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플스테이

    

산 그림자 잠들어 고요하다

산문 밖 어미를 찾아 헤매는

노루울음은 어제의 절망을 꾸짖고

새벽 네 시는 홀로 깨어나

미련에 휩싸인 홑이불을 헤집는다

맑은 울음으로 침묵을 깨뜨린 종소리는

면벽한 노승의 손끝에 적시어오고

정적에 갇힌 어둠의 시간은 물비늘을

내려놓고 염주 속으로 적멸해간다

목어에 울림의 경()을 풀어놓은

솔바람은 떨어지는 별빛에

귀를 기울이고, 선방의 창문은

죽비소리에 서둘러 불을 밝힌다

무위(無爲)를 향해 거듭 무릎을 꺾던

108배는 여운에 겨워 눈뜨지 못하고

솔향에 연잎밥 느리게 물 말은 발우공양은

검은콩 밥알 한 알 한 알에

아프게 잊혀 간 전생의 사랑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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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꽃

 

흩어지며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호명(呼名)

속삭임의 진원은 멀지 않다

잊혀진 그 꽃

가시에 찔리면 눈멀고

향기에 찔리면 가슴이 먼다, 는 꽃말이 있는

 

하여, 부름을 받지 못해 봄밤에 홀로 피고

낮달이 있는 어느 하루를 겉돌며

어둠의 귀가 닫혀 스스로 지지도 못하는

 

필연의 낙화를 예감하지 못한 채

누가 가슴으로 낳았을까

저 분분하게 붉은, 불러야 할 이름의 꽃

 

이름으로 잊혀진 것들은

부름으로, 부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한생이 지나도 피고 지는 소란은 남는 법

향을 남기는 숙명은 바람의 호흡에 흔들리고

기억으로 유전되는 법. 흔들리자, 흔들리자

 

다시 부를까, 잊혀진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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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한조각의 체온

 

달빛은 은빛 이빨을 드러내고

바람의 속살은 시퍼렇다

부르는 이의 허기는 시급 삼천칠백 원

하얀 연기를 피우는 굴뚝엔 긴급을 알리는

전보가 내달리고

독일군의 전차마냥 흔들리는 깃발 사이로

붉은 신호등이 외눈을 치켜든다

누가 다시 태어났을까

누군가는 목말라가고 있겠지

302호는 귀가 진행형의 엄마를 기다릴 거야

잘린 날개가 네온사인에 버무려지고

섣부른 입맛은 붉은 신음을 더한다

식탁의 배고픔은 빠르게 진화하고

집들의 아가미는 홀로 호흡한다

바람의 신은 육십씨시의 저항을 받고

어둠에 움츠린 고양이의 귀를 할퀸다

순결한 후각의 개들은 이미 아는 사실을

우리는 초인종이 운 다음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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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 유행하는 치맥의 열풍, 외국인들도 좋아한다지요.

"브라보 코리아" 하면서.

우리네 사는 골목과 골목 사이에 치킨과 맥주를 파는 가게가 즐비하고,

그 사이사이에 치킨을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바람을 가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최저임금제를 비웃는 시급으로 끼니를 때우고, 학비를 벌고, 용돈을 충당하는 청춘들이 88만원 세대를 구성합니다. 정규직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힘듭니다. 차가운 바람의 속살 사이로 곡예비행을 하듯 두 바퀴로 치킨의 온기를 전달합니다.

 

치킨을 튀기고 맥주를 실어 나르는 시장도 레드오션이라죠. 퇴직자 중 상당수가 그 퇴직금으로 치킨을 튀긴다고 합니다. 전에는 전화 한통화로 치킨을 주문하던 신분에서 이제는 튀김옷을 입히고 맥주거품을 살리는 신분으로 전화되었습니다.

 

누군가 야근 때문에 아이들 저녁으로 치킨을 주문합니다. 아빠는 야근과 회식이고, 엄마는 아직 집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집 호수에 몇 마리만 얘기하면 모든 것이 척척입니다. 맛있게 굽거나 튀겨진 치킨이 오토바이에 실려 네온사인 사이로 전진할 때 온 골목에 치킨냄새가 진동합니다. 허기진 것은 아이들만이 아니겠죠. 온 동네의 고양이와 개들이 먼저 알고 반깁니다.

 

치킨은 누군가에게는 인생 2라운드이자 생계를 걱정하는 아이콘입니다. 다른 누군가에는 한 끼의 식사이고 엄마의 밥상을 대체합니다. 오토바이로 골목을 누비는 이에겐 등록금의 일부이고 사회생활의 시작입니다. 치킨 한 조각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니, 골목안길에 오토바이 소리 요란합니다.

 

오늘 저녁은 치맥입니다. 치킨 두 마리와 맥주를 주문합니다. 주문 끝에 한마디 더합니다.

 

식어도 좋으니, 천천히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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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8호실의 추석

 

요양병원 308호실에 바람이 분다

오래된 창문이 활짝 열리고

먼지 쌓인 문턱위로 새로운 안부가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색색 풍선이 기차처럼

케이크를 매달고 달리는

오늘처럼

북적여서 더 쓸쓸한

침상에, 마른 가지에

꽃망울 없는 꽃이 피어나고

어린 손자의 눈웃음은

잠든 그리움을 깨운다

사는 게 대체 뭐라고

아버지, 할아버지가 내 이름이었나

깜박거리는 형광등

칠순의 언어는 틀니처럼 서걱거리고

비밀번호는 이미 내 것이 아니다

해묵은 세월의 냄새는

기저귀 너머에 둥지를 틀고

영원히 마실 나간 침상은 또 대기 중

누가 나를 반겨할까

아! 아들, 딸 얼굴이 이랬던가

사진 속 얼굴은 바랜지 오랜데

새 옷 입은 그 아이들은 다 어디 갔을까?

모든 게 낯선데

도대체, 나는 꿈꾸던 시인이 된 것일까

둥근달 아래 노랗게 세상이 물들고

탱자나무 옆에 개 짖던

살가운 추석은 어디 갔을까

궁금하다, 툇마루에 앉은 저녁달빛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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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늘 마주치는 할머니가 보입니다.

손주가 누워서 하늘을 바라다보았을 유모차에 폐지를 올려놓고 또 다른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가을 하늘이라 어찌 푸른지....

 

평균수명이 늘어났다고는 하나, 모두에게 해당되는 일은 아닌듯합니다.

나이 듦을 피할 수 없고, 예고 없이 다가오는 질병을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요양병원에 많은 부모님들이 누워계십니다. 추석 때 요양병원 앞에서 비추던 하늘빛도

오늘 아침처럼 푸른 얼굴이었습니다. 어린 고사리 같은 네 살배기 손주를 아버지는 여름 내내 기다렸을 것입니다. 육신은 침상에 매어있지만 그 눈빛만은 기다림만큼이나 간절해보였습니다.

 

어린 손자가 바라보는 할아버지는 낯설기만 하고, 할아버지도 자신의 가족을 낯설어합니다. 추석인데도 세뱃돈을 주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얼굴입니다. 크고 맑은 눈을 가진 네 살배기의 머리와 손을 자꾸 어루만집니다. 아이고, 내새끼, 내강아지 하면서.

 

오랜만에 방문한 아들, 딸의 얼굴이 눈에 익지 않은지 서먹해합니다. 오래전 기억속의 어린 아들, 딸의 얼굴을 되살린 것인지 눈길이 자꾸 허공을 맴돕니다. 머릿속 기억과 시점이 서로 맞지 않아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대낮인데도 창밖이 흐릿해집니다.

 

사물을 낯설게 보면 시인이 된다는데, 불편하기기만 한 이 상황에 어린아이처럼 누워있는 아버지는 시인이 된 것일까요?

 

308호실의 창문가에도 어김없이 추석 달빛은 내려앉습니다. 그 옛적에도 세상이 노랗게 물들 정도로 큰 보름달이 떠오르곤 했었죠. 올해처럼 커다란 슈퍼문이 그때에도 키 작은 탱자나무와 감나무에 고요를 물들게 했었지요. 달 밝은 밤에 툇마루에 앉아 사방에 내려앉은 달빛을 응시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선합니다. 백구야, 백구야 백구를 부르면서.

 

아버지의 추석은 어디에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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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누구나 아는 늪, 지도에 없는 밀림의 좌표

 

해는 비출 곳을 몰라 휘청거리고, 달빛 또한

선한 그림자를 남기지 못한다. 길을 잃은 것일까

여기선 시계탑이 보이지 않고 길이 열두 갈래로 얽혀있어

시간도 공간도 방향을 잃는다. 숫자로 이정표를 정한

약속이 엇갈리며 찾아든다

 

지하에 스스로 길을 물어가는 강이 있어 강변 가득 기대에

찬 얼굴들을 내려놓는다. 주머니에 환금성 강한 이야기를

담고 날선 허기를 좇는 이들이 솟아오른다. 고단한 삶에 지친

비릿한 축제가 불을 밝히고, 되돌아가는 길을 잊은 발자국이

뒤를 잇는다

 

별이 헤매이다 늪에 떨어진다.

 

뿌리가 하나인 커다란 나무가 바깥으로 창을 내고

바람에 베인 상처의 흔적을 붉은 불빛이 지운다.

 

오늘도, 술에 취한 달빛이 야금야금

숙취에 시달리는 어제의 해를 먹어치우고

밀림에 들고나는 어느 길목엔

보고되지 않은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고

늪에 사는 물뱀이 걷고, 또 걷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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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에 가보았나요?

금요일 밤에 강남역에 가보았나요?

누군가 묻더랍니다. 강남역에 가면 강남스타일을 볼 수 있나요....

 

강남스타일이 무언지 모르지만, 사실은 궁금하지만

청춘이, 젊음이 도열하는 거리라면 응당, 쏟아지는

열정의 숲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지하철역, 그 광장에 서보면

누구든지 방향을 잃고 말지요. 익명성이 주는 안도감 때문에

시선은 불안하지 않고 약속장소로 향하는 가슴은 마냥 설렙니다.

 

거대한 나무들이 큰바위 얼굴처럼 고개를 내밀고

붉은 등을 가진 수많은 가지들이 행인을 유혹하고

그 유혹에 취한 이들이 달빛에 흔들거립니다.

 

오늘따라

돌아가는 길은 더디고

금요일 밤의 욕망은 계속 진화중.

 

누군가는 늪처럼 깊게 빠져들고

파도 같은 열정이 사그라질 무렵 택시는 따블을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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