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빠서 시간 내기 어려운 친구들이 강남 모처에 모여서 민물장어를 먹었다. 장어가 이렇게 비싼 줄 몰랐다. 이글거리는 석쇠에 두 번째 판을 굽고 있는데 메뉴판을 보니, 1인분 가격이 한 달 지하철정액권이다. 남자들에게 좋다고 해서 지금까지 장어랑 천생연분이라는 복분자까지 여러 번 먹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큰 효험은 없었다. 기력회복이 필요 없는 체질인가 싶다.
오늘의 주된 메뉴는 장어였지만, 어느 정도 배가 부르니 이야깃거리가 안주가 되어 쏟아졌다. 40대 후반의 남자들이 모여서 하는 이야기 중 태반은 일, 가정, 인생 이야기다. 굳이 추가하자면 여자 이야기 정도가 있을까. 명예퇴직을 걱정하는 친구, 건강을 걱정하는 친구, 아이들 문제를 상의하는 친구, 부부애정문제를 고민하는 친구의 이야기가 골고루 섞인다. 여성 호르몬이 분비되기 시작되는 나이라 그런지 십대 소녀들처럼 말이 많다.
모임에는 늘 늦는 친구들이 꼭 있다. 이 친구처럼. 본인 회사근처에 약속장소를 마련했건만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합류했다. 넥타이를 풀어 제치며 급하게 맥주잔을 들이키는 이 친구에게 다른 친구가 한마디 한다. “넌, 왜 이렇게 사냐?, 좀 여유롭게 살수 없냐?”
늦게 온 이 친구 하는 말. “아이고 친구야, 나도 그러고 싶네. 집에 빨리 가고 싶고, 애들하고 저녁도 먹고 싶고.....” 씨익 웃는다. 희끗해진 귀밑머리를 한 안녕 쓴 중년이 우걱우걱 장어를 씹고 맥주를 마신다.
술자리에서 넋두리처럼 던지는 말. 말. 말....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행복한 삶이란 무엇일까?
아니 좀 더 범위를 좁혀서 일도 잘하고 가정에도 충실할 수 있을까?
오늘 술값은 누가 내지???
#2. 영화이야기 둘
* 이야기 하나
영화 ‘클릭’은 주인공(웃기는 아담 샌들러)이 자신의 일상을 조정할 수 있는 만능리모컨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영화다. 주인공은 복잡해 보이는 일상을 좀더 단순하게 하나의 리모컨으로 조정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건축설계회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파트너로 승진하기 위해서 가정을 소홀히 하게 되고, 가정용품 전문 가게의 beyond(저너머)라는 비밀 공간에서 만능리모컨을 얻게 된다.
그 리모컨은 번잡하고 불편한 일상을 건너뜀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일과 시간으로 그들 이동하게 하는 특별한 기능이 있다. 성공의 열망에 달뜬 주인공은 리모컨을 이용해 직업적 성공에 관한 시간과 장소로만 이동을 하고, 그는 큰 성공을 거둔다.
문제는 그가 리모컨을 빨리 돌림으로 해서 참여하지 못한 가족과의 일상은 그의 기억에 없다는 점이다. 직업에 있어서 성공은 거두지만 그가 함께하지 못했던 가족과의 일에 대해서는 기억의 부존재라는 실패를 가져온다. 아이들을 돌보는 문제, 부부간의 애정문제, 저녁식탁에서의 소소한 이야기 거리들은 성공을 위한 희생양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그가 빨리 감기를 하는 동안 가족에게 그는 껍데기만 존재했던 것이다.
그 리모컨을 통해 결국은 그는 성공을 쟁취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은 그로부터 멀어져간다. 바쁜 회사생활 때문에 아내와도 헤어지고, 애들이 어떻게 자랐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결국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을 후회하는 순간에 주인공은 꿈속에서 임종을 맞이한다. 물론 이 모두가 꿈에 불과했지만....
스토리는 뻔한 결말을 예고하지만, 일과 성공의 강박에 쫓기는 아빠들에게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가족영화였다. 이 영화 곳곳에 배꼽을 빠지게 하는 우스운 장면들이 있다. 진짜 웃으면서 눈물이 났다. 감정이입이라도 된 것처럼.
* 이야기 둘
영화 ‘패밀리맨’도 남자의 성공에 대한 열망과 가족의 소중함이 서로 등가교환으로 교차하는 딜레마를 그린 영화다. 연인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월가에서 성공가도를 걷던 주인공(케서방, 니콜라스케이지)은 어느 크리스마스 전날 우연한 기회(천사의 도움을 받아)에 또 다른 운명 속으로 빠져든다. 그 현실에서는 자신은 연인과 결혼해서 아이 두 명을 기르는 평범한 남자로 생활한다.
이 상황은 그에게는 또 다른 운명이다. 그가 사랑하는 여인과 약속을 지킴으로 해서 맞이하게 되는 또 하나의 삶. 그는 본인의 현재의 삶과 전혀 다른 현실에 어리둥절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적응하게 된다. 점차 그에게도 과거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과의 사이에 팍팍하지만 아름다운 인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속 인상적인 대사가 하나 있다. “지난 세월동안, 난 한순간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을 거야” 이 대사 속에는 연인과의 사랑의 맹세를 저버리고 성공을 택한 남자의 뼈저린 후회가 듬뿍 담겨있다.
천사의 도움을 받은 시간여행을 통해 자신의 다른 인생을 돌아보게 된 주인공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영화는 드러내놓고 가족의 소중함과 진실한 사랑을 말한다. 또한 일에 파묻혀 살면서 가족과의 삶을 버리고 성공을 지향하는 이들에게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한다.
영화속 또 다른 삶처럼 실제 우리의 삶은 무겁고, 어렵고, 번잡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이라 해서 지금 현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구나 화려한 삶을 열망하지만, 그 삶은 평범하지만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담보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몇 번을 봐도 그 감동은 새롭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사랑하는 아내, 아이들, 그들과 함께하는 일상이 새롭게 보일 것이다. 성공을 위한 일보다는 ‘우리를’ 선택할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3. 늦게 온 그 친구 이야기
작년에 고등학교 친구 중 한명이 대기업계열사에서 등기이사로 승진했다. 사기업체에서 임원으로 승진한다는 것은 모든 샐러리맨들의 소망이다. 통계에 의하면 대학 졸업후 입사한 동기 중에서 임원으로 승진하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하늘에 별 따기에 가깝다.
별을 단 이 친구의 승진은 축하받아야 마땅하다. 임원승진은 이 친구가 조직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헌신했는가에 대한 반대급부일 것이다. 하지만 이 친구가 그동안 어떻게 조직생활을 했는가를 들어보니 고개가 좌우로(이건 아니다!!) 움직였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출근시간 1시간 전에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하고, 퇴근시간은 따로 정해지지 않은 생활을 20년 동안 했다고 했다. 부장승진 이후부터는 사무실에 아예 간이침대를 두고 쪽잠을 자면서 일을 했다고 한다. 그 덕분에 이 친구는 동기들에 앞서 승진을 거듭했다.
얘들의 양육과 교육문제는 모두 집에 있는 친구아내의 몫이었고,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식탁은 한 달에 서너 번에 불과했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 실제로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 친구에게 물었다. 현재 생활에 만족하냐고, 그동안 행복했느냐고. 그 친구는 웃고 있었지만 말이 없었다. 다 아는 것을 왜 묻느냐는 눈빛이었다.
이 친구야, 다음부터는 약속시간에 빨리 좀 오셔.....
#4.
살아가면서 밸런스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번 마주친다. 학창시절 공부와 연애가 양립이 가능한가는 모두에게 숙제였다.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게 되면 가정과 일이 균형이 가능한가가 또 하나의 과제로 다가온다. 어느 자기계발서에서는 일과 가정의 균형이 불가능하다는 이상한 결론도 내리고 있으나, 우리 보통 사람들은 그 균형을 소망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상사주재원으로 있는 친구에 따르면, 그 나라 사람들은 일과시간 이외에 야근이란 게 없단다. 상사가 부당하게 요구할 수도 없고, 요구했을 경우에는 근로자복지관련 법률에 의거 벌금을 부과한다고 들었다. 때문에 퇴근 후에는 가족과 평일에도 하이킹을 하고, 야외에서 레저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늘 영업에 시달리고 각종 회식과 접대술자리에 찌들었던 친구와 그 가족들도 처음에는 남는 시간이 어색했지만 곧 적응했다고 한다. 그 친구 카카오스토리에 보면 가족들 표정에서 여유와 행복하다는 느낌이 뚝뚝 묻어난다. 빈에는 모차르트 초콜릿과 클래식 음악 이외에도 중요한 삶의 여유가 있었다. 참고로 수제 모차르트 초콜릿은 비싸고도 맛있다!!!
밸런스를 필요롤 하는 것들은 양자 모두 동일한 것을 요구한다. 가정과 일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시간, 열정, 에너지가 이들에게 필요하다. 하지만 가정에는 특별한 요구사항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사랑. 물론 일도 사랑이 필요하다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다. 가정은 사랑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이고 사랑이 가정을 살아나가게 하는 자양분이라는 점이다.
가족의 소중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늦게 귀가한 아빠가 손으로 아이의 키를 재는 상황은 영화 속 설정만으로도 족하다. 현실에서 이러한 상황은 비극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일을 건너뛰거나 생략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지 다 때가 있기 마련이고, 그때가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가족과 함께하는 하루의 삶을 소중히 하고, 그러한 일상을 사랑하게 되면서 ‘행복’이란 나무가 자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아빠들이여, 적절한 균형을 선택하는 용기와 지혜를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