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을 다녀오던 용인의 어느 길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보았다.

찢어진 심장과 눈물만 남은 그들의 고독을 보았다.

삼보일배를 하며 진도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걷고 있는 그들의 의지를 보았다.

노란 깃발은 더위와 무관심에 지치고,

하루의 생을 다한 석양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이들에게 무슨 말이 필요할까.

어떤 위로가 이들의 눈물을 거둘 수 있을까.

순례의 길도 구도의 길도 아닌 천릿길을

이들은 어떤 심정으로 헤치고 걸어왔을까.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그들의 얼굴에서 깊은 슬픔을 본다.

한걸음 한걸음이 그들이 뿌려낸 눈물인 것을

지나가는 행인에게서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서럽게 멍드는 것은 유가족과 행인의 가슴뿐만이 아니기에

이들과 노을 그 어느 것에도 눈을 마주치치 못한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가진 것은 우리 모두의 업일진대

유독 이들만 길을 걷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우리 모두는 이들에게 희망이어야 한다.

이들이 걷고 있는 길 위의 절망과 부조리한 눈초리로부터

이들을 보호하고 안아주어야 한다.

이들이 곧 우리이고,

이들의 아이들이 곧 우리의 아이들이므로.

영혼이 없는 밥을 먹고 살아가는 하루는

인간의 삶이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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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귀가

 

별은 별빛보다 먼저 흔들린다

낯선 눈빛의 의뭉과 먼 이웃들의 살내음

사이에 술잔 하나가 둘이 되어 기울고

뒤섞이는 것들은 미지의 꽃으로 흐드러진다

만원지하철에서 밀려나온 듯, 책갈피가

소매에 붙어서 하루를 넘기고 있다

안과 밖으로 분열된 난독의 시간은

소통불능의 주파수 사이를 왕래하는

뫼비우스의 띠, 너와 나의 경계는 없다

피로의 밀도는 농염한 어둠을 닮아가고

작은 바람에도 별빛처럼 흐려진다

누군가의 얼굴을 적어 넣은 수첩은

삼생(三生) 윤회의 고리를 진술하고

소멸된 기억은 자기고백의 수고를 던다

발효의 시간을 지나 익어가는 어깨를

일으키는 두 개의 손. 통금서약을 펼친 아이들이

네모난 창가에 폐기된 계약서를 걸고 있다

어느 각진 바람에 찔린 외눈 가로등이

대신 붉은 눈물을 뿌리고 있다. 저녁은

준비된 이야기를 거리에 내놓고, 하루를 거래한

자들의 수금전표에 ‘귀가’를 표기한다. 골목

어귀에 우리 아이가 풀어놓은 한낮의 그림자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있다. 달빛도 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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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관계의 한계는 접촉의 한계다.

 

접촉의 기회가 많을수록 관계의 폭은 넓고 깊다. 접촉은 어느 한 점이나 한 면에서 이루어진다. 당구공처럼 반드시 한 점에서 만나야하는 경우도 있고 찐빵처럼 오목볼록을 나누며 만나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당구공 같은 접촉을 희망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선을 넘어선 접촉면을 가지길 원한다.

 

정이 개입되지 않은 업무상 만남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충분한 거리를 두고 서로가 대면하기 때문에 한 점에서 접촉이 이루어지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애정을 전제로 한 가족 간의 관계에서는 접촉의 면적이나 시간이 중요하다.

 

 

#2.

엄마란 단어는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결혼한 여성들에게 있어 친정엄마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엄마라는 숭고한 단어에도 상처의 이력이 담겨있는 사람들이 있다. 결혼 이후에 시월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들도 많지만, 오히려 친정식구, 특히 친정엄마와의 불화로 고통을 받는 여성들도 많다. 피를 나눈 가족들 간의 인간관계에도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만약 아내가 이렇다면 남편도 딱히 해결책은 없다.

 

친정엄마와 서먹서먹한 관계는 과거 경험의 산물이다. 어린 시절 엄마와 가정 내에서 부대끼는 시간이 적었다는 얘기다. 서로 간에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이나 공감할 수 있는 대화가 없었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은 부모 자식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부 경제활동 때문에 아이들과 밥상머리 대화가 부족했던 많은 부모들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 후회한다. 국과 찌개를 나누는 따뜻한 밥상의 대화가 생략된 부모자식의 관계는 한참 뒤에 기나긴 후유증을 남긴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거나 상대방의 형편을 살필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던 까닭에 아이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서로에게 공감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공유할 대상이 없으면 공감도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야근과 술자리 때문에 아이와 대화가 없다면 아이의 미래는 나의 현재와 같다.

 

 

#3.

가족 간의 접촉도 아이가 스무 살 이전까지가 전부인 것 같다. 그 이후에는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한다. 결국에는 독립된 가정을 이루고 다시 재회하는 것은 일 년 동안 몇 번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나면 가족은 가족관계등록부나 명목상의 가족으로 남는다. 서로가 부대끼던 기억으로 그 이후의 삶을 살아나간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아이들이 십대일 때 부모와의 대화시간이 그 이후의 대화의 양과 질을 좌우한다. 우리 부모들은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 시간의 중요성을 잊고 산다. 사실 대화하려고 해도 사춘기의 파도와 학원의 벽을 넘지 못한다. 까칠한 중2와의 대화는 철학자와 들뢰즈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밤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대화의 숲으로 빠져드는 것은 서로에게 고문에 가깝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아이와 잦은 접촉과 대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밥상과 책상, 거실에서 짧은 시간이나마 나누었던 대화가 뿌리를 내리면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이 된다. 추억거리가 쌓이면 올록볼록 찐빵 같은 접촉이 주는 따스함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그 공감을 통해 부모 세대의 착오를 반복하지 않는 바람직한 관계의 전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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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이력

 

짙은 어둠이 가신 뒤에는

아프도록 가는 실눈을 뜨기 위해 내 몸을 깎는다

지난한 탈고의 시간

뒤돌아보는 감정의 표면은 결이 없다

 

말간 눈동자는 절정이 남긴 그늘 아래에 있다

감추고 싶은 비밀이 드러날 때까지

주술에 걸린 인간의 비루를 들추지 않을 것이다

가끔 붉게 물든 눈시울이 불온하지만

누군가를 식혀줄 바람이 비구름을 몰아오고 있다

어둠이 씨줄 낙엽을 떨구고 달력을 넘길 때쯤

내 눈은 다시 초점을 맞추기 위해 부풀어 오른다

 

고요가 담긴 맑은 눈빛, 저의가 무엇이든

축원의 기도가 바다를 배부르게 한다

포만의 바다가 살의(殺意)를 부른다는 전설이 내려오지만

나를 우러르는 늑대의 울음은 구속의 사슬에 얽매인 지 오래다

인간의 절기(節氣)가 때때로 나를 반기고

그 중 몇 개는 명절의 이름으로 밥상을 올린다

 

등 뒤의 시샘으로 어둠속에서만 모습을 드러내지만

때로는 날선 시선을 피해 한낮에도 하루의 생을 산다

오가며 새벽 정화수에 몸을 담그거나

이른 저녁 감나무 가지에 앉을 때도 있다

나의 변신은 빛과 거대한 땅의 시간에 따르고

어쩌다 후광이 나를 삼키거나 내가 후광을 베어 물었을 땐

인간 세상엔 기적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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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달은 좋아합니다. 그 모양이 신기해서죠. 어느 순간에는 하늘에서 사라지기도 하고요. 차오르고 기우는 마법이 바다에 여성에게 누군가의 영감에 영향을 줍니다.

 

퇴근길에 막내아이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보았던 초승달은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아이는 누군가의 눈썹같다고 깔깔깔 웃습니다. 잔뜩 부풀어오른 시점에도 토끼는 보이지 않지만 둥글어진 마음을 가진 누군가는 편지를 쓰고 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세상엔 기적이 필요합니다. 돌아오라는 간절한 기도가 통하고, 다시 시작하는 이들에겐 희망과 용기가 솟아나기를 바래봅니다.

 

우리 모두에게, 오늘 하루의 삶이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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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편지

 

살아가는 동안

마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절망의 사월

내가 살아갈 이유와

하루의 삶과 희망이

오롯이 너로 인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알아차린 체념의 오월

앞뜰의 장미는

어미 새의 눈동자처럼 붉기만 하다

 

살아가는 동안

가슴에 묻어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서러운 봄날

지독히도 헛된 바람이

팽목항에 노랗게 피어나고

주인을 잃어버린 기타와

닳지 않을 새 운동화, 만이

분노의 바다를 향할 때

믿음 없는 인간 세상엔 장미가 목을 꺾는다

 

문득, 다시금

학교에서 돌아오는

네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것 같아

라면을 달라고

식탁에서 투정을 부릴 것 같아

네 방문 앞에서 서성거려보지만

이제는 부를 수 없는

영원한 나의 십팔번

우리 딸,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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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큰 딸이 어제 수학여행을 다녀왔답니다.

작년, 오늘 수학여행을 떠나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억합니다.

평범한 일상이 절망의 나날로 변해버린 비통한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봅니다.

우리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하루가 있다면 바로 4. 16일입니다.  

 

 

그저 자식이었다가 부모가 되면 누구나 자신의 부모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 부모님들, 아이를 낳아 키우는 하루하루의 심정이 어땠을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첫 아이와의 만남을 떠올려봅니다. 설레이고 감동적인 그 순간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별이 된 아이들이 다시 엄마의 품으로 돌아와서 아빠를 눈물 나게 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팽목항을 노랗게 물들이던 수많은 발걸음을 기억합니다. 노란 리본이 그렇게 간절한 희망의 상징인줄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세월호에는 아직 ‘사람’이 있다는 처절한 외침에 눈물샘이 마르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투정부리던 아이를 마음으로 안아주지 못했던 못난 순간을 후회합니다. 오늘은 하늘도 서러운가봅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부모를 대신해 마지막 편지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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