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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 - 과거를 끌어안고 행복으로 나아가는 법
샤를 페팽 지음, 이세진 옮김 / 푸른숲 / 2024년 10월
평점 :
철학은 인문학이다. 또한 물리학과도 가깝다. 세계와 인간사를 아우르는 근본원리와 본질을 탐구하고 추구하고 발본하는 고도의 학문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또한 신학이나 심리학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인간 본연의 삶에 대한 의문과 해답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과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란 명제는 철학이 지닌 주요한 주제들 중의 하나다. 하지만 우린 과거에 대해 그리 깊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방어하거나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과거의 기억과 추억은 쉽게 사라지지도 잊히지도 않는다. 오히려 무언가 점화가 발현하면 뜨겁게 달아올라 감정을 분출시키기도 한다. 과거는 무의식으로부터 발현된다. 마치 기억의 저편에 숨어 반응할 날만을 기다린다. 과거로부터의 자유는 과거의 기억에 구속되는 것이 아닌 과거와의 동반을 의미한다. 현재라는 개념이 지금 이 순간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거는 왜 중요할까? 생은 과거로부터 시작하여 과거로 이루어진 기억들의 총합으로 현재를 이어간다. 과거는 존재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안타깝게도 좋은 추억만이 과거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부정적인 기억을 훨씬 강렬하게 인지하고 소환되는 과정에 극도의 불편함과 불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과거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인 인식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타인에 대한 인식도 그러한 예들 중 하나다. 상처를 받은 경험은 씻을 수 없는 감정을 경험한다. 감정의 자기구속이 과거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하지만 삶의 현재와 미래까지 과거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 과거를 재평가하는 것은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철학가 샤를 페팽은 ’삶은 어제가 있어 빛난다‘를 통해 과거와 미래의 만남을 제시한다.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곧 나다. 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현재의 나도 없고 미래의 나도 없을 것이다. 과거를 바로 보는 것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실존에 대한 강렬한 의미를 부여하고 자아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는 시간의 공명이라는 주제를 광범위하게 확장시키며 현존에 대한 이해를 덧붙인다. 특히 기억들의 재구성과 재조합을 가능하게 만드는 뇌의 가소성에 주목한다. 또한 일화기억과 의미기억의 한계를 인식하고 어떻게 의미를 재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실질적인 방법들을 제시한다. 일화기억은 의미기억을 만나 기억의 파편들을 재구성하고 실질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과거는 얼마든지 새롭게 각색되고 각인되어 미래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세계의 톱니바퀴로 비유하는데 첫 번째는 과거의 수용단계로 우리가 무엇을 물려받았고 이를 어떻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지 끊임없이 재가공하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행동의 시간으로 과거를 재창조하는 새로운 경험을 쌓고 과거의 추억위에 새로운 추억을 덧씌워 미래를 향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타자와의 관계, 즉 개방이다.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들 중의 하나가 집중과 시선돌리기다. 타자와의 관계 변화를 통해 세상의 다른 관점을 이해하는 것은 저자가 강조하는 미래로 전진하기 위한 과거를 재창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레미니상스는 기억을 떠올리기에 아주 좋은 방법이다. 우린 간혹 삶의 언저리에서 문뜩 떠오르는 미화의 순간을 만나기도 한다. 좋은 기억은 미묘하고 섬세하며 마치 과거가 현존 하는 듯한 기분 좋은 상상 속에 빠져들기도 한다. 저자는 과거를 더 이상 구속의 대상으로 방어나 기피, 혐오의 대상으로 숨겨놓아야 할 무언가로 치부하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의 모든 생각, 감정, 행동은 과거로부터 시작된다. 과거는 넘어서야할 무엇이 아니라 안고가야 할 자신의 몫이다. 부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니체의 말대로 망각하는 편이 나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픈 기억도 자신의 과거다. 그리고 이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자신의 선택이다. 우린 어느 때보다 풍요롭지만 각박한 세상임을 인식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과거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보여주고 있다. ‘노화는 얼굴보다 영혼에 더 많은 주름을 새긴다’ 란 몽테뉴의 말처럼 과거에 대한 재인식과 재창조는 생의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의 생과 영혼에 깊은 사유를 던져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