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을 망친 자본주의 - 역사학자가 파헤친 환경 파괴의 시작과 끝
마크 스톨 지음, 이은정 옮김 / 선순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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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엔 도시를 만드는데 과거와 같이 수백 년의 시간이나 수백만 명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간의 놀라운 지식발전 덕분에 몇 년이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인프라를 구축한 도시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땅과 대기, 그리고 인근의 생태계는 과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진다. 땅은 파헤쳐져 시멘트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가 들어서고 호수는 축소되거나 사라져 인근 대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더욱 문제시 되는 부분은 외래종의 출현이다. 외래종은 예측을 할 수 없는 질병과 바이러스를 출몰시킨다. 도시는 모든 생태계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 단지 인간의 필요에 따라 구획되고 기획된 구조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린 도시를 통해 안락함과 안전성을 추구한다, 오직 인간의 이익을 위해 모든 구조가 변경되거나 변질된다.

 

1960년대 미국 환경 보호에 방점을 찍은 레치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인간이 제조한 화학약품의 폐해가 어떻게 자연을 피폐시키고 인간의 삶을 망가뜨리는지를 세상에 고발한 책이다. 카슨의 용기는 세상의 질문을 바꾸었고 기업의 행태에 도덕적, 윤리적 책임을 요구하게 되었다. 우린 몇 년 전 반도체 품귀현상으로 세계경제가 올 스톱되는 기이한 현상을 맞이한 적이 있다. 세계 각국은 비상이 걸렸고 언론들은 마치 세상이 무너질 듯한 기사를 쏟아냈다. 흔히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한다. 이제 거의 모든 제품에 반도체가 필요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최근 개발되는 자율주행차량엔 얼마나 다양하고 많은 반도체가 필요할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에는 엄청난 전기와 물이 필요하다. 전기를 생산하는데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는 누구나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하지만 반도체가 인간의 삶에 필수적인 요소일까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이미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에 잠식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슨은 인간에 닥칠 위기를 경고했지만 살충제를 생산하는 기업은 여전히 환경을 오염시킨다. 반도체도 이와 다르지 않다. 환경에 대한 경고는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누구나 환경보단 반도체가 셧다운 되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인간의 편리성과 이익을 추구하고자하는 자본의 역할과 이를 방어하려는 환경보호가 미묘하게 충돌된다.

 

마크 스톨은 거의 모든 것을 망친 자본주의를 통해 자본주의의 적나라한 실상을 고발한다. 인류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이후로 자연은 엄청난 도전에 시달려야 했다. 가끔은 자연보호라는 이름아래 생태계를 보호하고 인위적인 파괴를 자제하곤 했지만 인간의 탐욕은 자연과의 공존을 거부했다. 이제 그 대가가 돌아오고 있다. 대기오염의 증가는 생태계 교란뿐만이 아니라 지구 온난화를 통한 지질의 구조적 변화를 촉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잦아진 폭풍,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변화, 특히 극지방의 온도변화는 인류에 유례없는 재난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인간은 자신이 지구의 정복자일 뿐 아니라 어떤 위기가 와도 자신과는 상관이 없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자연은 인간의 생각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에 불과하며 운 좋게도 지구의 모든 자원을 끌어다 사용하는 유일한 종족에 불과하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고 누구도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 시작된다면 우린 어떤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갖게 될까?

 

본 책은 놀라운 정도로 디테일하게 자본주의 역사를 풀어간다. 1자본주의 시작에서는 초기인류의 자본주의 발달과정의 역사와 인간 군락의 이해관계를 다루고 있다. 마치 역사책을 읽어가듯이 중세 무역으로부터 증기와 철강의 시대를 이어나간다. 역사의 중심을 관통하는 자본주의의 배경을 빠짐없이 기술하는 놀라운 관점이 독보적이다. 그리고 자본이 투자될 때마다 황폐화되어가는 환경에 대한 문제점을 들추어낸다. 2부는 산업자본주의의 시작과 그 종말을 이야기하는데 인류는 조금씩 자원보존에 대한 경각심을 느끼기 시작한다. 3부는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해가는 자본주의의 끈질긴 생명력을 이야기한다. 특히 1970년대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한 산업구조를 대가속기라 칭하며 지구가 겪고 있는 엄청난 혼란과 교란의 현장을 과감히 들추어내고 있다. 자본주의는 인류에 엄청난 이익을 안겨주었지만 심각한 빈부의 격차를 통해 선택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달콤한 열매는 극소수에게만 주어진 축복이다. 인류의 대부분은 자본주의가 뱉어놓은 엄청난 쓰레기를 처리해야하는 공동의 책임을 지고 있다. 사실상 싼 가격에 삶을 저당 잡히고 환경오염에 따른 위기를 온몸으로 받아야하는 상황이다. 자본주의와 환경보호, 혹은 자연과의 공존은 필요이상의 조건일까? 펜데믹은 그 충분한 이유를 설명한다. 인간은 결코 자연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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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 - 과거를 끌어안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
샤를 페팽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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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인문학이다. 또한 물리학과도 가깝다. 세계와 인간사를 아우르는 근본원리와 본질을 탐구하고 추구하고 발본하는 고도의 학문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또한 신학이나 심리학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한 의문과 해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란 명제는 철학이 지닌 주요한 주제들 중의 하나다. 하지만 우린 과거에 대해 그리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어하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기억과 추억은 쉽게 사라지지도 잊히지도 않는다. 오히려 무언가 점화가 발현하면 뜨겁게 달아올라 감정을 분출시키기도 한다. 과거는 무의식으로부터 발현된다. 마치 기억의 저편에 숨어 반응할 날만을 기다린다. 과거로부터의 자유는 과거의 기억에 구속되는 것이 아닌 과거와의 동반을 의미한다. 현재라는 개념이 지금 이 순간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거는 왜 중요할까? 생은 과거로부터 시작하여 과거로 이루어진 기억들의 총합으로 현재를 이어간다. 과거는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안타깝게도 좋은 추억만이 과거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부정적인 기억을 훨씬 강렬하게 인지하고 소환되는 과정에 극도의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과거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 인식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타인에 대한 인식도 그러한 예들 중 하나다. 상처를 받은 경험은 씻을 수 없는 감정을 경험한다. 감정의 자기구속이 과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삶의 현재와 미래까지 과거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 과거를 재평가하는 것은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가 샤를 페팽은 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를 통해 과거와 미래의 만남을 제시한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곧 나다.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나도 없고 미래의 나도 없을 것이다. 과거를 바로 보는 것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실존에 대한 강렬한 의미를 부여하고 자아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시간의 공명이라는 주제를 광범위하게 확장시키며 현존에 대한 이해를 덧붙인다. 특히 기억들의 재구성과 재조합을 가능하게 만드는 뇌의 가소성에 주목한다. 또한 일화기억과 의미기억의 한계를 인식하고 어떻게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일화기억은 의미기억을 만나 기억의 파편들을 재구성하고 실질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과거는 얼마든지 새롭게 각색되고 각인되어 미래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세계의 톱니바퀴로 비유하는데 첫 번째는 과거의 수용단계로 우리가 무엇을 물려받았고 이를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지 끊임없이 재가공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행동의 시간으로 과거를 재창조하는 새로운 경험을 쌓고 과거의 추억위에 새로운 추억을 덧씌워 미래를 향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타자와의 관계, 즉 개방이다.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들 중의 하나가 집중과 시선돌리기다. 타자와의 관계 변화를 통해 세상의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것은 저자가 강조하는 미래로 전진하기 위한 과거를 재창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레미니상스는 기억을 떠올리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다. 우린 간혹 삶의 언저리에서 문뜩 떠오르는 미화의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좋은 기억은 미묘하고 섬세하며 마치 과거가 현존 하는 듯한 기분 좋은 상상 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저자는 과거를 더 이상 구속의 대상으로 방어나 기피, 혐오의 대상으로 숨겨놓아야 할 무언가로 치부하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의 모든 생각, 감정, 행동은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과거는 넘어서야할 무엇이 아니라 안고가야 할 자신의 몫이다. 부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니체의 말대로 망각하는 편이 나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픈 기억도 자신의 과거다. 그리고 이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자신의 선택이다. 우린 어느 때보다 풍요롭지만 각박한 세상임을 인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보여주고 있다. ‘노화는 얼굴보다 영혼에 더 많은 주름을 새긴다란 몽테뉴의 말처럼 과거에 대한 재인식과 재창조는 생의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생과 영혼에 깊은 사유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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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파민 디톡스 - 쾌락과 고통에 지배당한 뇌를 되돌려라
애나 렘키 지음, 고빛샘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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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우울증, 불쾌감등 삶의 집착으로부터 비롯되는 스트레스는 호르몬을 교란시킨다. 호르몬은 생체리듬을 파괴하고 불면, 강박, 공황등 정신적 스트레스를 더욱 가중시킨다. 인간의 신체구조는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어기제를 갖추고 있고 호르몬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보상결정을 담당하는 도파민은 쾌락과 고통의 중심으로 다수의 심리적 상황을 관장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인류는 대부분의 시간을 도파민 결핍상태로 지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전덕분에 풍요로워진 인류는 새로운 도파민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도파민이 다루기 힘든 이유는 감정의 변화가 너무 확실하고 극한상황에서는 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도한 도파민 분출은 중독을 일으킨다. 중독이란 단어는 매우 부정적이다. 간혹 열정이나 습관과 혼동하는데 중독은 해당물질이나 행동이 해를 끼치고 이를 지속적, 강박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독의 해로움은 단시간에 감지되기 어렵고 시대적 상황이나 문화적 이슈에 감추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일상의 균형이 서서히 무너지거나 부정적인 영향이 탐지된다면 이미 상당히 중독에 빠져들었다는 신호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인식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 본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중독은 뇌의 보상심리와 연결되어있다. 도파민은 보상중추를 자극해 쾌락과 고통을 담당하는 호르몬이다. 즐거운 행위는 소량의 도파민을 분출해 기분 좋은 쾌락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뇌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도파민이 분비되는 즉시 수용체수를 줄인다. 항상성은 뇌가 생존하기 위한 최선의 전략이다. 문제는 쾌락과 고통이 뇌의 같은 부위에서 처리된다는 것인데 쾌락이 줄어든 만큼 고통이라는 후유증도 따라오게 된다. 인간의 지속적인 보상을 원한다. 반복되는 쾌락은 뇌의 기준선을 높여 강한 도파민 분출을 요구하게 된다. 결국 쾌락과 고통의 반복은 쾌락불감증과 금단증상을 수반하며 삶의 질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도파민 디톡스는 보상심리를 결정하는 도파민의 어두운 내막을 밝혀낸 애나 램키의 도파민 솔루션이다. 전작 도파민네이션을 통해 도파민에 대한 경각심을 깨달았다면 이번 도파민 디톡스는 삶의 전반에 펼쳐져있는 도파민 과다 분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도파민 디톡스의 첫 시작은 D(Data). 무엇을 중독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어떤 물질과 행동에 과도하게 집착하며 지속적으로 반복하고 있는가? 중독의 원인을 제공하는 데이터 분석과정을 통해 생활패턴을 이해하고 도파민 차트를 만든다. 도파민 차트 작성은 중독에 대한 생각을 재인식하고 앞으로 풀어야할 문제점들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과정이다. 저자는 다양한 스프레드시트를 통해 중독의 정량화를 계산하고 수치화한다.

 

본 책은 중독의 다양한 원인과 신경회로의 반응, 생체변화등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5장의 마음 챙김과 6장의 통찰과 솔직함 과정은 눈여겨볼만하다. 디톡스는 최소한 4주를 진행해야하지만 금단증상이 심해지면 뇌의 속삭임에 빠져들어 다시 중독에 접근하게 된다. 이때 마음 챙김이 필요하다. 자신의 마음에 관한 메타인지는 뇌 신경회로를 바꿀 수 있는 의식으로 자신과 마주하며 갈등과 갈망의 목소리를 스스로에게 설득하고 해석하는 과정이다. 솔직함이 얼마나 스스로를 강화시키는지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중독자는 대부분 거짓말로 위장하고 거짓말로 자신을 속인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마약류, 빠져나가기 힘든 디지털 문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음식, 세상엔 도파민을 충족시킬 대상들이 너무도 많다. 이런 유혹을 벗어나기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이미 도파민네이션에 살고 있다. 하지만 현격히 떨어진 삶의 질을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순간의 쾌락에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낭비할 수 없다 몰론 심각한 고통도 뒤따른다. 저자는 4주간의 디톡스 결과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중독자들은 과거보다 강한 자존감을 갖게 되었고 잊혔던 삶의 목표를 다시 찾았다고 한다.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생산하게 되었다. 데이터 모집으로부터 목표설정, 문제 확인, 절제와 금욕, 마음 챙김, 통찰과 솔직함, 다음단계, 실험등의 8단계를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소중한 경험과 자신의 뇌를 통제하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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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의 슬기로운 생활수행
법상 지음 / 열림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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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괴로움은 부지불식간에 마음을 휘어잡고 부정적인 생각과 좋지 않은 행동을 유발시킨다. 그런데 괴로움을 일으키는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우린 그토록 괴로워하는 것일까? 자신의 삶에 대한 고통, 타인과의 비교, 선택에 대한 실패.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대부분 아()를 중심으로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괴로움이 찾아온다. 괴로움은 후회와 연민, 비난, 시기, 질투, 심지어는 자기학대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정식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한다. 우리의 삶이 매순간 이런 괴로움으로 가득하다면 얼마나 힘들고 삶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로 가득하게 될까? 그런데 그토록 오랜 기간 자신을 괴롭혔던 괴로운 감정들이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다. 예고도 없이, 기약도 없이,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기억마저 희미해진다. 괴로움이 한낱 구름과 같다면 왜 이토록 괴로움을 다루는데 서투르고 어리석은 것일까?

 

모든 괴로움은 생각의 분별과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타인보다 잘 살아야한다는 생각, 성공하고 부자가 되어야 행복하다는 생각,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은 삶의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집착에 몰두하면 생각의 도구로 전락한다. , 자신의 생각이 원하는 세상만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타인도 마찬가지다. 이제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생각의 자율성은 비교우위나 시대적 특성에 의해 우선순위를 갖게 되며 부족한 사람이나 뒤쳐진 이들은 상대적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시대는 이런 상황을 이용해 개인들에 잠시나마 위안을 줄 수 있는 만족꺼리를 만들어나간다. 그 어떤 것도 채워지지 않기에 인간은 끊임없이 만족을 위한 욕구충족을 원하게 된다. 결국 괴로움과 고통의 원인이 반복되는 것이다. 불교의 연기(緣起)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좋은 선택이다.

 

모든 것엔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 하지만 연기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인연(因緣)이다. 시절인연이든 시대인연이든 지금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어떤 인연으로 인해 생기는 것이며 이 또한 규정이나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있다가 사라진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한다. 인연은 참 오묘하다. 인연을 이해하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특별한 시각을 갖게 된다. 부모와 인연, 자식 간의 인연 그리고 수많은 과거의 인연들이 나를 스치고 지나갔으며 현존하는 나를 구속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인연일 뿐이다. 나도 인연이고 나의 생각, 몸도 인연이다. 인생이란 시간을 한 몸 빌려서 살다가 가는 것도 인연이다. 결국 괴로움도 인연이고 행복도 인연이다. 오는 데로 받고 가는 데로 미련을 두지 않는 것, 결국 우리가 세상을 분별하고 집착에 사로잡힐 때 고통이 시작되며 본래면목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무위, 사전적 용어엔 자연 그대로 두어 인위를 구하지 않음으로 기록되어있다. 법상 스님은 불교의 무위를 하되 함이 없다로 말한다. 불교용어의 모호함이 아니라 불교가 전하고자하는 수행의 근간을 말하는 것이다. 무위는 생활수행의 핵심주제다. 법상스님은 하되 함이 없다라는 무위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자신의 삶에 충실할 때 더욱 의미가 커진다고 말한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음을 자각하고 자신에 주어진 일을 통해 성취감을 느낄 때 무위의 수행이 가능하다. 무위는 삶을 바라보는 기준이다. 분별이라는 관점, 생각에 대한 집착이 고통과 괴로움의 원인이라면 무위적 삶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우리는 마음이 만들어놓은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분별하는 마음이 어떻게 자신을 지배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라.

 

법상스님의 법명의 법상은 현실의 실상, 또는 체상을 가리키고 있다. 현상의 모습 그대로를 인식하고 일체의 고통으로부터 해탈을 추구할 때 인식의 대상으로 중요시 되는 현상을 법상이라 말한다. 법상스님은 스스로에 법상이란 법명을 부여하시며 무위와 불이분적 사고로부터의 분리, 자신의 본래면목을 찾는 해탈이 곧 부처라 말씀하신다. 자신의 생각은 자신이 이해하는 세상이며 자신이 추구하고자하는 세상이다. 실질적으로 자신의 생각이 곧 세상이다. 무아는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선물한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모든 것들로부터의 탈출, 만약 그러한 경험이 진정 좋았다면 변하지 않을 것이지만, 애석하게도 인간은 욕망만 있는 존재는 아니다. 인간은 치유를 위한 특별한 경험을 원하지만 모든 것은 변화하며 오직 지금 이곳만이 진실이다. 우리가 진리라 여기는 것들이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고 사라지는가? 우린 그런 허망함속에 괴로움과 고통을 담고 있다. 중도하는 삶, 무위의 삶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삶이다. 부처는 형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존이며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된다. ‘지금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때, 이 세상은 거울에 비친 당신 자신의 얼굴임을 알게 됩니다.’ 죽비와 같은 법상스님의 말씀이 귓가를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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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기술 - 바로 써먹는 논리학 사용법
코디정 지음 / 이소노미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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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혹은 관점, 모든 것은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시작된다. 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서로 다른 생각을 제시한다. 생각은 주관적이지만 객관적이다. 진리를 추구한다 말하지만 오류투성이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만 스스로의 생각을 쉽게 접지 않는다. 우린 이러한 상황을 매시간 경험하고 축적하며 자신만의 생각을 굳힌다. 생각은 인간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원인이 될 수 있다. 우린 생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자신을 지배하는 생각이 현실을 구성하고 미래의 모습을 만들기 때문이다.

 

생각의 기술은 논리학을 이용한 생각의 구성을 분석하고 정리한 책이다. 특히 생각의 밑바탕이 되는 대전제에 대한 서술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단어, 문장, 단락으로 이어지는 국문학적 논리구조를 개념, 판단, 추론으로 이어지는 논리학 관점으로 확장시킨다. 개념은 논리학의 기본 단위로 논리의 화폐와 같다. , 개념을 많이 습득할수록 논리에 익숙하게 된다. 개념간의 연결은 문장을 만드는데 논리학에선 판단이라 한다. 판단은 명제라고도 불리며 지금, 여기의 생각만을 담는다. 그리고 생각의 확장을 만드는 추론이 있다. 저자는 추론을 논리의 꽃이라 평한다. 추론으로 인해 지식이 확장되고 경험하지 못한 사유를 통해 추상적인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생각은 어떻게 탄생할까? 논리학의 판단은 생각과 같다. 판단을 해야 뇌의 생각이 작동한다. 일반논리학은 참, 거짓을 판단하는 수리논리학과는 거리를 둔다. 무엇을 판단하려면 대상이 필요한데 그 대상에 대한 판단이 생각이며 생각이란 대상을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뇌엔 생각하기 전의 수많은 단어들과 감각 기억이 존재하며 이들을 표상이라 부른다. 표상은 대상과의 접점이 이루어진 순간 생각으로 변환한다. 판단은 추론의 기초가 된다. 지금 현재의 판단이 없다면 추론이 불가능하다. 추론은 생각을 도약시킨다. 지식을 확장시키고 대전제를 더욱 강화하거나 변환을 시도하는 단초를 제공한다.

 

서로간의 의견이 충돌할 때 상대방의 근거를 중심으로 반론을 펼친다. 근거는 판단이나 생각으로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대전제가 굳건하다면 아무리 확실한 근거를 들이대더라도 상대방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 이는 자신의 신념이나 가치관, 선입견 혹은 편견을 말하는데 오랜 기간 쌓인 세상에 대한 이해관계를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과정이다. 대전제는 오류와 모순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지키는 버팀목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선 대전제를 이해해야한다. 바꾸기 어려운 대전제에 접근할 수 있다면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거나 설득하는데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타인에 대한 무시가 자신의 권위나 위상을 높여준다는 착각은 인간이 지닌 가장 어리석은 확신들 중의 하나다. 우린 이러한 상황에 굉장히 익숙하다. 최근 정치구조는 스스로의 강박과 집념이 가득한 기득권자들의 권력다툼과 다르지 않다. 그들은 관조자(여론)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스스로의 대전제만을 완강히 고집한다. 비방은 감정을 일으키고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겉으론 대화와 소통을 강조하지만 여전히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며 얼토당토 않는 근거를 제시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안타깝다. 생각의 차이는 세상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여론에 무관한 정치가 생존할리 없듯이 제 무덤을 파는 정치행태는 사회의 커다란 짐을 남겨 놓을 것이다.

 

논리학은 생각의 프레임을 만드는 작업이다. 대전제, 소전제, 결론으로 이어지는 연역법은 인간 지식의 코어다. 인간은 무수히 많은 대전제에 의해 움직이며 소전제를 통해 주장을 펼치거나 새로운 대전제를 형성한다. 지식의 확장은 어떤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좋은 행동을 유발하거나 나쁜 행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결국 어떤 사람이 되느냐는 단어의 이해력으로부터 출발해 생각과 추론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된다. 생각의 기술은 우리가 알지 못했거나 이해하기 쉽지 않았던 일반논리학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중심으로 논리학의 사용방법을 알기 쉽게 풀어간다. 인간은 끊임없는 대화와 소통의 관계 속에서 존립한다. 생각의 기술은 논리학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논리학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어렵지 않게 논리학에 빠져든다. 생각의 틀에 대한 논리학의 역할을 이해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에 대한 이해관계를 형성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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