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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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리크라는 이 신비한 작가는 그 글에 빠져 보아야만 알 수 있는, 그러나 빠져보면 그 강렬함을 거부할 수 없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까.. 속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ㅎㅎ

다소 지루할 수 있는 독일문학은 이 천재적인 작가로 인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지 않았는가 한다. 특이하기도 한 그만의 개성은 황당하게 여겨지기도 하는데 혀를 내두르게 되는 통찰이 있다.

뭔가 남들과 한참 다른 삶을 살고,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완전히 다른 방향을 향하는 것 같은 이 사람.. 향수를 제외하고는 너무도 짧고, 경쾌하고 엉뚱한 소재들로 이루어진 작품들이 일종의 촌철살인의 향연이라고나 할까. 암튼 대체 불가한 그의 세계, 그의 작품들이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독자들은, 알면알수록 그를 연민한다.

[깊이에의 강요] - 젊은 여류 화가가 자신의 전시회에서 어떤 평론가로부터 "당신은 재능이 있고, 호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깊이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 내용이 신문에 실린다.

그녀는 깊이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반추하고 좌절하느라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심지어 일상생활의 유지도 못하며 영락의 길을 걷다가 파멸을 선택한다. 그리하여 자살에 이른다.

그리고 그 평론가는 다시 이런 내용을 쓴다. 비극적 종말의 씨앗은 이미 그녀의 작품들에서 나타나고 있었다며, 깊이에의 강요를 언급한다.

결국 그는 깊이 없는 손놀림과 말 한마디로 재능 있는 예술가를 파멸시킨다.

함부로 판단하지 말 것, 함부로 쓰지 말 것, 함부로 말하지 말 것, 깊이 없이 던지는 말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교훈.. 리뷰도 댓글도 되새겨 보아야 할것같네..

[승부]- 체스를 두는 이야기이다. 70세의 체스 고수 '장'에게 도전한 낯선 젊은 남자를 이미 '장'에게 수도 없이 패배해와서 복수심 가득한 체스를 두는 관중들이 두 사람의 게임을 보느라 에워싸고 있다.

고수 '장'은 꾀죄죄한 몰골이지만 그간의 체스판에서 번번이 상대방을 지게 하고, 지치게 하고, 분개하게 하여 증오심을 품게 했던 결코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러나 도전자는 젊고 말쑥한 옷차림의 낯선 사람이지만 사람들은 자신들이 당한 패배의 앙갚음을 이 도전자가 해주기를 바란다.

도전자는 과감하고 모험적이며 독창적으로 체스를 둔다. 자기의 손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공격을 하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대담하여 고수 '장'은 긴장하고 더 소심하게 방어를 한다. 그가 정석대로만 두려 하고 진을 빼는 진부한 수법을 쓴다고 군중들이 야유를 하기도 한다.

내심 도전자의 위력적인 공격을 보고 싶어 하고, 그의 승리로 늙은 고수가 바닥에 꼬꾸라지는 장면을 보고자 기다리던 사람들의 기대에 안 맞게 도전자는 알 수도 없는 수를 쓰다 결국 패배를 하는데, 무례하게도 자신의 킹을 쓰러뜨려 버리고는 가버린다.

고수는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았지만 가장 졸렬한 체스를 두었다고 생각한다. 흐트러진 말들을 주워 담으며 방금 둔 체스의 수 하나하나와 상황들을 머릿속에서 더듬어보며 알고 보면 형편없는 수준의 도전자였는데, 평소와 다르게 상대의 약점을 전혀 탐지해 낼 수 없었음을 인정한다.

젊은이의 자신감, 후광은 자신이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고, 본인도 도전자에게 감탄을 했으며 내심 자신도 체스 고수라는 부담스러운 자리를 내어주고 싶었노라고.. 그리하여 악의와 시기심 넘치는 군상들에게 만족을 안기고 평온을 찾길 바랐다고..

가장 하찮은 풋내기에 무릎을 꿇었고, 두는 내내 자신을 부정하고 낮추었다고..

그리하여 그의 승리는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이어서 결국엔 패배한 것이라고, '장'은 체스를 영영 그만두겠다고 결심한다.

체스를 전혀 모르는데도 그의 관찰력과 묘사가 어찌나 뛰어난지 숨이 막혀 온다. 독보적인 그의 글쓰기에 감탄했던 작품이다.

[장인 뮈사르의 유언] - 미래의 미지의 독자에게 쓰는 금세공사의 유서이다. 의사들은 그의 병을 위장 마비라고 진단하는데, 그는 구두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파리의 금세공사가 되어 성공을 하고 돈도 많이 벌지만 유력인사들과 교류를 하면서 지식의 습득에 탐닉한다. 그리고 60세가 되기 전에 모든 사업을 접고 지방에 저택을 지은 후 정원을 가꾸면서 여생을 보내고자 한다.

그런데 응접실 앞에 정원사가 심은 장미가 자라지 못하고 죽자, 화단을 갈아엎어 테라스를 만들고자 직접 삽을 들고 나선다. 그러나 돌에 부딪치고, 돌을 파내다가 돌조개를 발견한다. 그리고 온천지에 조개, 조개 암석, 조개 모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지구의 조개 화가 급속도로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달도 조개 암석으로 이루어졌다 하고, 우주의 조개화도 이야기하다가 인간 육신의 조개화도 이야기한다.

이런 황당한 가설을 뒷받침하고자 인간이 잉태된 순간은 점액질이었지만 자궁에서 자라는 과정에서 앙금이 형성되고 인간이 화석 화가 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피부가 거칠어지고, 머리카락이 갈라지고, 심장, 두뇌의 석회화와 등이 꼬부라진다고 한다. 그리고 조개의 내적 구조를 좇아 인간의 육체가 안으로 구부러지고 휘게 된다고도 한다. 결국은 조개 병이라고 한다.

자신의 죽음은 끝이 있어서 마음이 가볍다고, 그대들은 아직 한가운데 있으므로 불쌍하다며 유서를 접는다.

황당한 내용이지만, 인간의 몸에 석회질이 쌓여 가는 것은 맞다.

결국은 노화도 죽음도 석회화, 조개화 인가? ㅎㅎ 진짜 기발난 상상력이다.

[문학적 건망증]- 이것은 에세이이다. 어떤 책이 자신에게 감명을 주고 아로새겨 졌는지, 어떤 책이 내 인생을 변화시켰는냐는 질문에 자신의 서재를 돌아보다가 무심히 집은 책에서 앞서 읽은 이의 밑줄 친 부분과 낙서가 자신이 생각과 일치함을 보면서 정서적 연대감을 품는다.

그러다가 그 낙서가 자신의 것이었음을 깨닫고 어차피 잊어버릴 것을 왜 읽는가? 왜 다시 읽는가? 어차피 죽을 것을 왜 사는가?라는 회의까지 품는다.

모든 서가의 책들을 한때 열렬히 읽었고 나름의 감명을 주었음에도 저자도, 존재도 잊혔음에, 심지어 책 한 권을 읽는 동안 결말에 이르기도 전에 처음을 잊어버리기도 한다며..

그래서 우리가 블로그를 하는 겁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님^^~

 

책을 읽을 때에도 인생 항로의 변경이나 돌연한 변화가 그리 멀리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보다 독서는 서서히 스며드는 활동일 수도 있다. 의식 깊이 빨려 들긴 하지만 눈에 띄지 않게 서서히 용해되기 때문에 과정을 몸으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문학의 건망증으로 고생하는 독자는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 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직접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이 병은 축복, 거의 필수적인 조건일 수 있다. 그것은 위대한 문학 작품이 꼼짝 못 하게 불어넣는 경외심 앞에서 그를 지켜주고 표절의 문제도 복잡하지 않게 해준다. 그렇지 않다면 독창적이 넋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92-93



- 이 무서운 건망증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나는 생각한다. 있는 힘을 다해 레테의 물살을 버티어 내야 한다. 허둥지둥 글 속에 빠져들지 말고, 분명하고 비판적인 의식으로 그 위에 군림해서 발췌하고 메모하고 기억력 훈련을 쌓아야 한다.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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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풍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
장 지오노 지음, 박인철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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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 프랑스 영화를 본듯한 결말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미완의 상태로 남겨두었다고 하고, 개방된 구성을 취하고 있으므로 나머지는 독자에게 맡긴다는..

작가 '장 지오노'는 구두수선공 아버지와 다림질공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초기엔 남프랑스의 자연친화적인 삶을 그리다 2차 대전 이후 반전 운동에 가담하여 두 차례 투옥된 이후 문명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이 작품은 그의 후기 대표작이고, 이 작가는 평생 태어난 곳을 떠나보지 않은 작가라고 한다.

자인 나를 비롯해 이 마을 사람들이 어느 날 40대의 호남 '조제프' 씨의 출현으로 웅성거린다.

'조제프' 씨는 과묵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멋부린 흔적이 있는 옷을 좀 잘 입는 남자로 이 조그만 도시의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 도시에는 한때 위풍당당했던 '폴란드의 풍차'라는 영지가 있는데, 폐허가 되어버린 이 영지를 '조제프 씨가 차지하게 되는 이야기를, 화자가 회상하며, 또 '조제프' 씨에게 그 영지에 얽힌 '코스트 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폴란드의 풍차'는 폴란드 순례자가 로마로 가다가 이곳에 오두막을 짓고 기거했던 곳이다. 어느 날 '코스트'라는 사람이 두 딸을 데리고 이곳에 나타나 건물을 세운다.

'코스트'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로 격렬하고 급변하는 기질의 소유자이다. 과묵하지만 왕처럼 옷을 입는다. 그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두 딸 '클라라'와 '아나이스'가 있다. 중매쟁이 '오르탕스' 양에게 자신의 집안은 신이 망각한 집안이라며 딸들의 혼처는 그저 신이 생각하는 집안이 아닌, 평범하게 밥이나 먹고사는 집으로 정해주기를 요구한다.

아내와 두 아들을 짧은 간격으로 연달아 잃게 된 '코스트'의 바램은 두 딸의 평범한 삶뿐인 것이다. 매우 평범한 집안인 '드- M' 가의 형제를 사위로 삼은 '코스트'는 메기를 잡은 낚싯바늘에 찔려서 죽게 된다.

언니인 '클라라'는 이 형제의 형인 ' 폴. 드. M'과 결혼해서 그의 세습지에 신혼살림을 꾸리고 아들 '앙드레'와 '앙투안느'를 낳는다.

-중간 생략-

운명은 정해져 있다. 운명은 선택할 수있다의 논쟁은 숙명론에 방점을 찍으면 나이가 든거고, 개척할수 있음에 방점을 찍으면 젊은이의 사고방식이라고, 우리는 각자 우리에게 정해진 운명을 알수없기 때문에 오늘을 열심히 살 수있고, 또 젊은 친구들이 숙명론 보다는 개척의 의지를 갖게되는 사회가 바람직 하겠지 ...

 

황소 같은 남편들은 자기 아내들에게서 늘 충족된 관능을 태어나게 만들었다. 이를 통해 남편들은 묵직한 정신적인 행복, 편안한 이기주의, 행복을 만끽하게 해주는 육체에 대한 완전한 신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 도시의 조그만 무대 전체는 아나이스와 클라라에게서 가정의 장면을 연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 배우를 발견했다. 일체가 교훈이며, 구경거리며, 격언이며 사회의 유희였다.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 아무런 거리도 없는.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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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2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2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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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이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인다. 이 남자의 서정성 가득한 이 책을 통해, 각인하겠노라고..

'서부전선 이상 없다'와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작가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는데, 위시리스트에 담아본다.

읽는 내내 '헤밍웨이'와 비교가 되는 것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반전 메시지를 남기는 면에서 미국과 독일의 이 걸쭉한 남자 작가들을 비교하게 되더라는..

두 작가 모두 내게는 의외의 발견이지만 귀한 존재이다.

'라비크'는 독일에서 큰 병원의 외과부장을 지냈으나, 게슈타포에 쫓기는 두 친구(생명의 은인, 유대인 작가)를 자신의 집에 숨겨둔 죄로 게슈타포 '하케'에게 체포되고 고문을 받는다. 강제수용소에 보내지고, 병원을 거쳐 도망쳐 나온후 여러 나라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오게 된다. 그에게는 여권도 증명서도 없으므로 경관에게 체포되면 국경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한 몇 번의 이력이 있다.

'베버'라는 사람의 병원에서 '뒤랑'이라는 늙고 무능한 의사를 대신해 수술을 하고 받은 약간의 대가로, 싸구려 호텔에서 하루하루를 산다.

리의 거리 센 강에서 낯선 여자와 마주치면서 이야기기 시작된다. 그녀 '조앙 마두'는 이탈리아 출신의 3류 배우로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호텔에 장기 투숙 중인 그녀의 동거남의 죽음을 피해 도망쳐 나왔던 것이다.

이 남자 '라비크'는 전쟁과 불법 체류자의 삶을 통해서 또 의사로서 죽어갈 사람의 몸뚱이를 바라보며 냉정하고 객관적이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게슈타포 '하케'에게 체포당하고 고문 받은 끝에 강제수용소에서 저항하다가 목을 맨, 그의 연인 '시빌'을 아프게, 힘들게 간직하고 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2차 대전의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파리는 절망적인 가운데서 술집과 매춘 사업이 번창한다. 외국의 학위를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 증명서 없이 유령 의사생활을 하지만 그는 꽤나 능력 있고 인간적인 의사이다. 그가 주로 하는 수술은 홍등가 매춘부들이 '부쉐부인'이라고 불리는 늙은 산파가 엉터리로 해놓은 낙태수술의 실패로 인해 위태롭게 된 여인들의 재수술이다. 그런 사례는 대부분 자궁을 드러내고 평생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또한 그녀들의 매독을 검사하기도 하면서 마담 '롤랑드'를 비롯하여, 어린 나이의 매춘부 들과 인간적인 우정을 쌓기도 한다.

그리고 나이트클럽의 도어맨 '모르소프'와 체스를 두며 지내기도 하는데, '모르소프'는 러시아 피난민 출신으로 '라비크'에게 많은 도움을 주려고 한다. '라비크'가 지내는 싸구려 호텔에는 대부분 피난민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 역시 불법체류자 들이다.

 - 중간 생략-

 

장면 장면의 전환이 매우 세련되었다. 주옥같은 문장들과 고독한 한 남자의 서정에 빠져 줄거리를 자꾸 놓치며 읽게 된다. 그래도 상관없을 만큼 훌륭한 소설이다. 전쟁과 전쟁으로 점철된 그 시절에도 사랑은 필요했고 청춘은 소중했으며, 인간은 사랑받아 마땅했음을..

이 소설을 십 대 때 읽고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노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2차 대전 발발 직전의 프랑스 파리, 불안과 절망 속에서 라비크의 시선에 종종 등장하는 개선문, 그리고 그와 그의 연인, 그의 우정을 위로하던 '칼바도스', 주인공들의 이름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사과주의 일종인 이 술에 대한 어느 분의 회상 때문에 읽게 된 개선문은, 나로 하여금,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작가, 아름다운 작품에 눈뜨게 하였다.

 

"사랑이란 언제나 자신을 비출 수 있는 그런 연못은 아닐 거야, 조앙. 사랑엔 썰물과 밀물이 있어. 난파선과 침몰한 도시, 낙지와 폭풍우, 그리고 황금상자와 진주도 있는 법이야. 하지만 진주는 깊이 박혀 있어." 287

엷은 장갑을 통해 강철의 차가움이 전해졌다. 감촉이 좋았다. 흔들거리는 불확실성을 벗어나, 다시 명석한 정확성의 세계로 돌아가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메스로 찔렀다. 가늘고 붉은 핏자국이 메스를 따라왔다. 모든 것이 갑자기 단순해졌다.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느꼈다. 소리도 없이 이글거리는 불빛. 이제 집으로 온 거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마침내!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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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3
사무엘 베케트 지음, 오증자 옮김 / 민음사 / 200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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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보면서 내가 아는 '고도'란, '수준이나 정도 따위가 매우 높거나 뛰어난 그런 정도'라는 사전적인 뜻으로 해석했더랬다. 이 짧은 책을 읽으며 이것이 희곡이었구나, '고도'는 사람의 이름인듯한데, 그들이 기다리는 어떤 것이구나 하는 것을 바로 알게 되면서 나도 함께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는 언제 올는지? 오면 그 둘, 방랑자들의 인생이 어떻게 변화할 건지를 궁금해하게 되었다.

상한 나무(버드나무인 듯) 한 그루만 서있는 황량한 언덕 밑에 늙은 '블라디 미르'와 '에스트라공'이 있다. 그들은 '고도'를 기다리며, 너무 오래 기다린 나머지 습관이 되어버렸고,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어제인지도 헷갈리며 이곳에서 기다리는 것이 맞는지도, 누구를 기다리는 거였는지도 헷갈리는, 기억력과 판단력이 쇠해진 두 노인은 몸동작과 말로 실랑이를 벌인다. '에스트라공'의 악몽에서 매번 깨워주는 이가 '블라디 미르'이지만, 그의 꿈 얘기는 듣지 않겠다고 한다. 서로 함께 함이 지긋지긋하다고 헤어지자면서도 다시 함께 만나서 기다리는 일을 하고, 기다림에 지쳐 목을 매서 끝내자고 하면서도 시도하지는 못한다.

리멸렬한 기다림을 메우려고 욕도 하고, 질문도 하고, 운동을 하고 춤도 추지만 시간을 보내기는 여전히 지루하고, 기다림은 포기하지도 못하면서 주머니에서 당근 대신 꺼낸 더러운 순무를 먹으며 '고도'가 오면 살수 있다는 희망에 꽁꽁 묶여있다. 마치 '포조'의 끈에 묶인 늙은 노예 '럭키'처럼..

그리고 어제도 만났으면서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소년이 와서는 '고도'가 오늘은 오지 못한다고, 내일은 온다고.. 그렇게 만 전한다. '고도'는 오지 않고, 이 둘의 기다림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고도'가 누구지? 그가 오는 건가? 왜 안 오는 거지? 어리둥절하면서 책을 읽게 된다. 말장난 같은 말들과 서로의 말을 잘 못 알아듣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예상되는 모자 돌리기 같은 장면들이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는데, 뭔가 어둡고 참담하다.

실제 연극에서는 웃음의 포인트가 훨씬 많다고 하는데 아직 연극은 보지 못했으므로..

제 이 작품을 통해서 주목을 받게 된 작가 '베케트'는 '고도'가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자신도 알았다면 작품에 썼을 거라는 말을 남겼다 한다. '고도'가 누구인지 무엇인지는 독자의 몫이 되겠다...

'베케트'는 유쾌한 허무주의자이고, 이 작품은 '부조리극'의 정수라고 한다. '부조리극'이란 프랑스를 중심으로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서유럽을 풍미한 흐름으로 '반연극', 혹은 '전위 드라마'라고도 한다. '부조리극'의 주제는 불합리 속에서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인간의 고독과 소통의 부재를 드러내 인간에게 존재의 부조리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통속극이 유행하던 시대에 이런 허무맹랑한 내용과 끝맺음을 하는 특이한 연극이 먹혔음은 '실존주의'와 '세계대전'이었을 것이다.

제 '베케트'는 아일랜드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의 한 농가에 숨어 살면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자신의 상황을 인간의 삶에 내재된 보편적인 기다림으로 작품화했다고 한다.

인간의 삶이란 것이 결국엔 기다리는 일은 아닌지? 기다림으로 이루어져 있는 건 아닌지? 기다리면 올 것이라는 희망의 끈으로 버티는 삶은 아닌지? 하는 생각.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 요. 그러니 우리 시대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 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오.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 것도 없지. 그런 얘긴 아예 할 것도 없어요. 인구가 는 건 사실이지만.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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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은 다른 곳에 - 교양선집 16
밀란 쿤데라 지음, 안정효 옮김 / 까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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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의 역사 속 위대한 작가 '쿤데라'는 현존 하고 있는 현재 나이 90의 사람이다.심오한 제목과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문체는, 젊음을 사유하게 하고 철학 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알려진 그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15년 앞선 이 책은 나의 초창기 블로그님의 추천작이다.

총 7부로 나누어진 이 장편 소설은 '시인의 탄생', '자비에르', '수음을 하는 시인', '도망치는 시인', '질투하는 시인', '중년 남자', '시인의 죽음'으로 구성된다.

인공인, 시인 '야로밀'의 탄생과, 어른이 되는 과정, 시인이 되는 과정, 그리고 사랑과 죽음을 일직선상에 놓고 거기에 어머니와 몇 명의 여인, '자비에르'라고 하는 '야로밀'의 서사시의 주인공이자, 제2의 자아, 그리고 중년 남자가 등장한다.

이름 한번 나오지 않는 '야로밀'의 어머니는 젊은날 기사와 사랑에 빠지고, 임신을 하게 된다. 그는 쾌활하고, 자유분방하며 매혹적이고 무책임한 행동으로 그녀의 마음과 몸을 얻었지만, 사랑의 모험은 탐욕한데 비해, 인생의 모험은 두려워하였기에 그녀가 잉태한 생명을 제거해 주길 바란다.

유한 상인의 딸이었던 어머니는 혼전임신을 환영했고, 그래서 그 기사와 결혼을 한다. 그녀의 집에 트렁크 두 개만으로 입성한 남편은 그녀의 세계를 거부하는 암시로 '아폴로 입상'을 가져다 놓았는데, 반감을 품었던 그녀는 어느새 '아폴로 입상'을 좋아 하게 되고, 뱃속의 아이가 '아폴로'를 닮기를 소망한다.

그녀의 언니는 무희이고, 프라하의 일류 양장점 에서 일을 하고, 테니스를 치면서 사람들의 관심 을 받는 존재이다. 그런 언니의 속물스러움에 반발심을 가진 그녀는 음악, 문학이 가진 감상 적인 진지성을 사랑하게 되고, 의학도와 사귀었으나 자신의 육체에 대한 우울함만을 얻게 되어 철학과를 지망하게된다. 그리고 지금의 남편인 활달한 젊은 기사와의 육체적 사랑에 눈을 뜬다.

그녀는 임신으로 인해 여인의 육체에서 어머니의 육체로 변모되는 기쁨과 성스러움에 눈뜨고, 사랑을 쫓는 육체가 아닌 헌신하는 육체로 거듭남에 따라 자존심을 찾고 자부심까지 갖게 된다.

그녀의 아들 '야로밀'이란 이름은 '봄을 사랑하는 남자', '봄의 사랑을 받는 남자'라는 뜻으로 봄철에 탄생한다. 말이 터지자 주위의 어른들에게 그 아이의 말이 운율로 들리고, 칭찬 반응에 힘입은 아이는 어휘를 연구하게 되고, 재능 있고, 감수성이 강하고 다른 아이들과 차이가 있다고 여겨진게 된다. 지나친 모성애에 감싸진 아이는 2학년으로 바로 입학하고 학교 행사에서 시 낭송을 하기도 하지만 어른의 관심을 의식하고 유발하려고 애쓰는 잘난체하는 아이가 된다.

'야로밀'의 친구는 약국과 향수가게를 소유한 부자 외할아버지와 아버지, '알리코'라는 개, 그리고 관리인의 아들인 학교 친구 하나 뿐이다.

 

-중간 생략-​

 

 

 

한 여인이 더 이상 여자, 사랑의 객체가 아닌, 어머니가 되는 과정, 그리고 사랑을 포기한 대신 얻게 된 책임과 의무와 희생하는 사랑에 대해, 한 소년이 어머니의 품 안을 떠나 어른이 되고자 하는 욕망, 그 욕망 속에 깃든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인과의 사랑, 그리고 한 사람이 시인이 되는 과정, 체코의 근대화 속 젊은이들의 방황과 '쿤데라'의 서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소설, ' 쿤데라'는 이 소설의 제목을 '서정 시대'라고 하려다가 바꿨다고 한다. 실제로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시인이기도 했던 '쿤데라'는 이 소설속에 여러 시인들의 이름과 삶을 등장시킨다. '생은 다른 곳에 있거나 아니면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소설 의 주제이다. 그리고 오해와 진실, 착각과 현실의 대조를 팽팽하게 전개한,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책. 위대한 밀란 쿤데라ᆢ한 소녀에 내재 된 여성성, 그리하여 눈뜬 그녀는 어머니가 되고, 그가 잉태한 아들은 역시 소년속에 내재된 남성성을 추구하게 되는 수레바퀴 같은 인간의 생ᆢ내게 가장 주목되는 부분이었다

서정시는 어떤 진술도 당장 진리가 되는 그런 영역이다. 시인이 어제는 ‘인생은 눈물의 골짜 기‘라고 하고, 오늘은 ‘인생은 미소의 땅‘이라고 하더라도, 두 경우 모두 그는 옳다. 모순은 없다. 서정시인은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유일한 증거는 시인 자신이 가진 감정의 강렬함뿐이다. 서정 시인의 천재성은 경험 부족의 천재성이다. 시인은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알지 못하지만, 그의 존재로부터 흘러나오는 어휘들을 수정(水晶)처럼 조형 있는 구조로 배열한다. 시인 자신은 성숙 하지 못했지만, 그의 시는 가가 경탄하며 마주 보 고 서 있는 예언의 궁극성을 가진다. 243

- 인간의 몸으로부터 슬픔이나 기쁨이 눈에 보이 지 않게 발산되는 하나의 방식으로, 순수하고 소박한 눈물이 스스로를 위해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눈에서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이 눈물의 순진성에 대한 방패가 전혀 없었고, 그래서 영혼 깊숙이 감동을 받았다. 324



- 그리고 이제는 꿈과 현실, 시와 인생, 행동과 사고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제거할 때가 온 것이다. 자비에르와 야로밀 사이의 균열을 막기 위해서는 둘이 단 하나의 존재로 결합해야만 했다. 환상의 인간은 행동의 인간이 되고, 꿈의 모험은 삶의 모험이 되어야 한다.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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