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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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구만큼이나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들고 다양한 군상이 존재하는 나라가 있다. 그것은 이 책의 저자의 나라 인도이다. 벤츠나 BMW같은 차 옆에 수천명의 걸인이 나뒹구는 나라 인도...다양하고 독특한 제도나 문화, 그리고 사람들이 함께 사는 나라 인도. 그러면서도 세계에서 성장가능성이 가장 무한한 나라로 꼽히는 인도-그곳의 아픔이 담긴 책이다.

 며칠 전 신문에서 빌 게이츠를 밀어내고 인도의 사업가인 무케시 암바니가 세계 최고의 부자에 올랐다는 뉴스를 본적이 있다. BRICs라고 해서 세계에서 한창 뜨고 있는 국가 중의 하나이고, 과학기술의 발전도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하는 인도에서는 부자도 엄청나게 많지만 이 책의 저자인 나렌드라 자다브 박사의 원래 계급이었던 불가촉천민-즉, 달리트같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영위할 수 없는 빈민계층이 수 억 명에 다다르는 것이 인도의 또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처음에는 나렌드라 자다브 박사가 이 책을 출간할 즈음해서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짧게 소개된 그의 이력에서 무언가 새로움을 느꼈다. 바로 그의 화려한 경력이 불가촉천민에서 시작해 노력만으로 자수성가한 인물이라는 것에 끌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러한 한 사람의 성공스토리보다도 우리나라 현재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보고 느끼면서 새로운 해결책을 생각해보고 싶기도 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한 관계를 맺어가면서 살아가지만 그러한 사람을 볼 때 우리는 내면의 진실된 모습을 보지 못하고 그 사람의 외관이나 배경을 많이 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외부적인 요건 중에는 학벌, 출신지역, 재력 등을 보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이 사람을 판단하는데 기준으로 작용하면 안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전근대적이고, 절대 사람의 판단요소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출신 계급이다. 책에서 나오는 말이지만 신도 나의 운명을 빼앗지 못했다라는 말을 보면서 애당초 신은 계급이라는 것을 만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급이라는 것은 핵폭탄보다도 더 잘못된 인류의 발명품이다. 인류가 태초에 생겨났을 때는 이러한 계급이라는 것이 분명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인간의 능력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농경 생활의 시작으로 인해 잉여 생산물의 축적 등으로 사유재산제가 생겨나게 되고 그러한 것이 고착화되어 계급이라는 것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전 인류적으로 공통된 현상이었다. 비단 인도만의 현상은 아니였다.

 우리가 흔히 선진국이라고 하는 영국이나 스페인, 덴마크 등의 서유럽은 물론 예전과는 다른 형태이지만 아직까지 국왕이 존재하고, 기사같은 작위가 있는 계급사회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시작된 계급사회가 불과 백 여년 전 갑오개혁으로 인해 신분제가 폐지될 때까지 양반-중인-상민-천민의 신분이 존재하였고, 이는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시점까지도 시골에서는 남아있었던 악습이었다. 나 또한 고향이 경북 안동이라서 누구보다도 이러한 양반, 상놈을 따지는 문화를 잘 알고 있다. 아직까지도 그쪽 어르신들은 누구의 몇 대손, 우리 조상이 누구라는 것을 중시여기고 자랑하는 분들이 많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것보다도 내가 걱정하고 두려운 것은 바로 현대의 새로운 계급의 형성이다. 과거에 귀족, 천민이나 우리의 양반, 상놈 문화는 이제 인도같이 카스트제도의 잔재가 남아있는 일부 국가에서나 문제시되고 있고, 이미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는 그 존재를 찾아볼 수 없을 뿐더러 설사 영국이나 일본같이 국왕이 존재하는 국가라 하더라도 이는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존재이지 그 사람들조차 이제 자신들이 일반 국민들 위에 군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제 새로운 계급사회가 시작되고 있다. 바로 돈에 의한 가진 자와 못가진자의 빈부격차이다. 요즘 들어 심심찮게 등장하는 뉴스 중에 전문직종의 자녀가 명문대 진학률이 더 높다는 통계나 혹은 지금 신문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돈을 주고 자녀를 부정입학이나 혹은 권력을 이용해서 취업시키는 것들이다. 이는 우리사회가 새로운 계급사회에 들어서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이 책에서도 강조하고 있지만 교육은 이러한 불평등사회를 가장 빨리 깨뜨릴 수 있는 확실한 열쇠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러한 열쇠조차 점점 더 찾기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극성이라고 하는 강남 엄마들은 한 달에 과외비로만 웬만한 보통 가정의 생활비를 지출하는 시점이고, 그러한 맞춤형 교육과 정보의 독점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가난하지만 똑똑한 미래를 이끌어갈 인재들이 교육의 불평등으로 인해 진학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 이는 학벌 사회에서 더욱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나렌드라 자다브는 이 책에서 자신의 성공을 부모님의 뛰어난 교육열, 달리 말하면 시대를 앞서는 통찰력으로 인해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나렌드라 자다브의 아버지는 정규교육이라고는 어떠한 형태의 교육도 받을 수도 없었던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지배층의 심부름이나 하고, 혹은 다른 계급들의 명령을 아무런 이유나 조건없이 받들어 수행하면서 살아가는 또한 그로 인해서 얻는 것은 단지 구걸할 권리뿐인 달리트일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남들보다 똑똑하고 사상이 깨어있는 불가촉천민이었다. 물론 어쩌면 당시의 사상운동가인 암베드카르 박사의 맹목적인 추종자라고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출신을 부정하고 신분상승과 보다 많은 권리를 주장하는 그 당시 시대의 조류에 몸을 맡겼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표면적인 모습은 이 책의 초반부에 '소누'와 '다무'라는 그의 부모님과 다른 불가촉천민들의 대조를 통해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달리트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기 위한 또 다른 달리트를 동시에 보여준다.

책의 내용을 통해 감동을 받는 부분은 뒤로 갈수록 점점 더 커진다.

소누와 다무가 자신들이 받은 사회적인 계몽 영향을 자식들에게 교육이라는 부분을 통해 성공의 모습이 나타난다. 책을 읽은 후 마치 엉덩이에 종기가 나도록 공부한 고3 수능생이 좋은 결과를 얻고, 츄리링만 입고 고시촌을 누린 고시생이 합격의 영광을 맛보듯이 극심한 고통에 있고 나서 성공을 맛보는 그 쾌감을 이 책은 저자인 나렌드라 자다브의 시점에서 역경을 딛고 일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것으로 통쾌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가 짚어가야 할 점은 단지 한 불가촉천민의 가족이 교육을 통해서 그리고 남들보다 어렵고 힘든 삶을 통해 성공했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가 불가촉천민에서 미국의 명문대 박사학위를 받아서 인도의 경제관료나 명문대의 총장이 되었다는 한 사람의 성공으로 이 책의 의미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고, 전 인류적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선진국의 약소국에 대한 침탈이나 착취는 그 예전 카스트제도의 지배계층이 하위계층이나 달리트를 수탈하던 것과 유사하고, 우리 사회의 지도층은 사회적인 책무나 의무보다 어떻게 하면 부동산으로 더 많은 돈을 벌어볼까, 혹은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해볼까 하는 생각뿐이다. 우리는 나렌드라 자다브의 책을 읽으면서 '아, 나도 저렇게 성공해야겠다.' 라고만 느낄 것이 아니라 이런 새로운 계급사회에서 우리보다 못하고, 시작조차 힘든 사람을 같이 이끌어 갈 수 있는 그런 배려와 사회적인 제도의 뒷받침이나 여론의 공감이 필요하다. 아무리 세계 무역 대국이고, OECD에 가입한 선진국이면 무엇하는가, 다같이 잘 살아야 할 우리 국민이나 혹은 세계적으로 아직도 굶주리고 헐벗은 아프리카의 꿈을 가진 어린이나 인도의 달리트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답게 살 권리, 인간존엄을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당장 나부터도 취업난 등으로 인해 내 자신 챙기기에만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해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기득권을 가지고 있게 되면 그 틀을 지키려고 하고, 그 틀 밖의 진리를 보지 못한다. 이는 인도의 국부로 칭송받고, 비폭력 독립운동으로 유명한 간디조차 자신은 카스트제도의 상위계층이라서 카스트제도의 보호에 앞장섰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까지만 해도 간디하면 우리나라의 김구선생님 같은 독립의 아버지라고만 생각했는데 간디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 이 책의 뛰어난 조연쯤 되는 암베드카르 박사는 자신이 불가촉천민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신분해방운동에 적극적이었을지 모른다. 만약 그도 상위계층이었다면 그러한 운동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자신의 열악한 환경을 딛고 성공했고, 또한 그것을 자신 혼자 누리지 않고 대중적인 운동으로 연결시켜 인도의 후진성을 깨부수는데 자신의 생을 바친 진정한 운동가라는 것이다.

언젠가 홍세화 선생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한창 TV에서 '대한민국의 1%가 사는 집'이라는 광고가 유행할 때였다. 하지만 이런 광고를 버젓이 허용하고 또 대놓고 그 1%를 부러워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라고, 만약 프랑스 같았다면 온 국민이 들고 일어나서 반대하고 불매운동을 벌였을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대한민국 1% 그런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존재할 수도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러한 것을 강요하고, 그 논리를 즐기는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암베드카르 박사나 이 책의 다무처럼 세상의 부조리함을 알리고, 고쳐나가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한 때이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모두가 다 같이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나렌드라 자다브 박사의 성취가 개인의 성취에서 머물지 말고 인도를 변화시키고, 나아가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새로운 발자취를 만들어주었으면 한다. 또한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제2, 제3의 나렌드라 자다브가 많이 나와서 모두가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전에 만나 뵙고 나의 좁은 시각을 조금이나마 변화시켜준 고 전우익 할아버지의 책 제목이 떠오른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이 책을 읽고 나서 인류의 불평등이 사라진 모두가 웃을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꿔보면서, 나 또한 그러한 세상을 만드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다. 현실에 힘들어하고, 안주하려는 나를 비롯한 요즘 대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책인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지만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현실에 순응해서 사는 한 결코 발전된 사회나 진보된 권리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올 가을 또 한권의 뜻 깊은 책을 알게 되어서 또 한사람의 노력과 의지를 배울 수 있게 되어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세상 모든 세상의 불합리함에 대하여 투쟁하고 개선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좋은 책에 대한 너무나 부족한 독후감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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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af 2008-02-10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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