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에게 노벨문학상의 영광을 안겨 준 책, 선뜻 와닿지 않은 제목으로 인해 만 엔 원년의 뜻을 검색해 보게 했던..
만 엔은 일본의 연호이다. 1860-1861년,
1960년대를 살고 있는 27세의 기혼자이자, 보호시설에 아들을 맡긴 '네도코로 미쓰사부로'가 화자가되어 자신 가문의 불행과 서사를 이야기한다.
'미쓰'에겐 아내 '나쓰코'가 있고 둘 사이에 혹이 달린 아들이 태어난다. 열 시간의 수술 끝에 아기는 현실 세계에 대한 아무런 이해관계의 통로도 가져보지 못한 채 절대적인 평온함만 유지한 백치가 된다.
부부는 아기 혹의 제거가 가져다준 결손으로 중증 장애인으로 돌아온 아기를 보호시설에 맡긴다.
'미쓰'의 용모는 추하다. 어릴 적 이유를 모르는 돌팔매에 한쪽 눈도 시력을 잃은 채, 추함을 더하고 있다. 가문의 불행 가운데, 지금의 결손으로 인해 기대의 감각이 상실된 채로 있다.
그런 그에게 대학의 1학년 때부터 유일한 친구, 자신과 함께 번역 일을 하던 그가 얼굴과 머리에 붉은 페인트를 칠한 채, 항문에 오이를 쑤셔 박고 목을 매단다. 놀란 그의 아내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집으로 알려왔고, 그 수습을 '미쓰'가 하게 된다. 친구의 할머니는 "누구나 다 죽는 법이라네, 그러니 자기 마음에 드는 방법으로 죽는 게 제일이지"라고 위로를 한다.
그 친구는 1년 전 컬럼비아 대학 유학을 중단하고 스마일 트레이닝 센터라는 가벼운 정신 질환자 수용소에 있다가 난폭한 간호사를 두드려 패고 나왔다. 데모에 참가했다가 무장경찰의 몽둥이에 머리가 터진 이후로 머리 안쪽에 결손이 생겼는데, 이로 인한 조울증 증상이 있었다.
모든 일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미쓰'는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잠을 자며 꿈을 꾸다가 정화조를 위한 구덩이에 들어가 개와 함께 무릎을 꿇어 안고 시간을 보낸다. 그 구덩이에서 흙벽을 파내 무너뜨려 스스로 생매장 시키려는 듯이..
그리고 아내는 알코올중독이었던 장모님의 피를 물려받은 듯, '미쓰'친구의 장례식 이후 위스키를 마셔대기 시작한다.
친구가 미국에서 유학시절에 만났다던 미쓰의 동생 '네로코로 다카시'. 그는 일.미 안전 보장 조약 반대 운동 즉, 1960년 6월의 정치 행동에 참가했던 학생들의 전향극 극단인 참회 연극 공연으로 미국 시민들에 사과를 하게 하는 극단의 단원 자격으로 미국에 가있었다. 도망치고자 한다.
이야기는 1860년 만 엔 원년의 '미쓰'의 증조부와 그의 동생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큰형은 죽고 살아 돌아온 'S형',
1960년의 일본 최대 규모의 반전 평화운동에 가담했던 '다카시', 장애인 아들을 보호시설에 맡기고, 유일한 친구를 자살로 잃은 '미쓰'등 시간과 인물을 넘나든다.
귀국을 하게 된 '다카시'가 그를 숭배하는 어린 친위병들과 함께 '미쓰'의 집에 머물다, 악몽을 꾸는 형을 지켜보고는 새생활을 제안한다. 자신들의 고향, 골짜기 마을로 돌아가자고..'다카시'는 100년 전 가문의 추문과, 20년 전 가문의 불행을 미심쩍은 채 간직하고 자신의 뿌리를 확인하고 싶어 하고, 자신의 새로운 뿌리를 만들고자 한다.
고향에 자신의 증조부가 지었던 100년 된 곳간채를 슈퍼마켓의 체인점 주인이 사고 싶어 한다는 말과 함께.. 미국에서 슈퍼마켓 운영을 배워온, 슈퍼마켓의 주인은 자신들의 고향을 비롯한 여러 곳에 체인 스토아를 운영하는 재벌로, '슈퍼마켓 천황'이라 불린다.
밑바닥을 추락하듯 살아가던 '미쓰'부부는 도쿄 생활을 정리하고 동생 '다카시'와 그의 어린 추종자들과 함께 골짜기 마을, 자신들의 고향집으로 돌아간다.
고향집에는 어린 도련님 '미쓰'를 돌보았던 '진'이 결혼하여 네 자녀를 낳고 작은 농지를 경영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일본에서 가장 큰 체구를 지닌, 거인 여자로 신문에도 실렸던 바 있다. 그녀는 기절한 이후 비정상적인 공복감으로 괴로움을 호소하며 한 시간 간격으로 음식을 먹어대는 대식증이고, 다른 식구들은 거식증 증세인 듯, 먹기를 즐기지 않는다.
의문투성이인 가문의 추문과 불운은 두 형제에게 각기 다른 왜곡과 의미를 주는데,
1945년 가을 전쟁에서 살아온 둘째 형(S형)이 조선인 부락에서 돌에 맞아 죽은 일과 지능이 모자랐던 여동생의 자살, 아버지 죽음의 의문..
1860년 만 엔 원년에는 마을의 봉기를 일으킨 동생을 죽이고 자신의 결백을 보이려 그 살점을 먹었다는 증조부의 이야기가 있다.
슈퍼마켓 천황이 조선인 부락의 후손임을 알게 된 다카시는 자신의 목표를 확실하게 세우게 된다. 그리고 양계 사업을 망친 골짜기의 청년들을 모아서 풋볼팀을 만들어 훈련시키며 지도자가 되는데, 조선인들에게 경제적 지배를 받고 있다고 여기며 슈퍼마켓 천황을 향한 도발과 약탈 끝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을 일으키게 된다.
다카시는 농민봉기의 주동자였던 증조부의 동생, 그리고 조선인 부락을 습격했던 S형, 그리고 자신의 조선인 출신, 슈퍼마켓 재벌을 향한 도전을 결부시키며 영웅적인 저항자를 자처하며 가계에서 전형을 찾으려 든다.
여러 정황을 통해 드러나게 된 이들 가족사의 왜곡은 결국 '미쓰'의 빚진 마음을 덜어주는 듯 다시 아내의 제안을 받아 고향을 떠나 게 되지만, 결국 자신의 지옥을 극복한 이들에 대해, 스스로에 대해 양심의 재심을 받고자 한다.
1860년 만 엔은 '메이지 유신'을 앞둔 시기이다. 1858년 미국 함대의 침략으로 미. 일 친화 조약을 맺게 된 이후 영국, 러시아, 네덜란드, 프랑스 등과 통상조약을 맺고, 700여 년 막부 체제가 붕괴되어 가던 세기말의 징조가 나타나던 시기이다. 서양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이 진행되던 이 시기는 실제로 일본 전역에서 온갖 종류의 봉기들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에서도 1862년 진주 민란을 선두로 각지에서 농민봉기가 일어난다.
책을 읽는 동안 소름이 돋아났다. 숨죽이며 이 작가가 이 이야기를 어디까지 끌고 가려는지, 오래간만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동안 일본 문학을 작위적으로 읽어 보려는 노력이었는데, 어느 틈엔가 주기적으로 찾게 되었고, 그중 나는 이 작가와 이 책을 단연 1위로 올려 본다.
그리고 나의 리뷰가 너무 많은 흔적을 남겨선 안되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본다.
폭력, 화해, 치유, 용서, 혈통, 농민봉기, 메이지유신, 조선인 강제노동자, 일본에서의 부락의 개념, 마을, 공동체, 장애, 결손, 왜곡, 서사, 오해, 그리고 재심이란 단어까지 하나하나 노트에 써가며 그간 읽었던 책 중 가장 많은 메모를 해야 했다.
일본 근대문학이 낳은 최고의 작품이란 말을 100퍼 공감하며 지지를 한다. 행복하고 전율 넘치는 독서란 이런 작품을 만났을때라고 이시간 이후 처음만나는 사람에게 또 헛소리하듯 말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