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의 기억을 보라 -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엘리 위젤.아리엘 버거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평점 :
"기억은 선한 의지를 가진 모든 사람들의 신성한 의무가 되었습니다." - 엘리 위젤
책을 정말 좋아하고, 정치사회 분야를 좋아해서 왠만한 유명 저자나 특히 노벨상 수상자들은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세계는 넓고 배워야 할 지식은 많다. 이 책을 통해 엘리 위젤을 처음 만났다.

엘리 위젤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도덕적 목소리 중 하나였으며, 동시에 여러 면에서 세계의 양심이었다. 엘리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홀로코스 생존자였을 뿐만 아니라 기념비였다. 버락 오바마 前 미국 대통령이 그를 소개한 말이다.
이 책을 소개하자면 아름답고 찬연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으로 우리는 엘리 위젤이 남긴 가르침의 정수를 항상 곁에 두고 볼 수 있게 되었다. 위대한 영적, 지적 고결함을 갖춘 작가인 아리엘 버거의 노고 덕분에 엘리 위젤이 수많은 학생들에게 가르쳐 온 내용을 편하게 집 안방에서 읽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단지 그가 남긴 말과 글 등을 통해서만이 아닌 그의 삶과 인간관계를 통해서 알아보고 있다.
엘리 위젤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앞에서도 진정한 인류애가 무엇인지 보여준 우리 인류의 보물이라고 했다. --- Parker J. Palmer (미국의 존경받는 교육지도자이자, 사회운동가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저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위젤은 단지 비범한 인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스승이었다. 이 책은 25년간 기록과 5년 동안의 강의 필기, 그리고 엘리 위젤 교수의 가르침을 받은 전 세계 학생들과의 대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저자는 2007년부터는 스마트폰을 통해 엘리 위젤 교수를 직접 만나 녹음을 하며 정확한 기억을 더듬을 수 있었다. 위젤은 1928년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3월, 헝가리를 점령한 독일의 유대인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하여 가족들과 함께 게토로 이주했다가 다시 그해 5월에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말로만 들었던 그 아우슈비츠에서 가족 중 유일하게 돌아온 사람이다.
그의 어머니와 여동생 세명은 모두 살해되었고, 아버지는 해방직전 사망했다.
종전 후 프랑스 고아원을 거쳐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 입학해서 문학, 철학, 심리학을 공부했다.
전쟁 후 한동안은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거부하다가 정친한 친구였던 프랑수아 모리아크의 설득으로 1958년 회고록 <밤 La Nuit>을 프랑스에서 출간했다. <밤>은 1960년 미국에서 영어로 번역, 출간된 후 1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고, 전 세계 30개 언어로 번역되며, 그는 인기를 얻게 된다.
1976년부터 보스턴 대학교 인문학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아내 매리언과 함께 '인류를 위한 앨리 위젤 재단'을 설립해 세계 각지의 폭력과 억압, 인종 차별과 인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서 이 공로로 198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 후에도 남아프리카, 니카라과, 코소보, 수단 등지에서 벌어진 폭력과 집단 학살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등 ‘강력한 인권 옹호자’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인물 소개를 장황히 한 것은 그를 알고 이 책을 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책을 읽다보면 시시콜콜한 철학 이야기나 뭐 그런 내용들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가?'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특이한 경험을 하며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 돌아와서 세계 평화를 외쳤던 그의 삶의 궤적을 더욱 폭넓게 이해하고, 알아가고, 또 이를 우리 삶에 적용시키려면 그를 이해하는게 먼저이기 때문이다.
저자 아리엘 버거는 20대를 그의 학생으로 보냈고, 5년동안 박사과정을 밟는 동안 위젤 교수의 정식 조교였다. 저자 아리엘 버거가 보는 위젤 교수의 강의는 고전주의의 지적이고 문학적인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언제나 당대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를 직접 겨냥했다. 강의는 속세의 대학교 교정에서 진행되었지만, 종교적 혹은 신학적 내용이 언제든 자유롭게 오고 갔다. 그의 강의는 도덕적으로 책임감 있고, 의식이 있으며 정의란 무엇인지 알고 싶어 하는 인문주의자나 인본주의자를 길러내는 그런 인문 교육이었다.
오늘날 도덕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란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정말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어야 하는 핵심적인 이유다.
그는 늘 첫 수업에서 질문을 먼저 받았다고 한다. 최근 좋은 질문이 더 나은 진보를 가져온다는 이론이나 이야기가 많은데, 역시나 뛰어난 시대를 앞선 교수님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질문한다. 나도 궁금했다. "교수님, 홀로코스트 이후에 겨수님을 지탱해준 건 무엇인가요?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버티실 수 있었나요?"
위젤 교수는 바로 대답했다고 한다. "배움입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탈무드 책을 읽다가 중단됐고, 그가 프랑스 고아원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그가 읽던 탈무드를 다시 구해달라고 했고 그는 그 지점을 다시 찾아 공부를 이어갔다고 한다.
위젤 교수의 강의는 가르침을 주는 교육으로 유명했다.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하면서 그것을 깨우쳐 갔다.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지만 기억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그난 강의를 할 때마다 몇번이고 되풀이해서 기억은 우리의 유일한 보호막이라는 사실을 일깨웠다.
또한 무엇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인지 물었을 때 그는 다름 아닌 "기억"이라고 말한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딸이자 작가이기도 한 론다 핑크 위트먼이 2013년 아이비리그를 방문해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본적 질문을 했다. 학생들의 대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학생들이 역사적 사실에 무지한 것도 문제였지만, 그런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았을 때 아무렇게나 대답한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다. 홀로코스트가 언제 일어났는지 묻는 질문에 1800년이라고 대답한 학생도 있었더. 또한 유대인 희생자들의 숫자에 대해 처음에는 대충 300만명이라고 했다가, 잠시 눈치를 보더니 3억 명이라고 대답하는 식이었다. 이런 사례는 비단 나치의 유대인 학살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인간의 도덕성이 한없이 추락한 특별한 사건들, 예컨대 1970년대 캄보디아 학살, 1992년 유고슬라비아 분열과 인종 청소, 1994년 르완다 대학상 등 수많은 학살과 인종 청소, 그리고 분쟁이 홀로코스트와 마찬가지로 잊혀가고 있다. ---p.51 |
사실 이는 우리가 누구보다도 반성해야 할 일이다. 우리는 불과 100년 안에 1910년 ~ 1945년 일제치하를 경험했고, 1950년 ~ 1953년 한국전쟁을 경험했고, 1960년 4.19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등의 다사다난하고 아픈 피지배국, 전쟁, 군부독재, 민주화운동 중에 학살같은 과거를 경험했지만 오늘의 밀레니얼 세대는 그것을 잊어가고 있고, 또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가? 반문 할 수 있다.
이런 것 때문에 우리는 무엇보다 기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젤 교수는 강의 시간마다 도덕성이라는 돋보기를 통해 문학 작품을 반복적으로, 때로는 도전적 방식으로 읽으면서 이런 고민의 과정을 또 다른 강의의 방식으로 만들어갔다. 그는 작가의 의도에 따라 극심한 고통을 받는 주인공들에게 연민을 드러냈고 이러한 연민은 그의 작품 해석에도 영향을 주었다.
2차 세계 대전동안 유대인 대학살을 경험했지만 엘리 위젤은 매일 자신의 갑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학생들에게 자신을 모두 열어 보였다. 그리고 학생들은 그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의 꿈과 희망에 귀 기울이고 신앙과 우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말했다. "사랑도 가능하고, 희망도 가능합니다. 나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강의를 합니다. 도덕적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교사가 먼저 마음을 열면 학생들이 마음을 여는 일이 가능해지거든요." ---p.114
또 다른 아침, 또 다른 강의에서 이번에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다루게 되었다.
위젤 교수는 믿음과 절망, 그리고 믿음과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절대로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과연 부조리한 일일까요? 그렇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이에 세상에서는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요? 우리의 그런 기다림은 이 세상과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일까요, 아니면 그 기다림 때문에 우리는 세상과 다른 살마들에게 축복일까요, 아니면 그 기다림 때문에 우리는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게 될까요?" 그리고 그는 <고도를 기다리며>의 한 대목을 읽었다.
남들이 괴로워하는 동안에 나는 잠들어 있었을까? 지금도 나는 자고 있는 걸까? 내일 깨어나면 오늘 일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 혹은 뭐라고 말하게 될까? 내 친구 에스트라공과 함께 이 자리에서 밤이 올 때까지 고도를 기다린 걸 생각하게 될까? ---p.165 ~ 166
그는 언어는 대단히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단순히 사상이나 기억을 전달하는 도구 이상의 의미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은건 인간의 꿈이자 욕망이라고 했다.
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특히 많이 인용하고 했다.
엘리 위젤은 언제나 배우는 일을 쉬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깊이 느끼며 지혜를 얻기 위해 휘대한 문헌과 이야기, 사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접할 수 있도록 자신을 채찍질 하라고 했다.
또한 항상 질문하라고 말한다.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없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만의 지켜야 할 위치와 모든 사람에 대한 염려 사이에서 반드시 한쪽만을 선택할 필요도 없다. 나의 위치를 중심으로 주변 사람을 챙기는 일도, 또 모든 사람을 다 위하는 일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긍정적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우정을 중시하라고 한다. 그는 우정이 종교라고 말했다. 서로에게 아주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것으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큰 힘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과거를 기억하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부분들을 이해하도록 노력하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삶과 그들이 겪은 고통이나 즐거움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목격자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우리 모두 목격자가 될 수 있다."
인간은 잊을 수 있기 때문에,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살아간다고 했다.
하지만 세상 무엇보다도 잊지 말고 기억하고 우리가 정말로 그냥 잊어버리려 한다면 역사는 결국 되풀이되는 것이다.
엘리 위젤은 한 줄기 빛조차 보이지 않던 절망의 시대에서 살아남았다.
엘리 위젤의 비통하고 절망의 상황에 대한 기억이 우리를 어떻게 일깨워 평화와 희망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엘리 위젤은 강의를 할 때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기억’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망각은 우리를 노예의 길로 이끌지만 기억은 우리를 구원합니다. 나의 목표는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과거를 일깨워 미래를 위한 보호막으로 삼는 것입니다." 라고 이야기 한다.
지난 100년 동안 그 어떤 민족보다 아픔을 겪은 우리 민족에게 필요한 책이었다.
잊지 말고 기억하자.
정말 읽는 내내 피와 살이 되는 말이 많은 최고의 교수님의 명강의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