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 박물관 2 민음사 모던 클래식 28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키의 위대한 작가 '오르한 파묵'을 만나는 세 번째 소설이다.

[내 이름은 빨강]을 읽고 사로잡혔던 경이로움, 그리고 [새로운 인생]의 몽환적이고 난해함에 빠져봤지만, 다시 집어 든 그의 책 [순수 박물관], 이 작가의 독특함과 서정성 가득한 문체, 세밀화 같은 묘사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행복론--어려운 철학이다.ㅜㅜ, 두 번째 읽을 때는 이 부분을 좀 더 집중적으로 헤쳐야겠다는 생각)을 골조로 두고 이야기가 펼쳐지는 듯하다.

그래서 1975년 5월, 주인공 '케말'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즉 운명의 그녀 '퓌순'과의 사랑이 시작되는 때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남들의 시선으로는 집착과 병마 같은 사랑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삶이 아주 행복한 삶이었음을 모든 사람이 알아주었으면 한다는 고백으로 끝맺는다.

복하다~ 하는데, 자신의 추구가 남들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불가일지라 해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생을 살면서,

그 사람이 행복하다 하는데, 그럼 얘기 끝인 거지~사랑과 사랑을 간직하는 방법이 남다른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터키의 부유한 집안 둘째 아들로 태어난, '케말'은 미국 유학도 마치고 아버지의 사업 연장선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서른 살의 그에게 곧 약혼식을 할 '시벨'이 있다. 그녀 역시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유럽에서 유학을 마친, 서구화되고, 똑똑하고도 배려심 많은 여자로 이 커플은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서구화된 부자들끼리 그룹이 형성되어 터키 이스탄불의 상류사회 일원들은 서로를 잘 알고 지낸다.

혼녀가 갖고 싶어 하던 가방을 사러 들렀던 부티크에서, 지나치게 짧은 치마를 입은 열여덟 살의 점원을 만나게 되는데, 가난한 그녀 '퓌순'은 '케말'의 외가 쪽 먼 친척으로, 어린 시절, 둘의 어머니들이 자주 왕래하던 시절부터 알고 지내온 터이지만, '퓌순'이 열여섯 일 때 나이를 속여가면서 미인대회에 참석케 했던 그녀 어머니의 처사를 못마땅해 하던 '케말'의 어머니로 인해 관계가 소원해졌었다

 

가난하고, 쿠데타가 자주 일어나던 1970년대의 터키는 미인대회에 나가는 여인을 배우만큼이나 천하게 보았던 듯

'케말'은' 퓌순'에게 강렬하게 꽂힌다. 아름다운 외모와 몸매에 사로잡혔지만, 잘 아는 것 같은 느낌, 자신과 닮아있다는 느낌, 어린 추억 속에 그녀가, 아직 앳되지만, 어른이 되어있는 그녀는 온통 그를 헤집어 놓는다.

그리고 어머니의 아파트에서 그녀의 대학 입시를 위한 수학 지도를 핑계로 44일간의 사랑이 시작된다. 그 사랑에 자신들의 어릴 적 추억들, 주변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 퓌순'을 향한 자신의 성과 욕구에 관해 진지하고, 그것을 경박함과 천진함으로부터 보호하고 싶어 하지만, 순결, 부끄러움, 죄책감 같은 것의 무게를 느끼기도 하는데..

그리고 그 시절 그 나라 사람들에게 여인의 순결은 아직 절대적이다.

좋은 교육을 받은 상류층 젊은 여성들은 남편감을 믿어서라기보다는 관습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현대화되고 자유롭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어 하는 혼전순결의 문제가 이 소설의 사랑을 이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무렵 늙어 가는 아버지는 '케말'에게 자신에게 17년 전, 11년간 애인이었던 27세 연하의 여인이 있었으며 그녀가 암으로 죽은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그녀에게 선물하려던 진주 귀걸이를 건넨다.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와 자신들을 위태롭게 하지 않았다. 어제나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였으므로..

아파트에서 귀걸이 한 짝을 잃어버린, '퓌순'은 '케말'더러 찾아달라고 하지만,

잘 간직해 두었던 귀걸이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시벨'과의 약혼식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된다.

당일에도 '퓌순'과 사랑을 나누고, 내일의 만남도 약속한다.

힐튼호텔에서 화려하게 치러지는 약혼식은, 그 다음날 있을 '퓌순'의 대입시험 일정으로 참석 않기로 했던 그녀가 자신의 부모와 함께 나타나자,

'케말'은 온통 그녀를 주시하고, 시선에서 벗어나면 또 찾고, 떠올리고 의식하느라, 고통스럽고 또 행복하다.

그런 친구들 중 사이다 사업을 하는 '자임'에게 자신의 비밀스런 행복과 고통을 털어놓은 '케말'은 '퓌순'의 춤 파트너들에게도 한없는 질투로 좌불안석이다. 그 약혼식 이후 '퓌순'은 증발해 버린다.

'퓌순'을 기다리고 기다리지만, 그녀의 행방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그의 고통이 시작된다.

는 아파트에서 '퓌순'을 기다리면서 그녀가 만졌던, 물건들에 의미를 부여한다. '퓌순'이라는 존재가 형성되는데 기여한 것들, 물건들이 주는 위로를 통해 그 행복감으로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

'퓌순'은 신이 주신 귀한 선물이었다.

그녀를 잊는 계획, 그녀를 연상시키는 물건들로부터 멀어지고 그녀를 연상시키는 거리를 금지해보지만, 어디에서나 그녀의 환영을 보게 된다.

그의 분열과 불행을 눈치챈, '시벨'에게 고백하고, 정신과 상담도 받아보지만, '케말'은 솔직할 수 없었고 진전 또한 없었다.

결국엔 아파트를 다시 찾고, 그녀가 만지던 물건들로부터 고통을 덜 수 있다고 믿게 되자, 무언가를 찾아내고 그것과 관련된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수집품들을 늘려간다.

- 중간 생략-

 

사적으로 유명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박물관을 만들고 칫솔, 커피잔 같은 사소한 것들을 간직해 둔 것, 그리고 자신의 집을 미술관으로 전환해서 준비한 화가 등을 통해서 자신도 자신의 집착의 산물들, 가장 사랑했던 것을 대신할 무언가를 간직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다. 그리고 '퓌순'이 살던 집을 산다.

그녀의 물건들을 옮겨오면서

그 집 지붕층에, 그녀와 사랑하던 침대를 옮겨놓고 지내면서 진정한 박물관은 시간이 공간으로 변하는 곳이라고..

물건들이 모여 선을 이루면 하나의 이야기가 될 것이고 그것을 위해 이야기를 서술해 나갈 '오르한 파묵'을 부른다.

그는 '오르한 파묵'에게 자신의 사랑 이야기와 박물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게 있어 박물관은 모든 사람들이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나의 삶을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퓌순'이 남겨 놓은 것들과 나의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교훈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이 살아온 세월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고..

자신의 박물관을 통해 터키 사람들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가르쳐 주고 싶다고 한다.

세상 대부분 사람들은 수치심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삶 속에서 수치심을 주는 것들을 박물관에 전시한다면 그건 즉시 자부심을 느끼는 것으로 변한다고, 자신의 박물관 경비원들은 '퓌순'의 취향에 맞는 양복과 셔츠, 그녀의 귀걸이가 수놓아진 넥타이를 매고 껌을 씹거나 입을 맞추는 관람객들을 절대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오르한 파묵'이 지은 자신의 사랑 이야기 [순수 박물관] 책을 들고 오는 세계의 관람객들 입장료는 무료라고 할 것..

그리고 역시 자신의 삶은 아주 행복했다고..

을 덮으며 미련한 집착 같았던 한 남자의 사랑이 숭고하게까지 와닿는다. '퓌순'의 모습과 사랑에 대한 세밀화 같은 묘사는 사랑의 미학이 된다. 그래서 또한 정중하다.

사람들마다 사랑을 간직하는 저마다의 방식들이 있겠지.. 그 혹은 그녀가 사랑했던 것을 대신할 무엇을, 어디에, 또는 얼마나 간직하고 사는지?

그런 기억을 곱씹으며 사람은 살게 되어 있는 것인지,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사랑이었고[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톨스토이, 1885년], 부유한 친척이 남긴 대단한 유산인 줄 알았던 도자기는 깨져버렸지만, 진정한 유산은 결국 마법같은 사랑이었던 것[사랑의 유산-로 시 모두 몽고메리. 1931년], 결국 사람에겐 사랑하기 위해 삶이 주어지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 사랑의 고통이 감지되던 부분, 분명해지던 부분, 또 퍼져 나가던 부분이 어디인지 박물관 방문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는 그 위에다 표시를 했다. 박물관을 찾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고통이 가장 심했던 시작점이 위의 왼쪽 윗부분임을 밝혀 둔다. 모양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증상이 심해지면 고통은 가슴과 위 사이에 있는 빈 곳으로 즉시 퍼져 나갔다. 그럴 때면 고통은 몸의 왼쪽 부분에만 머물지 않고 오른쪽으로도 전이되었다. 마치 나의 내부로 드라이버나 달구어진 쇠가 파고들어 그 안에서 피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위에서 시작해서 배 전체에 독한 산성 액체가 고였고, 타는 듯이 뜨거웠으며, 끈적거리는 작은 불가사리가 내장에 달라붙은 것 같았다. 고통은 점점 심해지면서 퍼져 나가 커졌고, 이마로 올라가 목덜미와 어깨, 그리고 온몸으로 전해졌으며, 때로는 꿈속까지 침범하여 나를 질식시키듯 압박했다. 때로는 배에서, 정확히는 내가 그림에서 표시해놓은 대로 배꼽 주위에서, 별 모양으로 축적된 강한 산성 액체처럼 목과 입으로 차올라 나를 질식시킬 듯이 위협했고, 온몸을 지끈거리게 하고 신음하게 했다. 손으로 벽을 치거나, 체조를 하거나, 운동선수처럼 몸을 지치게 하면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고통이 가장 약해졌을 때조차, 완전히 잠글 수 없는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그것이 내 피에 섞이는 것이 느껴졌다. 고통은 때로 목까지 올라와서 침을 삼키기가 힘들었고, 등과 어깨, 팔로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고통은 언제나 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중심부는 거기였다. 1권 24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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