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마, 아빠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주로 반찬, 청소, 말투 등)로 말다툼이 있었다.
엄마는 “왜 그게 문제가 되냐고?”
아빠는 “그것이 문제가 안 되면 뭐가 중요한 문제냐고?”
엄마는 “남자가 그런 것은 대충 넘어가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문제 삼어?”
아빠는 “그러면 당신한테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지 나를 이해시켜봐”
엄마는 “멀 이해를 시켜, 척하면 알아야지. 꼭 이야기해야 알겠어?”
아빠는 “나랑 18년을 살고도 아직까지 나를 이해 못해, 내가 허수아비랑 살고 있는 건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막내인 네 살배기는 분위기가 수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간파하고 엄마에게 있는 애교 없는 아양을 다 떨려고 노력해본다. 살살 눈웃음을 치면서 엄마 품을 파고들었으나, 아빠랑 감정싸움에 짜증이 날대로 난 엄마는 오히려 네 살배기에게 화풀이를 한다.
“넌, 생긴 것은 꼭 지 애비 닮아가지고, 저리 가. 느그 아빠한테나 가”
엄마의 예상 밖의 반응에 놀란 네 살배기는 눈만 껌벅거리며 갑자기 몸이 굳었다가 아빠한테 달려간다. 그러면서도 엄마 품에 대한 아쉬움을 떨치지 못한다.
#2.
삼십년, 사십년 전에는 이런 풍경은 흔했다. 동네방네 사랑싸움도 아닌 지지리도 못난 감정싸움 때문에 집집마다 아이들은 경기를 일으키곤 했다. 말다툼이 좀 커지면 밥상이 방에서 부엌으로 날아다니곤 했다. 그래서 그때는 장날마다 상고치는 사람이 부러진 상다리를 수선하는 재미를 보곤 했다. 이건 옛날 얘기다. 하지만 그때 밥상 주변에서 서성이던 아이들은 다 기억한다. 날아간 밥상 때문에 못 먹었던 밥도 국도 다 아쉬웠다. 배도 고팠고 마음도 아팠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부모들은 잘 몰랐다. 왜냐고? 부모들 자신의 감정에 충실했기 때문에.
현재의 부모들은 자신의 부모들보다 덜 싸우기는 하지만 여전히 말다툼을 피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어쩌면 인간의 본성이나 부부의 본질 속에 분쟁의 속성이 담겨있는지도 모르겠다. 부부만큼이나 쉽게 이야기하고 속내를 드러내기 쉬운 인간관계도 없다. 그만큼 편안 사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서로에 대한 조심성이 없다. 사소한 감정도 쉽게 드러내고 결국은 그것 때문에 다시 분쟁이 야기된다.
부부는 어떠한 문제에 관해서든지 말다툼을 할 수 있고, 자신의 감정 상태에 충실해서 상대방을 설득할 수도 있다. 부부관계에 어찌 이성적인 판단과 냉철한 분석에 기한 생활만이 존재하겠는가? 전직 대통령을 지낸 어떤 분도 밥상에서 배우자님이랑 수없이 싸웠다지 않는가? “어째 오늘은 찌개가 좀 짜네. 자네 말수가 없는 것을 보니 나한테 감정 있는가?” 하면서 말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로 끝날 수 있으나, 이 싸움을 관전하는 아이들은 물 베기로 끝나지 않는다. 아이의 성장단계에 따라서 부모의 다툼에 대한 반응은 다양할 것이나, 아직 감정처리에 성숙하지 못한 아이들은 작은 상처를 입거나 커다란 분노를 배우기도 한다. 말다툼에서 비롯되는 언어에 고상한 교양과 고품격의 매너가 끼어들었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결국 상처를 주거나 선하지 못한 말들이 오갈 수밖에 없는 고성의 현장에서 아이들은 심박동이 빨라지고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3.
어찌되었건, 다음날 엄마는 네 살배기를 데리고 어린이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에 말이 많던 네 살배기가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말이 없었다. 엄마는 영문도 모르고 이를 궁금해 하던 차에, 아이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어젯밤에는 내 마음이 세모마음이 되어버렸어”
엄마는 ‘세모마음’이라는 의미를 바로 깨닫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의미를 깨닫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젯밤에 벌어진 사단 때문에 아이가 자신의 마음이 동그란 마음에서 세모마음이 되었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모의 말다툼과 엄마의 표현이 네 살배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의미였다. 네 살짜리다운 표현이었다.
아무튼 네 살배기의 입에서 ‘세모마음’을 들었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엄마 아빠의 말다툼이 그냥 지나가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잊혀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집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사건이나 사단도 아이에게는 충분히 불편한 상황일 수 있고, 그 것이 아이마음에 무엇인가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어린 시절은 부모로부터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이의 나이가 어릴수록 부모와의 감정견련성이 크다. 부모 입장에서는 부모의 다툼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과소평가되기 쉬우나, 아이들 입장에서는 쉽게 지워지기 않는 마음의 생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부모가 사소한 다툼이라도 아이들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하지만 우리의 부모들이 이 점을 소홀히 했듯이 현재의 부모들인 우리들도 많이들 이 점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4.
“엄마, 이젠 내 마음이 다시 동그래졌어.”
어린이집에서 네 살배기를 데리고 돌아오는 도중에 엄마는 이 말을 들었다. 멀리 초승달이 수줍게 웃고 있었고, 엄마 마음속의 불편함도 눈 녹듯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다. 아이들이 가지는 마음의 모양은 세모나 네모가 되어서는 안 되고, 동그란 모양을 가져야 한다. 동그란 마음.
아이들은 그렇게 동그란 마음으로 세상을 동글동글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상처로 인해 마음이 세모나 네모가 되어 각진 마음을 갖게 되면 세상도 각지게 보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 마음을 동그란 마음으로 키워줄지 아니면 세모마음으로 아프게 할지는 우리 부모들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