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3
제인 오스틴 지음, 윤지관.김영희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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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거 사원] 이후, '제인 오스틴'을 만나는 두 번째 작품이다. '오스틴'은 일상생활의 일들과 감정들, 인물들을 묘사하는 재능이 탁월한 작가로 영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이다.

수다쟁이 소녀의 수다 같은 글의 전개는, 너무도 재미있고, 박진감도 넘치고, 재치와 유머가 넘쳐서, 읽는 내내 입꼬리를 올리게 된다.

'에마 우드하우스'는 21세의 미인이며, 총명하고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자신만만하고 소녀다운 허영심도 가득한 그녀에게 어머니는 없지만, 자애로운 아버지와, 결혼해서 분가한 언니와, 변호사인 형부, 그리고 조카들이 있다.

머니를 대신해서 16년간 가정교사로 있던 '테일러' 양과 자매처럼 지내며 우정을 쌓았지만, 그녀가 한 번 상처했던 '웨스턴'씨와 결혼해서 집을 떠나자, '에마'와 그녀의 아버지 '우드 하우스'씨는 허전하기 그지없다.

'테일러'양과 '웨스턴' 씨의 결혼을 주선하고 응원해 준 사람은 '에마'인데, '에마'의 아버지는 결혼한 여인들을 대체로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큰딸 '이자벨라'도, 가정교사 '테일러' 양도, 모두 결혼해서 자기의 안락한 가정을 떠난 것은 어리석은 짓이고, 결혼은 가족 친지를 헤어지게 할 뿐이라고 여긴다.

'우드 하우스' 집안은 유서 깊은 가문의 방계로 여러 세대에 걸쳐 하트필드에서 거주해 온, 그 지역 첫째가는 집안으로, 이웃들의 평판도 아주 좋다. '에마'는 어머니를 대신해서 집안의 여주인 노릇을 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도 돌볼 줄 아는, 그 마을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버지와 둘이 사는 집안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늘 있는데

그중의 '나이틀리'씨는 '에마' 형부의 형으로 37-8세가량 되었는데 독신남이다.

'에마'는 밝은 기질을 타고난 사람으로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도 있는데, 어줍잖게 남들의 결혼 주선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그녀 자신은 부유한 독신녀로 살고자 다짐했다.

가정교사 '테일러'의 결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자, 고무 되어, 교구 목사인 '엘튼'씨의 결혼도 주선해보겠다고 한다.

'테일러'의 남편' 웨스턴은' 재혼이었다. 민병대의 대위 출신으로 대단한 가문 출신의 '처칠'양과 결혼했지만 그녀가 3년만에 사망하자, 이 둘의 아들 '프랭크 처칠'은 아내의 부유한 오빠, 처음부터 웨스턴을 탐탁치 않게 여기던, 외삼촌의 가정으로 보내지고, 그들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테일러'의 결혼과 행복을 응원했지만, '테일러'의 부재를 쓸쓸해 하던 '에마'에게 '헤리엇 스미스'라는 친구가 생긴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의 유순하고 상냥하지만, 사생아였다.

'에마'에게는 그녀와 어울리면서 좋은 영향을 주고, 좋은 결혼을 시키고자 하는 목표도 생긴다.

젊은 농부인 '마틴'의 여동생들과 친하게 지내던 '헤리엇 스미스'가 '마틴'의 청혼을 받았다고 고백하자, '에마'는 집안이 안 좋다면서 만류한다. 그리고 교구 목사 '엘튼'과 연결해 주려고 든다.

여러 일들을 도모해 보았지만, '엘튼'의 관심은 '헤리엇'이 아니라, '에마'였고, '에마'의 자신을 향한 관심의 방향을 착각한 '엘튼'은 '에마'에게 고백한다.

'에마'는 이일을 겪으면서 자신의 무모한 처사와 지나친 참견, 그리고 경솔했음을 깨닫는다.

편 전임 교구 목사의 미망인 '베이츠'부인은 수다쟁이 노처녀 딸 '베이츠'양과 함께 사는데, 막내딸의 유일한 혈육인 외손녀 '제인 페어팩스'를 후원자의 가정으로 보냈다. '제인'의 아버지는 해외 작전 중에 전사한 군인이었고,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슬픔과 폐병으로 죽었다. '제인'의 후원자인 '켐벨' 대령은 죽은 아버지의 친구로, 제인은 그의 딸 '켐벨'양과 함께 어울리면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지만, '켐벨'양이 결혼하여 가정을 떠나자 자신의 미래에 대한 여러 부담감과 함께 건강이 나빠져 외할머니 댁에 요양차 와서 지내게 된다.

'제인'의 미모와 교양은 특출날 정도로 우아하고 돋보이는 격조가 있다. '제인'의 언행을 극도로 조심하고 누구에 대해서든 확실한 의견을 내놓지 않는 과묵함은 '에마'를 당황케 하고, 경계하게 만들었다. 동갑내기인 그녀에게 관심이 있지만 '제인'의 조심성은 '에마'에게 가식으로만 여겨질뿐이었다.

'에마'에게 거절당하자 상심했던 '엘튼'은 잠시 교구를 떠나있다가 결혼 소식과 함께 등장한다.

그리고 '웨스턴'의 아들 '프랭크 처칠'이 등장하는데 소문대로 대단히 잘생겼다.

'웨스턴' 부부는 자신의 아들 '프랭크 처칠'이, '에마'와 연결되기를 바라고, '프랭크'의 처신은 갈수록 애매모호하고, 경솔해지기도 하는데

'에마'는 '프랭크'를 좋아하는 건지 뭔지 헷갈리기도 하고

실연의 아픔에 빠져있던 '헤리엇 스미스'는 외톨이가 되고

건강이 안 좋은 '제인'은 창백한 표정으로 가끔 나타나기도 하고

'엘튼'의 부인은 좀 경박한데 그렇게 멋지고 인품 좋던 '엘튼'도 그의 아내와 닮아가는 듯한데

웨스턴 씨의 주재아래 추진되던 무도회가 '프랭크 처칠'의 외숙모( 양어머니) 병환 소식으로 무산된다.

그리고 '엘튼'부부의 집에 초대되고

무도회가 다시 추진되고,

소풍도 간다.

분사회의 규범에 젖어있던 '에마'는 '베이츠'양에게 말실수를 하고, '나이틀리'의 지적에 반성하게 된다.

'에마'는 자신의 질투로 '제인'에 대한 냉정한 태도를 이미 지적했던 '나이틀리'씨의 충고도 막, 우기면서 넘겼더랬는데 요즘 들어 돋보이는 그의 배려와 신사다움에 자신의 조카들이 큰 아버지인 그의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그가 계속 결혼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숨기는 것 같았던 '제인'은 알 수 없이 시름시름 아프고

가정교사 제의를 수락했지만, 거동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어한다.

외숙모의 장례를 정리하고 나타난 '프랭크 처칠'은, 지난날 비밀리에 '제인'과 약혼했던 사실을 외삼촌과 부모에게 고백하고, 병이 난 '제인'을 찾아가 사과하고 결혼을 추진하자 그녀의 건강은 회복된다.

'헤리엇'은 '에마'에게 고백을 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노라고, 그 상대가 '프랭크 처칠'인 줄 알고, 낙심할 '헤리엇'을 걱정하던 '에마'는, '헤리엇'이 좋아하는 상대가 '나이틀리'씨였음을 듣자, 격이 맞지 않노라고 부인하다가 결국 자신이 '나이틀리'씨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헤리엇'의 주제넘는 처사에 분노하면서, 자신이 '헤리엇'에게 한 것들, 그리하여 변해버린 그녀를 향한 복잡한 심경으로 그녀와의 만남을 꺼린다.

'헤리엇'에게 당분간 집에 오지 말아 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자신의 마음은 확인했지만, 결혼이란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의무나, 아버지에 대한 마음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데, '나이틀리'씨가 '해리엇'의 남편이 되어 자신의 집 방문이 뜸해진다면, 그 부재를 상상하는 것은 두려웠다.

'에마'는 자신과 '나이틀리'씨가 서로 결혼하지 않고 방문과 우정이 지속되기를 바래본다.

녀는 지신의 참을 수없는 허영심, 모든 사람의 숨겨진 감정을 다 안다고 믿고, 용서할 수 없는 교만함으로 모든 사람의 운명을 조정하겠노라고 나섰던 착각들에 대해,

그리고 '나이틀리'씨를 소홀히 대하고 억지 부리고 무시하거나 그의 장점을 반도 모른 채 고집스럽게 맞서고 그녀 자신의 그릇되고 오만한 자기 평가를 그가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불평하기도 했던 일들을 떠올린다.

오랫동안 뜸을 들이던 '나이틀리'씨가 '에마'의 나이 열세살부터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고백과 함께 청혼을 하자 '에마'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스럽고 뛰어난 그를 비로소 알아보고, 수락한다.

'제인'을 찾아가서 자신의 오만함과 냉정했음을 사죄하고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결혼이야기를 꺼내는데 여전히 아버지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이기만 하다. 하지만 마을의 양계장을 습격하던 도둑들 덕분에 선뜻 일이 풀린다.

'헤리엇'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계속 두려워했지만, 그녀가 결국 '마틴'의 청혼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이야기는 완전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여인의 성장과 결혼을 둘러싼 많은 이야기들이 너무 재미있게 전개된다. '오스틴'은 많은 주인공들의 대화를, 대화체가 아닌 설명으로 서술을 하는데 그 표현이 너무 경쾌하고 기가 막혀서, 다시 한번 되짚어 보게 만든다.

지금의 결혼관이나 사고와는 많이 다르지만 19세기 여성적 행복의 귀감이 되는 작품이라 하겠다.

21세기를 사는 21살이 훨씬 지난 나에게도 이런 연애와 결혼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로맨스에 대한 로망을 만족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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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2 - 개정판
찰스 디킨스 지음, 윤혜준 옮김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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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영국의 대표적 장편소설가 '찰스 디킨즈'를 처음 읽는 작품이 [올리버 트위스트]가 되었다.

1830년대 구빈원(극빈자들의 반강제 수용소)에서 태어난 '올리버 트위스트'는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죽고, 고아가 된다.

구빈원과 산하 기관인 고아원의 어른들은 너무도 사악하다.

남들 앞에선 고아들을 사랑하고 챙기는 척하지만, 죽지 않을 만큼만 먹이고, 학대한다.

'찰스 디킨즈'는 구빈원 주위의 인간들을 대놓고 비꼰다. 위선으로 가득한 사람들을 야유 가득한 묘사로 전개해나간다.

아홉 살이 된 '올리버 트위스트'는 직업을 찾아 이곳저곳으로 옮겨지지만, 배고픔과 구타를 견디다 못해 런던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범죄 소굴 집단에 발을 딛게 되지만, 타고난 선함과 고상한 품성으로 범죄자가 될 수 없었고, 그를 알아봐 주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가련한 '올리버의 전기라'고 작가가 언급하는데, 글의 전개는 마치 무성영화의 나래이션 같이 과장되고, 대놓고 감정에 호소를 한다.

나쁜 사람들은 사악하기가 그지없고

선의의 인간은 선하기가 그지없다.

그래서 결국엔 권선징악의 결말이 난다. 그리고 해피엔딩이다.

간만에 이런 동화적인 요소가 참 좋다. 상처에 불어주던 할머니의 호오~처럼, 마음까지 위안까지 된다는.. 암튼 가끔은 이런 거 필요하다.

쁜 사람은 너무 나쁘고 좋은 사람은 너무 좋은 이런 동화 같은 구별..

현실의 사람은 나쁜 건지 좋은 건지, 좋은 줄 알고 지냈는데 어느 날 헷갈리고, 아닌 줄 알았는데 오판이기도 해서 ..

콩쥐팥쥐를 읽듯이 읽었는데

스케일을 비교할라치면 콩쥐팥쥐는 너무도 단순하겠지만 ..

1760년대 산업혁명의 주역 영국 사회의 이면에 자리한 산업화의 폐해와 불평등한 계층화, 어린이의 노동과 빈민 구제법에 대한 '찰스 디킨즈'의 신랄한 비판이 이 소설을 사회소설로 자리 잡게 하였다 하겠다.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하는데 나는 이런 영화도 못 보고 자랐네..

튼 중간중간, 이들의 앞날에 대해 살짝씩 언급해 주는 작가의 친절함과

다양한 인간들의 악행과, 어둠 속에서도 어찌할 수 없는 빛나는 성품과 분위기는 타고나기도 한다는 것.. 유전적인 어떤 것?(무시할 수 없는 것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이 나더라는..)

'올리버 트위스트'의 역경 극복기보다, '올리버'가 태어나게 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그 아버지의 누이동생을 사랑했던 '브라운 로우'씨, 그리고 범죄 현장에 동원되었던 '올리버'를 알아봐 주고 보듬어준 '로즈'와의 관계가 드러나면서, 사랑 없이 태어난 '몽스'가, 악의 축이 되어, '올리버'의 고난을 이끌어 갔지만, 결국엔 용서받아도 맞이하는 결말, 인간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도 들게 한다.

 

"그 아이는 고상한 품성과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로즈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에게 나이에 맞지 않은 만큼 시련을 주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하신 권력자(하느님)께서는 그의 가슴에, 그보다 여섯 배나 더 나이를 먹은 어른들 앞에서도 면목이 서게 할 애정과 감성을 심어주셨습니다.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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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 김승옥 소설전집 1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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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옥'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이고, 감수성의 혁명을 일으킨 작가라고 한다.

이 책 [무진기행]은 단편소설집으로 총 15편이 실려있다.

작품 전반에는 전쟁을 치르고 난 후, 그 시대만의 독특한 비극이 드러나있다. 가난과 혼돈,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몸부림이 안개에 휩싸여 있는 듯, 그래서 어둡고 질척거린다.

몇 소설은 이게 마무리를 한 작품인가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많은 미완의 소설들을 남겼다고 하는데,

유신 체제 발동에서 박정희 서거까지의 1970년대의 십 년이, 작가의 삼십 대 십 년과 일치하는 기간으로 그에게는 박정희 대 김지하의 전쟁 기간으로 정리되어 그 처절한 갈등의 시대이자, 위대한 시대이기도 해서, 그 경험들로 소설의 무대가 되리라 예상했다 하는데

1980년의 광주사태 참극으로 인한 충격과 분노에 펜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손이 떨려 소설 쓰기를 중단해 버렸다고 작가의 말에 밝혀둔다.

그에 있어 소설 쓰기는 직업 이상의 것이었고 신성한 것이었다고도 밝히나, 1981년에 종교적인 체험으로 인하여, 그에게 일시적으로 위안이 되었던 소설보다 더 위대한 어루만짐에 끌려 성경과 주석서를 읽고, 기도생활에 몰두하며 세계관과 인생관을 교정하는 일만 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가 출간을 중단해 버렸다는 [강변 부인]과 미완의 소설 [동두천]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무진은 바다 가까이 있지만 수심이 얕아서 항구로 발전하지 못하고, 이렇다 할 평야도 없는 곳인데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다.

무진의 명산물은 안개로

- 무진에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그것은 안개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면, 밤사이에 진주해온 적군들처럼 안개가 무진을 삥 둘러싸고 있는 것이었다. 무진을 둘러싸고 있던 산들도 안개에 의하여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유배당해버리고 없었다. 안개는 마치 이승에 한이 있어서 매일 밤 찾아오는 여귀( 女鬼)가 뿜어내놓는 입김과 같았다. 해가 떠오르고, 바람이 바다 쪽에서 방향을 바꾸어 불어오기 전에는 사람들의 힘으로는 그것을 헤쳐버릴 수가 없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무진기행]160

나, '윤희중'은 이곳에 오기만 하면, 엉뚱한 공상들과 뒤죽박죽인 것들 그래서 항상 자신을 상실하지 않을 수없었던 과거의 경험이 있다.

나에게 무진행은 서울에서 실패로부터 도망쳐야 할 때, 무언가 새 출발이 필요한 때 오게 되는 곳이었다. 어둡던 청년 시절이 연상되는 관념 속에서의 아득한 장소일 뿐인 이곳에 아내의 권유로, 휴식차 내려오게 된다.

이 휴식이 끝나고 귀경을 하면 그는 장인어른의 제약회사 전무로 승진하게 되어있다.

나는 한때 '희'라는 여인과 동거를 했었고

아내의 전 남편은 사망을 했다.

그런 결혼과 승진이 해방 후 무진 출신의 인물 중 가장 출세한 두 사람 중 하나로 나를 꼽아주는 이유이다.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고등고시를 패스하고 세무서장으로 고향에 근무하는 '조'형이다.

모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박'과, 음악교사인 '하인숙'과 넷이 어울리게 되는데

- 햇빛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무진기행]161

- 어떤 사람을 잘 안다는 것- 잘 아는 체한다는 것이 그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불행한 일이다. 우리가 비난할 수 있고 적어도 평가하려고 드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에 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무진기행] 184

- 흐린 날엔 사람들은 헤어지지 말기로 하자.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가까이 가까이 좀 더 가까이 끌어당겨주기로 하자. 나는 그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사랑한다'라는 그 국어의 어색함이 그렇게 말하고 싶은 나의 충동을 쫓아버렸다.[무진기행]191

 

진은 가상의 공간이다. 광주에서 기차를 내려 버스를 타고 간다 하고, 책에 나오는 무진 중학교는 광주에 있다. 작가의 고향인 순천쯤으로 추측한다고도 한다. 순천의 안개라도 보겠다고, 무진의 안개를 상상해보겠노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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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박물관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28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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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의 위대한 작가 '오르한 파묵'을 만나는 세 번째 소설이다.

[내 이름은 빨강]을 읽고 사로잡혔던 경이로움, 그리고 [새로운 인생]의 몽환적이고 난해함에 빠져봤지만, 다시 집어 든 그의 책 [순수 박물관], 이 작가의 독특함과 서정성 가득한 문체, 세밀화 같은 묘사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행복론--어려운 철학이다.ㅜㅜ, 두 번째 읽을 때는 이 부분을 좀 더 집중적으로 헤쳐야겠다는 생각)을 골조로 두고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하다.

그래서 1975년 5월, 주인공 '케말'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즉 운명의 그녀 '퓌순'과의 사랑이 시작되는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남들의 시선으로는 집착과 병마 같은 사랑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삶이 아주 행복한 삶이었음을 모든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고백으로 끝맺는다.

복하다~ 하는데, 자신의 추구가 남들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불가일지라 해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을 살면서,

그 사람이 행복하다 하는데, 그럼 얘기 끝인 거지~사랑과 사랑을 간직하는 방법이 남다른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터키의 부유한 집안 둘째 아들로 태어난, '케말'은 미국 유학도 마치고 아버지의 사업 연장선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서른 살의 그에게 곧 약혼식을 할 '시벨'이 있다. 그녀 역시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유럽에서 유학을 마친, 서구화되고, 똑똑하고도 배려심 많은 여자로 이 커플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서구화된 부자들끼리 그룹이 형성되어 터키 이스탄불의 상류사회 일원들은 서로를 잘 알고 지낸다.

혼녀가 갖고 싶어 하던 가방을 사러 들렀던 부티크에서, 지나치게 짧은 치마를 입은 열여덟 살의 점원을 만나게 되는데, 가난한 그녀 '퓌순'은 '케말'의 외가 쪽 먼 친척으로, 어린 시절, 둘의 어머니들이 자주 왕래하던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터이지만, '퓌순'이 열여섯 일 때 나이를 속여가면서 미인대회에 참석케 했던 그녀 어머니의 처사를 못마땅해 하던 '케말'의 어머니로 인해 관계가 소원해졌었다

 

가난하고, 쿠데타가 자주 일어나던 1970년대의 터키는 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인을 배우만큼이나 천하게 보았던 듯

'케말'은' 퓌순'에게 강렬하게 꽂힌다.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에 사로잡혔지만, 잘 아는 것 같은 느낌, 자신과 닮아있다는 느낌, 어린 추억 속에 그녀가, 아직 앳되지만, 어른이 되어있는 그녀는 온통 그를 헤집어 놓는다.

그리고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그녀의 대학 입시를 위한 수학 지도를 핑계로 44일간의 사랑이 시작된다. 그 사랑에 자신들의 어릴 적 추억들,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 퓌순'을 향한 자신의 성과 욕구에 관해 진지하고, 그것을 경박함과 천진함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어 하지만, 순결, 부끄러움, 죄책감 같은 것의 무게를 느끼기도 하는데..

그리고 그 시절 그 나라 사람들에게 여인의 순결은 아직 절대적이다.

좋은 교육을 받은 상류층 젊은 여성들은 남편감을 믿어서라기보다는 관습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현대화되고 자유롭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어 하는 혼전순결의 문제가 이 소설의 사랑을 이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무렵 늙어 가는 아버지는 '케말'에게 자신에게 17년 전, 11년간 애인이었던 27세 연하의 여인이 있었으며 그녀가 암으로 죽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그녀에게 선물하려던 진주 귀걸이를 건넨다.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와 자신들을 위태롭게 하지 않았다. 어제나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였으므로..

아파트에서 귀걸이 한 짝을 잃어버린, '퓌순'은 '케말'더러 찾아달라고 하지만,

잘 간직해 두었던 귀걸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시벨'과의 약혼식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된다.

당일에도 '퓌순'과 사랑을 나누고, 내일의 만남도 약속한다.

힐튼호텔에서 화려하게 치러지는 약혼식은, 그 다음날 있을 '퓌순'의 대입시험 일정으로 참석 않기로 했던 그녀가 자신의 부모와 함께 나타나자,

'케말'은 온통 그녀를 주시하고, 시선에서 벗어나면 또 찾고, 떠올리고 의식하느라, 고통스럽고 또 행복하다.

그런 친구들 중 사이다 사업을 하는 '자임'에게 자신의 비밀스런 행복과 고통을 털어놓은 '케말'은 '퓌순'의 춤 파트너들에게도 한없는 질투로 좌불안석이다. 그 약혼식 이후 '퓌순'은 증발해 버린다.

'퓌순'을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그녀의 행방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의 고통이 시작된다.

는 아파트에서 '퓌순'을 기다리면서 그녀가 만졌던, 물건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퓌순'이라는 존재가 형성되는데 기여한 것들, 물건들이 주는 위로를 통해 그 행복감으로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

'퓌순'은 신이 주신 귀한 선물이었다.

그녀를 잊는 계획, 그녀를 연상시키는 물건들로부터 멀어지고 그녀를 연상시키는 거리를 금지해보지만, 어디에서나 그녀의 환영을 보게 된다.

그의 분열과 불행을 눈치챈, '시벨'에게 고백하고, 정신과 상담도 받아보지만, '케말'은 솔직할 수 없었고 진전 또한 없었다.

결국엔 아파트를 다시 찾고, 그녀가 만지던 물건들로부터 고통을 덜 수 있다고 믿게 되자, 무언가를 찾아내고 그것과 관련된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수집품들을 늘려간다.

- 중간 생략-

 

사적으로 유명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박물관을 만들고 칫솔, 커피잔 같은 사소한 것들을 간직해 둔 것, 그리고 자신의 집을 미술관으로 전환해서 준비한 화가 등을 통해서 자신도 자신의 집착의 산물들, 가장 사랑했던 것을 대신할 무언가를 간직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다. 그리고 '퓌순'이 살던 집을 산다.

그녀의 물건들을 옮겨오면서

그 집 지붕층에, 그녀와 사랑하던 침대를 옮겨놓고 지내면서 진정한 박물관은 시간이 공간으로 변하는 곳이라고..

물건들이 모여 선을 이루면 하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고 그것을 위해 이야기를 서술해 나갈 '오르한 파묵'을 부른다.

그는 '오르한 파묵'에게 자신의 사랑 이야기와 박물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게 있어 박물관은 모든 사람들이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나의 삶을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퓌순'이 남겨 놓은 것들과 나의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교훈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살아온 세월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자신의 박물관을 통해 터키 사람들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가르쳐 주고 싶다고 한다.

세상 대부분 사람들은 수치심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삶 속에서 수치심을 주는 것들을 박물관에 전시한다면 그건 즉시 자부심을 느끼는 것으로 변한다고, 자신의 박물관 경비원들은 '퓌순'의 취향에 맞는 양복과 셔츠, 그녀의 귀걸이가 수놓아진 넥타이를 매고 껌을 씹거나 입을 맞추는 관람객들을 절대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오르한 파묵'이 지은 자신의 사랑 이야기 [순수 박물관] 책을 들고 오는 세계의 관람객들 입장료는 무료라고 할 것..

그리고 역시 자신의 삶은 아주 행복했다고..

을 덮으며 미련한 집착 같았던 한 남자의 사랑이 숭고하게까지 와닿는다. '퓌순'의 모습과 사랑에 대한 세밀화 같은 묘사는 사랑의 미학이 된다. 그래서 또한 정중하다.

사람들마다 사랑을 간직하는 저마다의 방식들이 있겠지.. 그 혹은 그녀가 사랑했던 것을 대신할 무엇을, 어디에, 또는 얼마나 간직하고 사는지?

그런 기억을 곱씹으며 사람은 살게 되어 있는 것인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사랑이었고[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톨스토이, 1885년], 부유한 친척이 남긴 대단한 유산인 줄 알았던 도자기는 깨져버렸지만, 진정한 유산은 결국 마법같은 사랑이었던 것[사랑의 유산-로 시 모두 몽고메리. 1931년], 결국 사람에겐 사랑하기 위해 삶이 주어지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사랑의 고통이 감지되던 부분, 분명해지던 부분, 또 퍼져 나가던 부분이 어디인지 박물관 방문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는 그 위에다 표시를 했다. 박물관을 찾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고통이 가장 심했던 시작점이 위의 왼쪽 윗부분임을 밝혀 둔다. 모양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증상이 심해지면 고통은 가슴과 위 사이에 있는 빈 곳으로 즉시 퍼져 나갔다. 그럴 때면 고통은 몸의 왼쪽 부분에만 머물지 않고 오른쪽으로도 전이되었다. 마치 나의 내부로 드라이버나 달구어진 쇠가 파고들어 그 안에서 피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위에서 시작해서 배 전체에 독한 산성 액체가 고였고, 타는 듯이 뜨거웠으며, 끈적거리는 작은 불가사리가 내장에 달라붙은 것 같았다. 고통은 점점 심해지면서 퍼져 나가 커졌고, 이마로 올라가 목덜미와 어깨, 그리고 온몸으로 전해졌으며, 때로는 꿈속까지 침범하여 나를 질식시키듯 압박했다. 때로는 배에서, 정확히는 내가 그림에서 표시해놓은 대로 배꼽 주위에서, 별 모양으로 축적된 강한 산성 액체처럼 목과 입으로 차올라 나를 질식시킬 듯이 위협했고, 온몸을 지끈거리게 하고 신음하게 했다. 손으로 벽을 치거나, 체조를 하거나, 운동선수처럼 몸을 지치게 하면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통이 가장 약해졌을 때조차, 완전히 잠글 수 없는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그것이 내 피에 섞이는 것이 느껴졌다. 고통은 때로 목까지 올라와서 침을 삼키기가 힘들었고, 등과 어깨, 팔로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고통은 언제나 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중심부는 거기였다. 1권 24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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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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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가다. 러시아 귀족 집안 출신의 이 작가는 언어 재능이 뛰어났다고 하는데, 그는 자신의 개인적 비극이 타고난 모국어인 러시아어를 포기하고 미국의 언어로 갈아타야 했다는 사실이라고 작가의 말에 밝혀둔다.

20세기가 낳은 러시아 문학의 거장이자, 대표적 작가로서 인정받았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유럽으로 망명했다가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대중적인 질타와 사랑을 동시에 받은 영원한 망명객이었다.

나비 연구로 하버드대학교 곤충학 특별연구원도 지냈고, 코넬대학에서 유럽, 러시아 문학 교수도 역임했다 하는데, 이 책 [롤리타]는 그에게 작가로서의 명성과 부를 안겨주었다한다.

국에서 출판을 거절당하자, 1955년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했고, 곧이어 발매금지를 당했지만, 3년 만에 미국에서 다시 출간해 1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간, 엄청난 베스트셀러이자, 2차 대 전후 가장 중요한 영어소설 중 하나가 된다.

포르노그래피라고 하는 세간의 막연한 평가와 20세기 가장 선정적인 소설이라지만, 그런 음탕한 색채를 찾고자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재미없고 지루함뿐일 것이다.

언어의 천재답게 이 책의 묘사 압권은 바로 말장난 같은 언어의 유희이다. 미치광이의 헛소리 같은 묘사는 리듬감 있는 언어 자체이다.

어원서로 읽으면 더 잘 드러난다 하는데, 내 평생 그럴 일은 없을 테고,,, 암튼 번역된 책에서도 몇몇 구절에서 드러나는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혀끝을 입천장으로 세 걸음째 앞니를 건드리며 내는 소리, 롤-리-타를 따라 해 본다.

책의 이 서두 부분을 다섯 번 읽으면서 시작했다.

나는 이 책을 왜 읽겠다 했을까.. 선정적이라는 것은 오해일 뿐이고, 문장이 좋다는, 예술이라는 리뷰를 남긴 어느 이웃님 블로그를 보고 사놓고는

읽을 시기를 또 핑계로 미루어 왔다. 독자들의 마음이 이런 줄 예상했던 작가는 중간중간 독자들 을 의식하고 호소한다.

우 불편한 소재가 맞다.

이런 세계의 사람, 이런 취향을 알고 싶지도 않고

이는 분명 범죄이다.

소아성애자, '험버트'는 정신병자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그가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그 주제 자체 임도 알고 있기에 소설 속에서, 후기에서, 여러 번 합리화시키고 변명을 한다.

쾌하다는 생각, 이 책을 처음 읽어내려갈 때 든 생각이다. 님펫이라고 하는 표현부터 그에 대한 묘사 부분 모두 불편했지만,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모호한 묘사에 분통을 터뜨리지 않고 읽으려 애썼다.

작가는 불쾌하다는 말이 독특하다는 말과 동의어인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면서 위대한 예술 작품은 모두 독창적이고 그러한 본질로 인해 충격적인 놀라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라고..

이 언급이 내가 이 책을 읽어나갈 이유가 되었다.

이 책은 '롤리타'를 사랑했던, 아니 그녀를 향한 범죄행위에 대해 감옥에서 홀로 지내는 '험버트'가, 변호사와 독자들을 위해 정리한 글이다. 일종의 회고록 형식이다.

원고를 받은 작가는 '험버트'가 정상이 아니고, 점잖은 사람도 아닌 것을 알지만, 마법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듯이 롤리타를 향한 애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서정에 그를 혐오하면서 정신없이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한낱 정신병자의 진술이지만, 윤리적인 충격도 잠시였다.

'험버트'는 1910년 파리 출생으로 3세 때 어머니를 사고로 잃는다. 아버지는 화려한 호텔의 주인으로 수많은 여자친구를 거느리고 있다. 어릴 때 이모 친구 부부의 딸 '애너벨'과 자주 어울려 놀다가 사춘기 무렵부터 절망적인 격정에 사로잡힌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그런 강렬한 열정의 고비마다 뜻하지 않게 그녀의 부모로부터 방해를 받게 된다. 그들의 밀회는 매번, 실패로 끝나버린다.

그녀는 장티푸스에 걸려 죽고, 그때부터 '험버트'의 인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롤리타'의 원천은 '애너벨'이 었다고 고백한다.

'애너벨'의 죽음이 안겨준 충격, 악몽 같은 여름날의 좌절감이 그대로 굳어 버려서, 연애를 가로막는 영구적인 장애물로 작용하였다고, 그래서 '험버트'는 청춘을 쓸쓸히 보내왔노라고..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후 그녀가 또 다른 소녀로 다시 내게로 왔다고..

그는 정신 병리학 학위를 받고, 영문학을 공부하고 남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면서 프랑스 문학 입문서를 편찬하기도 한다.

그는 친구들 따라 고아원, 소년원을 방문하기도 하는데 그곳에서 꿈에 드리던 그녀 '애너벨'을 떠올리게 하는 속눈썹이 뒤엉킨 창백한 사춘기 소녀들을 만나면 설레인다.

가 말하는 님펫은 9세에서 14세 사이의 소녀들이다. 님프의 모습에 마성을 가진 님펫들은 미모가 기준이 되지도 않고, 나그네의 참된 본성을 드러내는 아이들이 있다고 한다. 야릇한 기품과 종잡을 수 없는, 변화 무쌍하고 영혼을 파괴할 만큼 사악한 매력을 갖는 치명적인 작은 악마들,,,

그런 님펫을 알아보려면 예술가인 동시에 광인이어야 한다고 ..

그는 실제로 오랜 우울증으로 병원을 드나들고, 신경증 증세로 요양원 신세도 진다. 그런데 의사들을 골탕 먹이려고 진실로 상담하지 않고 거짓으로 말하면서 의사를 살피고 평가하기도 한다. 처방받은 수면제는 잔뜩 모아둔다.

그의 번민의 본질은

온갖 금기에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어린 여자아이에게 넋을 빼앗기는 현상이 큰 잘못은 아니라고, 영국의 미성년자 보호법도 들먹이고,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매춘부도 10세부터 창녀였고,동인도 몇몇 주에서는 사춘기 이전에 결혼하거나 동거를 한다고 하며ᆢ

히말라야 산기슭의 소수민족은 8세의 소녀와도 동침할 수 있고 '단테'의 '베아트리체'도 8세였을 때 만났다고

이탈리아 시인 '페트라르카'의 뮤즈 '라우린'도 12세였노라고..

데 8세의 '베아트리체'를 영원히 잊지 못한 '단테'의 그때 나이는 9세였다구요~

어디다 들이대시나~~!

어쨌거나 소심하고 병약한 '험버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하고 연약하고 평범한 아이들을 존중하며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용모도 훌륭하고, 세련되고 약간의 유산도 받게 된 그는 안정적인 결혼 생활도 꿈꾸면서 '발레리아'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4년을 보냈지만

국에서 향수 사업을 하던 이모부가 유산을 그에게 상속하면서 관리를 조건으로 내밀어, 미국으로 가기로 하는데

그녀는 다른 남자가 생겼다면서 함께 떠날 수 없다고 한다.

이혼 수속 후 뉴욕에 도착해 향수 광고의 기획과 편집, 그리고 프랑스 비교 문학사도 정리하게 되는데

그의 님펫들에 대한 연모는 고통스러운 욕망과 불면으로 이어지고 결국엔 신경쇠약으로 1년 넘게 요양원 생활을 하게 된다.

지인들을 따라 북극 탐사대로 떠났었지만, 문명사회로 돌아온 이후 우울증, 중압감을 못 이겨 정신 착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직원의 권유로 정원이 좋은 어느 하숙집으로 이사하려고 하는데 그 집이 불타버렸다 하여, 다시 30대 중반의 '헤이즈'라는 여인의 지저분하고 낡은 집을 소개받는다.

맘에 들지 않지만, 정원 구경을 하던 중, 옛날의 그녀와 똑 닮은, 섬광처럼 떠오른 그 마지막 날 바닷가 공국의 '애너벨'과의 영상에 전율한다.

-중간 생략-

에서도 언급했듯이 음란서적으로 오인해 관능적인 장면이 펼쳐지길 기대한다면 단조롭고 따분해서 죽을 지경의 책이 될 것이다.

처음 미국 출판사들은 이 주제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하는데,

미국 출판사의 금기사항 세 가지 중 하나가 이것이라 한다.

나머지 두 개도 올려본다.

하나는 흑인, 백인이 결혼하여 눈부신 성공을 거두고 수많은 자녀와 손주들을 슬하에 거느리는 이야기.

둘째는 철두 철미한 무신론자가 행복하고 값진 삶을 살다가 장수하여 평온하게 숨을 거두는 이야기라고 한다.

가는 [롤리타]가 가르침을 주기 위한 책은 아니다.

자신에게 있어 소설이란 심미적 희열을, 예술(호기심, 감수성, 인정미, 황홀감 등)을 기준으로 삼는 특별한 심리상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에만 존재 의미가 있다고 한다.

[롤리타]가 늙은 유럽이 젊은 미국을 농락하는 이야기이다.

또는 반대로 젊은 미국이 늙은 유럽을 농락하는 이야기라고도 하고

혹은 반미 소설이라는 비난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때 당시 베스트셀러임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독자들이 이 책들을 들고 다녔지만

정작 끝까지 읽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도 한다.

 

천진함과 기만, 매력과 천박함, 어둡고 시무룩한 표정과 밝고 명랑한 표정을 모두 갖춘 롤리타는 한번 심술을 부리기 시작하면 정말 울화통이 터질 만큼 밉살스러운 계집애였다. 때로는 따분해하고, 때로는 격렬하게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때로는 시무룩하고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널브러지고, 때로는 그냥 건들거리기도 하는데--자기 딴에는 건달처럼 거칠게 행동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바보 흉내에 불과했다.--변덕이 하도 죽 끓듯 해서 도저히 감당할 길이 없었다. 정신적인 면에서는 역겨울 정도로 평범한 계집애였다. 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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