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한조각의 체온

 

달빛은 은빛 이빨을 드러내고

바람의 속살은 시퍼렇다

부르는 이의 허기는 시급 삼천칠백 원

하얀 연기를 피우는 굴뚝엔 긴급을 알리는

전보가 내달리고

독일군의 전차마냥 흔들리는 깃발 사이로

붉은 신호등이 외눈을 치켜든다

누가 다시 태어났을까

누군가는 목말라가고 있겠지

302호는 귀가 진행형의 엄마를 기다릴 거야

잘린 날개가 네온사인에 버무려지고

섣부른 입맛은 붉은 신음을 더한다

식탁의 배고픔은 빠르게 진화하고

집들의 아가미는 홀로 호흡한다

바람의 신은 육십씨시의 저항을 받고

어둠에 움츠린 고양이의 귀를 할퀸다

순결한 후각의 개들은 이미 아는 사실을

우리는 초인종이 운 다음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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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 유행하는 치맥의 열풍, 외국인들도 좋아한다지요.

"브라보 코리아" 하면서.

우리네 사는 골목과 골목 사이에 치킨과 맥주를 파는 가게가 즐비하고,

그 사이사이에 치킨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바람을 가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최저임금제를 비웃는 시급으로 끼니를 때우고, 학비를 벌고, 용돈을 충당하는 청춘들이 88만원 세대를 구성합니다. 정규직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힘듭니다. 차가운 바람의 속살 사이로 곡예비행을 하듯 두 바퀴로 치킨의 온기를 전달합니다.

 

치킨을 튀기고 맥주를 실어 나르는 시장도 레드오션이라죠. 퇴직자 중 상당수가 그 퇴직금으로 치킨을 튀긴다고 합니다. 전에는 전화 한통화로 치킨을 주문하던 신분에서 이제는 튀김옷을 입히고 맥주거품을 살리는 신분으로 전화되었습니다.

 

누군가 야근 때문에 아이들 저녁으로 치킨을 주문합니다. 아빠는 야근과 회식이고, 엄마는 아직 집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집 호수에 몇 마리만 얘기하면 모든 것이 척척입니다. 맛있게 굽거나 튀겨진 치킨이 오토바이에 실려 네온사인 사이로 전진할 때 온 골목에 치킨냄새가 진동합니다. 허기진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겠죠. 온 동네의 고양이와 개들이 먼저 알고 반깁니다.

 

치킨은 누군가에게는 인생 2라운드이자 생계를 걱정하는 아이콘입니다. 다른 누군가에는 한 끼의 식사이고 엄마의 밥상을 대체합니다. 오토바이로 골목을 누비는 이에겐 등록금의 일부이고 사회생활의 시작입니다. 치킨 한 조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니, 골목안길에 오토바이 소리 요란합니다.

 

오늘 저녁은 치맥입니다. 치킨 두 마리와 맥주를 주문합니다. 주문 끝에 한마디 더합니다.

 

식어도 좋으니, 천천히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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