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민음사 모던 클래식 75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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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 이 책을 읽으려 할 때 하필 일본과의 문제들이 시끄러웠던 시절이다. 너무 감정적으로 흐르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마음은 한편으로 접어두고, 당분간 일본 문학은 피해봐야지 했던, 그러나 이미 사 둔, 대기 중인 책들은 여럿이라, 그리고 딱 이 책을 읽을 준비였어서 많이도 아쉬운 미룸이었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5세 때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간 후, 영국 국적을 취득하고 일본어는 잘 모르는, 하여 영어로 작품을 쓰는 영미문학을 이끄는 거장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50인에 선정되었다고도 한다.

2차 대전이 종전된 지, 3년 후..

나, '마스지 오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멋진 정원을 가진 전통 깊은 저택을 시세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매입한 사연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집의 원래 주인은 '아키라 스기무라'로 30년간 이 고장에서 가장 존경받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는데, 그의 딸들이 경제적인 형편상 아버지의 집을 내놓으며 아버지가 인정할 만한, 진정 그 집을 소유할만한 사람에게 매각하고자 하는 원칙을 고수한다. 자신의 집안은 예술가들을 높이 평가하는 예술 애호가 집안으로 수많은 전시회를 후원해 왔노라 하면서,

때 '마스지 오노'(이하 '오노')는 유명한 화가였고, 국무성의 예술위원회에도 속해있던 충분한 명성을 얻은 사람이었다. 그는 겸손하게 말하지만, 짐작 이상으로 존경을 받던 사람이었다. 원래 집주인의 작은딸은 이 집의 소유권을 '오노'에게 넘기고도 전쟁 후에 이 저택에 폭격의 피해가 얼마인지도 궁금해서 찾아오기도 한다.

현재 '오노'는 은퇴 이후 침울한 생을 보내고 있다.

폭격으로 인해 아내 '미치코'를 잃고, 전쟁에 나갔던 아들 '겐지'의 유해도 전쟁이 끝난 뒤 2년여 세월 끝에 받아 늦은 장례식을 치른 참이다.

에게는 전쟁 전에 출가한 맏딸 '쎄스코'와 사위 '슈이치', 그리고 그들 사이에 손자 '이치로'가 있다. 수줍어하는 큰딸에 비해 조금 나대는 성격의 작은딸 '노리코'가 함께 집에 머물고 있는데, 전쟁으로 인해 혼기를 놓친, '노리코'가 얼마 전 자신 집안의 명망에 미치지도 못하는 '미야게' 집안과의 혼사 추진 중 파혼을 당했다.

손자 '이치로'와 장난을 쳐주던 '오노'는, 손자로부터 할아버지가 유명한 화가였냐는 질문과 함께 할아버지의 그림이 왜 집에 없냐? 할아버지의 그림이 보고 싶다는 말을 듣는다.

사위 '슈이치'는 지나치게 반듯하고 예의 바른 청년이었는데, 전쟁을 겪은 후 자신은 살아돌아 왔지만, 많은 친구들을 잃었고, 처남 '겐지' 마저 잃자 장례식을 다녀오면 늘 분노했고 자기 윗세대들에게 신랄한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딸과 사위, 모두 무모했던 전쟁의 어리석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만이 모두 '오노'에게 향하는 듯한 느낌을 어렴풋하게 받던 중 폭행당한 바보 청년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칠 수 없는 바보로 옛 군가와 선전문을 읊는 일에 집착해서 하루 종일 큰소리로 떠들고 다닐 뿐이었다.

사람들은 전쟁 전에는 그런 그의 처사를 보고 진정한 일본인이라며 돈도 주고, 먹을 것도 주는 등 인기가 있었으나, 패전 후에도 변함없이 바보처럼 소리치는 그를 화풀이하듯 두들겨 팬다.

리고 작곡가 '유키오 나구치'의 자살 소식을 접할 때 8세의 손자가 제 아빠에게 들었던 말을 한다. 자살한 사람과 할아버지의 공통점이 있노라고..

'나구치'는 일본 전역에서 유명했던 전장에서의 행진곡을 작곡한 사람으로 전쟁이 끝나자, 잘못된 노래였음을 인정하고 죽어간 사람들과 부모 잃은 소년들을 생각해서 사과해야 한다고 느껴, 죽음을 택했다고, 실수를 용감하게 인정할 줄 아는 사람으로 존경할 만 인물이었다는..

자신에게 석연찮은 작은딸과 함께 살면서 그녀와 혼담이 오가는 명문가의, 도쿄대학에 몸담고 있는 미술계 인사, '사이토 박사'의 집안을 의식한 큰 딸이 뭔가 조치를 취할 것을 압박해오자, ( 그 당시 명문가들은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사돈 집안을 캐내는 분위기였다 한다.) '오노'는 그간 자신의 인연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이미지 세탁쯤 되는듯..

그리고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흐름으로 전개된다.

쟁 후의 피폐와 많은 변화의 조짐 속 과거의 술집 '미기 히다리'를 떠올린다.

'미기 히다리'라는 장소는 아주 오래된 술집으로 천황폐하에게 충성을 하는 작품들을 제작하던 예술가, 작가들이 모이던 곳이다. 예술가들에게 그곳은, 일본의 새로운 정신, 삶을 즐기는 곳으로 그곳의 번창에 '오노'가 한 몫을 기여한 곳이다. 고정의 좌석까지 두고, 여러 날들을 제자들과 드나들며, 쾌락의 추구와 퇴폐가 한 통속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곳은 취하는 사람들의 자긍심과 품위유지를 위한 세련된 장소이기도 했다.

그림을 배우러 '다케다' 작업장에서 '모리야마' 스승의 저택으로 옮긴 이후 스승으로부터 그림을 배우며 동료들과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가 되고자 했던 '오노'..

그의 스승 '모리'는 서구적인 방식을 선호해서, 유럽인들의 작품 속에서 힌트를 얻는 색채를 사용하는 대가였다.

 

'오노'에게 '마쓰다'라는 전시회의 담당자가 찾아오게 되는데, 만남을 거듭할수록 그는 예술가들의 퇴폐성을 꼬집으며 이 세계를 모른다고 야유하면서 대의를 말한다.

부유하는 세상, 그것은 밤과 일체가 되었다가 아침과 함께 사라지는 것, 스승은 그것이야말로 예술의 아름다움이라 믿었고, '오노' 역시 그것을 즐기고자 했으나

'마쓰다'는 일본 회화 신세대로써 이 나라 문화에 대해 커다란 책임을 갖고 있다면서 '오노'를 자극한다.

천황 중심의 강력한 왕권 확립을 되찾기 위해, 가난을 극복하고 부유한 제국건설을 위해 그것은 혁명이 아닌 회복이라고.. '마쓰다'의 회유대로 '오노'는 결국 부역을 하게 된다.

새로운 접근법과 진짜 중요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나머지 국민에게 의미 있는 기여를 한 작품을 하고자 했던 그는 '마쓰다'와 지나던 하수구 냄새나던 빈민가에서 뛰어놀던 세 소년과 쾌적한 술집에 앉아 있는 뚱뚱한 신사들의 퇴폐적인 표정을 대조가 되게, 일본 열도 모양의 테두리 안에 그려 넣는다. 여백에는 붉은 글씨로 '현실 안주'라는 제목과 작은 글씨로 '이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존엄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있다.'

이 그림을 우연히 보게 된 동료 '거북이'가 "이거 농담이죠?" 묻고는 "배신자"라고 외치고 떠나고, '거북이'가 말한 배신의 의미는 스승 '모리'가 지향하는 바와 동떨어 진 데 대한 충격이었고, '오노'는 스승 '모리'와 대면을 한다.

- 중간 생략-

 

쟁을 치른 젊은 세대들의, 전쟁을 조장한 기성세대를 향한 분노와

진정한 잘못이라고 직접화법으로 말하진 않는 '마쓰다'와 '오노'

미국의 영웅 '뽀빠이'에 빠진 손자 '이치로'를 비롯한 청년들의 미국스러운 것에 대한 갈망과 일본의 미래에 대한 낙관이 아주 낯설지만, 아니 불편하기도 하지만, 작가의 잔잔하고도 날카로운 묘사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전쟁 행진곡을 만들었던 작곡가를 비롯해서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이끌었던 지도자들이 패전 후 자살했다는 일들과, '오노'는 과연, 일본인스럽다는 생각..

화가든 예술가든 '부유하는 세상'에 머물 때 진정한 예술인이겠지.. 그리하여 적당히 쾌락적이고 심미적이고..암튼 정치에는 기웃거리지 말자는 메시지도 남기려 했나?..

읽어내려가면서 그들의 명분이 우리와 맞닿아 있어 분노가 일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문학을 접하려는 예의를 갖췄다. 그런데 이 작가 매력적이다. '남아 있는 나날'도 곧 입수해야겠다는 생각과 '부유하는 세상'이란 제목의 서정성과 그 지향이 매우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화가가 포착하고자 하는 가장 섬세하고 부서지기 쉬운 아름다움이 해가 진 뒤 환락의 집 안에 떠돈다네. 그리고 이런 밤 들이면 말일세. 오노, 그 아름다움 중 어떤 것이 이곳 우리의 거처로 은연중에 스며든다네. 하지만 저기 있는 저 그림들은 그런 덧없고 꺼지기 쉬운 꿈같은 그 무엇을 암시조차 못하지. 저 그림들에는 지독한 결점이 있다네. 오노."

"하지만 선생님, 제 눈에 저 판화들은 바로 그런 것들을 가장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요."

"저 판화를 작업할 때 나는 무척 어렸네. 그때 내가 부유하는 세상을 제대로 그려 내지 못한 이유는 나 자신이 그 가치를 믿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네. 내 생각에 나는 그런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그렇게 형태 없고 일시적인 것들을 기리는 데 자기의 솜씨를 탕진하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낭비이지 퇴폐라고 여겼던 것 같네. 하지만 한 세계의 아름다움, 그것의 진짜 유효성을 의심하는 한 그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향유하기란 어렵다네."201-202



지난 세월 동안 저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환락의 세계를 관찰하고 그 깨질 듯한 아름다움을 인식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것을 향해 나아갈 시기라고 느낍니다. 선생님, 요즘 같은 혼돈스러운 시기에 예술가들은 마땅히 아침 햇빛과 더불어 스러지는 그런 쾌락적인 것들보다는 보다 분명한 무엇을 소중히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예술가들이 언제나 퇴폐적이고 폐쇄된 세상에 머물 필요는 없습니다. 제 양심은, 선생님, 저에게 부유하는 세상의 예술가로 영원히 남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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