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작가다. 러시아 귀족 집안 출신의 이 작가는 언어 재능이 뛰어났다고 하는데, 그는 자신의 개인적 비극이 타고난 모국어인 러시아어를 포기하고 미국의 언어로 갈아타야 했다는 사실이라고 작가의 말에 밝혀둔다.
20세기가 낳은 러시아 문학의 거장이자, 대표적 작가로서 인정받았지만, 러시아 혁명 이후 유럽으로 망명했다가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대중적인 질타와 사랑을 동시에 받은 영원한 망명객이었다.
나비 연구로 하버드대학교 곤충학 특별연구원도 지냈고, 코넬대학에서 유럽, 러시아 문학 교수도 역임했다 하는데, 이 책 [롤리타]는 그에게 작가로서의 명성과 부를 안겨주었다한다.
미국에서 출판을 거절당하자, 1955년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했고, 곧이어 발매금지를 당했지만, 3년 만에 미국에서 다시 출간해 1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간, 엄청난 베스트셀러이자, 2차 대 전후 가장 중요한 영어소설 중 하나가 된다.
포르노그래피라고 하는 세간의 막연한 평가와 20세기 가장 선정적인 소설이라지만, 그런 음탕한 색채를 찾고자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면 재미없고 지루함뿐일 것이다.
언어의 천재답게 이 책의 묘사 압권은 바로 말장난 같은 언어의 유희이다. 미치광이의 헛소리 같은 묘사는 리듬감 있는 언어 자체이다.
영어원서로 읽으면 더 잘 드러난다 하는데, 내 평생 그럴 일은 없을 테고,,, 암튼 번역된 책에서도 몇몇 구절에서 드러나는 문장이 매우 인상적이다. 특히 혀끝을 입천장으로 세 걸음째 앞니를 건드리며 내는 소리, 롤-리-타를 따라 해 본다.
책의 이 서두 부분을 다섯 번 읽으면서 시작했다.
나는 이 책을 왜 읽겠다 했을까.. 선정적이라는 것은 오해일 뿐이고, 문장이 좋다는, 예술이라는 리뷰를 남긴 어느 이웃님 블로그를 보고 사놓고는
읽을 시기를 또 핑계로 미루어 왔다. 독자들의 마음이 이런 줄 예상했던 작가는 중간중간 독자들 을 의식하고 호소한다.
매우 불편한 소재가 맞다.
이런 세계의 사람, 이런 취향을 알고 싶지도 않고
이는 분명 범죄이다.
소아성애자, '험버트'는 정신병자이다.
그러나 독자들이 불편해하는 것은 그가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아니라 그 주제 자체 임도 알고 있기에 소설 속에서, 후기에서, 여러 번 합리화시키고 변명을 한다.
불쾌하다는 생각, 이 책을 처음 읽어내려갈 때 든 생각이다. 님펫이라고 하는 표현부터 그에 대한 묘사 부분 모두 불편했지만,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모호한 묘사에 분통을 터뜨리지 않고 읽으려 애썼다.
작가는 불쾌하다는 말이 독특하다는 말과 동의어인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면서 위대한 예술 작품은 모두 독창적이고 그러한 본질로 인해 충격적인 놀라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라고..
이 언급이 내가 이 책을 읽어나갈 이유가 되었다.
이 책은 '롤리타'를 사랑했던, 아니 그녀를 향한 범죄행위에 대해 감옥에서 홀로 지내는 '험버트'가, 변호사와 독자들을 위해 정리한 글이다. 일종의 회고록 형식이다.
이 원고를 받은 작가는 '험버트'가 정상이 아니고, 점잖은 사람도 아닌 것을 알지만, 마법의 바이올린을 연주하듯이 롤리타를 향한 애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서정에 그를 혐오하면서 정신없이 책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한낱 정신병자의 진술이지만, 윤리적인 충격도 잠시였다.
'험버트'는 1910년 파리 출생으로 3세 때 어머니를 사고로 잃는다. 아버지는 화려한 호텔의 주인으로 수많은 여자친구를 거느리고 있다. 어릴 때 이모 친구 부부의 딸 '애너벨'과 자주 어울려 놀다가 사춘기 무렵부터 절망적인 격정에 사로잡힌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그런 강렬한 열정의 고비마다 뜻하지 않게 그녀의 부모로부터 방해를 받게 된다. 그들의 밀회는 매번, 실패로 끝나버린다.
그녀는 장티푸스에 걸려 죽고, 그때부터 '험버트'의 인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롤리타'의 원천은 '애너벨'이 었다고 고백한다.
'애너벨'의 죽음이 안겨준 충격, 악몽 같은 여름날의 좌절감이 그대로 굳어 버려서, 연애를 가로막는 영구적인 장애물로 작용하였다고, 그래서 '험버트'는 청춘을 쓸쓸히 보내왔노라고..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후 그녀가 또 다른 소녀로 다시 내게로 왔다고..
그는 정신 병리학 학위를 받고, 영문학을 공부하고 남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면서 프랑스 문학 입문서를 편찬하기도 한다.
그는 친구들 따라 고아원, 소년원을 방문하기도 하는데 그곳에서 꿈에 드리던 그녀 '애너벨'을 떠올리게 하는 속눈썹이 뒤엉킨 창백한 사춘기 소녀들을 만나면 설레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