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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2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32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평점 :
독일 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이 이름을 몇 번이고 되뇌인다. 이 남자의 서정성 가득한 이 책을 통해, 각인하겠노라고..
'서부전선 이상 없다'와 '사랑할 때와 죽을 때'의 작가이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하는데, 위시리스트에 담아본다.
읽는 내내 '헤밍웨이'와 비교가 되는 것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일종의 반전 메시지를 남기는 면에서 미국과 독일의 이 걸쭉한 남자 작가들을 비교하게 되더라는..
두 작가 모두 내게는 의외의 발견이지만 귀한 존재이다.
'라비크'는 독일에서 큰 병원의 외과부장을 지냈으나, 게슈타포에 쫓기는 두 친구(생명의 은인, 유대인 작가)를 자신의 집에 숨겨둔 죄로 게슈타포 '하케'에게 체포되고 고문을 받는다. 강제수용소에 보내지고, 병원을 거쳐 도망쳐 나온후 여러 나라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오게 된다. 그에게는 여권도 증명서도 없으므로 경관에게 체포되면 국경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한 몇 번의 이력이 있다.
'베버'라는 사람의 병원에서 '뒤랑'이라는 늙고 무능한 의사를 대신해 수술을 하고 받은 약간의 대가로, 싸구려 호텔에서 하루하루를 산다.
파리의 거리 센 강에서 낯선 여자와 마주치면서 이야기기 시작된다. 그녀 '조앙 마두'는 이탈리아 출신의 3류 배우로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호텔에 장기 투숙 중인 그녀의 동거남의 죽음을 피해 도망쳐 나왔던 것이다.
이 남자 '라비크'는 전쟁과 불법 체류자의 삶을 통해서 또 의사로서 죽어갈 사람의 몸뚱이를 바라보며 냉정하고 객관적이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게슈타포 '하케'에게 체포당하고 고문 받은 끝에 강제수용소에서 저항하다가 목을 맨, 그의 연인 '시빌'을 아프게, 힘들게 간직하고 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2차 대전의 불길한 기운이 감도는 파리는 절망적인 가운데서 술집과 매춘 사업이 번창한다. 외국의 학위를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 증명서 없이 유령 의사생활을 하지만 그는 꽤나 능력 있고 인간적인 의사이다. 그가 주로 하는 수술은 홍등가 매춘부들이 '부쉐부인'이라고 불리는 늙은 산파가 엉터리로 해놓은 낙태수술의 실패로 인해 위태롭게 된 여인들의 재수술이다. 그런 사례는 대부분 자궁을 드러내고 평생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 되는 결과를 낳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또한 그녀들의 매독을 검사하기도 하면서 마담 '롤랑드'를 비롯하여, 어린 나이의 매춘부 들과 인간적인 우정을 쌓기도 한다.
그리고 나이트클럽의 도어맨 '모르소프'와 체스를 두며 지내기도 하는데, '모르소프'는 러시아 피난민 출신으로 '라비크'에게 많은 도움을 주려고 한다. '라비크'가 지내는 싸구려 호텔에는 대부분 피난민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 역시 불법체류자 들이다.
- 중간 생략-
장면 장면의 전환이 매우 세련되었다. 주옥같은 문장들과 고독한 한 남자의 서정에 빠져 줄거리를 자꾸 놓치며 읽게 된다. 그래도 상관없을 만큼 훌륭한 소설이다. 전쟁과 전쟁으로 점철된 그 시절에도 사랑은 필요했고 청춘은 소중했으며, 인간은 사랑받아 마땅했음을..
이 소설을 십 대 때 읽고 의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노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2차 대전 발발 직전의 프랑스 파리, 불안과 절망 속에서 라비크의 시선에 종종 등장하는 개선문, 그리고 그와 그의 연인, 그의 우정을 위로하던 '칼바도스', 주인공들의 이름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사과주의 일종인 이 술에 대한 어느 분의 회상 때문에 읽게 된 개선문은, 나로 하여금, 또 하나의 아름다운 작가, 아름다운 작품에 눈뜨게 하였다.
"사랑이란 언제나 자신을 비출 수 있는 그런 연못은 아닐 거야, 조앙. 사랑엔 썰물과 밀물이 있어. 난파선과 침몰한 도시, 낙지와 폭풍우, 그리고 황금상자와 진주도 있는 법이야. 하지만 진주는 깊이 박혀 있어." 287
엷은 장갑을 통해 강철의 차가움이 전해졌다. 감촉이 좋았다. 흔들거리는 불확실성을 벗어나, 다시 명석한 정확성의 세계로 돌아가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메스로 찔렀다. 가늘고 붉은 핏자국이 메스를 따라왔다. 모든 것이 갑자기 단순해졌다. 돌아온 이후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느꼈다. 소리도 없이 이글거리는 불빛. 이제 집으로 온 거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마침내!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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