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송순섭 옮김 / 버티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럽의 역사 속, 억압과 갈등의 서사가 주를 이루는 국가 체코, 그래서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이 그 어려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이 거룩하게 느껴지며, 유머가 있고 코믹한 피아노 건반의 소리가 점점 애수로 흐르는 '드보르작'의 「유머레스크」로 빛나는 나라

그 나라, 체코 소설의 슬픈 왕 '보흐밀 흐라발'을 만나는 세 번째 소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과, 「영국 왕을 모셨지」보다 앞선 소설이자, 그들 보다 더 전쟁의 색깔이 전면으로 드러나는, 전 작들이 그런 恨을 묵묵히 견디는 인간들의 이야기라면, 이 소설은 비로소 인간의 용기를 드러내는 소설이라 하겠다.

 

 

1945년, 체코의 작은 기차역

 

나, '밀로시 흐르마'는 3개월의 병가를 마치고 간만에 역무실로 출근하는 날이다.

철도 학교 졸업생이자 수습생인 그는 '후비치카'씨 밑에서 업무를 배우며 보조 역할을 한다.

2차 대전의 막바지 독일은 체코 하늘에서의 주도권을 잃어 급강하하는 폭격기의 잦은 공습으로 열차 운행이 연착되는 일도 빈번하다.

연합군과 독일군의 공중전으로 독일제국의 전투기들이 추락하면 마을 사람들은 구경거리를 보려고 눈 덮인 들판에 모여든다.

산산조각 난 전투기의 부품들을 주워다가 토끼장이나 닭장의 지붕들을 만들기도 한다.

'밀로시 흐르마'의 아버지 역시 파이프를 주워모은다. 판금과 부품들을 모아서 온갖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 그는 20세부터 기관차를 몰았고, 48세에 은퇴한 이후 연금을 받는다.

고철 수집일인 철의 일요일 책임자이기도 한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의 시샘을 받는다.

 

'밀로시 흐르마'는 외곽에서 살다가 가족과 함께 마을 안으로 이사를 했는데, 늘 그곳이 답답하고 괜히 주눅이 든다.

 

자신에게 마을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뭔가가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스무 살의 그는 항상 외톨이였다.

마을 사람들과 자신 집안의 껄끄러운 관계는 증조할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할아버지는 18세부터 하루 금화 한 닢의 연금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는 1830년 생으로 1848년에 육군으로 카렐 대교 전투에서 학생들이 군인들에게 던진 돌에 맞아서 평생 절름발이가 되었다.

연금으로 매일 럼주 한 병과 담배 두 갑을 사서는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도 또 그 일을 되풀이 해왔다.

오스트리아가 망해서 연금 지급 중단이 될 때까지 70년 동안 연금을 받았지만, 1935년 채석장을 폐쇄당한 인부들 앞에서 자랑하다가 매 맞아 죽었다.

 

아버지는 서커스단의 최면술사였다.

 

인생을 빈둥거리며 한가롭게 떠돌아다니고자 하는 그를 마을 사람들은 역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고 여겼더랬는데

그는 독일이 국경 넘어 프라하로 진격할 때 독일군 탱크에 최면을 걸어 저지하고자 하다가 전차에 깔려 죽었다.

그 가족의 존재는 마을 사람들에게 목에 걸린 가시같이 껄끄럽다.

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는 날,

그가 업무를 배우던 '후비치카씨'의 사건을 역장을 통해 듣는다.

 

생의 목표가 철도청 감독관이 되는 것과 남작이란 칭호를 얻는 것이 전부인 역장은 프라하 사회 정화 위원회 위원으로 부도덕함에 대해 유난한 반감이 있다.

 

 

비둘기를 기르는 취미를 가진 그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후 독일산 비둘기들을 전부 죽이고 폴란드산 비둘기를 키우게 되는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할 때는 환기통에 대고 마구마구 소리를 질러댄다.

어떨 때는 아내에게 고함을 치기도 하는데 침착한 그의 아내는 분기에 한 번씩 남편의 뺨따귀를 때려서 그의 분노 행위를 저지하기도 한다.

역장의 말로는 '후비치카'씨가 전신 기사 아가씨의 엉덩이에다가 역 직인과 일부인을 마구 찍어놨다는 것이다.

원래 '후비치카' 씨는 여자들과 추잡한 염문으로 진급도 못하던 사람인데 이번 일로 역장이 백작부인에게도 꾸지람을 듣고, 자신의 역이 추잡한 소문의 중심지가 되자 자신의 출세와 관련지어 극도로 분노하고 있다.

 

역에는 여러 열차가 지난다. 병원 열차, 화물차량, 여객 열차..

 

우편물과 장교용 식량, 음료수를 전선으로 수송하는 특급 우편 열차,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열차는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로

느낌표 세 개로 표시되는 병력 수송 열차이다.

마침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가 지나는 중

그 역에서 멈추고 잘생긴 나치 친위 대원들이 '밀로시 흐르마'의 옆구리에 총부리를 겨누고 기관차에 태운다.

평소 잘생긴 사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그는 진땀을 흘리고 말을 더듬는 등 그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저렇게 잘생긴 사람들이 왜 이런 일을 하나 의문을 품다가

속으로 말한다.

 

- 중간생략- 

 

 

당시의 기차역, 특히 전쟁 중의 기차역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위치와 역할이 있었겠구나 여겨졌고

 

또 사람들이 철도공무원을 푸른 귀족이라고 언급하며 부러워했던 점도 새롭게 다가왔음.

그리고 역장은 자신의 분노를, 마구마구 소리를 질러대고 때론 아내에게 거친 말을 내쏟고는 자기가 한말을 모두 잊는다는 것.

'후비치카' 씨는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지만, 결국엔 어여쁜 전신 기사 아가씨의 엉덩이에 독일어로 된 역 직인을 스탬프로 찍어대는 일로도 삭혀지지 않아서, 분노의 원천인 독일 놈들을 향한, 거대한 일을 도모하고

'밀로시 흐르마'는 자신의 동맥을 그어버리는 일로 분노를 삭히려 하지만, 미수로 끝나고,

그의 분노는 전쟁 초기에 독일인들의 진입을 말없이 지켜만 봤다는 체코인들 중 할아버지 같은 엉뚱하지만 진정한 용기로 마무리된다.

 

'보흐밀 흐라발'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모자라 보인다. 바보 같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코드가 너무 진지해서 웃을 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이 바라보는 전쟁, 그것은 증오이다.

철북을 통해 2차 대전의 발발 한가운데

이 책을 통해 2차 대전 스러져가는 독일의 운명을 한가운데서 접한 기분이 든다.

미친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겠지..

 

 

 

 

- 나는 죽은 병사가 쥐고 있던 목걸이를 낚아챘다. 달빛에 비춰보니, 작은 메달이었다. 한쪽 면에는 녹생 네 잎 클로버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행운을 가져다줍니다!‘라는 독일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 네 잎 클로버는 아무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그 역시 한 인간이었다. 나처럼, 혹은 후비치카 씨처럼 말이다. 특별나게 잘난 것도, 특별한 지위도 없는 그저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쏘고,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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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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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위스 사람 '파스칼 메르시어', 독일의 대학에서 언어철학을 강의 했고, 독일어로 씌어진 이 책은 2004년 출간 이후 세계적으로 20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 셀러이다.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라는 57세의 시력이 매우 나쁜 라틴어 교사

출근길, 폭풍우 속 난간에 기대어 위험하게 서 있던 포르투갈어를 쓰던 수수께끼 같은 여자로 인해, 그의 삶이 바뀐다.

그녀에게 도움을 주고자 다가갔고, 그의 책들이 빗속에 흩어졌고, 그녀는 그의 이마에 전화번호를 적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학교로 그녀를 데리고 온다. 물기를 닦아주고, 그녀를 앉히고 수업을 하던 그..

그리고 그녀는 강의실을 나가버린다.

치의 어긋남도 없고, 실수라는 것이 없던, 그 학교에서 가장 믿을 만한, 실력 있는 교사

에스파냐어를 전공했던 아내 '플로랜스'와 이혼을 했지만, 그녀의 권유대로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에서 고전어를 가르치는 그는 심각한 근시의 책벌레.

외부 세계를 향해 빗장을 지른 채 생각에 잠겨 홀로 있기를 좋아했던 그를 학생들은 '문투스'라고 부른다.

말없이 떠나간 포르투갈 여인을 따라 강의실을 나갔다가 어느 서점에서 포르투갈어로 된 책을 집어 든다.

그 언어를 전혀 모르지만, 서점 주인의 번역을 도움받아 몇 장 넘기다가 그 작가의 사진에 꽂힌다.

1975년 출간된,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이 책의 저자인 포르투갈의 의사이자 시인이며 귀족이었던 .. '아마데우 드 프라우'

사진 속 그의 표정과 멜랑꼴리한 눈빛, 그리고 몇 문장에 사로잡힌다.

는 수업 도중에 아무런 설명 없이 교탁에 책을 그대로 둔 채 나와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도망치려는 듯이, 그 책과 사전을 들고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향한다. '아마데우'를 만나기 위해

그의 제자였던 '플로렌스'와는 5년의 결혼생활 후 이혼했다.

박물관의 경비원이었던 가난한 그의 아버지는 행복하지 않았고, 죽기 전에 바다를 보고 싶다는 어머니를 위해 수업 중 뛰쳐나와 광장의 판매대 돈 상자에서 지폐 뭉치를 꺼내왔지만 다시 돌려놓았던 일이 그의 유일했던 소년 시절의 일탈이었다.

고전어에 평생을 바치고 조용한 은둔 생활을 일삼던 그는 지루한 사람이었고, 심한 근시로 인해 그리스 의사에게 주기적으로 진료를 받아왔다. 그리고 그 의사와 친구가 된다.

업 중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인생을 마지막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었고, 어떤 포르투갈 의사가 마치 자신에게 쓴 것처럼 느껴지는 책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되어 긴 기차여행 끝 찾아온 도시 리스본..

포르투갈어 사전과, 자신의 천부적인 언어적 재능을 살려 번역을 해가며 읽어나가는 '아마데우'의 책, 절망하거나 흥분한다는 울림을 주지 않으면서 사유의 결론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글에 점점 빠져든다.

부러진 안경 때문에, 기차에서 만난 도자기 사업가의 추천으로 안과 의사를 찾고, 그 책의 저자를 묻다가 책방을 찾고, 책방 주인의 추천으로 아주 오래된 노인 사서를 찾아가고 그리고 '아마데우'의 병원이 있던 집까지 찾게 된다.

네이션 혁명으로 유명한, 포르투갈의 독재 종식이 끝난 1974년 봄.

이미 1973년에 '아마데우'는 사망했다. 1975년 그의 여동생 '아드리아나'가 이 책을 출판한다.

그의 집에서 그를 신처럼 받들었던, 그를 도와 간호 사일을 하던, 그가 죽은 이후 31년간 혼자서 살고 있는, 아직 그와 이별하지 못한 여동생 '아드리아나'를 만나고, 함께 저항운동을 했다던 노인과, 그의 유일한 벗 '조르지'와 16세 연하의 막내 여동생과, 그의 연인을 차차 만나면서 그들이 간직한 '아마데우'의 기억을 만나고, 부치지 못한 편지와 글을 만나고, 그가 다녔던 중등학교와 대학을 가보면서 낯선 '아마데우'를, 퍼즐처럼, 마치 그의 삶 속에 들어간 듯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현기증이 찾아온다. 만만찮은 예감과 함께..

'아마데우', 유명한 판사의 아들이었고, 아버지의 강압적인 소원대로 의사가 되었지만

그는 사제가 되고 싶어 했다.

그의 아버지는 치료할 수 없이 굽은 등, 척추 경직증을 앓고 있었다.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자세로 인해, 법정에서의 판결을 내리는 그 숭고한 때조차도 굴욕스러워 보였다.

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아마데우의 빛남은 교사들조차도 어렵게 했는데

그가 좋아했고, 그를 제대로 이해했던 신부는 '아마데우'를 이렇게 기억한다. 스스로에게 엄격했던 사람, 난폭한 폭도이자, 끊임없이 움직이는 지성의 소유자, 타고난 웅변가, 과격함과 고결함, 집요함과 세상을 경멸하는 서늘한 대담함, 광신적인 열정.. 돈과 재능 멋진 외모와 매력이라는 운명의 특혜를 받은 사람들의 질투와 시기를 끌어당기는 자석 같은 힘을 가진 사람.. 그가 할 수 없었던 것은 놀고 즐기고 절제 없이 행동하는 것..

- 중간 생략-

 

스본행 야간열차, 제목이 주는 정서로는 사랑 이야기인 줄 알았던, 하여 폭풍우 속에 서있던 그녀와의 연결지점을 계속 좇고 있었다.

-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진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가 경험한 아주 작은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아주 의미가 크다고 작가와의 대담에서 말한다. 왜냐면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 번 규정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삶을 관통할 수도 없고, 그만큼 실망할 일도 드물겠지만, 간혹 그들의 인생에서 극적인 형태로 돌출된다고, 그때 도망치거나 파멸하거나 하는 생의 위기를 겪게 된다고..

면서 소중했고, 그래서 성실히 지켜왔던 것들을 던져버릴 수 있는 용기, 하여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싶은 소망.. 그래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낯선 삶의 동경이요, 낯선 사람에 대한 동경이 되는,, 지루하고 따분한 남자 '그레고리우스'의 이런 일탈은 그의 나이 57세에 비로소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그 믿음직하고 성실한 삶은 다른 사람들이 재단하는 도덕적인 의무감은 아니었는지..

그래서 작가는 판타지도 중요하다고 한다. 판타지를 통한 일탈, 상상력이 풍부하고 용감한 대화의 상대가 되어 주는 것.

'아마데우'가 동생한테 했던 말, 감정교육이 중요하다고, 느낌을 드러내는 기술, 말을 통해 느낌을 풍요롭게 하는 경험을 가르쳐야 한다고.

그리고 멜랑꼴리, 시간을 초월한 개념이며 인간이 알고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귀중한 그 무엇이라고.. 깨지기 쉬운 인간의 모든 연약함이 거기에 들어 있노라고, 병적인 우울증과는 다르다는 멜랑꼴리의 개념.. '그레고리우스'의 눈에 비친 사진 속 '아마데우'의 오묘한 눈빛의 정체가 바로 멜랑꼴리였던 것..

과 6펜스의 '고갱'처럼 처자식을 내팽개치고 타이티로 갈 수도

'그레고리우스'처럼 고결한 영혼을 간직했던 한 남자를 찾으러,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무작정 오를 수도 없는 현실 속의 우리는

그냥 판타지와 상상력의 풍부함과 멜랑꼴리를, 독서와 여행을 통해서, 잠시의 도피를 즐기다가, 이제는 타인의 잣대보다 자기것이 되어버린, 체화된 도덕적 의무감으로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닌지. 그래도.. 윤리 ㅎㅎ

국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 경험하지 못한 나머지는

"당신의 판타지를 놓아두는 공간이다."라고 대답해주는 작가 ..

나의 판타지를 위한 공간은 무얼로 채워가야 하는지, 그 답을 계속 내려본다.

각자의 눈높이만큼, 각자가 채워갈 경험하지 못한, 경험할 수 없는 나머지..

그리고 가장 멋진 말,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 그 무엇..

'그레고리우스'라는 남자는 사람들이 무언가에 몰리면 고집스럽게 바깥에 머물러 있는 부류이다. 베스트셀러라는 책들을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읽는 부류, 그런 점에서 그와 비슷한 나도, 그처럼 지루한 사람이 될까 봐 두렵기도 하고,

산다고 상상하는 그 무엇, 경험하지 못한 여백에 놓아둔 판타지와 멜랑꼴리를 위해 책을 읽고 여행을 하면서 채워가는 것의 소중함과 당위성을 어쩌면 변명거리를 일깨워 준..

 

 

- 너무 일찍 찾아온 인생의 비참함, 쫓기는 눈빛, 심각한 질병의 징후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변한 얼굴이 증명하는, 잡을 수없이 흘러가는 시간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드는 잔인함이 그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45



-사람들이 타인을 보는 방식은 집이나 나무, 별을 볼 때와 사뭇 다르다. 이들을 특정한 형식으로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자기 내부의 한 부분으로 만들려는 기대를 가지고 보는 것이다. 각 사람의 상상력은 다른 사람들을 자신의 소원과 기대에 맞게, 하지만 또한 그들로부터 자신의 불안과 선입견이 옳다는 확인을 받을 수 있도록 이들을 각자의 구미에 맞추어 가지런하게 정리한다. 우리는 편견 없이 확실하게 다른 사람들의 외적인 윤곽에조차 다다르지 못한다. 우리의 시선은 다른 사람들에게로 향하는 도중에 이미 딴 곳으로 돌아가고, 우리를 우리라는 사람으로 만드는 특별하고 특이한 온갖 소원과 환상으로 흐려진다. 내면세계의 외부 세계조차도 우리 내면세계의 한 부분이다. 다른 사람들의 내면세계에 대한 생각, 다른 사람들이라기보다 우리와 더 맣은 관계가 있는 불확실하고 유동적인 생각은 말할 것도 없다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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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피 코트를 입은 마돈나
사바하틴 알리 지음, 이난아 옮김 / 학고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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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 쓰고 싶은 글은 이런 글이고, 나의 취향에 저격인 류는 이런 류이다. 간결하고, 멋부리지 않았지만, 멋드러진 문체ᆢ하룻밤 읽을 분량을 아깝다 미루며 본 「모피코트를 입은 마돈나」,

제목이 주는 현실적인 뉘앙스의 '마돈나'는 섹시 심벌의 가수 '마돈나'를 떠올리게 했고, 모피코트가 주는 세속적인 이미지가, 이 책을 추천해준 이웃들의 짧지만 강렬한 언급을 의심케 했으나 역시 믿기를 잘했다.

첫 페이지부터 단숨에 빠져들게 된다.

키 문학은 '오르한 파묵'으로 열었다. 1941년도부터 1942년까지 연재되고 1943년 단행본이 출판되었을 때도 별 관심을 못 받았던 이 책이 70년을 묵히고 난 후, 2013년에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고, 전 세계의 언어로 번역되는 등, '오르한 파묵'도 이루지 못한 성과를 이루었다 하는데, 사회주의자였던 이 책의 저자 '사바하틴 알리'는 그 나라 그 사회에서, 반항의 상징이었고, 그런 이유로 이 책을 발표한 후 5년 만에 살해당했다고 한다.

이 책을 영화화한다는 언급도 책의 뒷부분에 있는데, '마리옹 꼬띠아르'가 주연한다고도 한다.

이 책의 화자 '라심', 그는 자기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라이프 에펜디'를,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그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다면서, 전혀 특별하지도 않고, 오히려 너무도 평범한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행 말단 직원이었던 '라심'이 이유도 모른 채 짤린 이후 구직활동을 벌이다 어렵사리 친구 회사에 취업을 하게 되는데 거기서 한 사무실을 쓰게 된 남자가 '라이프'이다. 독일어 번역 담당자인 '라이프'는 그 회사에서 가장 오래된 직원이며, 대가족을 부양한다는 사람으로 매우 성실하고, 좀처럼 흥분할 줄 모르지만, 감기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굴어서 이따금 결근을 하는데, 그의 집에 번역할 원고를 가져다주게 되는 일이 '라심'에게 주어지고 '라이프'의 집에 드나들면서 그의 가족들의 무례함과 뻔뻔스러운 모습에 당황한다.

아내와 두 딸, 처제와 동서, 조카들, 그리고 처남들까지 함께 지내는 '라이프'는 박봉으로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라심'에게 비친 그의 가족들은 다른 사람을 조롱하고 멸시하고 비웃는 것으로 내면의 공허를 채우는 사람들 같다.

하지만 '라이프'는 끔찍한 침묵으로 회사와 집에서 자신을 무시하고 조롱하는 걸 순종하고 견디며 건강에 노심초사해서 양모 내복에 옷을 겹겹이 껴입고 지내지만, 황폐한 성격이 드러나는 날이 있는데, 그런 다음날엔 꼭 병이 도지고 결근을 한다.

러다가 회복되고, 출근하고를 반복하던 어느 날에는 병이 위중해져서 결근이 길어지고, 그 집으로 향한 '라심'은 '라이프'의 부탁으로 그의 회사 책상 서랍에 있는 물건들을 정리해서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 서랍에 있던 '라이프'의 비망록을, 난로에 던져 버리겠다던 그에게 부탁해서 읽게 된다.

비망록은 1933년 6월 20일부터의 이야기이다.

고향에서 상당한 재력가인 아버지를 둔 '라이프'는 1차 대전의 막바지에 징집되었다가 훈련소에서 휴전을 맞는다. 휴전 후 모든 게 느슨하다. 제대로 된 정부도 없고, 확고한 이념도 목표도 없고.. 아버지는 아들 '라이프'를 공부시키려는 의지가 강하지만, '라이프'는 늘 어눌하고 세상과 어울리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현실보다는 상상세계에 사는 조용한 아이, 지나치게 수줍고 말수도 적다. 그림에 소질이 있어 예술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비밀스러운 동경이 있지만, 자기주장이 없는 그는 친구들의 잘못도 뒤집어쓰고 결백도 주장 못해 구석에서 울기나 하는, 주위 어른들은 그를 보며 차라리 계집애로 태어났어야 했는데..라고 한다. 그는 몽상 속에서 나 대담하고 광활한 모험을 펼치는 영웅이 된다.

이웃 마을 소녀 '파흐리예'를 좋아하지만 마주칠까 도망 다니고, 점점 소설에 빠진다.

스탄불에서 예술 학교를 다녀보지만, 휴전 중인 이 도시는 방종과 혼란스러움 속에 있다. 배회하던 '라이프'는 아버지의 권유와 후원으로 독일 베를린으로 향한다.

아버지는 그에게 비누공장에 가서 향기 나는 비누 비법을 가져와 고향에서 자신의 가업을 이으라는 제안이었지만, 그는 꿈꾸던 환상의 원천인 유럽에 대한 동경으로 선뜻 나선다. 외국어를 배우고 그 언어로 된 책을 읽고 소설로 만나던 사람들을 만나는 일에 설레던 그는 주위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는 황폐한 성격의 소유자로 책에서 알고 받아들인 사람들을 현실에서 찾을 수가 없다.

그렇게 어슬렁거리기를 1년 즈음 신진 화가들의 전시회장을 찾았던 '라이프'는 그곳에서 그를 휘감아버린 격정의 작품 하나를 만난다.

「모피코트를 입은 여인」의 초상화이다.

낯설고 강인하고 야성적이기까지 한, 그 여인의 표정은 지금껏 그가 보지 못했던 낯설지만 생소하지 않고, 어릴 때부터 읽은 책, 꿈꾸던 상상세계에서 이미 알고 있던 모든 여성의 모습이 뒤섞여 있다. 그 자리에 얼어붙었던 그는 카탈로그를 뒤져 그 자화상의 주인공이자 화가의 이름을 확인한다. '마리아 푸데르'..

그 작품 앞에 서서 전시회장이 문 닫을 때까지 바라보다가, 다음날 또 찾고, 그 다음날도 또 찾는다.

리고 신문의 비평을 찾아 읽는다.

신문에서는 1517년 '안드레아 델 사르토'의 작품 「아르피에의 성모」와 작품 속 그녀가 닮았다고 한다.

24세의 '라이프'는 아직까지 어떤 여자와도 사랑의 모험에 뛰어들어 본 적이 없었다. 끌리는 여성을 만나면 도망쳐서 숨어버리던 그가, 이 자화 상속 여인에 반해서 매일 찾아가고 보고 또 본다.

그리고 그녀 '마리아 푸데르'가 다가와 말을 걸지만 못 알아보고, 하숙집의 35세 '티데르만 부인'의 유혹에 실랑이를 벌이던 거리에서 자신을 주시하던 눈, 그림 속 그녀, 자신의 '마돈나'를 알아본다.

다음날 그녀를 찾아 그 거리에 갔다가 그녀를 발견하고 뒤를 따라간다. 아틀란틱이란 카바레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남자만큼이나 낮은 음색으로 노래하는 그녀, 그리고 그녀가 먼저 다가온다. 매일 찾아와 자신의 그림을 지켜보던 그를 보고 있었던 그녀..

신은 이상한 여자라고, 변덕이 심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도 있다고, 매우 솔직한 그녀는 그와 친구가 되자고 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순간, 모든 게 끝나버릴 테니, 아무것도 어떤 것도 요구하지 말라고 한다.

- 중간 생략-

 

물처럼 살았던, 의식도 없고, 불평도 없고 아무런 의지도 없고 감정도 자신과 무관한 세계라고 여겼던, 그래서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던 남자 '라이프',

가장 소중하고 아름답고 사랑한다고 믿었던 사람으로부터의 배신에 가장 잔혹한 운명의 굴레를 쓰고, 책임 자체를 누구에게도 돌리지 못한 그는

누구를 사랑할 수도, 다가갈 수도, 믿지도 못하고 살았던 사람이다. 그냥 무의미한 나날을 이어가면서 견뎌내는 방법만 찾으며, 단지 지루했을 뿐..

그렇게 10년..

너댓 달가량의 유일한 사랑, 사무친 사람은 진정한 그로 존재할 수 있었던 힘이었고, 그 부재가 그를 텅 비게 하였고, 자신의 육신과 정신은 더 이상 무의미했고, 그렇게 잊히고, 잃어버린 사랑..

그의 고독한 영혼을 털어놓았던 비망록은 그렇게 끝난다.

설픈 사랑에 대한 심리 묘사가 압권이다. 방황하는 여인의 정체성에 대한 묘사도, 그리고 순수한 남자, 텅빈 남자 라이프에 대한 서술과 그들의 영혼에 한 없는 연민이 향한다. 이야기를 이끄는 문체가, 그 아련함이 너무 좋다. 문체의 힘은 이런것이지~~

 

 

사람들은 서로가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그가 감춰둔 영혼, 질서정연하든 뒤죽박죽이든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형편없고 가장 단순해 보이는 사람도 경이로운 내면을 품을 수 있고, 가장 어리석은 사람도 고뇌에 찬 영혼의 소유자일 수 있다. 왜 우리는 이 사실을 직시하지 않고 미적거리며,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라는 듯 사람이라는 피조물을 이해하고 판단 내리는 걸까? 왜 우리는 처음 본 치즈의 특성을 말할 때는 주저하면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해서는 단박에 결론짓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는 걸까? 57-58





세상사에 지쳐 만신창이가 된 사람이 억지로 웃는 것만큼 슬픈 것은 없었다. 123

이 음산하고 을씨년스러운 광경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축축한 공기가 얼마나 신선하던지! 살아가는 것, 자연의 지극히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순리에 따라 흘러가는 삶을 바라보는 것, 누구보다도 기운차게, 매 순간을 일평생처럼 충만하게 채우며 삶을 자각하는 것... 그리고 특히 이 모든 것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그녀를 기다리는 것... 세상에 이보다 행복한 게 있을까? 이제 우리는 촉촉하게 젖은 길을 함께 걸을 것이다. 한적하고 어둑한 곳을 찾아 앉을 것이다. 서로 눈을 맞추며 많은 것을,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들을 얘기할 것이다.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들이 또 순식간에 다음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추위에 발갛게 언 손가락을 비비며 따스하게 해줄 것이다. 한마디로 나는 그녀와 가까워질 터다. 153-154

인생의 참맛은 고독에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예요? 결혼은 거짓 위에 쌓아올리는 허상이에요. 사람들은 일정한 정도까지만 가까워질 수 있고, 그 이상은 가식이라고요. 어느 날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을 알아차리면 절망에 빠져 모든 걸 내팽개치고 도망가지요. 하지만 환상과 착각에서 벗어나, 아쉽더라도 적당한 정도에서 만족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을 거예요. 자연스러운 걸 받아들이면 절망에 고통받는 이도, 운명을 저주하는 이도 없을 테지요. 우리가 처한 환경을 가여워할 권리는 있지만 동정할 수 있는 건 자기 자신뿐이에요. 누군가를 동정한다는 건 그 사람보다 강하다고 여기는 건데, 사실 우리는 그렇게 대단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나보다 가련하다고 여길 권한도 없어요. 164-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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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세트 - 전2권 열린책들 세계문학
움베르토 에코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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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책은 이탈리아의 기호학자이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였던 '움베르토 에코'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발표 당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는데, 블로냐 대학 및 세계 명문 대학의 객원교수로 활동했다는 그를 가리켜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 한다.

미스터리 소설이고, 역사소설이고, 종교 소설이기도 한 이 책은 1327년 말, 이탈리아의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다.

부패한 황제와 부패한 교황이 대립하고 유럽의 종교적 국경이 희미한 시절, 교황과 대립하는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황제가 지지하고

베네딕트 수련사인 어린 '아드소'가 프란체스코 수도회 '윌리엄' 수도사의 필사 서기 겸 시자가 되어 따라나서는데, '아드소'가 사부로 모시는 이 '윌리엄' 은 준수한 외모, 큰 키에 호리호리하고 명민한 통찰력을 지닌 박식한 사람으로 한때 종교재판의 조사관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사람이다.

제의 밀명을 받은 '윌리엄' 수도사는 시자 '아드소'와 함께 이탈리아의 어느 수도원으로 향한다.

둘이 처음으로 보게 된 이 수도원의 건물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범접하기 어렵게 하는 위용 앞에 두려움과 거북살스러움을 갖게 한다.

도착하자마자 도망친 말을 찾는 지혜를 보인 '윌리엄'은 원장으로부터 수도원의 변고를 듣게 된다. 그 변고는 양 떼가 목자를 불신하고, 목자의 허물이 관련된 사건이라 한다.

젊고 유능한 채식 장인 '아델모'의 시체가 발견되었다는데,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한밤중 벼랑에서 떨어진 주검을 보면서 자연을 해석하는 통찰을 지닌 '윌리엄'은 자살을 가정해 본다.

곳 수도원은 재물이 많고, 수도사가 60여 명 불목하니들이 150명 정도인 규모로 특히나 본관 건물이 유난히 거대한데 본관의 1층은 주방과 식당, 2,3층은 문서 사자실과 장서관으로 이루어졌다.

이 본관 건물은 저녁 식사 후 본관이 잠기고, 특히나 맨 위층의 장서관은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다.

이 수도원의 장서관은 세상의 모든 지식의 창고이자 금단의 지식이 소장된, 신성불가침의 장소로 정신의 미궁, 지상의 미궁이다. 수도원장은 이 사건을 누군가의 고해성사를 통해 진실을 알고있지만, 고해성사의 비밀 엄수를 위해 '윌리엄'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아봐달라고 하면서도 이곳 장서관의 출입만은 허락할 수 없다고 한다. 장서관은 사서인 '말라키아'의 출입만 허용되고, 대부분의 수도사들은 문서 사자실에서 책을 필사하고, 목록만 볼 수 있다.

'윌리엄'은 지어질 당시부터 외부로 드러나지 않게 설계된 이 장서관의 비밀이 사건의 열쇠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아드소'는 교회 정문에 조각된 잡종 괴물 무리들을 바라보다가 환상에 빠지고, 그 환상에 등장한 형체는 '아드소'로 하여금 지금 본 것을 기록하여라 한다.

그리고 짐승처럼 생긴 '살바토레'를 만난다.

또한 전설적인 인물 '우르베티노', 그는 교황청 무리들로부터 암살 시도의 위협을 느껴 이곳 수도원에 숨어지내는 자로 '윌리엄'과 재회를 한다.

'우르베티노'는 백절불굴의 사나이로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이다. 그들을 비롯한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부패한 성직자에 대한 반작용으로 청빈을 강조하고 청빈에 대한 사랑을 가르치는 무리가 된다.

건의 전말을 알기 위해 장서관에의 출입과 비밀에 온갖 집중을 하는 '윌리엄'은 여러 수도사들을 만나며 질문을 던진다.

가장 나이 많은 수도사 '알리나르도', 40년간 맹인이었다는 '호르헤', 유리 세공사 '니콜라', 식료계수도사 '레미지오', 번역사 '베난티오', 보조사서 '베링가리오', 사서 '말라키'아 등등을 만나고 다니지만 모두 말을 조심하는 분위기이다.

결국 장서관의 비밀 출입문을 알게 되어 들어간 두 사람은 거울의 요술과 연기의 독으로 인해 놀래고, 환상을 헤매게 되는데 이 구조물은 환상을 일으키는 환기구의 교묘한 배치를 통해 배열의 극치가 연출하는 혼란의 극치를 보인다.

그들이 그렇게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동안 연달아서 수도사들이 죽게 된다. 그리스 학자인 번역사 '베난티오'의 시체가 돼지 피 항아리에 거꾸로 처박힌 채로 발견되고, 보조 사서 '베링가리오'의 시체가 욕장의 욕조 안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본초 학자 '세베리노'가 둔기(천구의)에 맞아 시체로 발견되고 사서 '말라키아' 역시 죽는다.

'아델모는' 주방에서 한 여인과의 세속적인 사랑을 나누고, 고해를 하고, 그리움에 상사병을 앓게 되고 시달린다.

젊고 아름다운 수도사 '아델모'와 '베링가리오', '말라키아'의 이상한 관계가 드러나고, 가난한 마을 처녀들이 먹을 것을 구하러 수도원에 공급되고

약간의 보상을 받아왔고..

 들이 수도원에 머무는 7일간의 이야기가 시간대 별로 서술된다.

늙은 수도사 '호르헤'의 궤변과 수도사들끼리 주고받는 말, 프란체스코회 사절단과 교황청의 사절단의 대립과 대화 속 흑백논리와 맹목적인 진리에의 주장이 유치하기 그지없으나, 과학을 믿지 못하는 중세의 사고 수준을 감안하면 매우 흥미롭다.

범인은 예측이 가능하나, 또 뜻밖인 사람인데,

그 시대 종교는 과학과 철학과 웃음과 사람들의 행복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청빈했느냐?

그리스도는 웃지 않았느냐?에 대한 이야기들이 어이없이 이어진다.

히나 '아리스토 텔레스'가 '시학'에서 강조한 희극과 웃음에 대한 언급.

한 수도사는 그 웃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웃음이란 육체를 뒤흔들고 얼굴의 형상을 일그러뜨리게 함으로써 인간을 잔나비로 격하시키는 것일 뿐, 그리스도께서도 웃지 않았다.

웃음이 범부를 악마의 두려움에서 해방시킨다. 웃는 순간 범부에게는 죽음 같은 것은 문제가 되지 않음이 두려웠던 종교의 논리, 종교는 고결한 사상을 통해 인간을 타락한 쾌락과 천박한 유혹으로부터 구제하려 하였으나 웃음은 불완전하고 허약한 인간의 연기(희극)를 통해 감정의 순화를 낳았다'고..

교적, 정치적 부침이 심했던 이탈리아 땅의 수도원, 그곳은 장서관의 사서 출신이 수도원장이 되고, 이탈리아 출신의 수도사가 사서가 되어야 했으나, 언제부턴가 납득이 가지 않는 이국의 수도사들이 사서가 되고, 학식은커녕, 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젊은 사서가 수도원장이 되어 왔는데,

그런 핫바지들을 앉혀놓고 실질적인 주인 노릇을 했던 의외의 인물은 결국 비밀의 서책에 독극물을 묻혀놓고 접근하는 호기심 많은 수도사들이 죽어 나가고, '윌리엄'에게 들킨 저 자신도 그 서책의 페이지를 뜯어서 먹으며 죽음으로 향하고

결국 장서관은 불타고, 수도원 전체도 불타서 없어진다. 장서관은 서책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지만, 서책을 묻어버렸고, 부정한 죄악의 수채구멍이 되었다.

장서관의 미지의 장소 '아프리카의 끝', 그 밀실에 있던 서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었고..

그가 염려했던 가짜 그리스도의 출현, 결국 가짜 그리스도는 유대 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방 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지나친 믿음,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과 집착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경고이다.

훗날 이 일을 회상하며 기록으로 남긴 '아드소'는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덧없는 이름뿐"이라며 맺는다.

단어도 어렵고, 그 많은 종교적인 철학과 인물들에 관한 지식이란 고작 일부의 교과서적일 뿐이라, 그리고 열린 책들의 행간 간격은 늘 당황스럽기에, 긴 호흡이 필요했던 책은 맞다. 20세기 최대의 지적 추리소설이라 하는데, 이과적인 사고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남성들에게는 접근이 더 쉬울 것 같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다하는데, 수도원 배치나, 몇 수도사들의 얼굴묘사가 책으로는 부족하여, 영화로도 보아야 겠다고 ..

 

 

 

우주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이 손가락으로 쓰신 서책과 같은 것이다. 이 서책에서는 만물이 우리에게 창조자의 크신 은혜를 전한다. 바로 이 서책에서 만물은 삶과 죽음의 다른 얼굴이자 거울이 되며, 바로 이 서책에서 한 송이 초라한 장미는 온갖 지상적 순행의 표징이 된다. 그 서책에서 그렇듯이 그날 아침 내가 만난 만물은 나에게, 그날 주방의 어둠 속에서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그 여자의 모습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환상이 싫지 않았다. 무슨 까닭인가! 나는 비록 하찮은 존재이기는 하나, 세상을 향하여 창조주의 권능과 자비와 지혜를 증거하게 마련된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날 아침 만물은 나에게 그 여자의 모습ㅇ르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비록 죄인이기는 하나 그 여자 역시 위대한 창조의 이야기가 실린 서책의 한 장이요, 우주가 음송사는 위ㅐ한 시편의 한 구절일 수 있는 것은 아닌. 그렇다면, 그 여자 역시 한 자루 피리처럼 우주를 조화와 화음으로 채우는 하느님 뜻의 한 자락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나는 신들린 사람처럼 걸으면서, 내 눈앞에 보이는 만물의 형상을 즐거움으로 누리면서 원근의 풍경에서 그 여자의 모습을 보고 탐닉했다. 500-501

코미디, 즉 희극이라는 말은 시골마을이란 말에서 비롯됩니다. 말하자면 희극이라는 것은 시골 마을에서 식사나 잔치 뒤에 벌어지는 흥겨운 여흥극인 것이지요, 희극이란 유명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천하고 어리석으나 사악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겁니다. 희극의 주인공은 죽는 일이 없지요. 희극은 보통 사람의 모자라는 면이나 악덕을 왜곡시켜 보여줌으로써 우스꽝스러운 효과를 연출하지요.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교육적 가치가 있는, 선을 지향하는 힘으로 봅니다. 거짓이 아닌 것은 분명하나 실상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런데 희극이라고 하는 것은 실상이 아닌 것을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기지 넘치는 수수께끼와 예기치 못하던 비유를 통해 실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검증하게 하고 아하, 실상은 이러한 것인데 나는 모르고 있었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실재보다 못한, 우리가 실재라고 믿던 것보다 열등한 인간과 세계를 그림으로써, 성인의 삶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보다, 서사시보다, 비극보다 더 열등한 것을 그림으로서 진리에 도달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 838-839

하지만 웃음이라고 하는 것은 허약함, 부패, 우리 육신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아요. 웃음이란 농부의 여흥, 주정뱅이에게나 가당한 것이오, 지혜롭고 신성한 교회도 잔치나 축제 때는 이 일상의 부정을 용납하여 기분을 풀게 하고 다른 야망과 욕망을 환기시키는 것을 용납하고 있기는 하오, 하나 웃음이 원래 천박한 것, 범용한 자들의, 제 진심을 얼버무리는 수단, 평민을 비천하게 만드는 것임에는 변함이 없어요. 842



- 여기에는 웃음이 맡는 몫이 왜곡되어 있어요. 이 서책에, 웃음은 예술로 과대평가되어 있고, 식자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으로 과장되어 있어요. 이것이 철학이나 부정한 신학의 대상이 된대서야 어디 말이나 되는 노릇입니까? 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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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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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늘 만만치 않다. 그의 광활한 지성과 사색과 은유는 읽는 내내 나를 시험하지만, 옴짝 달싹 못하게 빠져드는 매력이 있다. 쿤데라의 나이 85세 때 쓴 작품이라 하니 90세 그의 나이를 가늠해 본다면 마지막 작품이 될는지도 모르겠지만..전작들에 비하면 힘이 많이 빠진듯도하고, 여전히 그 답기도 한듯하고..

6월의 어느 날 파리의 거리를 걷던 '알랭'은, 아가씨들의 짧은 셔츠와 골반바지 사이로 드러낸 배꼽을 바라보며 완전히 홀려 버린다. 아가씨들이 이성을 유혹하는 힘이 허벅지와 가슴과 엉덩이에 있었다고 여겼던 그는 몸 한가운데 둥글고 작은 이 구멍에 총 집중되어 곰곰이 생각을 하게 된다.

'라몽은 뤽상부르 공원 옆에 있는 '샤갈'의 그림 전시를 향하다가 길게 늘어진 줄을 보고는 이내 포기하고 산책을 한다.

3주 후 생일을 맞이하는 '다르델로'는, 주치의 진료실로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이다. 자신의 나이와 노쇠함에 대한 불안 속에서 암의 징후가 느껴져 겁먹었지만, 기우일뿐이었음을 의사의 미소를 통해 알게 된다.

그리고 룩상부르 공원에서 '라몽'을 만난다.

잘생기고 매력적인 얼굴을 가진 '다르델로'를 '라몽'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데, 둘은 한때 직장동료이기도 했었다. '다르델로'는 이틀 전에 남편과 사별한 '프랑크 부인'에 대해서 '라몽'에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녀가 고통스러운 남편의 임종을 함께 겪어 냈다"고..

슬픈 소식을 전하는 그의 표정은 들뜬 나머지 기쁨에 차있었다.

리고 자신의 생일에 칵테일파티를 도와줄 사람을 연결해 달라는 부탁을 한다.

'라몽'이 무심코 "즐겁게 사시는 것 같다"고 말하자, '다르델로'는 자신이 의사를 보고 오는 길인데 암인 것 같다는 거짓말을 해버린다.

그래서 자신의 탄생과 죽음을 동시에 기념하는 이중 축하 파티를 준비하련다고..'라몽'은 가슴이 뭉클해진다.

'다르델로'는 자신이 왜 거짓말을 했는지 모른다. 무슨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거짓말이 의미 없음을 깨닫고 웃어버리지만, 상상의 암이 그를 즐겁게 하고, 길을 가며 계속 웃게 하고, 좋은 기분을 만끽하게 했다.

'라몽'은 자신의 친구 '샤를'에게 칵테일파티 이야기를 전한다. '샤를'은 전직 배우 출신의 '칼리방'과 함께 하자고 제안한다.

'샤를'이 '다르델로'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라몽'은 머저리라고 말한다.

일례로, '카클리크'라는 대단한 바람둥이가 있는데, '다르델로'가 파티에서 미인들에 넋이 나가 관심을 끌려고 농담도 도덕적이고 낙관적이고 반듯하고 우아하게 표현하고, 지나친 기교를 부려서 알아듣기 힘들게 하지만, 그 우아함이 주의 집중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정반대의,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카클리크'가 그 미인들을 가로챈 바 있다고..

-중간 생략-

 

'밀란 쿤데라'의 삶은, 그리고 책은, 정체성과 의미, 무의미. 농담, 그리고 공산주의.. 불멸.. 그의 사색들이 결국 글의 제목이 되고, 이데올로기가 더이상 의미없는 지금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묵직한 무언가를 던진다. 주인공들은 회사에서 퇴직하고 초로의 삶을 사는 남자들인데, 여전히 젊은 여인들과 데이트를 즐기기도 하지만, 이웃의 죽음과 자신들의 죽음은 별로 멀지 않은곳에 있다.

무의미하다는 것, 별로 가치도 없고 주목받지 못하고 정체불명한 것들의 가치, 그리고 그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 인듯.. 무의미 그자체를 즐겨보자는 .

 

 

- 웃음? 헤겔이 말한 좋은 기분이 마침내 저 위에서 그를 알아보고 자기 집에 맞아들이겠다고 결정한 것인가? 이는 그 웃음을 꽉 잡으라는, 가능한 한 오래 간직하라는 명이 아니었겠는가? 102



- "모두가 인간의 권리에 대해 떠들어대지. 얼마나 우습니! 너는 무슨 권리에 근거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야, 자기 의지로 삶을 끝내는 일까지도 그 인간의 권리를 수호하는 기사들은 허락해 주지 않아."132



- "여기 있으니까 좀 낫다." 라몽이 말했다. "물론 획일성은 어디에나 퍼져 있지만. 그래도 이 공원에서는 획일성이 좀 다양하게 있잖아. 그러니까 너는 네 객체성의 환상을 지킬 수 있는 거지."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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