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이 자리가 꽃자리

 

기다리는

내일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속절없는

어제는 기억 속에서 발효되는 중

순간 머무는

오늘 이 자리가 진정 꽃자리일진대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인가

 

삶은

늘 행복과 불행 사이에서 결정되는

어느 한 점의 선택 같은 것

행복은

불행이라는 수레의 바퀴이고

불행은

행복이라는 가마의 가마꾼인 것을

둘이 함께 한다는 것을 우리만 몰라

 

시간과 마음은 흐르는 강물과 같아

결코 잡아둘수도 머무르지도 않는 법

욕망은 마음과 동일시할 수 없고

시간은 후회와 인과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삶의 지혜로 깨달아야 하는 법

 

한참 지난 후에야 알아차리는

삶의 모순이 반복되기 전에

우리는

덧없는 욕망과 후회를 버리고

지금 이 자리가 꽃자리임을 명심하는 것

하여 시간과 마음이 천천히 흘러가도록

다시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야 하는 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파리의 생활 좌파들 - 세상을 변화시키는 낯선 질문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과 자기의 인생을 느리게 살아가고 타인의 삶을 돌아볼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 과거와 현재의 부당함에 분노하고 항의할 줄 아는 생활속의 좌파들. 정치권에서조차 좌파가 제대로 인식되고 자리잡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목수정의 생각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골목의 저녁

 

골목 어귀에 뭉툭해진 하루가 누워있다.

빨간 감을 매단 채 늙어가는 저녁은

굴뚝 너머로 애써 얼굴빛을 붉힌다.

어깨를 낮추며 손을 내미는 노을빛 연기는

별빛을 부르는 소심한 파수병일까?

어둑해진 창문은 목이 긴 커튼을 부여잡고

외로이 눈뜬 가로등을 가여워한다.

돌개바람이 몸을 누이러 대문을 두드리고

서성거리던 사랑이 담에 기대어 고백을 한다.

안쓰러웠을까. 서걱거리던 시간들

전봇대 옆에 조용히 그리운 깃대 하나 세운다.

밥 짓는 냄새가 찌개냄비를 끌어올리면

하루의 생을 소진하고, 또 다른 하루의 생으로

회귀하는 허기진 뒷모습이 백열등 아래 부풀어 오른다.

바닥을 뒹굴며 소란스럽던 아이들의 웃음이

제각기 별자리를 찾아 사라지고, 자전(自轉)을 멈춘 듯

지친 두 바퀴는 구석에 제자리를 찾는다.

어둠의 여백을 찾아 골목의 저녁이 저물어가고

하루를 견디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불 밝힌 창문은

모퉁이를 돌아 그림자가 길어져간다.

오늘도, 상처를 안고 돌아와 살며시 대문을 열어

가족을 보듬는, 속 깊은 골목의 내력을 믿고 싶다.

---------------------------------------------

 

가을은 남자를 이유없이 센치(?)하게 만듭니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낙엽 쌓인 퇴근길. 넉넉한 웃음으로 시장바구니를 든 엄마들. 골목 어귀에 걸린 빨간 홍시감. 그 너머에 고개를 떨구는 오늘 하루.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고향집에 계신 어머니도 생각해봅니다. 골목길을 들어서면 고등어를 굽고 청국장을 끓이는 냄새가 시장기를 부릅니다.

 

우리 아이들은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학교에서 운동장에서 골목에서 집에서. 아이들이 뛰어 놀았을 그 골목에서 요란스러웠을 그들의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고, 어느 집 대문 앞에는 자전거가 서있습니다. 늦게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가 집을 향해 걸어가고, 그 집에는 아이를 기다리는 창문이 환합니다. 모퉁이를 돌면서 바라보는 골목안의 풍경이 그림 같습니다.

 

아침 일찍 골목을 벗어나 해질 무렵 돌아오는 아버지들. 오늘도 우리 가족이 즐겁게 하루를 지났을까 되물으며 현관문을 엽니다. 자신의 상처는 감추고 가족을 살필줄아는 아빠가 바쁘게 다가가는 그 골목길의 힘을 믿습니다. 온기가 살아있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저녁노을

 

해질녘 저 너머에 커다란 눈이 나를 바라본다

거친 호흡은 온통 불붙은 억새밭이다

그 시선이 붉은 산 빛을 담고 강의 온기를 머금은 채

다가서면 차마 바라보지 못할 흰 소의 눈망울

우시장이 서기 전날, 그 두려운 밤에

뒷걸음치며 손길을 거부하던 물기어린 눈동자

멀리 드문드문 별빛을 응시하던 어찌할 수 없는 몸부림

마지막을 고하는 듯 숨소리가 잦아들고,

불그스레한 소의 눈망울이 말갛게 사그라지더니

이제야 어머니의 야윈 몸과 사위어진 눈동자가

어리고 여린 별빛으로 돋아난다

소의 눈망울이, 아니 어머니의 눈물이 잉태한

작은 별바라기가 서쪽하늘에서 조각달과 새로이 자란다

별은, 아 별빛은 노을이 낳은 것이다

 

-----------------------------

서울에서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보기란 참 어렵습니다. 바빠서. 

일설에 의하면 농촌지역보다 도시지역의 노을이 더 그럴듯하다고 합니다. 온갖 미세먼지와 스모그가 결합된 먼지구름이 노을의 때깔을 이쁘게 한다는...

 

토요일 오후 아내와 함께 아차산과 용마산에 올랐습니다.

모처럼 가을하늘은 맑았고, 산등성마다 사람들은 붐볐습니다.

해돋이를 잘 볼 수 있는 곳에서는 저녁노을도 장관입니다.

한강과 김포 저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눈망울을 보다보면 괜스레 짠해집니다. 팍팍하게 살아가는 우리네 하루의 삶이....

 

허전한 속내를 달래기 위해 서둘러 막걸리 집으로 향했습니다.

노을이 낳은 별빛 몇 자락이 우리를 바라봅니다. 그 옆 초승달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느 착한 사람의 변명

 

어느 시인이 말했지

곡선이 이기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아하게 돌아갔다

아주 많이 늦었다

 

어느 교수가 말했지

흔들려야 청춘이라고

그래서 수없이 흔들렸다

없는 멀미가 생겼다

 

어느 스님이 말했지

멈추면 비로소 보일 것이라고

그래서 오랫동안 멈추었다

앞서가는 이들의 뒷모습만 보였다

 

다른 어느 교수가 말했지

노는 만큼 성공하는 것이라고

그래서 열심히 놀았다

계속 놀 것 같다

 

어느 정치인이 말했지

저녁이 있는 삶을 살라고

그래서 일찍 들어갔다

가족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어느 이상한 정치인이 말했지

모든 것을 주어야 한다고

그래서 무엇을 줄 것인지 생각했다

줄게 별로 없었다

 

---------------------

사람들은 말합니다.

이 세상은 말 잘하는 사람들의 세상이라고

착한 사람들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좋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믿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었으므로

하지만 그들의 믿음만큼 세상은 순진하거나 착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말 속에 숨은 진실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아니 진실을 찾아낼 수 없었기에

착한 사람들은 자기를 위한 변명이 필요했습니다.

 

오늘도 누군가는 역사교과서를 핑계로 역사를 바꾸고자 합니다.

아무리 착한 사람들일지라도 이 말만큼은 믿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살다보면 변명이 필요하지 않는 믿음과 선택도 있으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