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한조각의 체온

 

달빛은 은빛 이빨을 드러내고

바람의 속살은 시퍼렇다

부르는 이의 허기는 시급 삼천칠백 원

하얀 연기를 피우는 굴뚝엔 긴급을 알리는

전보가 내달리고

독일군의 전차마냥 흔들리는 깃발 사이로

붉은 신호등이 외눈을 치켜든다

누가 다시 태어났을까

누군가는 목말라가고 있겠지

302호는 귀가 진행형의 엄마를 기다릴 거야

잘린 날개가 네온사인에 버무려지고

섣부른 입맛은 붉은 신음을 더한다

식탁의 배고픔은 빠르게 진화하고

집들의 아가미는 홀로 호흡한다

바람의 신은 육십씨시의 저항을 받고

어둠에 움츠린 고양이의 귀를 할퀸다

순결한 후각의 개들은 이미 아는 사실을

우리는 초인종이 운 다음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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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 유행하는 치맥의 열풍, 외국인들도 좋아한다지요.

"브라보 코리아" 하면서.

우리네 사는 골목과 골목 사이에 치킨과 맥주를 파는 가게가 즐비하고,

그 사이사이에 치킨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바람을 가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최저임금제를 비웃는 시급으로 끼니를 때우고, 학비를 벌고, 용돈을 충당하는 청춘들이 88만원 세대를 구성합니다. 정규직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힘듭니다. 차가운 바람의 속살 사이로 곡예비행을 하듯 두 바퀴로 치킨의 온기를 전달합니다.

 

치킨을 튀기고 맥주를 실어 나르는 시장도 레드오션이라죠. 퇴직자 중 상당수가 그 퇴직금으로 치킨을 튀긴다고 합니다. 전에는 전화 한통화로 치킨을 주문하던 신분에서 이제는 튀김옷을 입히고 맥주거품을 살리는 신분으로 전화되었습니다.

 

누군가 야근 때문에 아이들 저녁으로 치킨을 주문합니다. 아빠는 야근과 회식이고, 엄마는 아직 집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집 호수에 몇 마리만 얘기하면 모든 것이 척척입니다. 맛있게 굽거나 튀겨진 치킨이 오토바이에 실려 네온사인 사이로 전진할 때 온 골목에 치킨냄새가 진동합니다. 허기진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겠죠. 온 동네의 고양이와 개들이 먼저 알고 반깁니다.

 

치킨은 누군가에게는 인생 2라운드이자 생계를 걱정하는 아이콘입니다. 다른 누군가에는 한 끼의 식사이고 엄마의 밥상을 대체합니다. 오토바이로 골목을 누비는 이에겐 등록금의 일부이고 사회생활의 시작입니다. 치킨 한 조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니, 골목안길에 오토바이 소리 요란합니다.

 

오늘 저녁은 치맥입니다. 치킨 두 마리와 맥주를 주문합니다. 주문 끝에 한마디 더합니다.

 

식어도 좋으니, 천천히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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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빠서 시간 내기 어려운 친구들이 강남 모처에 모여서 민물장어를 먹었다. 장어가 이렇게 비싼 줄 몰랐다. 이글거리는 석쇠에 두 번째 판을 굽고 있는데 메뉴판을 보니, 1인분 가격이 한 달 지하철정액권이다. 남자들에게 좋다고 해서 지금까지 장어랑 천생연분이라는 복분자까지 여러 번 먹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효험은 없었다. 기력회복이 필요 없는 체질인가 싶다.

 

   오늘의 주된 메뉴는 장어였지만, 어느 정도 배가 부르니 이야깃거리가 안주가 되어 쏟아졌다. 40대 후반의 남자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 중 태반은 일, 가정, 인생 이야기다. 굳이 추가하자면 여자 이야기 정도가 있을까. 명예퇴직을 걱정하는 친구, 건강을 걱정하는 친구, 아이들 문제를 상의하는 친구, 부부애정문제를 고민하는 친구의 이야기가 골고루 섞인다.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되는 나이라 그런지 십대 소녀들처럼 말이 많다.

 

   모임에는 늘 늦는 친구들이 꼭 있다. 이 친구처럼. 본인 회사근처에 약속장소를 마련했건만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합류했다. 넥타이를 풀어 제치며 급하게 맥주잔을 들이키는 이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한마디 한다. “, 왜 이렇게 사냐?, 좀 여유롭게 살수 없냐?”

 

   늦게 온 이 친구 하는 말. “아이고 친구야, 나도 그러고 싶네. 집에 빨리 가고 싶고, 애들하고 저녁도 먹고 싶고.....” 씨익 웃는다. 희끗해진 귀밑머리를 한 안녕 쓴 중년이 우걱우걱 장어를 씹고 맥주를 마신다.

 

술자리에서 넋두리처럼 던지는 말. . ....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아니 좀 더 범위를 좁혀서 일도 잘하고 가정에도 충실할 수 있을까?

오늘 술값은 누가 내지???

 

 

#2. 영화이야기 둘

 

* 이야기 하나

   영화 클릭은 주인공(웃기는 아담 샌들러)이 자신의 일상을 조정할 수 있는 만능리모컨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은 복잡해 보이는 일상을 좀더 단순하게 하나의 리모컨으로 조정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건축설계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파트너로 승진하기 위해서 가정을 소홀히 하게 되고, 가정용품 전문 가게의 beyond(저너머)라는 비밀 공간에서 만능리모컨을 얻게 된다.

 

   그 리모컨은 번잡하고 불편한 일상을 건너뜀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일과 시간으로 그들 이동하게 하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 성공의 열망에 달뜬 주인공은 리모컨을 이용해 직업적 성공에 관한 시간과 장소로만 이동을 하고, 그는 큰 성공을 거둔다.

 

   문제는 그가 리모컨을 빨리 돌림으로 해서 참여하지 못한 가족과의 일상은 그의 기억에 없다는 점이다. 직업에 있어서 성공은 거두지만 그가 함께하지 못했던 가족과의 일에 대해서는 기억의 부존재라는 실패를 가져온다. 아이들을 돌보는 문제, 부부간의 애정문제, 저녁식탁에서의 소소한 이야기 거리들은 성공을 위한 희생양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가 빨리 감기를 하는 동안 가족에게 그는 껍데기만 존재했던 것이다.

 

   그 리모컨을 통해 결국은 그는 성공을 쟁취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은 그로부터 멀어져간다. 바쁜 회사생활 때문에 아내와도 헤어지고, 애들이 어떻게 자랐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결국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을 후회하는 순간에 주인공은 꿈속에서 임종을 맞이한다. 물론 이 모두가 꿈에 불과했지만....

 

   스토리는 뻔한 결말을 예고하지만, 일과 성공의 강박에 쫓기는 아빠들에게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가족영화였다. 이 영화 곳곳에 배꼽을 빠지게 하는 우스운 장면들이 있다. 진짜 웃으면서 눈물이 났다. 감정이입이라도 된 것처럼.

 

* 이야기 둘

   영화 패밀리맨도 남자의 성공에 대한 열망과 가족의 소중함이 서로 등가교환으로 교차하는 딜레마를 그린 영화다. 연인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월가에서 성공가도를 걷던 주인공(케서방, 니콜라스케이지)은 어느 크리스마스 전날 우연한 기회(천사의 도움을 받아)에 또 다른 운명 속으로 빠져든다. 그 현실에서는 자신은 연인과 결혼해서 아이 두 명을 기르는 평범한 남자로 생활한다.

 

   이 상황은 그에게는 또 다른 운명이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약속을 지킴으로 해서 맞이하게 되는 또 하나의 삶. 그는 본인의 현재의 삶과 전혀 다른 현실에 어리둥절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적응하게 된다. 점차 그에게도 과거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과의 사이에 팍팍하지만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속 인상적인 대사가 하나 있다. “지난 세월동안, 난 한순간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을 거야이 대사 속에는 연인과의 사랑의 맹세를 저버리고 성공을 택한 남자의 뼈저린 후회가 듬뿍 담겨있다.

 

   천사의 도움을 받은 시간여행을 통해 자신의 다른 인생을 돌아보게 된 주인공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영화는 드러내놓고 가족의 소중함과 진실한 사랑을 말한다. 또한 일에 파묻혀 살면서 가족과의 삶을 버리고 성공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영화속 또 다른 삶처럼 실제 우리의 삶은 무겁고, 어렵고, 번잡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이라 해서 지금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화려한 삶을 열망하지만, 그 삶은 평범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몇 번을 봐도 그 감동은 새롭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사랑하는 아내, 아이들, 그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성공을 위한 일보다는 우리를선택할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3. 늦게 온 그 친구 이야기

   작년에 고등학교 친구 중 한명이 대기업계열사에서 등기이사로 승진했다. 사기업체에서 임원으로 승진한다는 것은 모든 샐러리맨들의 소망이다. 통계에 의하면 대학 졸업후 입사한 동기 중에서 임원으로 승진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에 가깝다.

 

   별을 단 이 친구의 승진은 축하받아야 마땅하다. 임원승진은 이 친구가 조직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헌신했는가에 대한 반대급부일 것이다. 하지만 이 친구가 그동안 어떻게 조직생활을 했는가를 들어보니 고개가 좌우로(이건 아니다!!) 움직였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출근시간 1시간 전에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하고, 퇴근시간은 따로 정해지지 않은 생활을 20년 동안 했다고 했다. 부장승진 이후부터는 사무실에 아예 간이침대를 두고 쪽잠을 자면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이 친구는 동기들에 앞서 승진을 거듭했다.

 

   얘들의 양육과 교육문제는 모두 집에 있는 친구아내의 몫이었고,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식탁은 한 달에 서너 번에 불과했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 실제로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 물었다. 현재 생활에 만족하냐고, 그동안 행복했느냐고. 그 친구는 웃고 있었지만 말이 없었다. 다 아는 것을 왜 묻느냐는 눈빛이었다.

 

이 친구야, 다음부터는 약속시간에 빨리 좀 오셔.....

    

 

#4.

   살아가면서 밸런스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마주친다. 학창시절 공부와 연애가 양립이 가능한가는 모두에게 숙제였다.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게 되면 가정과 일이 균형이 가능한가가 또 하나의 과제로 다가온다. 어느 자기계발서에서는 일과 가정의 균형이 불가능하다는 이상한 결론도 내리고 있으나, 우리 보통 사람들은 그 균형을 소망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상사주재원으로 있는 친구에 따르면, 그 나라 사람들은 일과시간 이외에 야근이란 게 없단다. 상사가 부당하게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했을 경우에는 근로자복지관련 법률에 의거 벌금을 부과한다고 들었다. 때문에 퇴근 후에는 가족과 평일에도 하이킹을 하고, 야외에서 레저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늘 영업에 시달리고 각종 회식과 접대술자리에 찌들었던 친구와 그 가족들도 처음에는 남는 시간이 어색했지만 곧 적응했다고 한다. 그 친구 카카오스토리에 보면 가족들 표정에서 여유와 행복하다는 느낌이 뚝뚝 묻어난다. 빈에는 모차르트 초콜릿과 클래식 음악 이외에도 중요한 삶의 여유가 있었다. 참고로 수제 모차르트 초콜릿은 비싸고도 맛있다!!!

 

   밸런스를 필요롤 하는 것들은 양자 모두 동일한 것을 요구한다. 가정과 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시간, 열정, 에너지가 이들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가정에는 특별한 요구사항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사랑. 물론 일도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가정은 사랑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이고 사랑이 가정을 살아나가게 하는 자양분이라는 점이다.

   가족의 소중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늦게 귀가한 아빠가 손으로 아이의 키를 재는 상황은 영화 속 설정만으로도 족하다. 현실에서 이러한 상황은 비극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일을 건너뛰거나 생략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지 다 때가 있기 마련이고, 그때가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가족과 함께하는 하루의 삶을 소중히 하고, 그러한 일상을 사랑하게 되면서 행복이란 나무가 자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아빠들이여, 적절한 균형을 선택하는 용기와 지혜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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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호실의 추석

 

요양병원 308호실에 바람이 분다

오래된 창문이 활짝 열리고

먼지 쌓인 문턱위로 새로운 안부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색색 풍선이 기차처럼

케이크를 매달고 달리는

오늘처럼

북적여서 더 쓸쓸한

침상에, 마른 가지에

꽃망울 없는 꽃이 피어나고

어린 손자의 눈웃음은

잠든 그리움을 깨운다

사는 게 대체 뭐라고

아버지, 할아버지가 내 이름이었나

깜박거리는 형광등

칠순의 언어는 틀니처럼 서걱거리고

비밀번호는 이미 내 것이 아니다

해묵은 세월의 냄새는

기저귀 너머에 둥지를 틀고

영원히 마실 나간 침상은 또 대기 중

누가 나를 반겨할까

아! 아들, 딸 얼굴이 이랬던가

사진 속 얼굴은 바랜지 오랜데

새 옷 입은 그 아이들은 다 어디 갔을까?

모든 게 낯선데

도대체, 나는 꿈꾸던 시인이 된 것일까

둥근달 아래 노랗게 세상이 물들고

탱자나무 옆에 개 짖던

살가운 추석은 어디 갔을까

궁금하다, 툇마루에 앉은 저녁달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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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늘 마주치는 할머니가 보입니다.

손주가 누워서 하늘을 바라다보았을 유모차에 폐지를 올려놓고 또 다른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가을 하늘이라 어찌 푸른지....

 

평균수명이 늘어났다고는 하나,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닌듯합니다.

나이 듦을 피할 수 없고, 예고 없이 다가오는 질병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요양병원에 많은 부모님들이 누워계십니다. 추석 때 요양병원 앞에서 비추던 하늘빛도

오늘 아침처럼 푸른 얼굴이었습니다. 어린 고사리 같은 네 살배기 손주를 아버지는 여름 내내 기다렸을 것입니다. 육신은 침상에 매어있지만 그 눈빛만은 기다림만큼이나 간절해보였습니다.

 

어린 손자가 바라보는 할아버지는 낯설기만 하고, 할아버지도 자신의 가족을 낯설어합니다. 추석인데도 세뱃돈을 주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얼굴입니다. 크고 맑은 눈을 가진 네 살배기의 머리와 손을 자꾸 어루만집니다. 아이고, 내새끼, 내강아지 하면서.

 

오랜만에 방문한 아들, 딸의 얼굴이 눈에 익지 않은지 서먹해합니다. 오래전 기억속의 어린 아들, 딸의 얼굴을 되살린 것인지 눈길이 자꾸 허공을 맴돕니다. 머릿속 기억과 시점이 서로 맞지 않아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대낮인데도 창밖이 흐릿해집니다.

 

사물을 낯설게 보면 시인이 된다는데, 불편하기기만 한 이 상황에 어린아이처럼 누워있는 아버지는 시인이 된 것일까요?

 

308호실의 창문가에도 어김없이 추석 달빛은 내려앉습니다. 그 옛적에도 세상이 노랗게 물들 정도로 큰 보름달이 떠오르곤 했었죠. 올해처럼 커다란 슈퍼문이 그때에도 키 작은 탱자나무와 감나무에 고요를 물들게 했었지요. 달 밝은 밤에 툇마루에 앉아 사방에 내려앉은 달빛을 응시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선합니다. 백구야, 백구야 백구를 부르면서.

 

아버지의 추석은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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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처럼 고향 친구들과 저녁을 함께했다. 정치, 경제, 사회 여러 분야의 얘깃거리들이 안주로 등장했다가 결국에는 아이들 문제에 모두 자리를 내주었다. 시작은 학업성적으로 시작해서 학교생활에 관한 문제, 이성교제 문제, 인성문제에 이르기까지 교육전문가들이 따로 없을 정도로 다양한 대화를 나눈다. 이런 자리에는 반드시 분노를 내보이는 아빠들이 꼭 있다. 바로 이 친구처럼.

 

   나쁜 놈들에 대한 기소권을 독점하는 기관에 근무하는 친구는 부부공무원으로 두 딸을 키우고 있다. 근무하는 조직의 특성상 폭탄주를 잘 제조하기 때문에 자기 앞에 늘 술잔을 쌓아놓고 있다. 이 친구 하는 말이 고1인 딸이 남자친구 문제 때문에 고민이란다. 엄마한테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아빠에게는 일언반구 말이 없다고 한다. 가끔씩 외식을 하면서 자그마한 정보라도 얻을라치면 딸이 묵묵부답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라는데 같은 부모입장에서 충분히 이해가 간다. 큰 아이에 관한 정보교환이 잘 안된 것을 보면, 부부간에도 대화가 잘 되고 있지는 않아보였다.

 

   이 친구는 20년 이상 행위가 나쁜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니, 가정이나 사석에서도 조직의 특성에 걸맞은 말투를 구사한다. 마치 나쁜 행동에 대해 캐묻는 것 같은 말투이다 보니 친구들도 가끔씩 눈살을 찌푸릴 때가 있다. 특정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분들의 토속적인 말투나 특정 직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의 직업적인 언어구사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상대방과 선의의 충돌을 빚기도 한다.

 

   물론 아빠의 말투가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딸의 침묵에 본질적인 원인을 제공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평소에 아빠와 딸의 대화기 시시콜콜한 이야기부터 학교문제, 공부문제, 이성문제까지 원만하게 진행된 가족이라면 이러한 사단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친구는 잦은 야근과 친목모임,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 테니스장에서 동호회활동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친구가 저녁식사 시간에 집에 있을 확률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그나마 가족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도 아이들의 이야기에 먼저 귀를 기울이기 보다는 본인의 호기심에 따른 대화를 일방적으로 했었음에 틀림없다. 술잔이 몇 순배 돌면서 친구들의 눈빛은 ‘그러니까 가족한테 평소에 잘하지’라는 의미의 그것이었지만, 내심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 겉도는 아빠의 가련한 신세. 이건 남의 일이 아니다. 엄마도 안심할 순 없다.

 

 

#2.

   우리 집에는 중2인 큰딸에 이어 중1인 둘째딸이 버티고 있다. 대형폭탄(?)을 2개나 안고 있는 셈이다. 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화가 날 때가 가끔씩 있다. 서로 간에 공용 언어(?)도 약간 다르고, 대화주제의 전제나 시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요사이 중학생들이 쓰는 단어는 거의 외국어 또는 외계어 수준이다. 줄임말도 그렇거니와 소위 카톡을 비롯한 채팅은어는 짐작조차 쉽지가 않다. 낯선 신조어를 못 알아들어서인지 대화 자체가 단절되거나 삼천포로 빠지기 십상이다. 때로는 찬바람을 동반한 썰렁한 분위기로 종결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대화의 불통을 세상 탓이나 아이들 문제로만 돌려서는 안 될 것 같다. 청소년 시기의 특정단어 사용문제나 부모와 아이들 간의 대화단절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386세대인 부모들도 한때 “X세대”라 불리던 시기가 있었다. 불과 20여 년 전에 언론에서는 청년층인 20대, 30대 초반에 대해서 소위 X세대라고 명명했다. 언론은 그들의 의식과 행동이 기성세대들과 확연히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을 했었고,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들을 평가했음에 틀림없다. 하물며 그들이 10대 때에는 어떠했겠는가. 그들은 문제 많은 청소년들이었다. 모조리.

 

   유교적 관념이 뿌리 깊은 한국사회에서는 본질적으로 세대 간의 대화가 원활하지 않다. 그 이유는 사회구조상 뚜렷한 위계서열을 그 특징으로 하기 때문이고. 가정이나 조직 내에서 대화의 주도권을 주로 부모나 상급자들이 갖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현장을 돌아보자. 많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도 선생님에 의한 일방적 교수법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어, 학생의 입장에서 이의를 제기하거나 대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말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이는 개인수준으로는 어림도 없는 사회시스템상 한계다.

 

   사회적 분위기나 전통적 의식에 깊게 뿌리박혀있는 부당한 것들을 한꺼번에 바로 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가정 내에서의 대화문화는 부모가 좀 더 노력한다면(아이들과 함께 노력한다면) 개선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본다. 우리 부모세대들은 생존의 문제에 관한 압박 때문에 그저 ‘무뚝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모뿐만 아니라 70년대와 80년대를 살아온 대부분의 부모들에게 다정다감한 부모의 모습은 거의 보기 힘들었다. 그때에는 부모나 자식이 함께 둘러앉은 대화의 장도 별로 없었다. 요즈음의 부모들은 이전 세대와 달리 경제적 여유와 수준 높은 교육으로 인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나갈 가능성이 많아졌다.

 

   문제는 주어진 환경의 가능성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가족을 구성하는 대화주체의 변화가 필요하다.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부모와 아이들이 마음을 툭 터놓고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3.

    세계적인 임상심리학자인 토니 험프리스는 ‘아는 만큼 행복이 커지는 가족의 심리학’에서 다음과 같이 건강한 가족의 대화법을 이야기한다. 첫째,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둘째, 상대방을 판단하지 마라. 셋째, 어떤 말이든 포용하라. 넷째, 상대방에게 공감하라. 다섯째, 상대방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라. 여섯째, 가능성을 열어두고 단언하지 마라. 일곱째,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표현하라. 여덟째, 말과 행동에 대해 일관성을 지켜라.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구구절절 옳다. 특히 이론에 필 꽂힌 일부 심리학자들 말고, 경험이 풍부한 임상심리학자나 일부 정신과의사들의 현장체험담은 일반인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다. 토니 험프리스 박사의 책에 기술된 방법론도 누구나 다 알 수 있고, 얘기할 수 있는 내용으로 아주 유익하다. 다만 내 몸에 체화되지 않는 이상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특히나 사전예고 없이 직면하는 현실의 불편한 상황에서 이러한 대화법을 기억해 행동으로 나타내기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건강한 대화를 위한 기술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하고, 밥상머리나 거실뿐만 아니라 가족이 존재하는 모든 공간에서 적용된다. 우리 가족에게 맞는 대화법은 무엇일까? 스스로 고민해보자.

 

 

#4.

*부모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자

   너무나 당연하게도, 먼저 부모가 먼저 손을 내밀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가정이나 조직에서 부모나 윗사람이 먼저 말을 꺼내고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분위기가 훨씬 자연스럽다. 아이들이나 아랫사람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그것은 상담이거나 고충처리에 그칠 공산이 크다. 지금 부모들 세대처럼 부모들 대하기가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을지라도 아이들에게 부모는 여전히 편하면서도 어려운 존재다. 문제 있는 상황을 인식하거나 그 해결방법에 관한 고민도 살아온 세월과 경험이 많은 부모의 몫이다. 대화주제를 선정하는 것은 공동으로 할 일이지만 부모들이 체득한 지식과 경험은 아이들을 풍부한 간접체험의 세계로 이끌 수 있다.

 

   아이가 이런저런 실수를 하거나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풀이 죽어있을 때 부모가 먼저 따뜻하게 말을 건네고,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는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실수한 아이에게 실수로 인한 당혹감과 부모에 대한 책망이 배가되어 상처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풀이 죽어있는 아이에게도 기분전환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그 원인에 대한 공감을 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부모가 성적표에 나타난 숫자에 연연해하기보다는 아이 스스로가 분발할 수 있도록 그 마음을 북돋아주어야 한다.

 

   물론 부모가 먼저 손을 내밀고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평소에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나 행동을 잘 파악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식탁에서, 거실에서, 때로는 공부방에서 수시로 나누는 대화 속에서 부모가 조금만 관심을 더 기울인다면 아이들이 보여주는 말과 행동의 맥락의 의미를 가슴속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람직한 대화의 기본중의 기본은 경청과 관심이다.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자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대화를 한다기보다는 일방적인 설교를 하는 경우가 많다. 성인끼리 대화하는 경우에도 서로의 정치사회적 코드나 대화예법이 맞지 않으면 파열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물질문명과 정신문화의 갭이 크지 않았던 부모들 시절과는 달리 요즘의 물질문명은 속된말로 Lte급이다. 이러다보니 물질문명과 정신문화 사이에 지체가 있을 수밖에 없고, 이러한 지체현상은 부모자식간의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마치 화성남자 금성여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부모와 아이들이 사용하는 단어나 사물에 관한 이해의 정도가 차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우리 큰아들(초2)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빠에게 할 말이 많다. 오늘은 무엇을 먹고, 친구랑 무슨 놀이를 하였으며, 딱지를 몇 장을 잃었는가, 집에 와서 책을 몇 권 읽었는가에 대해서 속속들이 얘기를 한다. 둘째딸(중1)은 주로 친구와 학교생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친구와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고, 영수 방과후교실에서 무슨 단원을 공부했으며, 친구 카카오스토리에 올라와 있는 갖가지 스토리를 이야기 한다.

 

   큰딸(중2)은 사춘기 소녀답게 까칠하기 그지없다. 동생들에게도 존엄한 명령투로 이야기를 하고 부모에게도 선전포고에 가깝게 자신의 일상을 말한다. 주로 학교방송반에서 아나운서로 날린 멘트와 음악을 이야기하고, 아이돌 그룹 샤이니(난, 그들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지만)의 일거수일투족을 세밀하게 이야기하며, 자주 바뀌는 자신의 꿈과 직업에 대해서도 관심 없는 듯 이야기하곤 한다. 마치 남의 얘기처럼.

 

   부모에게는 관심 밖의 사항일지라도 아이들에게는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있다. 또한 아이가 얘기한 주제가 하찮아 보이지만 아이에게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딱지치기, 간식거리, 아이돌 이야기가 부모들에게 무슨 감흥이 있을 것인가? 부모들에게는 공부이야기가 제일인데. 과연 그러한가? 아이들의 눈은 공부이야기를 할 때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놀이나 친구, 아이돌스타 일상을 얘기할 때 더 빛난다. 하지만 부모는 그 눈빛이 못마땅하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그 감정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너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왜 쓸데없는데 관심을 갖지!!”

 

   이렇듯 아이들이 사소한 일상을 이야기 할 때 부모가 편하게 듣고 고개를 끄덕여준다면, 아이들은 자신이 존재가 인정받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것 같다. 그 확신은 아이의 자존감 향상은 물론 스스로 더 깊은 속내를 부모에게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중립적인 판단기준을 갖자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신의 작은 실수로부터 돌아오는 부모의 반응이다. 작게는 그릇을 깨거나, 동생을 울리거나, 책상정리를 못한 것부터 크게는 시험을 망친 것까지 아이들이 실수할 수 있는 상황은 주위에 널려있다. 아이들은 물론 성인들도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하지만 실수에 대한 아이들의 기준과 성인의 기준이 다르다보니, 성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아이들의 실수는 더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부모들이 아이들의 자잘한 실수에 대해 습관적으로 히스테릭하게 반응하게 되는 경우 아이들의 공포심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실수로 벌어진 상황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부모의 꾸중이 더 두려운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아이의 행동과 부모의 반응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크게 보면 아이들의 실수 또는 그 상황에 중점을 둘 것인가 아니면 그로 인해 발생 가능한 아이들의 상처에 중점을 들 것인가가 문제다. 바림직한 것은 부모가 아이의 실수 자체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아이의 감정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곤혹스러운 상황은 이미 벌어진 일이다. 거기에 집중하다보면 아이에게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특정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다 보면, 비로소 작은 새처럼 떨고 있는 아이의 마음이 보인다.

 

   아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중 하나는 “너는 항상 왜 그래?”일 것이다. ‘항상’이라는 단어 속에는 부모들이 은연중에 과거의 잘못과 현재의 상황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소위 낙인을 찍고 있는 것이다. 네 살배기도 부모에게 야단맞았던 상황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부모의 눈치를 보곤 한다. 실제로 습관적으로 동일한 잘못을 저지르는 아이는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기준에서는 아이의 잘못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이러한 엄격한 기준을 갖다보면 나도 모르게 “너는 왜 그래?”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입장을 바꿔보면 “너는 왜 그래?”는 부모 자신에게도 가장 듣기 싫은 소리임에 틀림없다. 편견을 가진 부모의 시각은 아이를 조화롭게 관찰할 수 없다.

 

 

*원활한 소통을 위한 기술을 갖자

   부모와 아이가 서로 편한 대화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위에서 말한 세 가지가 전제된다면 다른 방법론이 필요할까 싶지만. 굳이 덧붙인다면 아이들은 우회적이고 비유적인 표현보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원한다. 대화 도중에 해석이 필요한 말보다는 직접적이고 분명한 의사표현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직 아이에게는 중의적 표현이나 뉘앙스가 다른 표현을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할 수 있다. 시적해석이 필요 없게끔 분명하게 표현하자.

 

   아이들은 가정 내에서 부모의 말과 행동을 배우고 자란다. 외모나 성격을 닮는 생물학적 유전은 물론이고 행동습관이나 언어습관도 유전된다는 것이다. 부모의 특유의 말투나 상투어를 자신도 모르게 체화시켜 다시 부모에게 표현하곤 한다. 때문에 부모의 말과 행동이 일관성이 없는 경우 그 행동을 닮아가는 아이들의 배움에도 문제가 있다. 가정 내에서 부모의 말과 행동이 일관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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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누구나 아는 늪, 지도에 없는 밀림의 좌표

 

해는 비출 곳을 몰라 휘청거리고, 달빛 또한

선한 그림자를 남기지 못한다. 길을 잃은 것일까

여기선 시계탑이 보이지 않고 길이 열두 갈래로 얽혀있어

시간도 공간도 방향을 잃는다. 숫자로 이정표를 정한

약속이 엇갈리며 찾아든다

 

지하에 스스로 길을 물어가는 강이 있어 강변 가득 기대에

찬 얼굴들을 내려놓는다. 주머니에 환금성 강한 이야기를

담고 날선 허기를 좇는 이들이 솟아오른다. 고단한 삶에 지친

비릿한 축제가 불을 밝히고, 되돌아가는 길을 잊은 발자국이

뒤를 잇는다

 

별이 헤매이다 늪에 떨어진다.

 

뿌리가 하나인 커다란 나무가 바깥으로 창을 내고

바람에 베인 상처의 흔적을 붉은 불빛이 지운다.

 

오늘도, 술에 취한 달빛이 야금야금

숙취에 시달리는 어제의 해를 먹어치우고

밀림에 들고나는 어느 길목엔

보고되지 않은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고

늪에 사는 물뱀이 걷고, 또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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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에 가보았나요?

금요일 밤에 강남역에 가보았나요?

누군가 묻더랍니다. 강남역에 가면 강남스타일을 볼 수 있나요....

 

강남스타일이 무언지 모르지만, 사실은 궁금하지만

청춘이, 젊음이 도열하는 거리라면 응당, 쏟아지는

열정의 숲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하철역, 그 광장에 서보면

누구든지 방향을 잃고 말지요. 익명성이 주는 안도감 때문에

시선은 불안하지 않고 약속장소로 향하는 가슴은 마냥 설렙니다.

 

거대한 나무들이 큰바위 얼굴처럼 고개를 내밀고

붉은 등을 가진 수많은 가지들이 행인을 유혹하고

그 유혹에 취한 이들이 달빛에 흔들거립니다.

 

오늘따라

돌아가는 길은 더디고

금요일 밤의 욕망은 계속 진화중.

 

누군가는 늪처럼 깊게 빠져들고

파도 같은 열정이 사그라질 무렵 택시는 따블을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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