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히 감시받는 열차
보흐밀 흐라발 지음, 김경옥.송순섭 옮김 / 버티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럽의 역사 속, 억압과 갈등의 서사가 주를 이루는 국가 체코, 그래서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이 그 어려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고, '스메타나'의 교향시 「나의 조국」 이 거룩하게 느껴지며, 유머가 있고 코믹한 피아노 건반의 소리가 점점 애수로 흐르는 '드보르작'의 「유머레스크」로 빛나는 나라

그 나라, 체코 소설의 슬픈 왕 '보흐밀 흐라발'을 만나는 세 번째 소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과, 「영국 왕을 모셨지」보다 앞선 소설이자, 그들 보다 더 전쟁의 색깔이 전면으로 드러나는, 전 작들이 그런 恨을 묵묵히 견디는 인간들의 이야기라면, 이 소설은 비로소 인간의 용기를 드러내는 소설이라 하겠다.

 

 

1945년, 체코의 작은 기차역

 

나, '밀로시 흐르마'는 3개월의 병가를 마치고 간만에 역무실로 출근하는 날이다.

철도 학교 졸업생이자 수습생인 그는 '후비치카'씨 밑에서 업무를 배우며 보조 역할을 한다.

2차 대전의 막바지 독일은 체코 하늘에서의 주도권을 잃어 급강하하는 폭격기의 잦은 공습으로 열차 운행이 연착되는 일도 빈번하다.

연합군과 독일군의 공중전으로 독일제국의 전투기들이 추락하면 마을 사람들은 구경거리를 보려고 눈 덮인 들판에 모여든다.

산산조각 난 전투기의 부품들을 주워다가 토끼장이나 닭장의 지붕들을 만들기도 한다.

'밀로시 흐르마'의 아버지 역시 파이프를 주워모은다. 판금과 부품들을 모아서 온갖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 그는 20세부터 기관차를 몰았고, 48세에 은퇴한 이후 연금을 받는다.

고철 수집일인 철의 일요일 책임자이기도 한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의 시샘을 받는다.

 

'밀로시 흐르마'는 외곽에서 살다가 가족과 함께 마을 안으로 이사를 했는데, 늘 그곳이 답답하고 괜히 주눅이 든다.

 

자신에게 마을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뭔가가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스무 살의 그는 항상 외톨이였다.

마을 사람들과 자신 집안의 껄끄러운 관계는 증조할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할아버지는 18세부터 하루 금화 한 닢의 연금을 받았던 사람이다.

그는 1830년 생으로 1848년에 육군으로 카렐 대교 전투에서 학생들이 군인들에게 던진 돌에 맞아서 평생 절름발이가 되었다.

연금으로 매일 럼주 한 병과 담배 두 갑을 사서는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다가 흠씬 두들겨 맞고도 또 그 일을 되풀이 해왔다.

오스트리아가 망해서 연금 지급 중단이 될 때까지 70년 동안 연금을 받았지만, 1935년 채석장을 폐쇄당한 인부들 앞에서 자랑하다가 매 맞아 죽었다.

 

아버지는 서커스단의 최면술사였다.

 

인생을 빈둥거리며 한가롭게 떠돌아다니고자 하는 그를 마을 사람들은 역시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고 여겼더랬는데

그는 독일이 국경 넘어 프라하로 진격할 때 독일군 탱크에 최면을 걸어 저지하고자 하다가 전차에 깔려 죽었다.

그 가족의 존재는 마을 사람들에게 목에 걸린 가시같이 껄끄럽다.

가를 마치고 업무에 복귀하는 날,

그가 업무를 배우던 '후비치카씨'의 사건을 역장을 통해 듣는다.

 

생의 목표가 철도청 감독관이 되는 것과 남작이란 칭호를 얻는 것이 전부인 역장은 프라하 사회 정화 위원회 위원으로 부도덕함에 대해 유난한 반감이 있다.

 

 

비둘기를 기르는 취미를 가진 그는, 독일의 폴란드 침공 이후 독일산 비둘기들을 전부 죽이고 폴란드산 비둘기를 키우게 되는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할 때는 환기통에 대고 마구마구 소리를 질러댄다.

어떨 때는 아내에게 고함을 치기도 하는데 침착한 그의 아내는 분기에 한 번씩 남편의 뺨따귀를 때려서 그의 분노 행위를 저지하기도 한다.

역장의 말로는 '후비치카'씨가 전신 기사 아가씨의 엉덩이에다가 역 직인과 일부인을 마구 찍어놨다는 것이다.

원래 '후비치카' 씨는 여자들과 추잡한 염문으로 진급도 못하던 사람인데 이번 일로 역장이 백작부인에게도 꾸지람을 듣고, 자신의 역이 추잡한 소문의 중심지가 되자 자신의 출세와 관련지어 극도로 분노하고 있다.

 

역에는 여러 열차가 지난다. 병원 열차, 화물차량, 여객 열차..

 

우편물과 장교용 식량, 음료수를 전선으로 수송하는 특급 우편 열차,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열차는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로

느낌표 세 개로 표시되는 병력 수송 열차이다.

마침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가 지나는 중

그 역에서 멈추고 잘생긴 나치 친위 대원들이 '밀로시 흐르마'의 옆구리에 총부리를 겨누고 기관차에 태운다.

평소 잘생긴 사람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그는 진땀을 흘리고 말을 더듬는 등 그들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저렇게 잘생긴 사람들이 왜 이런 일을 하나 의문을 품다가

속으로 말한다.

 

- 중간생략- 

 

 

당시의 기차역, 특히 전쟁 중의 기차역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위치와 역할이 있었겠구나 여겨졌고

 

또 사람들이 철도공무원을 푸른 귀족이라고 언급하며 부러워했던 점도 새롭게 다가왔음.

그리고 역장은 자신의 분노를, 마구마구 소리를 질러대고 때론 아내에게 거친 말을 내쏟고는 자기가 한말을 모두 잊는다는 것.

'후비치카' 씨는 여인들과 염문을 뿌리지만, 결국엔 어여쁜 전신 기사 아가씨의 엉덩이에 독일어로 된 역 직인을 스탬프로 찍어대는 일로도 삭혀지지 않아서, 분노의 원천인 독일 놈들을 향한, 거대한 일을 도모하고

'밀로시 흐르마'는 자신의 동맥을 그어버리는 일로 분노를 삭히려 하지만, 미수로 끝나고,

그의 분노는 전쟁 초기에 독일인들의 진입을 말없이 지켜만 봤다는 체코인들 중 할아버지 같은 엉뚱하지만 진정한 용기로 마무리된다.

 

'보흐밀 흐라발'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모자라 보인다. 바보 같고,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코드가 너무 진지해서 웃을 수가 없다.

그런 사람들이 바라보는 전쟁, 그것은 증오이다.

철북을 통해 2차 대전의 발발 한가운데

이 책을 통해 2차 대전 스러져가는 독일의 운명을 한가운데서 접한 기분이 든다.

미친 전쟁은 다시 일어나지 않아야겠지..

 

 

 

 

- 나는 죽은 병사가 쥐고 있던 목걸이를 낚아챘다. 달빛에 비춰보니, 작은 메달이었다. 한쪽 면에는 녹생 네 잎 클로버가 있었고, 다른 쪽에는 ‘행운을 가져다줍니다!‘라는 독일어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 네 잎 클로버는 아무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그 역시 한 인간이었다. 나처럼, 혹은 후비치카 씨처럼 말이다. 특별나게 잘난 것도, 특별한 지위도 없는 그저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쏘고,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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