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1 조선 천재 3부작 3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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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합당하고 현묘한 삶일까? 개혁을 이루고자하는 군주와 개혁의 선봉장이 되고픈 신하와의 만남은 조선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갔지만 결국 수많은 암초에 부딪히며 망국의 시발점이 되었다. 만약 정조의 개혁이 현실화 되었고 다산을 비롯한 남인들의 실사구시철학이 조선을 이끌었다면 한국근대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역사를 기록하고 있을 것이다. 정약용은 당대의 귀재였다. 또한 정조가 가장 총애하는 신하로 둘의 관계는 혼란스러운 시절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사대부의 나라, 조선, 우린 부인할 수 없는 그들의 핏줄이다. 조선의 근대사를 기억해야하는 이유는 그 시절의 역사관이 한국사의 가장 암울한 시대를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산은 맑고 총명했다. 사리분별이 밝고 신하로서의 의무감이 투철했다. 특히 정조의 특별한 애정 덕분에 권력도 누리지만 질시와 시기를 한 몸에 받아 모진 귀향생활로 인생의 대부분을 희생하였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영조의 세손으로 무척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아버지의 원한은 정조에게도 풀기 어려운 과제였고 이는 항상 당파의 원인이 되었다. 조선시대의 당파는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혼란의 원인을 제공했다. 정조시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순왕후를 등에 업은 노론계열과 정조가 밀어주는 남인계열의 치열한 권력다툼이 지속되었다.

 

다산은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넘치는 학자였다. 친척 이벽을 통해 천주실의를 접한 다산의 학문적 호기심은 성리학에 대한 강한 의문을 낳게 되었다. 세계 강호들의 약탈적 침략이 휩쓸던 시대, 조선 역시 그 범위를 벗어날 수 없었다, 다산은 본래지성의 성리학의 중요성을 항상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천주학의 실용적 생각은 다산이 생각하는 백성들의 교화에 가장 효과적일 수 있는 학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학문적 이론은 죽을 때까지 그를 괴롭히는 그림자가 되었고 결국 노론의 음울한 계략과 개혁에 비판적인 사회적 여론은 셋째형 약종의 죽음과 귀향이라는 결말을 낳게 된다. 그는 최정상에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인생의 쓰라린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훑어나간다.

 

다산은 전기적인 구성보다는 다산의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사건을 펼쳐나간다. 천주학을 중심으로 이벽, 이승환, 이가환, 정약종과의 관계와 영향력, 다산의 지도자역할을 볼 수 있는 관료로서의 업무수행, 무엇보다도 정조와의 관계는 읽는 내내 애틋함과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은 다산에 무거운 짐만 남겨두고 세상을 등지게 된다. 임종을 앞둔 다산은 어떤 마음을 간직하고 싶었을까? 다사다난했던 그의 인생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평생을 타인의 그림자처럼 살아왔지만 그림자를 벗어난 자유를 찾기 위해 학문을 연구하고 실사구시를 선택한 것이다.

 

시대적 사고와 사상을 이반한다는 것은 성리학적 사회에선 죽음을 각오해야만 한다. 주자의 성리학은 조선을 꿰뚫는 선비들의 시대정신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성리학을 통해 해석되고 실행되어야만 했던 세상이었다. 특히 정치적 이해관계는 성리학이 천주학을 배척할 수 있는 실질적 구실이었고 왕권 강화를 위한 정조의 적절한 균형전략이었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어갔고 정조도 예외는 아니었다. 개혁을 이루려는 군주의 철학은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이는 현대 정치사에도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 민중들은 무엇이 합당한 삶인가를 질문하기 시작한다. 다산은 민중을 계몽하기 위해 최전선에서 자신의 소임을 다한 인물이다. 또한 삶에 가장 충실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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