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3권 합본 개역판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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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 개의 각 제목을 가지고 몇 년의 간격으로 발표되었다.

각각은 연작소설이라 보기보다는 속편쯤 되는 것 같고 실은 별개로 봐줘야 이해도를 더 높일 수 있다고 나 할까..

1부 [비밀노트]는 1986년, 2부 [타인의 증거]는 1988년, [50년간의 고독]은 1991년도에 출판되었다.

[비밀노트]

전쟁이 일어나 왕래가 전혀 없던 소도시의 맨 끝에 있는 외할머니 댁으로 보내진 쌍둥이들의 이야기이다.

'우리'라는 인칭으로 묘사되는 이 이야기는

하나인 듯 둘인 쌍둥이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공동 이야기이다.

우리는 ~~였다.는 식의 서술이다.

우리의 엄마는 십 년 동안 그녀의 엄마, 즉 우리의 외할머니와 소식 없이 지냈고 그녀의 결혼 사실도 몰랐다 하며 냉랭하게 대하는 그녀의 엄마에게

그녀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만 우리를 돌봐달라고 부탁을 하며 다시 대도시로 떠나버린다.

우리의 할머니는 이웃들에게 '마녀'라고 불리고 그녀는 우리더러는 '개자식'이라고 부른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독살 했다는 이유로 온 동네에 '마녀'로 취급되고 있었다.

국경지대에 살고 있는 할머니 집에는 외국인 장교가 세 들어 살고 있고

정원과 가축들이 있다.

할머니는 우리에게 일을 해야 먹을 것을 준다고 했고

우리는 씻을 수도 없는 곳에서 할머니의 일을 도와드리고 숲으로 달려가기도 한다.

우리는 다락방에서 아버지의 사전으로 철자법을 공부하고 작문 노트를 만들어 공유한다.

우리의 아버지는 종군기자로 전쟁터에 가있다. 아버지는 우리가 너무 우리들만의 세계에 빠져있다고 걱정했었으며 나이에 비해 너무 조숙하고 아는 게 많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2년 반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읽고 쓰고 셈하기는 기초를 닦았지만, 학교에서 비로소 분리되었던 우리는 고통스럽고 현기증을 느껴서 쓰러진 이후로 계속 우리였다.

우리는 할머니집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각종 연습들을 한다. 고통에 익숙해지기 위해서,

연습을 통해서 고통, 더위, 추위, 배고픔 이런 모든 참기 어려운 것들을 이겨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더 강인해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마을 아이들의 텃새에도 면도 칼과 돌 주머니를 휘둘러 위용을 떨친다.

우리는 학교에도 가지 않는다.

의무교육 기간이라 통지서도 여러 번 왔지만 할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모르고 우리는 읽고도 모른척했고

장학사가 왔을 때는 귀머거리와 장님인 척 연기를 해서 면제된다.

우리 이웃의 아주머니는 귀머거리에 장님이다. 사람들은 미쳤다고 한다. 그 아주머니의 딸은 언청이에 사팔뜨기로 부스럼투성이이다.

그녀는 때로 훔치고 구걸을 하고 몸도 내준다.

할머니 집에 세 들어 사는 외국인 장교의 당번병과도 우정을 나누던 우리는 장교를 만난 이후 그와도 친분을 쌓아서 그에게 외국어도 배우고 하모니카 연주도 하게 된다.

우리는 술집들을 돌면서 공연을 하고 돈을 벌기도 한다.

더러운 것에 익숙해졌던 우리를 씻겨주던 신부의 하녀와도 친해졌는데

폭발물이 터져서 그녀가 화상을 심하게 입는 일도 일어나는데 사람들은 우리를 의심한다. 우리에겐 숲에서 주어와 감춰둔 폭탄도 있었다.

어느 날은 노신사가 찾아와서 사촌누나라 부르라면서 우리보다 다섯 살 많은 소녀를 할머니에게 맡겼다.

그녀는 우리를 완전히 돌아버린 '꼬마 깡패'라고 한다.

전쟁이 끝나기 며칠 전에 대도시에 살고 있는 엄마가 나타난다.

우리를 데려가겠다고

그런데 엄마의 품에 여자아이가 안겨있다.

우리는 할머니와 여기서 살겠다고 우기고

지프에서 아이를 안고 내려 우리에게 다가오던 엄마는 폭탄을 맞고 죽는다. 아기도 함께..

우리는 엄마와 아기의 해골을 무덤에서 파와 창가에 걸어두었다.

전쟁이 끝나고 해방군이 왔지만

달라지리라는 기대는 기대였을 뿐

달라진 건 없었다.

우리는 할머니 곁에 있었다.

할머니도 죽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나타난다.

국경을 넘겠다 하여 우리가 도와주려고 나섰는데

지뢰가 폭발해서 아버지는 죽었다.

우리 중 하나는 아버지를 따라가다가 국경을 넘어갔고

하나는 할머니 집으로 돌아온다.

 

- 이하 생략-

https://blog.naver.com/su430/222542938786

 

감정을 나타내는 말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의 사용을 될 수 있는 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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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파라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3
후안 룰포 지음, 정창 옮김 / 민음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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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의 산문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을 읽으면서 관심이 갔던 작가이고, 작품이다.

그는 '이 책이 누구도 '후안 룰포'처럼 계속 서술할 수 없는 책이며 영원히 완성을 기다리지만 영원히 완성을 기다릴 수 없는 책이며 그러면서도 아무런 제약 없이 활짝 열려있는 책'이라 했는데, 모호하기로 정평이 나있는 작품이라 망설이기도..

이 책은 라틴 아메리카의 기념비적인 소설이라 하고, 라틴아메라카 문학의 영원한 고전으로 남을 작품이라 한다.

'후안 룰포'는 아주 독창적이고 예외적인 작가로 '제임스 조이스', '윌리엄 포크너', '마르셸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를 집약시킨 거인이라는 평가도 있다.

문체 자체가 매우 시적이고 화자가 아들 '빼드로 빠라모'였다가 그가 찾는 아버지 '빼드로 빠라모'였다가, 또 다른 사람들로 바뀌기도 한다.

그에게 말하는 이가, 혹은 이미 말했던 이가 벌써 죽은 자였다고 하고, 결국 처음의 화자인 아들도 죽은 사람이 되는데, 놓치지 않고 읽는다 해도 언제 왜 죽었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처음 몇 번 당황하다가 마술적 리얼리즘이라잖나~ 하면서 그 모호함과 애매함과 난해함을 즐기려 드니, 비로소 스토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역시 멕시코의 역사와 혁명을 검색해 봐야 했다.

멕시코는 에스파냐(스페인)의 300년간 식민지였다.

1821년 독립하여 1823년 공화국을 수립하고 50년 동안 대통령이 서른 번 이상 바뀌고

1848년엔 미국과 전쟁을 치러 거대한 땅을 잃는다.

1876년 쿠데타를 일으킨 '디아스'에 의해 30년간의 독재 체제였고, 생활고를 시달리던 농민들은 가난하고 또 가난했다.

1910년 멕시코 혁명은 여러 영웅들이 탄생했지만, 한낱 도적떼 출신도 있었고 군인도 있었고, 아직까지도 평가가 어긋나는 그들은

배신하고 배신당하고 살해하고 살해당하고 그래왔다.

그 시기를 보낸 '후안 룰포'는 부모를 잃었고 친척 집을 전전하며 우울하고 고독한 유년기를 보낸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배경이 그 시기이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란 '빼드로'에게 죽음을 앞둔 어머니 '둘레로스'가 아버지를 찾아 '꼬말라'에 가라고 한다.

'꼬말라'는 그녀에겐 푸른 벌판과 익은 옥수숫대가 어우러진, 밤이면 희뿌연 빛에 휩싸이는 아름다운 정경으로 남아있는 그녀의 추억과 향수가 깃든 고향이었다.

그녀는 아들더러 네 아버지는 내게 당연히 갚아야 할 빚이 있고, 우리를 버렸던 죗값으로 받을 것이 있으니 당당히 요구하라고 한다.

어머니의 유언대로 '꼬말라'에 가는 중, 마침 방향이 같다는 마부 '아분디오'가 길잡이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가 도착한 '꼬말라'는 소리가 없고, 텅 빈 집들과 잡초들만 무성한 곳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는 이미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이었고

자신을 안내했던 마부 역시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한다.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기억하는 사람인지 유령인지 모를 인물들을 따라나서고,

그들에게 어머니의 과거와 아버지의 과거를 듣는데, 이미 아들 '빠라모'도 죽은 사람이 되어있다.

그의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는 그 지방의 토호쯤 되는 사람으로, 대농장 '메디아 루나'의 주인이었다.

그는 사람들을 거느리고 여러 여자들을 거느렸다.

'빼드로'의 어머니 '둘레로스'는 목초지의 명의자로 그 땅을 빼앗으려는 '빼드로 빠라모'의 청혼으로 그와 결혼을 하지만

그날 밤 초야를 치르면 안 된다는 충고에 사로잡혀 자기 대신 친구, '에두비헤스'를 들여보냈다.

처음에는 안된다며 거절했지만 '에두비헤스' 역시 '뻬드로 빠라모'를 연모했던 지라 신방에 들어갔지만, 만취한 신랑 때문에 아무 일 없이 날이 밝고, '둘레로스'는 이듬해 아들 뻬드로'를 낳는다.

그녀는 남편을 증오했고 그의 닦달을 견디지 못해 아들을 데리고 언니가 사는 다른 마을로 가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 아들에게 아버지를 찾아가라고 한 것.

아버지 '뻬드로 빠라모'에게는 망나니 아들 '미겔 빠라모'도 있었다. 그리고 마부 '아분디오'를 비롯해 많은 자식들이 있었지만, 자식들이 태어날 때 코빼기도 안 비친 사람이라 한다.

하지만 그에게도 평생 못 잊는 여인이 있었는데

어릴 때의 소꿉친구이자 첫사랑 '수사나'였다.

미망인이 된 그녀를 찾아와 결혼해서 '수사나'가 마지막 부인이 되는데

광기와 환상에 사로잡힌 그녀는 마음의 병을 얻은 미친 여자였다. '뻬드로 빠라모'가 가장 사랑한 여자 '수사나'..

하지만 그녀는 '빼드로 빠라모'가 풀지 못한 숙제이기도 했다.

그녀를 괴롭히는 기억들과 절규, 불면을 보면서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고

그녀가 죽은 후 '뻬드로 빠라모'는 곳간에 쌓인 곡식들을 모조리 태우고 그녀가 떠난 저승길을 바라보며 의자에 길게 드러누워 시간을 보내다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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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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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이란 시간은 이집트를 탈출한 유대인이 광야에서 헤맨 시간이라 한다.

머리에서 기억이 지워져도 몸이 그걸 기억 하고 있으므로 그 육체의 기억을 지우는데 필요한 시간이 또한 40년..

하여 40년이란 시간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적인 시간인 것..

여고생이었던 그녀가 뉴욕에 사는 첫사랑의 그를 만나러 가기까지 40년이 흘러있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되어있었고, 그녀 역시 아빠 없는 아이를 낳겠다는 딸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

뉴욕에 살고 있는 그 사람은, 신학생이었고

그녀는 성당 고등부 행사차 오른 춘천행 기차에서 잘생기고 여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그에게 한눈에 반했었다.

영원을 말하던 그는 인생을 그분에게 바치고자 하는 길을 걷고 있었고

그녀 '미호'는 그를 위해 자신의 사랑을 그분에게 양보했었다.

삶은 가차없고 매정하다는 그들의 회상처럼

누구에게나 그러했다.

40년 전 그가 왜 그랬는지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차마 물을 수 없었던 질문을 던지고 집으로 돌아와 괴로워하던 그녀에게 어머니가 해주던 말.

- "돌아보니까, 아픈 것도 인생이야. 사람이 상처를 겪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라는 것을 겪는다고 하고 그게 맞지만, 외상 후 성장도 있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 우리는 가끔 성장한단다. 상처가 나쁘기만 하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지. 피하지 마. 피하지만 않으면 돼. 우린 마치 서핑을 하는 것처럼 그 파도를 넘어 더 먼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거야. 다만 그 사이에 날이 가고 밤이 오고 침묵이 있고 수다가 있고 그런 거야. 젊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걸 깨닫지 못해. 하지만 이제 너도 오십이 훨씬 넘었고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너무 많이는 아파하지 마. 250-251

대학교수였던 그녀의 아버지는 독재에 항거하며 '김재규' 사형을 반대하는 연판장에 사인한 죄목으로 대학에서 잘리고 고문을 받고 돌아와 앓아눕는다.

집안이 몰락하자 서울 변두리로 이사 갔고 대학 2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독일 유학길에 올랐고 지금은 독문학 교수가 되어있지만, 마약에 중독된 남편과는 이혼한지 오래였다.

그녀가 끝내 그에게 묻고 싶었던 말은 자신들의 미래를 결정해버린 그를 피해 달아난 자신의 모습, 그땐 너무 어렸고 어떠한 것이든 결정된 것을 받아들이기가 두려웠다는 그 마음이 와닿았다.

그들은 자연사 박물관 공룡 앞에서 만나기로 한다. 바로 사우르스는 1억 5,600만 년 전의 공룡이다. 그들이 헤어져 있던 40년이란 시간은 그에 비하면 먼지 같은 세월이라지만, 그래서 오래전 헤어진 첫사랑을 만나기에 좋은 장소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그녀가 문득 꺼내는 기억 속의 먼바다는 연한 에메랄드 빛의 서해, 몽유도이다. 그들이 중고 연합 여름 수련회를 갔던 장소.

물을 두려워했다는 그녀가 그를 따라나서 먼바다까지 헤엄을 쳤다고 그는 기억한다는데, 도대체 그녀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다는 거였다.

여전히 물을 두려워하는 그녀가 그런 사실이 있었다면 기억나지 않을 리가 없다고..

그녀가 묻고 싶었던 그날을 그는 기억 못 하는듯하다.

그렇게 그들은 서툴렀던 그들 사랑의, 절정의 순간은 잊은 채 살았단다.

-이하 생략-

 

- 40년 전 그해의 추웠던 여름, 농작물들이 냉해를 입었던 그해 여름처럼 그렇게 추운 여름이 있듯이 단 한 번도 뜨겁지 못했던 인생이 있는데, 하필이면 그것이 자신의 생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게 잃어버린 젊음 때문에 그녀는 단 한 번도 젊지 못했고 따라서 늙어가지도 못했다고 생각해 왔다. 방부 처리된 낱말들처럼 너무 조숙해서 성숙해지지 못한 애어른처럼. 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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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탕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7
이승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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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탕'은 대서양에 닿아 있는 작은 항구도시의 이름이다. 웬만한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는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을 세상의 끝이라고 여기고 사는데, 인구가 적고 외지인도 거의 드나들지 않는 이곳에, 5월 중순이 되면 그나마 북적대는 광경이 펼쳐진다. 바로 일주일간의 축제가 열리기 때문..

그 축제의 마지막 날에는 특별한 놀이가 있다. 바로 높은 나무에서 바다로 뛰어내리는 일..

성난 바다를 달래기 위해 희생자를 바다 한가운데 빠뜨려 제물로 바치던 의식이 성행하던 시절 사람들에게는, 그 제물이 바닷속 궁전에 들어가 산다는 믿음이 있었다지만, 그 미개한 의식이 폐지된 후에는 제비를 뽑았고, 지금은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관광객도 가리지 않고 뛰어내리는 놀이가 되어 있다. 그때 그 뛰어내리던 희생자들을 '파다'라 명명했고, 아직까지도 뛰어내리는 자들을 '파다'라고 부른다.

순화된 형태의 바다를 달래는 일, 인신 공양의 풍속을 놀이로 받아들여 '파다'를 자처하는 것은 '뛰어내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라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한 중수는'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J'로부터 특단의 처방을 받는다.

'하지 않던 일을 하고, 가지 않던 곳으로 가라, 계획도 세우지 말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며, 걷고 보고 쓰라'고..

'J'로부터 건네받은 주소지는 '캉탕'이었다. '한 중수'는 되도록 멀리, 이곳의 인력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떠나는 것에 동의했다.

그곳 '캉탕'은' J'의 외삼촌, '최 기남'이 살고 있는 곳.

[모비딕]에 미쳐 고래를 잡으러 바다로 떠났던 남자 '최 기남'.

그는 정박할 때까지는 바다에서 내리지 않는다는, 즉 바다를 탈 것 취급했던 사람인데 '캉탕'의 선술집 주인 딸, '나야'에게 반해서, 바다에서 내렸던 것이다. 그때 그의 나이 25세..

실제로 '최 기남'이 반한 건, '나야'의 노래였다. 그녀의 노랫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렸는데, '나야'는 '세이렌'이었을까..

이 이야기의 축은 과거와 죄책감이다.

그 축의 살이 되는 것이 [모비딕]과 '세이렌'과 '요나'이다.

'세이렌'.. , 절벽과 암초로 둘러싸인 섬에서 노래를 부르며 지나가던 뱃사람들을 유혹해 난파시키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치명적인 요정, '오디세우스'는 이 섬을 지날 때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은 뱃전에 밧줄로 몸을 메어두어 위기를 넘겼다.

이 '세이렌'이 사이렌의 어원이 된다.

'한 중수'에게 내려진 특단의 조치는 바로 이 사이렌 소리 때문이었다.

머리 한복판, 정중앙에서 시작되어 머리 전체로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는 사이렌 소리, 처음엔 스트레스와 피곤한 이유 때문이라 여겼지만, 그 소리와 진동에 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자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들은 이명이라 판단했고, 원인은 찾지 못했다. 'J'는 경고음이라고 여겨야 한다 했다. 잠정적인 후퇴,, 현실로부터 멀리, 현실이 간섭할 수 없는 낯선 곳으로 떠나는 처방을 내린 이유이다.

'캉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 중수'는 [모비딕]을 읽는다.

'캉탕'에서 만난 늙은남자 '최 기남', 현지 이름, '핍'..

'핍'의 집 2층에서 지내기로 한, '한 중수'에게

'핍'이 기거하는 1층의 어두운 방은, 흰 고래에 미친 선장 '에이 헤브'가 틀어박혀있던 선실같이 느껴져 음침하고 불길했다.

사실' J'로부터 '핍'을 소개받을 때 '한 중수'가 상상한 그의 모습은, 밝은 열정의 '조르바' 였지만, 현실 속 그는 [모비딕]의 집착과 어두운 광기의 뱃사람, '에이 헤브'의 모습이었다.

비사교적인 은둔자 '핍'은 하루에 한 번 외출을 하고

'한 중수'는 매일 '캉탕'을 걷는다. 어디에서나 바다가 보이고 어디서나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니체', '루소', '랭보'가 그랬던 것처럼..

- 이하 생략-

 

https://blog.naver.com/su430/222564159691

 

어렵게 말하는 사람에게 알아듣기 어렵게 말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렵게 말하는 사람은 쉽게 말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일 뿐이다. 쉽게 말하는 사람의 거침없음이 그에게는 없다. 이것은 정직성과는 다른 문제이다. 자기를 변호, 또는 보호해야 하고 타인의 반응을 예상, 또는 대비해야 하는 사람의 말은 직선일 수 없고 짧을 수 없다. 직선의, 짧은, 거침없는 문장은 권력자의 것이거나 바보의 것이다. 권력자나 바보는 고백을 모른다. 고백은 비밀을 가진 자의 문장인데 권력자와 바보에게는 비밀이 없기 때문이다. 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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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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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령은 주인공 '지연'에게 여름으로 기억되는 도시라 한다. 그녀가 열 살 때 열흘간 머물렀던 할머니의 집이 있던 그곳의 여름 냄새로 기억되는 곳..

그 이후 할머니와 엄마는 왕래하지 않았고 그녀 '지연'은 할머니도 초대하지 않은 채 결혼도 했었다가 이혼을 하고, 희령 천문대의 연구원으로 오게 된다. 그녀의 나이 서른두 살..

6년간의 결혼생활 끝에 남편의 외도로 선택했던 이혼이었지만,

밤에는 잠들지 못하고 불안으로, 분노로 낯선 장소에서 아파하던 그녀에게 같은 아파트 이웃이었던 어떤 할머니가 사과를 건넸고, 제 아픔에 겨워 주위를 깊게 보지 못했던 '지연'을, 그녀의 할머니는 이미 알아보고 있었던 듯..

 

조심스럽게 부담 안 주려고 거리를 유지하는 할머니와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그런 거리를 즐길 수만도 없는 그녀 '지연'은,

자신을 닮았다는 할머니의 엄마, 그러니까 그녀의 증조할머니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더 듣고 싶어하고 그녀들의 편지를 읽고 싶어 하면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지연'이

'나'의 엄마는 '길 미선'

'나'의 할머니는 '박 영옥'

'나'의 증조할머니는 '이 정선'이다.

증조할머니, '정선'은 백정의 딸로, 어릴 때 아버지가 죽고 병든 어머니를 부양하며 역전에서 삶은 옥수수를 팔아 생계를 유지했는데

그런 그녀에게 양민 남자 열아홉의 '박 희수'는 저고리에 검은 천(백정이라는 표식)을 매달고 행상하는 열일곱의 그녀가 천진난만한 호기심으로 물어온 말에 관심을 보였고, 일본 군이 그녀를 데려갈 것이라며 자기와 함께 개성으로 가자 한다. 실제로 일본군이 집으로 와, 공장에 취직시켜준다고 강제로 데려가려 했고, 그녀는 병 져 누워있는 엄마를 두고 개성 길에 오른다.

'박 희수'는 천주교 신자 집안의 후손이었고, 목수로 재산을 일군 아버지를 둔, 3남 4녀 중 막내였다. 그의 아버지는 백정의 딸을 며느리로 들일 수 없다면서 반대했고, 떠돌고 싶은 충동을 갖고 살던 '희수'는 '정선'의 아픈 어머니를 '새비 아저씨'라는 사람에게 돌봐줄 것을 부탁하고 길을 떠난다.

'정선'의 엄마는 딸더러 자기도 데려가달라 했다가 체념하면서 다음 생에는 너의 딸로 태어나 네게 못해준 것을 해주겠다고 한다.

'정선'은 고향에서도 백정이라고 놀림당했고, 개성에 와서도 백정이었다는 것이 밝혀져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의 고향이 '삼천'이라 해서, 그녀를 '삼천이'라 부른다.

'삼천'은 살기 위해 냉정하게 엄마를 버리고 떠나왔지만,

자신의 엄마를 돕던 '새비 아저씨'를 은인으로 생각했고 뭔가를 꼭 갚겠다고 다짐했다.

그녀 '삼천이' ,'나', '지연'과 닮았다는 것이 할머니, '영옥'의 말이다.

'영옥'이 간직한 오래된 사진 속에 증조할머니는 '지연'이 보기에도 자신과 많이 닮아있었다.

'삼천'의 엄마가 죽고 '새비 아저씨'가 처를 데리고 개성으로 온다.

고향이 새비라서 '새비 아저씨'라 불리던 그의 아내는 '새비 아주머니'라 불린다.

'삼천이', '새비' 둘은 막역한 친구 사이가 된다. 백정이라는 처지 때문에 한 번도 친구를 둘 수 없었던 '삼천'에게 '새비'는 커다란 위안이 된다.

그런 '삼천'이 딸 '영옥'을 낳고

'영옥'이 '미선'을 낳고 '미선'이 '지연'을 낳는다.

'새비'는 '희자'를 낳고.. 그렇게 여인 4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히로시마 원자 폭탄이 투하되고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그 시대를 살았던 '삼천'과 '새비'의 우정, 삶, 그들의 남편들 이야기가

할머니 '영옥'의 회상과 67년 전의 편지들로 씨실 날실이 되어 펼쳐진다.

 

- 이하생략- 

 

 

 

 

엄마는 일평생 내게 기대하고, 실망했다. 너 정도로 똑똑하고 너 정도로 배운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은 꿈도 꿔보지 못한 삶을 사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 엄마의 주장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진 것 별로 없는 그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내게 크게 실망했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정상 가족을 꾸린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는 것으로 마음을 돌렸다. 엄마는 사위를 살뜰히 챙겼다. 우리가 우리의 가족을 잘 굴려나가서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모습으로 살기를 기대했다. 나는 엄마의 그 작은 기대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엄마를 철저히 실망시켰다. 엄마에게 인정받기를 기대하고 번번이 상처받기보다는 내 일에서 인정받고 친구들에게 지지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아는 일을 내 가슴은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식은 엄마가 전시할 기념품이 아니야.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엄마의 바람이 단지 사람들에게 딸을 전시하고 싶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아팠다. 13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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