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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인간 - 제155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사야카 지음, 김석희 옮김 / 살림 / 2016년 11월
평점 :
인스턴트 소설, 이런 류의 소설을 나는 [인스턴트 소설]이라 명명해 본다.
문학적인 요소는 거의 없고, 그 시대를 조금 앞서 읽어낼 수 있는.. 딱 그 시대만 반영하는..
가볍게 접근하고, 또 쉬이 읽히지만, 울림도 감수성도 없고, 적어도 이십 년쯤 후에는 아무도 읽지 않을 소설..
하지만 무시한다는 건 아니다.
고전을 지향하는 나 같은 독자에게 그렇게 여겨진다는 것이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 시대의 유행이 되기도 하는 베스트셀러, 이런 류의 소설들을 간과할 수는 없는 나도 결국엔 읽어내게 되니깐..암튼 그 시대를 사는 그 세대만의 공감과 그 시대 만의 위로가 절대 필요함도 충분히 인정한다..
내게 있어 [82년생 김지영]도 이런류로 분류되었다.
또 [인스턴트 문학],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그랬고, 힐링 에세이류가 그러하다.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며, 분류일 뿐이다.
'후루쿠라'는 어릴 때부터 조금 많이, 아니 한참 다른 여자아이였다. 그녀의 엽기적이기까지 한 언행에 부모를 비롯한 아이, 어른들이 모두 놀라게 되고, 그녀는 자신이 뭐가 다른지, 뭐가 문제인지를 스스로 모른다.
가족의 사랑과 기다림과 걱정 속에서 자신의 무언가를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자각을 하게 된 그녀는 필요한 말만 하고, 자진해서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쉬는 시간을 대부분 혼자 보내던 그녀가 대학을 가고 1학년의 어느 날, 길을 잘못 들어 헤매던 빌딩 숲에서 '스마일 마트 하이로 마치(편의점) 역전점 open' 광고를 보고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된다.
세상과의 접점이 없었던 그녀는 오픈 첫날 사원의 칭찬을 받으면서 비로소 세계의 정상적인 부품으로서의 자신이, 바로 이날 탄생했다고 여기게 된다. 그로부터, 그곳 편의점에서 점원으로 일한 지 18년, 그녀의 나이 36세가 되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점원들과 점장들이 바뀌었지만 그녀는 베테랑의 점원으로, 아르바이트 신분으로 남아 있다.
그녀의 단골 고객,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는 편의점에 올 때마다 "정말로 여기는 변함이 없어~"라고 하는데
그곳 사람들과 물건들이 교체되고 있을 뿐, 줄곧 같은 광경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고, 그녀가 계속 남아 있는 것이다.
상품의 진열과 주력 상품과 홍보 상품 등의 적절한 위치와 시기들의 매뉴얼에 너무도 익숙해진 그녀는 사생활조차도 편의점 위주로 살고 있다.
출근을 위한 컨디션 조절, 근무를 위한 체력 유지 ..
- 이 매미 허물 속을 걷고 있는 듯한 세계 어딘가에서 내 '손님'이 잠자고 있구나 하고 멍하니 생각한다. 51
그녀에게 있어 편의점은 완벽한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면 되는 곳이지만 매뉴얼 밖에서는 어떻게 해야 보통의 인간이 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편의점의 점원으로서 세계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고, 그것만이 정상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고까지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매일 대면하는 사람들, 점장, 알바 팀장, 아르바이트생들, 전에 함께 일했던 점원들, 그들의 말투를 닮아가고, 화장과 옷차림도 따라 해가면서, 지금의 자신을 형성한 것이 그들이라고..
- 정상 세계는 대단히 강제적이라서 이물질은 조용히 삭제된다. 정통을 따르지 않는 인간은 처리된다. 그런가? 그래서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고치지 않으면 정상인 사람들에게 삭제된다. 가족이 왜 그렇게 나를 고쳐주려고 하는지, 겨우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98
분노란 것을 모르는 그녀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화내는 것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지만, 맞장구를 쳐주면 불가사의한 연대감이 생기고, 자신의 공감에 기뻐하는 상대의 표정을 관찰하면서 자신도 인간처럼 보이는구나, 자신도 인간이 되어있구나 하면서 안도를 하는데..
- 내가 보기에 차별하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한 부류는 차별에 대한 충동이나 욕망을 자기 내면에 지니고 있지만, 또 한 부류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여 아무 생각 없이 되는 대로 차별 용어를 연발할 뿐이다. 82
한 번씩 만나게 되는 동창 친구들이나 그녀의 가족, 그중에서도 먼저 결혼한 여동생은, 그녀의 결혼이나 연애, 그리고 제대로 된 직장에 대해 걱정이란 이름으로 그녀를 자꾸 힘들게 한다.
그녀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연애 한번 안 하는 것에 대해, 동생이 일러준대로
친구들에게는 지병이 있어 몸이 약하므로 아르바이트 밖에 할 수 없다고,
편의점의 점원들에게는 부모가 병약해서 보살펴 드려야 하므로 아르바이트 밖에 할 수 없다고 변명을 해왔다.
- " 이 가게는 정말이지 밑바닥 인생들뿐이에요. 편의점은 어디나 그렇지만, 남편의 수입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주부, 이렇다 할 장래 설계도 없는 프리터, 대학생도 가정교사 같은 수지 맞는 아르바이트는 할 수 없는 밑바닥 대학생뿐이고 나머지는 일본으로 돈 벌러 온 외국인이죠. 정말로 밑바닥 인생뿐이에요. 82-83
그 편의점에 35세의 '시라하'라는 빼빼 마른 남자가 아르바이트로 들어오게 된다. 그는 신석기 시대를 들먹이면서 불평하고, 게으름과 농땡이를 피우며 폐기한 음식을 몰래 먹고, 손님과 알바생에게 집적거리기도 한다. "인생 종친 거야, 그 녀석은 안돼, 사회의 짐이야, 인간은 일이나 가정을 통해 사회에 소속하는 게 의무야.. "
점장을 비롯한 모든 점원들이 그를 싫어하게 되고 결국엔 쫓겨나게 된다.
이 둘은 결국 기막힌 동거를 시작하게 되는데
그녀는 이물질이 되지 않으려고, 배제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고
그는 밖에서는 자신의 인생이 강간당했노라고, 사람들로부터 숨을 곳이 필요하고, 마침 월세도 밀린 참이라..
욕조에서 지내는 '시라하'는 세상이 불완전한 탓에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지만, 자신은 평생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고, 간섭받고 싶지 않고, 그냥 숨을 쉬고 싶을 뿐이라며 뻔뻔하게 무위도식을 한다. 그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취직을 해야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결혼을 해야 하고 자식을 낳아야 한다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줄곧 재판을 받아야 하는 삶이, 언제부터 잘못되어 왔는지를 조사하려고 역사 공부를 하다 보니, 그것이 메이지,에도, 헤이안을 거슬러 석기시대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