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을 읽다 - 빅데이터로 본 우리 마음의 궤적
배영 지음 / 아날로그(글담)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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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마지막을 3일 앞둔 시점,,, 계속된 회식과 모임을 하면서 물론 회사이야기를 가장 많이 했지만, 그 다음으로 사회와 경제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쉬는시간, 출퇴근시간 틈틈이 읽은 <지금, 한국을 읽다>가 이야기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여전히 다이내믹하다. 하루에도 인터넷포탈과 SNS를 통해 수많은 이야기, 생각, 사회현상 등을 거의 모든 국민이 공유한다. 많은 국민들이 하나의 이슈에 공감하기도,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표지에 나와있는 8개의 단어가 모두 부정적인 단어다. 저출산, 가짜뉴스, 적폐, 혼밥, 불안, 비혼, 혐오...슬픈 우리 사회의 오늘을 보여준다)

 

오늘의 한국사회는 헬조선, 적폐, 혐오, 불안 등 부정적인 단어가 지배하는 조금은 우울한 사회이다. 기분 좋은 뉴스는 정말 눈을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이고, 대부분 불안하고 절박한 사회현상이 뉴스와 SNS를 지배한다.

 

그래서 더욱 이 책이 읽고 싶었다. 도대체 문제점은 무엇이며, 한국 사람들은 어떤 일에 불안해 하고 어떤 이슈를 가지고 있는가를 알고 싶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스마트폰 부품을 제조하는 전자업계에서 마케팅과 '19년도 전략을 작성하는일을 하고 있다.

최근 성장세가 꺾이고 침체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소비심리나 관심사를 알아야 하는 직업이라 더욱 유심히 자세하게 읽었다.

 

저자 배영 교수님은 현재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님으로 있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온라인 공간의 문화와 제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이 인간 행위와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오랫동안 연구했다. 나 또한 온라인 문화와 공간 제도 등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업을 하고 있고, 스마트폰을 통해 사람들의 패턴을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어 더욱 관심있는 주제였다. 이 책은 빅데이터로 한국사회를 분석했다. 사실 광고에서는 '빅데이터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했지만 저자분은 머리말에서 빅데이터의 맹점을 이야기 해준다. 빅데이터가 사회적으로 주목 받다 보니 과도한 기대와 함께 만능열쇠처럼 여겨지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제다. 전수 분석은 절대 가능할 수 없다. 분석하는 과정 중에서도 새로운, 많은 정보는 무수히 발생해서 과거를 금세 뒤집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회 현상을 추론해보고 대비해 보는 용도로만 사용해야지, 이 데이터가 모든것을 대변한다고 믿어서는 절대 안된다.

 

1부는 우리 마음의 행로를 보여준다.

1부의 키워드는 <혐오>, <불안>, <행복과 불행>, <분노>에 대한 키워드로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마음을 알아본다.  

지난 5년간 한국인은 혐오하는 대상이 주로 시설이나 사회의 시스템이었는데 특정 사람으로 분노의 대상이 이동했다. XX녀, XX남 등 사람과 성대결을 조장하는 단어로 옮겨가고 있다. 시설에 대한 혐오는 그 시설의 위치나 용도 다양한 형태로 해결이 가능하나, 사람 자체에 대한 미움과 분노는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IMF이후 사회가 각박해지고 양극화,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결국 사람과 사람사이의 갈등이 야기됐고, 이는 시간이 지날 수록 더욱 강해지고 깊어지고 있다.

저자는 문제 분석을 이야기하면서 각 Chapter의 끝부분에 우리에게 화두를 던지고 있다. 

저자의 말도 있지만 해결책이나 Solution을 한 명이 줄 수는 없다. 저자의 작업처럼 현상을 제대로 분석해 내는 것도 큰 역할이다. 나머지는 우리 사회와 정치권, 기업, 각종 단체, 학계 등에 넘기는 것이다. 

 

저자의 말 중 감명깊었던 한 부분을 소개한다.

 

행복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가치다. 그렇기에 삶을 위한 기본조건을 갖추는 것만큼이나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의미 부여가 중요하다. 현재의 행복이 주관적인 판단과 만족의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면, 미래의 행복은 추구하는 가치에 자리한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분석한 내용 중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우리 국민의 성숙함이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행복을 더 많이 이야기하며,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내다보고 희망과 의지를 함께 다져가는 우리가 있었다. --- p.43

 

2부는 변화하는 가족과 관계의 사회학이다.

2부의 키워드는 <여가>, <비혼>, <저출산>, <혼밥>, <명절>이다.

저자는 2004년 실시된(나 또한 대학생활과 군생활을 하던 시절이라 기억이 있다) 주 5일 근무제 이후 일과 여가생활의 균형에 대한 화두가 커졌다. 오늘날 주 52시간 초과 근무금지제도를 통한 일과 여유 즉, 워라밸로 이 여가의 중요성은 더욱 커져간다고 볼 수 있다.

N포세대로 촉발된 20대 젊은이들의 슬픔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집, 일자리 등 우리 사회의 희망은 많이 없어졌고 비혼의 문제, 이로 인한 결혼을 할 수 없는 사회로 변화했다. 

그러면서 저출산문제에 대한 심각한 사회문제로 몇 백년안에 대한민국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 모두 알고 있는 현실이지만 여러가지 복잡한 사회문제의 꼬임으로 인해 결혼과 출산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나 또한 그런 문제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지만 여기서 그 이야기를 하지는 않겠다. 저자의 진단으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안심하고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이끄는 사회환경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출산 자체보다는 육아에 대한 관심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84P

3부는 합리적 개인과 사회적 신뢰에 관한 이야기다.

3부의 키워드는 <김영란법>, <적폐>, <갑질>, <누진제>, <가짜뉴스>다. 하나같이 어렵고 좋지 않은 사회현상에 관한 이야기다.

먼저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의 공정함과 비리, 부정부패를 없애자는 첫번째 단추였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과 비리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혁신적 시작의 단추였다.

박근혜 정권의 퇴장과 함께 우리 사회 곳곳의 적폐 현상에 대한 우리 모두의 분노를 알 수 있는 단어들을 우리 국민들은 많이 검색했고, 또 듣고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 정부의 기치인 <적폐 청산>으로 인해 적폐 세상을 우리는 오늘도 하나하나 알아가고 있다.

급진적 사회발전으로 그에 따른 도덕성은 갖추지 못한 사회지도층과 일부 부자들의 지나친 갑질, 소위말하는 신계급사회로 불리우는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부정적 단어다.

여름에 전기누진제와 SNS 등으로 촉발한 가짜뉴스 문제도 짚어본다.

 

4부는 다가오는 미래와 새로운 과제를 이야기 한다.

4부의 키워드는 <대학>, <북한>, <취업>, <미세먼지>, <인공지능>, <4차 산업혁명>이다.

 먼저 과거처럼 무조건 대학을 가야 성공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으로 시작해 결국 우리 사회의 명문대=성공 또는 적어도 사회낙오는 하지 않는다는 믿음처럼 그 대학에 대한 입시제도는 온 국민의 관심사다. 최근 대학입시제도에 대한 많은 논의와 협의가 있었지만 결국 아직 해결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는데 언제나 미봉책과 땜질처방이 난무한다는 부분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다음으로 2000년대 이후 핵위협의 한반도를 대표하는 북한과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북한에대한 정책이 변화했고, 최근의 화해모드와 통일에 대한 젊은이들과 장년층의 시각 차이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취업과 미세먼지는 우리 사회의 새로운 부정적 단어의 최고봉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해결책이 쉽게 보이지 않는 최고의 난제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변화하는 사회와 미래에 대한 사람들의 걱정과 기대, 두려움을 알 수 있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화두를 분석한다.

 인류 역사에서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확산은 언제나 사회 변화를 가져왔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은 인공지능 활용의 본격화 등으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전면적인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전망이 일반적이다. 미래에는 무엇이 우리를 먹여 살릴 것인지, 변화와 성장을 향한 관심은 당연한 일이다. ---217P

사회가 급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쉽게 변한다.

누군가 이야기한다. 사고친 연예인이나 정치인에게 "버텨라. 곧 잊혀진다." <지금, 한국을 읽다>를 읽으면서 긍정적인 키워드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이 책은 오늘 우리 사회에 극심한 논쟁이 되고 있는 뜨거운 이슈 20개를 선별해 각 키워드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목소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본다. 정말 필요한 작업이고,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다.

특히 다양한 SNS 채널과 포털사이트의 수많은 정보, 매스컴의 데이터를 추출해 산출된 결과값을 토대로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지금 여기, 오늘 우리 사회 곳곳에 산재한 다양한 갈등과 문제의 기원이 무엇인지부터 자세히 관찰하다보면 이러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사회학자인 저자의 분석과 데이터를 따라가다 보면 부정의 단어를 성찰하면서 우리 국민들의 고민거리와 우리사회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다.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우리모두 같이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안심하고 결혼과 출산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이끄는 사회환경 구축이 우선되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출산 자체보다는 육아에 대한 관심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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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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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재수 전에는 동양사(철학)을 전공했고, 재수를 해서 법학과를 진학했습니다.

이 책은 저의 두가지 흥미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저의 입장에서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법조인이거나, 한국 해방기 이후 법조 엘리트들의 역사, 삶이 궁금한 사람이라면 필독해야 할 책입니다. 일반인이면...일제 말기, 해방기 이후 미시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습니다.

또 오늘날 뉴스에 많이 나오는 사법부의 모습, 떡검, 견찰이라는 모멸적인 별칭으로 불릴만큼 심각한 사법불신을 야기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그 원류를 찾아서 읽을 수 있어서 좋은 책입니다.

 

창비에서 보내준 초고 책을 정말 열심히 읽고, 서평을 쓰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아쉬운 점은 제가 받은 초고가 저자가 무조건 읽어야 한다는 Part4 이후 중에서 Part 5 ~ 6과 독립적인 부분인 Part7이 없는 책이라...이 책의 알멩이를 읽지 못하고 썼다는 부분이 아쉽습니다. 고급 양식집 코스 요리에서 스테이크 나오기 직전에 멈췄습니다. 사서 읽어야 하나 고민중입니다.

 

Part 4까지 열심히 이 책만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위키백과, 각종 신문을 찾으면서 읽은 결과 재미있고, 안타깝기도 하고 모르는 부분을 많이 알게 되서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책은 1949년 7월 김영재 서울지검 차장검사(일반인 중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지방검찰청으로 예를 들면 지방검찰청의 검사장(줄여서 지검장)의 바로 밑이 차장검사다. 흔히 기업체 직급이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이라서 차장검사를 부장검사 밑이라고 많이 아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차장검사 아래가 부장검사다, 물론 법률적으로 검사는 개개인이 독립된 기관이고 법률적 구분은 검사장과 평검사만 있을 뿐이다)를 체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모든 부분에서 극심한 좌우 대결을 벌이고 있었고, 여러 국제적 상황이 우선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분열이 남과 북으로 국토가 종단되는 상황에 큰 기여를 한 것도 분명하다.

김영재 검사는 뒤에 본문 1부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뤄지는데 경북 안동의 쏜꼽히는 명문가(풍산 김씨) 출신으로 경성제대를 졸업해 고등고시 사법과와 행정과(한 때 우리나라에 유명했던 양과 고시 합격, 요즘 다른 일로 유명한 고승덕 변호사는 고시 3관왕)를 합격한 수재였다.

하지만 그는 남로당 '프락치'사건에 연루되어 결국 보장된 성공의 길에서 탈락한다.

 

당시 법조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는 좌우 분열이 극심한 시기였다. 우파이면서 철저한 반공주의자이자 미국유학파 출신인 이승만 정부가 수립된 지 1년이 채 안 된 시점으로 사회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일제시대 우민화 정책으로 우리나라는 인재가 너무나 부족했다. 물론 부유층 출신으로 일본 유학파들이 있기는 했지만 일제시대 당시에는 부족했던 자리가 해방 이후 빠져나간 일본인 자리를 우리 국민들이 채워야 해서 자리는 많은데 일할 인재는 부족한 시기였다.

이 시기 일제시대 고등문관시험 출신 변호사, 판검사, 행정가들은 쉽게 요직을 차지하게 된다.

집안문제 및 합격시기 등이 늦어 늦게 법조계에 진출한 김영재 차장검사도 당시 41세에 불과했다.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대표적인 기회주의자 법조인(?) 고인이 되신 분을 평가하고 뭐라하기는 조금 두렵긴 하지만 민복기 대법원장은 우리나라 나이 33세에 당시 서울중앙지법 판사였고 나보다 두어살 많은 시점에서 만38세에 법무부차관이 된다.

우리 역사에 등장하는 박정희, 백선엽장군 등 당시 많은 군인, 법조인 지도자들이 30~40대 초반에 지금으로 치면 대장, 장관을 하던 시기였다. (물론 평균수명이 짧은 시기인 것을 감안하기는 해야한다)

이 책에는 김병로, 이인, 허헌 같은 법학과를 다녔거나 조금은 현대사에 밝은 사람이라면 알 수있는 인물부터 이홍규(이회창 전 총리 부친), 조평재(조순의 삼촌), 이충영(이수성 전 총리) 등이 모두 나온다. 요즘으로 치면 금수저의 기원 등을 알 수 있게도 해주는 책이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해방 이전, 이후 거의 모든 고시 합격자들의 집안은 지방 읍면장(지금과는 다른 막강한 권한을 지님), 대지주, 부호의 아들(당시 여성 법조인은 매우 드문 시기니까)이 많다.

 이 책은 1부 1937년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자를 추적하면서 시작된다. 1937년은 일본 고등고시에서 조선인은 한 해 5~8명 정도 합격하다가 갑자기 17명이나 대거 합격한다.

 아픈 역사가 나오는데 1937년 일본의 중일전쟁 전후로 한국의 독립운동사는 중국 본토의 일부 임시정부 인사와 해외 인력을 제외하고는 숨을 죽이게 된다. 

 일본의 세계를 상대로 싸우는 강력한 힘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체제에 순응하고, 변절하게 된다. 물론 이를 정당화할 마음은 없다. 다시는 이런 역사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 또 변절자를 양성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런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고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여전히 그들이 지배층이라 우리는 1940년대 후반 ~ 1970년까지의 암흑기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이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자가 이 책에서 말하는 제 1군 법률가들이다. 가많이 법조인만 해도 앞길이 보장되는(앞에도 말했지만 인재 풀이 적어서) 엘리트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엘리트들은 대부분 부잣집 출신이거나 최소한 중산층 이상의 자식들로 '개천에서 용이 나오지 않았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것은 그 뒤 1960년대 이후부터 조금씩 나온다.

 이 당시 고등고시 사법과 합격자들은 친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법관이 대부분 천황의 열렬한 충성가들 선발 원칙때문이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P 188 ~ 189의 1945년 10월 11일자로 임명된 판검사의 출신별 정리)

 

이를 보면 초기 법조계의 구성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구 대한제국 재판관 및 법관양성소 출신의 고위직, 조선총독부 특별임용자 출신, 일본 변호사 시험, 대다수를 이루던 고등고시 사법과 출신, 조선변호사시험 출신으로 법관으로 임용된 사람들까지)

 

2부는 일제시대 '이류' 법률가로 취급받았으나 해방 이후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과 함께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형성한 조선변호사시험 합격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순수 변호사 허헌(후에 우러북해서 북한최고인민회의 의장, 김일성 종합대 총장 등을 지낸다), 후일 대법관의 영예를 안는 배정현과 홍순엽 등이 나온다.

 

(고등고시 사법과 시험과 조선변호사 시험 비교--- P 143)

 3부는 미군에 의한 갑작스런 해방으로 큰 기회를 잡은 법률가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해방 이후 도망간 일본인 판검사 자리를 조선인(아직 정부 수립전이라)으로 채워야 했다. 미군에게 법률가들의 친일행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움직여주고, 교육 수준이 낮은 대다수의 국민들을 다스려줄 지배층이 필요했을 뿐이다. 

미군정과 법조인력정책 담당자들은 특단의 조치를 마련해 일제시대 서기 겸 통역관으로 일하며 일본인 판검사들을 돕던 사람들에게 판검사의 중책을 맡긴다.

 이들은 이 행운을 잡았고, 물론 법조계의 주류가 도지는 못했지만 소위 말하는 호의호식하면서 지도층으로 살아가게 되고 그들의 자식도 지금 사회 곳곳에서 주요한 사람으로 일하리라.

 4부는 해방공간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등 좌익세력을 일시에 불법화시킨 조선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을 다룬다. 조작 여부가 지금도 논란이 되지만  

 남한에 공산 정권 수립을 위한 당의 자금 및 선전활동비를 마련하고 경제를 교란시킬 목적으로 조선 은행권을 위조지폐 발행장소로 활용하여 이를 유통시켜 사회를 교란 시키게 하게 했지만 경찰의 빠른 검거로 모두 공산당으로 취급되어 지극히 편파적인 판결로 유명한 양원일 판사의 판결이 문제가 된다.

 

공판은 30여 회 열렸는데, 공산당은 사건을 담당한 판사 및 조재천·김홍섭 두 담당검사들을 협박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판 때 방청석은 물론 판검사석과 서기석을 점령하고 테러단까지 동원하여 공판정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사건이다. 당시 공산당에서는 <해방일보> 등 좌익신문을 통하여 이 사건을 허위날조된 사건이라고 주장하였고 해방일보가 정간되는 등 당시 사회의 극명한 분열을 드러낸 대표적 사건이며, 우리 법조사에 안타까운 장면으로 남아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아, 우리 법조사는 초반부터 왜 이렇게 이상하지? 또는 조선 붕당정치의 폐단이 그대로 법조계에서도 드러나는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선출된 국회나 행정부보다 판결이나 형벌로 우리 삶을 더욱 심하게 지배할 수 있는 이 권력가들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다.

 

 5부 ~ 7부는 내용이 없어서 아직 읽지 못했다. 조금 애매하다. 책 가격이 3만원으로 나같은 회사원에게는 매우 고가의 책이다.

 이미 1~4부를 읽었는데 다시 책을 돈을 주고 사자니 아깝기도 하지만, 안 읽자니 5~7부가 너무 궁금하다. 마치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뒷처리를 안 한 느낌을 넘어선 스테이크 집을 갔는데 샐러드랑 전채요리만 먹다 스테이크를 썰기만 하고 식당을 나온 느낌이다.

 그만큼 이 책이 역사덕후면서 현대사나 미시사를 좋아하고 또한 법학을 전공해서 법제사나 법철학을 깊게 공부해보고 싶었던 나에게는 재밌는 책으로 다가왔다.

 책에서 감명깊은 구절 몇개만 소개하고 마무리하고자 한다.

고등시험 사법과 응시는 일제하에서 판검사를 해보겠다는 의도를 명백하게 드러낸 행위였다. 순수한 변호사 지망생에게는 조선변호사시험이라는 다른 길이 열려 있었다. 판검사가 되려면 단순한 법률지식 뿐만 아니라 일제 통치에 대한 충성심도 보여줘야 했다. 그 과정을 통과한 사람들의 삶이 해방 이후 다양하게 달린 것도 흥미롭다. 거칠게 평가하자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돌이킨 사람들은 예상한 것 이상의 불행을 맛 보았고, 끝까지 개인의 안위만을 추구한 사람들은 기대한 것 이상의 영광을 누렸다. 전반적으로 그런 시대였고 어느 누구도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38P

 

아, 뒷말이 슬프다. 일제에 협력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과오를 돌이킨 사람은 엄청난 인생의 쓴맛을 맛보았고, 일제 친일파 남작인 민병석의 아들로 평생을 호의호식한 민복기 전 대법원장 같은 사람은 일생을 영광적이고 등이 따뜻한 자리에서 호의호식했다.

이런 역사의 아픈 장면에서 우리 자식들에게 너는 정의로운 길로 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역사청산과 반성이 없다면 우리 후손들에게 정의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김영재 차장검사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김영재 차장검사는 내 고향이기도 한 경북 안동의 명문가로 그의 집안에서는 일왕 궁성(천황이라고 정말 부르기 싫다)에 폭탄을 던진 김지섭 열사를 비롯한 여러 독립운동가들이 배출된 풍산김씨였는데, 여기서 일제에 협력한 판사가 된다.

오히려 판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당시 안동지역 많은 독립운동가 집안, 예컨대 석주 이상룡이나 김동삼 집안에서 아이러니하게 고등문관 합격자도 나온다. 그런 시대였다.

안동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을 수 있다. 마치 고려에 충성을 바치던 인사들도 조선시대 중기 이후 출사해서 명문이 되듯이(물론 안 그런 집안도 있지만) 안동지방의 뿌리깊은 입신양명, 관우위 사상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만주사변이 터진 1931년 이후에는 어떤 이유로든 상당수의 독립운동가들이 '생활'로 돌아왔다, 국내에서는 다른 선택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중략)

손꼽히는 독립운동가 가문의 아들은 이렇게 확실한 친일검사로 자리 잡았다. 해방후 그의 삶은 더 복잡한 궤적을 그리게 된다. ----65~66P

조선정판사 사건 관련자들을 중심으로 해방공간 3년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보면 우리가 발 디딘 현실의 오랜 뿌리를 만날 수 있다. 좌익사냥의 '전범'이 만들어진 사건이기 때문이다.

사라진 좌익성향 법조인들의 실체도 파악하게 된다. 옛날 이야기 같지만 우리 세대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어제로부터 자유로운 오늘은 없다. ----- 301P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의 말처럼 아픈 역사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아 기록이 없어지고 변형되고 지워져서 온전히 알기 힘들었던 역사를 탐정처럼 추적하면서 해박한 법조사 지식을 뽐내는 저자의 열정이나 학자정신이 돋보인다.

 또한 독자입장에서 모르던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도 분명 많지만, 뭔가 우리 역사를 읽으면서 느끼는 안타까움과 답답함, 인물들에 대한 실망감이 이 책에서도 많이 보인다.

엘리트층 일 수록 높은 도덕수준과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의, 특히 명예를 중시 여겨야 하는데 우리는 개인의 영달, 부귀영화, 권력과의 타협을 해서 결국 성공한 인물들이 단죄되지 못한 부분이 반복된다.

 이러한 고리를 끊어야 우리 사회가 발전한다. 기득권에 통렬한 저항을 한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되고, 이회영, 이시영처럼 자신들의 부귀영화와 안락함을 던지고 정의를 위해 실천한 사람이 역사와 기록에 영원히 기록되어 칭송받고, 일제에, 군부독재에 협력해 그 당시에는 잘 살았더라도 후세에 길이길이 잘못된 표본으로 지탄 받아야 우리 역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우리 후손들에게 바른 나라, 애 낳고 싶은 나라를 물려줄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분명 읽어보면 좋은 책이고, 그런 불의와 아픈 역사를 기록한 수작이다. 법률가가 되고 싶은가? 정의를 선언하는 그 뜨거운 마음을 계속 가지기 위해서라도 이 책을 읽고 바름을 실천하면 좋겠다.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돌이킨 사람들은 예상한 것 이상의 불행을 맛 보았고, 끝까지 개인의 안위만을 추구한 사람들은 기대한 것 이상의 영광을 누렸다. 전반적으로 그런 시대였고 어느 누구도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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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아미 - 제2차 세계대전 일급비밀부대 이야기
릭 바이어.엘리자베스 세일스 지음, 노시내 옮김 / 마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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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로운 형태의 역사서 같습니다.
기대되는 신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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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역사를 바꿀 수 있는가 - 대담한 사람, 오만한 사람, 나서는 사람
마거릿 맥밀런 지음, 이재황 옮김 / 산처럼 / 2016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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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논리와 붓을 가진 자가 만들어낸 하나의 픽션이다. 우리는 지금 오늘의 역사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기록해 나갈 것인지 지켜 볼 필요가 있고, 이 책이 어느 정도 해답을 제시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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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는 어떻게 역사를 지배해왔는가 - 르네상스부터 리먼사태까지 회계로 본 번영과 몰락의 세계사
제이컵 솔 지음, 정해영 옮김, 전성호 부록 / 메멘토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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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 엔지니어와 함께 가장 큰 CEO후보가 바로 재경팀 출신 회계를 쥔 자이다.
역사는 회계가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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