려도경’의 문구다. ‘남자와 여자의 분별도 없고, 의관을 언덕에 놓고 물굽이에 따라 몸을 벌거벗되 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려의 자유분방한 목욕문화를 서술한 내용이다. 고려의 목욕문화는 성리학이 주를 이루었던 조선시대엔 완전히 폐지되었고 목욕은 질병을 치유하거나 심신의 피로를 푸는 용도로만 이용되었다.
21세기 목욕은 다양한 방법으로 확장되었다.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집에서 간단한 샤워로 대체한다. 혼밥이나 1인가구의 증가와 같은 사회구조의 변화와 다양한 사회적 관점이 대체한 까닭이다. 또한 기존의 목욕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질병치료에 집중되었다면 현대인에게 목욕은 피로를 풀거나 씻는 것 이상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앞으로 목욕이 지속될 것인가? 저자는 목욕문화를 마무리하면서 전 세계적인 물 부족문제를 꺼내든다. 물 부족에 대한 이해관계는 국가마다 다를 수 있지만 결국 한정된 자원은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가끔 목욕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한국사회는 물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하지 않는다. 목욕의 낭만을 추억하기엔 우리가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일까? 하지만 목욕의 역사엔 인간의 농밀한 내면이 가득하다.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