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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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턴트 소설, 이런 류의 소설을 나는 [인스턴트 소설]이라 명명해 본다.

문학적인 요소는 거의 없고, 그 시대를 조금 앞서 읽어낼 수 있는.. 딱 그 시대만 반영하는..

가볍게 접근하고, 또 쉬이 읽히지만, 울림도 감수성도 없고, 적어도 이십 년쯤 후에는 아무도 읽지 않을 소설..

하지만 무시한다는 건 아니다.

고전을 지향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 그렇게 여겨진다는 것이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시대의 유행이 되기도 하는 베스트셀러, 이런 류의 소설들을 간과할 수는 없는 나도 결국엔 읽어내게 되니깐..암튼 그 시대를 사는 그 세대만의 공감과 그 시대 만의 위로가 절대 필요함도 충분히 인정한다..

게 있어 [82년생 김지영]도 이런류로 분류되었다.

또 [인스턴트 문학],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그랬고, 힐링 에세이류가 그러하다.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며, 분류일 뿐이다.

'후루쿠라'는 어릴 때부터 조금 많이, 아니 한참 다른 여자아이였다. 그녀의 엽기적이기까지 한 언행에 부모를 비롯한 아이, 어른들이 모두 놀라게 되고, 그녀는 자신이 뭐가 다른지, 뭐가 문제인지를 스스로 모른다.

가족의 사랑과 기다림과 걱정 속에서 자신의 무언가를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자각을 하게 된 그녀는 필요한 말만 하고, 자진해서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을 대부분 혼자 보내던 그녀가 대학을 가고 1학년의 어느 날, 길을 잘못 들어 헤매던 빌딩 숲에서 '스마일 마트 하이로 마치(편의점) 역전점 open' 광고를 보고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세상과의 접점이 없었던 그녀는 오픈 첫날 사원의 칭찬을 받으면서 비로소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자신이, 바로 이날 탄생했다고 여기게 된다. 그로부터, 그곳 편의점에서 점원으로 일한 지 18년, 그녀의 나이 36세가 되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점원들과 점장들이 바뀌었지만 그녀는 베테랑의 점원으로, 아르바이트 신분으로 남아 있다.

녀의 단골 고객,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는 편의점에 올 때마다 "정말로 여기는 변함이 없어~"라고 하는데

그곳 사람들과 물건들이 교체되고 있을 뿐, 줄곧 같은 광경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고, 그녀가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상품의 진열과 주력 상품과 홍보 상품 등의 적절한 위치와 시기들의 매뉴얼에 너무도 익숙해진 그녀는 사생활조차도 편의점 위주로 살고 있다.

출근을 위한 컨디션 조절, 근무를 위한 체력 유지 ..

- 이 매미 허물 속을 걷고 있는 듯한 세계 어딘가에서 내 '손님'이 잠자고 있구나 하고 멍하니 생각한다. 51

녀에게 있어 편의점은 완벽한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면 되는 곳이지만 매뉴얼 밖에서는 어떻게 해야 보통의 인간이 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편의점의 점원으로서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고, 그것만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고까지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매일 대면하는 사람들, 점장, 알바 팀장, 아르바이트생들, 전에 함께 일했던 점원들, 그들의 말투를 닮아가고, 화장과 옷차림도 따라 해가면서, 지금의 자신을 형성한 것이 그들이라고..

-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가족이 왜 그렇게 나를 고쳐주려고 하는지, 겨우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98

분노란 것을 모르는 그녀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화내는 것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지만, 맞장구를 쳐주면 불가사의한 연대감이 생기고, 자신의 공감에 기뻐하는 상대의 표정을 관찰하면서 자신도 인간처럼 보이는구나, 자신도 인간이 되어있구나 하면서 안도를 하는데..

- 내가 보기에 차별하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한 부류는 차별에 대한 충동이나 욕망을 자기 내면에 지니고 있지만, 또 한 부류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여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차별 용어를 연발할 뿐이다. 82

번씩 만나게 되는 동창 친구들이나 그녀의 가족, 그중에서도 먼저 결혼한 여동생은, 그녀의 결혼이나 연애, 그리고 제대로 된 직장에 대해 걱정이란 이름으로 그녀를 자꾸 힘들게 한다.

그녀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연애 한번 안 하는 것에 대해, 동생이 일러준대로

친구들에게는 지병이 있어 몸이 약하므로 아르바이트 밖에 할 수 없다고,

편의점의 점원들에게는 부모가 병약해서 보살펴 드려야 하므로 아르바이트 밖에 할 수 없다고 변명을 해왔다.

- " 이 가게는 정말이지 밑바닥 인생들뿐이에요. 편의점은 어디나 그렇지만,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주부, 이렇다 할 장래 설계도 없는 프리터, 대학생도 가정교사 같은 수지 맞는 아르바이트는 할 수 없는 밑바닥 대학생뿐이고 나머지는 일본으로 돈 벌러 온 외국인이죠. 정말로 밑바닥 인생뿐이에요. 82-83

편의점에 35세의 '시라하'라는 빼빼 마른 남자가 아르바이트로 들어오게 된다. 그는 신석기 시대를 들먹이면서 불평하고, 게으름과 농땡이를 피우며 폐기한 음식을 몰래 먹고, 손님과 알바생에게 집적거리기도 한다. "인생 종친 거야, 그 녀석은 안돼, 사회의 짐이야, 인간은 일이나 가정을 통해 사회에 소속하는 게 의무야.. "

점장을 비롯한 모든 점원들이 그를 싫어하게 되고 결국엔 쫓겨나게 된다.

이 둘은 결국 기막힌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녀는 이물질이 되지 않으려고, 배제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고

그는 밖에서는 자신의 인생이 강간당했노라고, 사람들로부터 숨을 곳이 필요하고, 마침 월세도 밀린 참이라..

조에서 지내는 '시라하'는 세상이 불완전한 탓에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지만, 자신은 평생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고, 간섭받고 싶지 않고, 그냥 숨을 쉬고 싶을 뿐이라며 뻔뻔하게 무위도식을 한다. 그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취직을 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줄곧 재판을 받아야 하는 삶이, 언제부터 잘못되어 왔는지를 조사하려고 역사 공부를 하다 보니, 그것이 메이지,에도, 헤이안을 거슬러 석기시대였다는 것이다.

-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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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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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의 대표작이다.' 숨그네'.. 란 목숨이 삶과 죽음 사이를 그네처럼 왔다 갔다 한다는 뜻으로 수용소에서의 삶이 그처럼 위태로웠다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미미했다는 정도 되겠다.

이 같은, 이 작가만의 독특한 단어의 조합은 고된 수용소 살이를 하는 주인공을 통해 빛나는데, 언어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소설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한편의 시집 같기도 하고, 산문집 같기도 한 이 소설을 가슴에 새겼다는 이들도 많았다.

적인 감성과 언어로 승화시킨, 절망과 절박함이 이 소설의 대체불가한 매력일 수 있다.

'레오폴트 아우베르크'(이하 '레오'라 한다.)는 17세의 동성애자이다. 그는 루마니아의 독일계 민족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 미술교사인 아버지와 어머니와 살고 있다.

공원 등지에서 소위 '랑데부'라는 밀회로 여러 남성 파트너들과 아슬아슬한 사랑을 즐기면서 언젠가 들킬 것을 염려하며 차라리 나를 모르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있다.

1944년 여름 루마니아가 소련에 항복을 하고 독일에 전쟁을 선포하는데, 1945년 1월 나치에 파괴된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넘겨 달라는 요구로 17-45세의 남녀들이 강제 수용소로 가게 된다. 그 명단에 '레오'가 있었다.

할머니의 '너는 돌아올 것이다.'라는 문장을 새기고 러시아 포로수용소로 향한 '레오'는 고된 노동과 학대,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나간다.

수용소에서 나온 침묵은 복종이라 한다. 수용소에서 할 일은 복종뿐이다.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죽음과 불안과 고통 속에서도 고향과 유년기 가족을 추억하며 버티는 힘은, 노동의 도구 하나하나, 노동의 재료 하나하나를 노래하듯이 시를 읊듯 하며 무심하게 순응하는 것이다.

시적인 언어들이, 감정의 절제가, 더 처연하게 다가온다. 처연함,, 그리고 몽환적이기까지 하다.

1950년 1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가족들 모두 그가 죽었으리라 추모해왔던 터라 서로 무덤덤한 일상을 보낸다. 막일꾼으로 취업을 하지만, '배고픔의 천사'와 싸워야 했던 굶주림의 시간을 견딘 후 가족과의 식사시간은 그의 기이한 식습관으로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레오'에게 있어 '배고픈 천사'는 자신을 괴롭힌 것이 아니라 자신을 구한 장본인이라 여기며 차라리 수용소 생활을 그리워하기조차 하는 태도이다.

려난 몸으로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외톨이의 삶을 살다가 어느 날 노트를 구입하고는 그 장소에서의 그 시간들을 기입해둔다.

콘크리트 전문가가 되려고 등록하면서 만난 여인' 에마'와 결혼을 하지만 여전히 그는 '랑데부'의 장소를 기웃거리는 동성애자이다. 파트너들의 잇따른 체포 소식에 고모가 있는 오스트리아에 방문차 떠나면서 아내에게 돌아오지 않겠다는 엽서를 남기며 11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낸다.

그리고 여전히 들짐승처럼 닥치는 대로 상대를 바꿀지언정,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자유가 두려운 노동에의 강박을 갖고 열심히 일하지만 누구도 그 자신을 소유하지 못하게 한다.

마니아의 이 강제추방 사건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못하던 그 나라, 그 민족의 아픈 역사이다.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이 생활을 기록하던 작가가 실제 같은 일을 겪은 동료 작가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책을 쓰기로 하는데, 결국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갑자기 세상을 뜨는 바람에 상실감으로 한동안 침잠했다가 고심 끝에 이 소설을 쓰기로 했다고 한다.

'심장삽', '초승달 마돈나', '감자인간', 하조베', '대리형제', '배고픈 천사', '뼈와 가죽의 시간', '향수'등의 단어들과 소제목의 문장 자체도 경이롭다. 한 문장, 한 단락 사이에 텀이 필요했다. 문장을 읽어나가다가 애절하고 미어지는 가슴과 함께 호흡을 위한 텀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런 작품, 이런 문장들을 만나면 발바닥 끝에서 부터 일어나는 전율이 심장까지 올라와 사람을 먹먹해 지게 한다.

수용소의 삶이란, 우리와 동떨어진것만은 아닐것이다. 강제 포로수용소에서의 삶같은 인생도 있는것이니까, 우리 마음속에 만들어놓은 수용소도 있을테고..그런 삶에서도, 그런 고독과 절망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힘, 각자에게는 무엇인지?..

- 섬세하게 조각된 나무의 틈을 빛이 뚫고 들어왔다. 나는 갈퀴 달린 하얀 덩굴손을 따라 이어지는 텅 빈 동그라미. 네모, 사다리꼴의 두려움을 보았다. 그것은 내 혼돈의 무늬였고, 어머니의 얼굴에 나타날 혐오의 무늬였다. 10



- 그 말을 작정하고 마음에 새긴 것은 아니었다. 나는 그 말을 대수롭지 않게 수용소로 가져갔다. 그 말이 나와 동행하리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그런 말은 자생력이 있다. 그 말은 내 안에서 내가 가져간 책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너는 돌아올 거야는 심장삽의 공범이 되었고, 배고픈 천사의 적수가 되었다. 돌아왔으므로 나는 말할 수 있다. 어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한다. 17



수용소를 나온 지 육십 년이 지나도 음식을 먹을 때면 너무나 흥분된다. 나는 온몸의 구멍을 모두 열어젖히고 먹는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은 불편하다. 먹을 때 나는 독재자다. 입의 행복을 모르는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예의를 차리며 먹는다. 그러나 먹을 때 내 머릿속에는 여기 앉아 있는 우리처럼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찾아올 한 방울 넘치는 행복이 스쳐간다. 머릿속의 새 둥지. 숨결 속의 그네, 가슴속의 펌프, 배 속의 대기실을 내주어야 할 그 순간, 먹는 게 너무 좋아서 죽고 싶지 않다. 죽으면 먹을 수 없으니까. 나는 지난 육십 년 동안 나의 귀향이 수용소의 행복을 누그러뜨리지 못했음을 안다. 수용소의 행복은 그의 배고픈 입으로 오늘도 내 모든 감정의 한복판을 메어 문다. 내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다.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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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 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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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은 철학자도 아니고, 실존주의자도 아니라고 굳이 말하는 '알베르 카뮈'의 '철학 에세이'이다.

'카뮈'는 프랑스의 영이었던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전쟁으로 부친을 잃고는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한 시절을 보냈다. 그는 평생 인간의 부조리에 대해 탐닉했는데,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라는 작품이 인간 부조리 극의 정수로 일컬어진다는 나의 리뷰를 돌아보며 그리고 끊임없이 기다리는 일만을 일삼는 두 주인공의 행위에 대해 먹먹했음이 떠오르기도 했다.

작품은 같은 해 그보다 먼저 발표한 '이방인'의 철학적 뒷받침 내지는 철학적 근간을 이룬다고도 한다. 책의 초반부에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라는 문구를 읽을 즈음, 정치인 '정두언'님의 자살 소식이 들려왔다. 우울증이라고도 한다. 마음의 병이 육신의 병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분, '카뮈'는 이 명제를 어떻게 끌고 나가려는 걸까? '이방인'의 강렬했음을 떠올렸다.

러나 그는 '반항'을 역설한다. 깨어 있는 의식을 가진 인간으로서, 궁극의 종말이 예정되어있지만, '반항'이 삶의 가치를 부여하고, 삶의 위대함을 회복시킨다고..

그리고 '자살'을 거부한다고,

덕, 예술, 음악, 무용, 이성, 정신과 같은 이 땅에서 사는 보람을 느끼게 하는 그 무엇, 모습을 바꾸어 놓은 그 무엇, 무엇인가 세련되고 광적인, 또는 신성한 그 무엇이 생겨난다고..

여러 철학자들의 이름이 나오고, 토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그리고 '악령'이 등장한다. '악령'은 차마 못 읽고 있는데, 이참에 읽어야 하나 하는 의무감? 호기심?..

'시지프스'는 신들로부터 산꼭대기까지 바위를 끊임없이 굴러 올리는 형벌을 받은 인간이다. 거대한 돌을 들어 산비탈로 굴려서 올리면, 그 무게로 인해 다시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시지프스'는 밑으로 내려가서 또 들어서 위로 올리는 반복을 되풀이한다. '시지프스'의 이 무용하고 희망 없는 노동이 오늘날 노동자들의 그 생애의 그날 그날의 똑같은 작업에 비유하며 '시지프스'가 애써서 올린 돌이 굴러서 내려간 곳으로 다시 향하는 잠시 동안의 그 휴지기에, 과연 그는 불행하기만 했을지? '시지프스'의 성실성, 행복한 '시지프스'도 마음에 그려보아야 한다고 결론을 짓는다.

운명은 의식이 깨어 있는 드문 순간에만 비극적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반항하지 않는 시간, 하여 의식이 없는 시간은 과연 희극일까?

인간이 궁극적 종말을 스스로 선택하는 일은, 종교를 떠나서, 비극이기만 한 걸까? 자신의 숨을 스스로 놓아버리는 삶도, 그런 용기도 어떤 이들에게는 희극일 수도 있지 않는 건지 조심스레 나에게 던져본 지 이미 오래이다.

책의 반은 작품의 해설과 작가의 연보이다. 해설은 읽지 않기로 한다.

'이방인' 같은 경우는 또다시 읽어보리라 하는 부류이지만, 이 책은 글쎄다

내가 반이나 이해를 했던 건지...

'카뮈'는 노벨문학상을 받고, 47세의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죽는다

 

 

-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 15



- 지금까지 자살은 그저 사회적 현상으로만 취급되어 왔다. 그와는 달리 여기서는 우선 개인의 생각과 자살의 관계가 문제다. 자살과 같은 행위는 마치 어떤 위대한 작품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침묵 속에서 준비된다. 당사자 자신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17



- 자살에는 수많은 동기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볼 때 가장 표면적인 이유들이 가장 유력한 이유들은 아니었다. 깊이 반성 한끝에 자살하는 일은 드물다. 거의 언제나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위기의 발단이 된다. 신문에서는 흔히 ‘실연‘이니 ‘불치의 병‘이니 운운한다. 이와 같은 설명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그날, 절망에 빠진 사람의 친구 하나가 그에게 무관심한 어조로 대꾸한 적은 없었는지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바로 그가 죄인이다.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그때까지 유예 상태에 있던 모든 원한과 모든 권태가 한꺼번에 밀어닥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18



- 자살은 어떤 의미에서 그리고 멜로드라마에서처럼 하나의 고백이다. 그것은 삶을 감당할 길이 없음을 혹은 삶을 이해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18-19



- 그러나 이와 동시에 부조리의 인간은 자신이 지금까지 자유의 전제에 매인 채 그 환상을 먹으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이 그에게는 속박이었던 것이다. 자기 인생에 어던 목표를 상정함으로써 그는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의 요청에 순응했고 그리하여 자신의 자유의 노예가 되었다.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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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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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리크라는 이 신비한 작가는 그 글에 빠져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그러나 빠져보면 그 강렬함을 거부할 수 없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까.. 속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ㅎㅎ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독일문학은 이 천재적인 작가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지 않았는가 한다. 특이하기도 한 그만의 개성은 황당하게 여겨지기도 하는데 혀를 내두르게 되는 통찰이 있다.

뭔가 남들과 한참 다른 삶을 살고,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하는 것 같은 이 사람.. 향수를 제외하고는 너무도 짧고, 경쾌하고 엉뚱한 소재들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일종의 촌철살인의 향연이라고나 할까. 암튼 대체 불가한 그의 세계, 그의 작품들이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독자들은, 알면알수록 그를 연민한다.

[깊이에의 강요] - 젊은 여류 화가가 자신의 전시회에서 어떤 평론가로부터 "당신은 재능이 있고, 호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깊이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 내용이 신문에 실린다.

그녀는 깊이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반추하고 좌절하느라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심지어 일상생활의 유지도 못하며 영락의 길을 걷다가 파멸을 선택한다. 그리하여 자살에 이른다.

그리고 그 평론가는 다시 이런 내용을 쓴다. 비극적 종말의 씨앗은 이미 그녀의 작품들에서 나타나고 있었다며, 깊이에의 강요를 언급한다.

결국 그는 깊이 없는 손놀림과 말 한마디로 재능 있는 예술가를 파멸시킨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함부로 쓰지 말 것, 함부로 말하지 말 것, 깊이 없이 던지는 말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교훈.. 리뷰도 댓글도 되새겨 보아야 할것같네..

[승부]- 체스를 두는 이야기이다. 70세의 체스 고수 '장'에게 도전한 낯선 젊은 남자를 이미 '장'에게 수도 없이 패배해와서 복수심 가득한 체스를 두는 관중들이 두 사람의 게임을 보느라 에워싸고 있다.

고수 '장'은 꾀죄죄한 몰골이지만 그간의 체스판에서 번번이 상대방을 지게 하고, 지치게 하고, 분개하게 하여 증오심을 품게 했던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도전자는 젊고 말쑥한 옷차림의 낯선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당한 패배의 앙갚음을 이 도전자가 해주기를 바란다.

도전자는 과감하고 모험적이며 독창적으로 체스를 둔다. 자기의 손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을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대담하여 고수 '장'은 긴장하고 더 소심하게 방어를 한다. 그가 정석대로만 두려 하고 진을 빼는 진부한 수법을 쓴다고 군중들이 야유를 하기도 한다.

내심 도전자의 위력적인 공격을 보고 싶어 하고, 그의 승리로 늙은 고수가 바닥에 꼬꾸라지는 장면을 보고자 기다리던 사람들의 기대에 안 맞게 도전자는 알 수도 없는 수를 쓰다 결국 패배를 하는데, 무례하게도 자신의 킹을 쓰러뜨려 버리고는 가버린다.

고수는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지만 가장 졸렬한 체스를 두었다고 생각한다. 흐트러진 말들을 주워 담으며 방금 둔 체스의 수 하나하나와 상황들을 머릿속에서 더듬어보며 알고 보면 형편없는 수준의 도전자였는데, 평소와 다르게 상대의 약점을 전혀 탐지해 낼 수 없었음을 인정한다.

젊은이의 자신감, 후광은 자신이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고, 본인도 도전자에게 감탄을 했으며 내심 자신도 체스 고수라는 부담스러운 자리를 내어주고 싶었노라고.. 그리하여 악의와 시기심 넘치는 군상들에게 만족을 안기고 평온을 찾길 바랐다고..

가장 하찮은 풋내기에 무릎을 꿇었고, 두는 내내 자신을 부정하고 낮추었다고..

그리하여 그의 승리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어서 결국엔 패배한 것이라고, '장'은 체스를 영영 그만두겠다고 결심한다.

체스를 전혀 모르는데도 그의 관찰력과 묘사가 어찌나 뛰어난지 숨이 막혀 온다. 독보적인 그의 글쓰기에 감탄했던 작품이다.

[장인 뮈사르의 유언] - 미래의 미지의 독자에게 쓰는 금세공사의 유서이다. 의사들은 그의 병을 위장 마비라고 진단하는데, 그는 구두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파리의 금세공사가 되어 성공을 하고 돈도 많이 벌지만 유력인사들과 교류를 하면서 지식의 습득에 탐닉한다. 그리고 60세가 되기 전에 모든 사업을 접고 지방에 저택을 지은 후 정원을 가꾸면서 여생을 보내고자 한다.

그런데 응접실 앞에 정원사가 심은 장미가 자라지 못하고 죽자, 화단을 갈아엎어 테라스를 만들고자 직접 삽을 들고 나선다. 그러나 돌에 부딪치고, 돌을 파내다가 돌조개를 발견한다. 그리고 온천지에 조개, 조개 암석, 조개 모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지구의 조개 화가 급속도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달도 조개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하고, 우주의 조개화도 이야기하다가 인간 육신의 조개화도 이야기한다.

이런 황당한 가설을 뒷받침하고자 인간이 잉태된 순간은 점액질이었지만 자궁에서 자라는 과정에서 앙금이 형성되고 인간이 화석 화가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피부가 거칠어지고, 머리카락이 갈라지고, 심장, 두뇌의 석회화와 등이 꼬부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조개의 내적 구조를 좇아 인간의 육체가 안으로 구부러지고 휘게 된다고도 한다. 결국은 조개 병이라고 한다.

자신의 죽음은 끝이 있어서 마음이 가볍다고, 그대들은 아직 한가운데 있으므로 불쌍하다며 유서를 접는다.

황당한 내용이지만, 인간의 몸에 석회질이 쌓여 가는 것은 맞다.

결국은 노화도 죽음도 석회화, 조개화 인가? ㅎㅎ 진짜 기발난 상상력이다.

[문학적 건망증]- 이것은 에세이이다. 어떤 책이 자신에게 감명을 주고 아로새겨 졌는지, 어떤 책이 내 인생을 변화시켰는냐는 질문에 자신의 서재를 돌아보다가 무심히 집은 책에서 앞서 읽은 이의 밑줄 친 부분과 낙서가 자신이 생각과 일치함을 보면서 정서적 연대감을 품는다.

그러다가 그 낙서가 자신의 것이었음을 깨닫고 어차피 잊어버릴 것을 왜 읽는가? 왜 다시 읽는가? 어차피 죽을 것을 왜 사는가?라는 회의까지 품는다.

모든 서가의 책들을 한때 열렬히 읽었고 나름의 감명을 주었음에도 저자도, 존재도 잊혔음에, 심지어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결말에 이르기도 전에 처음을 잊어버리기도 한다며..

그래서 우리가 블로그를 하는 겁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님^^~

 

책을 읽을 때에도 인생 항로의 변경이나 돌연한 변화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일 수도 있다. 의식 깊이 빨려 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직접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이 병은 축복, 거의 필수적인 조건일 수 있다. 그것은 위대한 문학 작품이 꼼짝 못 하게 불어넣는 경외심 앞에서 그를 지켜주고 표절의 문제도 복잡하지 않게 해준다. 그렇지 않다면 독창적이 넋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92-93



- 이 무서운 건망증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각한다. 있는 힘을 다해 레테의 물살을 버티어 내야 한다. 허둥지둥 글 속에 빠져들지 말고, 분명하고 비판적인 의식으로 그 위에 군림해서 발췌하고 메모하고 기억력 훈련을 쌓아야 한다.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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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풍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
장 지오노 지음, 박인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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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 프랑스 영화를 본듯한 결말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었다고 하고, 개방된 구성을 취하고 있으므로 나머지는 독자에게 맡긴다는..

작가 '장 지오노'는 구두수선공 아버지와 다림질공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초기엔 남프랑스의 자연친화적인 삶을 그리다 2차 대전 이후 반전 운동에 가담하여 두 차례 투옥된 이후 문명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의 후기 대표작이고, 이 작가는 평생 태어난 곳을 떠나보지 않은 작가라고 한다.

자인 나를 비롯해 이 마을 사람들이 어느 날 40대의 호남 '조제프' 씨의 출현으로 웅성거린다.

'조제프' 씨는 과묵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멋부린 흔적이 있는 옷을 좀 잘 입는 남자로 이 조그만 도시의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 도시에는 한때 위풍당당했던 '폴란드의 풍차'라는 영지가 있는데, 폐허가 되어버린 이 영지를 '조제프 씨가 차지하게 되는 이야기를, 화자가 회상하며, 또 '조제프' 씨에게 그 영지에 얽힌 '코스트 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폴란드의 풍차'는 폴란드 순례자가 로마로 가다가 이곳에 오두막을 짓고 기거했던 곳이다. 어느 날 '코스트'라는 사람이 두 딸을 데리고 이곳에 나타나 건물을 세운다.

'코스트'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로 격렬하고 급변하는 기질의 소유자이다. 과묵하지만 왕처럼 옷을 입는다. 그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두 딸 '클라라'와 '아나이스'가 있다. 중매쟁이 '오르탕스' 양에게 자신의 집안은 신이 망각한 집안이라며 딸들의 혼처는 그저 신이 생각하는 집안이 아닌, 평범하게 밥이나 먹고사는 집으로 정해주기를 요구한다.

아내와 두 아들을 짧은 간격으로 연달아 잃게 된 '코스트'의 바램은 두 딸의 평범한 삶뿐인 것이다. 매우 평범한 집안인 '드- M' 가의 형제를 사위로 삼은 '코스트'는 메기를 잡은 낚싯바늘에 찔려서 죽게 된다.

언니인 '클라라'는 이 형제의 형인 ' 폴. 드. M'과 결혼해서 그의 세습지에 신혼살림을 꾸리고 아들 '앙드레'와 '앙투안느'를 낳는다.

-중간 생략-

운명은 정해져 있다. 운명은 선택할 수있다의 논쟁은 숙명론에 방점을 찍으면 나이가 든거고, 개척할수 있음에 방점을 찍으면 젊은이의 사고방식이라고, 우리는 각자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을 알수없기 때문에 오늘을 열심히 살 수있고, 또 젊은 친구들이 숙명론 보다는 개척의 의지를 갖게되는 사회가 바람직 하겠지 ...

 

황소 같은 남편들은 자기 아내들에게서 늘 충족된 관능을 태어나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남편들은 묵직한 정신적인 행복, 편안한 이기주의, 행복을 만끽하게 해주는 육체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 도시의 조그만 무대 전체는 아나이스와 클라라에게서 가정의 장면을 연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배우를 발견했다. 일체가 교훈이며, 구경거리며, 격언이며 사회의 유희였다.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 아무런 거리도 없는.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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