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기후 괴물이 산다 - 기후변화는 어떻게 몸, 마음, 그리고 뇌를 지배하는가
클레이튼 페이지 알던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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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기후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을까? 흐르는 구름, 변화무쌍한 바람, 뜨거운 태양,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로 인지한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의 생각을 포용하지도 무시하지도 않는다. 기후에 대한 인간의 감정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우린 기후에 대해 이럴것이다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사계절이 존재하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눈이 오고, 하지만 일상의 기억이 무너진다면 뇌는 새로운 생존방식을 고려할 것이다. 기후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최근 기후위기의 원인을 외부변수에서 찾았다면 기후가 인간의 신체, 특히 뇌를 집중적으로 공격한다는 가설은 상당히 위협적이다. 뇌신경과학의 발전은 기후위기, 특히 온난화에 대한 뇌의 기능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뇌는 세계를 하나의 모델로 해석한다. 뇌의 인지는 스스로 생성된 것도 저절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뇌의 구성은 정보전달을 통한 기억이다. 시각, 청각, 후각등의 감각기관과 운동감각은 실시간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고 뇌를 통해 해석한다. 그리고 감각적 경험을 축적하며 행동에 반영한다. 뇌는 구축모델과 새로운 모델과의 오류를 예측하고 수정을 가하면서 충격을 최소화한다. 뇌의 후천적 가소성이 모델을 변경하는 것이다. 뇌의 모델링은 현존하는 인지를 확신시키며 생존을 이어나간다. 문제는 좋지 않은 모델링으로의 변환이다. 기후는 서서히 그리고 알지 못하는 순간에 뇌를 변화시킨다. 특히 인지능력과 기억의 저하는 모델 오류를 일으키며 경험하고 싶지 않은 정신적, 심리적 변화를 발생시킨다.

 

무더위는 인간의 인지감각을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폭등하는 기온 앞에서 객관적인 판단은 허상일 뿐이다. 기온이 높아지면 뇌세포는 포도당을 에너지로 변환시키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섭씨39도부터는 뇌 조직에 변형이 일어난다. 세포는 일그러지고 영구적으로 기능을 상실한다. 뇌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신체의 모든 에너지를 사용하며 결국 생존에 문제가 발생한다. 뇌가 영구적일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다. 뇌 역시 유기체의 일부분이며 환경적 조건에 따라 쉽게 변형된다. 결국 자연과 인간의 유기체적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기후위기에 대한 선제적 조건이다.

 

내 안에 기후괴물이 산다기후위기의 대상과 해법에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뇌과학자인 저자의 환경과의 인터페이스가 독특하다. 기존의 입장에 대한 철저한 논증과 과학적 증명이 설득력을 더한다. 특히 폭염과 뇌와의 관계를 통해 기억, 인지, 행동의 변화를 예측한다. 신경세포의 전기 화학작용은 뇌와 기후와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특별한 메커니즘이다. 전기는 열에 무척 취약하고 뇌의 역할은 감각정보를 취합하고 해석하는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1부는 온난화에 따른 뇌의 기능저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무의식적인 행동변화가 혹 기후와 연관된 것은 아닌지. 만약 기후변화로 인한 뇌의 기능저하가 사회적으로 공론화되고 법률화된다면 기후위기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해결방법들이 제시되진 않을까?

 

트라우마는 삶의 질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절망적인 시간을 지속해야한다는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을 가져다준다. 폭염으로 인한 기후이상, 화재, 재난, 재해는 PTSD를 발생시킨다. 트라우마는 상대적으로 무관한 자극이 기억의 뿌리에 닿는 순간 플레시백이 얼어남으로써 기억을 왜곡시킨다. 트라우마는 행동의 주체성을 빼앗아가 선택과 판단을 어렵게 만든다. 그리고 평생 불안과 우울, 고립이라는 심리적 두려움에 갇혀 살아가야한다. PTSD는 트라우마의 증상이다. 이는 편도체를 활성화시키고 해마의 기억회로를 무너뜨린다. 그리도 전두엽의 기능을 방해한다. 환경변화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력은 기대 이상으로 확장중이다.

 

나만 무사하면 세상이 무엇을 하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일까? 기후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어떤 모습으로 언제든 나에게 다가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모두 자신은 예외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다. 인류가 지구를 벗어나 생존이 불가능하듯이 지구의 위기는 인류의 위기다. 저자는 현 위기가 인간으로부터 시작되었기에 인간의 변화로 방어할 수 있다고 말한다. 환경변화에 대한 저자의 해법은 이야기다. 인간에 주어진 놀라운 공감능력의 확장은 기후위기에 대한 새로운 어젠다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사회는 모든 이들의 염원이다. 하지만 인간은 유기체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기후 역시 유기체의 한 부분으로 인류가 존재하는 한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아야하는가? 내안의 기후 괴물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날 것인가? 특별하고 독특한 기후 위기에 관한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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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돌아갑니다, 풍진동 LP가게
임진평.고희은 지음 / 다산책방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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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추억과 이를 간직한 기억 때문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우린 기억을 헤집으며 일상을 살아갑니다. 기억은 우리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어디로 튈지 모를 감정을 저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우리의 삶은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우린 어떤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일까요? 어떤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스스로에 부여한 생의 일기를 써내려가고 싶은 것일까요? 저마다 생각은 다를지라도 어느 날 문득 과거를 되돌아보면 본래 있던 자리를 맴돌고 있었던 건 아니었던지, 오래전 기억의 가장자리에 놓아두었던 무언가가 가슴 깊숙이 들어온 느낌입니다.

 

LP는 아날로그의 시대를 떠오르게 합니다. LP엔 수많은 사연과 추억 그리고 인연이 담겨있습니다. 어쩌면 꺼내기 어려운 고백이 숨겨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린 LP를 통해 상실과 회복, 고통과 희망을 경험합니다. 그런 면에서 LP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고 있습니다. 턴테이블과 LP판은 숭고한 의례가 필요합니다. 음악을 위한 특별한 배려와 마음가짐이 준비되어야 합니다. 바늘의 움직임에 맞춰 아련한 추억들이 떠오릅니다. 진한 여운이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면서 우리의 시간을 보듬습니다. 누구나 음악을 좋아하지만 존중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음악은 자신과 타인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의 죽음 후 유일한 생의 낙이었던 동생 정안의 죽음, 정원은 믿기 힘든 현실 앞에서 좌절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판결에서 한없는 무력감을 느낀 정원의 선택은 포기였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그의 눈앞에 아버지의 유산 LP가 눈에 들어옵니다. 동생 정안의 말이 떠오릅니다. 의미를 부여하는 건 자신이라고. 그리고 LP에게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기로 결심합니다. 동생의 죽음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정원 앞에 놓인 6312장의 음반, LP의 생명력은 생에 대한 마지막 책임이었습니다. 그리고 후미진 동네 풍진동에 중고 LP 가게를 오픈합니다, LP에 대한 소고는 정원이 LP에 줄 수 있는 마지막 의무였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빠르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인간은 말할 수 없는 자신만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일상이 다채로운 건 비밀을 간직한 이들의 교집함이 삶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가게의 첫 번째 손님은 중년의 원석입니다. 원석은 타인과는 다른 정원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생애를 반추합니다. 상처 받은 이들은 이해하긴 어렵지만 서로간의 공통점을 공유합니다. 원석은 매일 LP가게로 출근합니다. 카론의 등장은 다소 뜻밖이었습니다. 인기아이돌 카론은 후배의 죽음으로 깊은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상실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은 간혹 가혹한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하지만 우연은 필연을 가장한 듯, 예측할 수 없는 위로와 따뜻한 공기가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 버릴 때도 있습니다.

 

이상한 LP 가게엔 저마다의 아픈 기억을 가진 이들이 등장합니다. 어린 시절 교통사고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는 미래, 천재아들을 둔 변호사 다림, 원장, 예분등,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들을 안고 살아갑니다. 음악은 그들의 시간을 늘려주며 회상과 회한을 끄집어냅니다. 정원의 LP는 이들을 이어주는 특별한 가교입니다. 아픔은 사랑을 희망합니다. 타인의 배려와 공감은 아픈 이들의 마음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심어주고 사랑과 믿음을 세워줍니다. 풍진동 LP 가게는 공존의 공간입니다. 음악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며 가족이라는 경험을 새롭게 선물해 주고 있습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LP의 긁히는 소리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 장의 LP를 선택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허비한 적도 있습니다. LP엔 저마다의 소중한 추억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추억을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이 어떤 이에겐 생의 마지막 선물일지도 모르듯이 LP는 생명을 다하는 순간까지 소중한 추억을 기록합니다. 읽는 내내 마음을 숨길 수 없었던 주인공들과의 만남이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게 합니다. 상처받은 마음도, 고단한 삶도 그저 다 흘러갈 뿐이야. 저자가 소개한 음악들을 선물 받으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생을 반추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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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도 공부하면 늡니다 - 크리에이티브 씽킹의 기술
정병익 지음 / 미래의창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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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진보는 막힌 사고를 전환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 세계경제를 뒤흔들고 있는 인공지능도 사고의 관점과 행동의 반경에 대한 범위를 확장하며 인간의 삶에 적극적 수용을 요구하고 있다. AI는 희망과 두려움이 상존한다. 현재까지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우호적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가치가 주요한 의제가 될지는 알기 어렵다. 특히 생계에 대한 인류의 본능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기에 실직에 대한 두려움은 AI의 혐오를 더욱 부추기는 요인이 된다. AI시대, 인류는 무엇을 준비해야할까? AI가 대세가 된다면 과연 어떤 준비를 갖춘 이들이 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류는 위기 때마다 진보적 활동을 통해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해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 창의성이라는 인간만의 특별한 달란트가 활용되었다. 창의성은 뇌의 화학작용이다. 뇌에 관한 이론이 급격하게 발전된 이래, 신경세포간의 활발한 활동이 창의성의 주요인임을 확인하고 있다. AI는 창의적인 사고와 행동이 불가능하다. 창의성은 전문지식과 동기부여 그리고 창의적 사고능력의 통섭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창의성은 새로움, 유용성, 문제해결능력, 융합적 사고로 해석된다. 특히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아이디어로 접근하는 방법을 최대한 활용한다.

 

창의성은 유전적 요소이기도 하지만 후천적인 노력으로 성취가 가능하다. 새롭게 만드는 것과 기존의 것을 바꾸는 방법 중 어떤 것을 바꾸는 것이 훨씬 어려울까? 인간은 세상을 바라보는 고정적 틀에 얽매여있다. 창의성이 어려운 이유는 틀을 고집하며 새로운 시도에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동안 로지컬씽킹을 통한 문제해결에 집중해왔다. 체계적인 사고를 중심으로 한 로지컬씽킹은 안정적인 답변을 제시해준다. 하지만 로지컬씽킹의 수단이 빠르게 AI로 대체되고 있다. 디자인 씽킹은 문제를 더 넓은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사용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해보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디자인씽킹의 핵심이다. 로지컬과 디자인 씽킹의 조화로운 결과는 최적의 창의성을 발현해준다.

 

세상을 이끈 사람들의 특성은 창의성으로부터 시작된다. 스티브 잡스, 제임스 다이슨, 안도 다다오는 평범함을 넘어선 특출난 아이디어로 자신의 세계를 입증한 인물들이다. 다이슨의 날개 없는 선풍기는 선풍기라는 개념을 새롭게 바꾼 아이디로부터 시작되었다. 안도 다다오의 빛과 물의 건축물은 건축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우린 이들의 유명세와 성공스토리에 집중하지만 정작 이들의 성공 뒤에는 고정관념을 넘어선 창의적 사고가 존재한다. 우린 이를 크리에이티브씽킹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크리에이티브씽킹은 창의적 사고와는 다르다. 창의적 사고가 독창성이라면 크리에이티브씽킹은 동착성과 실현가능성의 조합이라 말할 수 있다.

 

저자는 크레에이티브의 모델로 창의성, 마인드셋, 스킬셋, 통찰력을 제시하며 이를 CMSI 모델로 칭한다. 독창성은 창의성의 핵심적 주제다. 독창성을 갖추기 위해선 익숙한 것들과의 거리두기, 엉뚱한 것을 서로 연결해보기, 낯설게 만들기의 사고습관을 길들여야한다. 인상적인 스킬이 마인드 셋이다. 그중 핵심은 호기심인데 인간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세상에 대한 궁금증과 경이감을 잃어버렸다. 세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여유를 갖는 것이고 느림의 미학을 즐기는 것이다. 긴장상태에선 그 무엇도 쉽게 인지되지 않는다. 왜 이럴까라는 의문이 자리매김을 하고 스스로에 던지는 질문에 창의적인 사고를 갖춘다면 우린 전혀 다른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창의적인 생각과 사고는 장기적인 플랜이다. 감추어진 잠재력을 일깨우는 창의성의 발견은 AI시대의 새로운 주인으로 등장할 것이다. 창의성에 대한 실천적 방법을 제시한 크리에이티브씽킹의 기술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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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2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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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인과 예의 나라다. 인은 하늘의 마음이고 예는 땅으로부터 솟아나는 충성스러운 마음이다.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나라와 백성 역시 인과 예가 중심이다. 백성을 사랑하고 정조에 충성을 다한 다산의 풍모는 인과 예를 닮았다. 문체반정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한 다산은 끊임없는 중상모략의 소용돌이 빠지게 된다. 처조카 황사영은 정약전의 죽음을 통해 천주학의 새로운 주도자로 모습을 드러낸다. 황사영의 백서 사건은 귀양처에 있는 정약용 형제들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을 안겨준다. 사면을 기대하며 둘째형과의 만남을 고대했던 정약용은 서영보의 농간에 휩싸이며 강진으로 정약전은 소흑산도로 다시 귀양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드러낸 형제의 헤어짐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고통을 마주해야만 했던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무엇을 잘못했던 것일까? 무엇이 그를 그토록 모진 고문과 고통의 삶으로 몰아넣었던 것일까? 권력의 눈앞에서 벗어나면 생의 모든 것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조선의 현실에 다산은 자신에 주어진 운명의 무기력과 공허함에 가슴이 찢어질 듯한 울분을 토로한다. 강진에서의 귀양살이는 서럽기 그지없다.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고 동부승지라는 관직은 노론의 농간에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다산을 거부하고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다산 앞에 뜻밖의 귀인이 등장한다.

 

강진으로의 귀양은 다산의 제2막을 알리는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허름한 주막에서의 귀양살이, 그들은 가난하지만 따뜻했고 무엇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이들이었다. 모두가 자신을 의심하고 두려워하지만 한사람이라도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받아준다면 이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다산의 주막 생활이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관청의 감시가 계속되었고 음모가 그를 괴롭혔다.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우이봉에 오른 다산은 멀리 보이는 우이도의 형님과의 약속을 생각하며 모진 삶을 견뎌낼 용기를 얻어내곤 했다.

 

시대가 어지러우면 모든 이들이 제갈 길을 찾지 못하고 주변에 귀를 기울인다. 다산엔 주역이 자주 등장한다. 석가모니를 공부해야할 스님이 주역을 통해 유학에 접근한다는 것은 단지 학문에 대한 호기심만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혜장과의 만남은 다산에게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준다. 혜장은 운명이란 하늘이 주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라는 주역의 사상을 중심으로 주역의 새로운 접근법을 시도하고 있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은 혜장의 주역해법에 설득당하며 주역을 길흉을 점치는 학문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주역 본래 취지를 벗어나 잘못된 사상을 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못된 학문의 접근은 오만과 질시를 낳게 된다. 다산은 혜장의 서투름과 지식의 얕음을 한탄하지만 듣고 보면 혜장의 논리 역시 결코 틀리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혼란한 세상은 단단히 박힌 벽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기개와 놀라운 의지가 출현하는 뜻밖의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다산은 한승원님의 개정판이다. 그는 왜 다산을 다시 고쳐 쓰려 했을까? 본 책은 방대한 다산의 학문적 어록이나 시대적 상황을 의미하는 문구는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는 다산과의 몰아를 시도하려한다. 무겁고 어두운 시대, 다산의 행적을 통해 조선이 추구해야할 사명을 암시하고자 한다. 간결하고 함축된 문장은 축적된 다산의 마음을 더욱 애틋하고 간절하게 표현한다. 형제간의 우애, 아비로서의 품격, 친우들과의 우정은 다산의 모든 것이었고 정조는 다산이 따라야할 유일한 하늘이었다. 천문은 중용의 첫 문장이다. 새로운 시도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단초를 제공한다. 다산은 그 중심을 뚫고자 노력했지만 두꺼운 벽을 허물지는 못했다. 그는 백성을 사랑한 선비로 많은 이들에 회자되고 있다. 맑은 거울 같은 삶을 살다간 다산은 찬란한 빛이었고 하늘로 날아가는 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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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1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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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합당하고 현묘한 삶일까? 개혁을 이루고자하는 군주와 개혁의 선봉장이 되고픈 신하와의 만남은 조선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갔지만 결국 수많은 암초에 부딪히며 망국의 시발점이 되었다. 만약 정조의 개혁이 현실화 되었고 다산을 비롯한 남인들의 실사구시철학이 조선을 이끌었다면 한국근대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역사를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정약용은 당대의 귀재였다. 또한 정조가 가장 총애하는 신하로 둘의 관계는 혼란스러운 시절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사대부의 나라, 조선, 우린 부인할 수 없는 그들의 핏줄이다. 조선의 근대사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는 그 시절의 역사관이 한국사의 가장 암울한 시대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산은 맑고 총명했다. 사리분별이 밝고 신하로서의 의무감이 투철했다. 특히 정조의 특별한 애정 덕분에 권력도 누리지만 질시와 시기를 한 몸에 받아 모진 귀향생활로 인생의 대부분을 희생하였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영조의 세손으로 무척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원한은 정조에게도 풀기 어려운 과제였고 이는 항상 당파의 원인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당파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혼란의 원인을 제공했다. 정조시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순왕후를 등에 업은 노론계열과 정조가 밀어주는 남인계열의 치열한 권력다툼이 지속되었다.

 

다산은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는 학자였다. 친척 이벽을 통해 천주실의를 접한 다산의 학문적 호기심은 성리학에 대한 강한 의문을 낳게 되었다. 세계 강호들의 약탈적 침략이 휩쓸던 시대, 조선 역시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다산은 본래지성의 성리학의 중요성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천주학의 실용적 생각은 다산이 생각하는 백성들의 교화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학문적 이론은 죽을 때까지 그를 괴롭히는 그림자가 되었고 결국 노론의 음울한 계략과 개혁에 비판적인 사회적 여론은 셋째형 약종의 죽음과 귀향이라는 결말을 낳게 된다. 그는 최정상에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인생의 쓰라린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훑어나간다.

 

다산은 전기적인 구성보다는 다산의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건을 펼쳐나간다. 천주학을 중심으로 이벽, 이승환, 이가환, 정약종과의 관계와 영향력, 다산의 지도자역할을 볼 수 있는 관료로서의 업무수행, 무엇보다도 정조와의 관계는 읽는 내내 애틋함과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은 다산에 무거운 짐만 남겨두고 세상을 등지게 된다. 임종을 앞둔 다산은 어떤 마음을 간직하고 싶었을까? 다사다난했던 그의 인생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평생을 타인의 그림자처럼 살아왔지만 그림자를 벗어난 자유를 찾기 위해 학문을 연구하고 실사구시를 선택한 것이다.

 

시대적 사고와 사상을 이반한다는 것은 성리학적 사회에선 죽음을 각오해야만 한다. 주자의 성리학은 조선을 꿰뚫는 선비들의 시대정신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성리학을 통해 해석되고 실행되어야만 했던 세상이었다.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는 성리학이 천주학을 배척할 수 있는 실질적 구실이었고 왕권 강화를 위한 정조의 적절한 균형전략이었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어갔고 정조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혁을 이루려는 군주의 철학은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이는 현대 정치사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 민중들은 무엇이 합당한 삶인가를 질문하기 시작한다. 다산은 민중을 계몽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한 인물이다. 또한 삶에 가장 충실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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