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권프로의 인생은 장사다 - 장사, 하려면 제대로 해라
장사 권프로 지음 / Storehouse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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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은 이전에 장사를 한 적이 있다. 사실 제조업을 비롯한 기업체 월급쟁이 빼고는 우리나라는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나라다. 하지만 성공하는 자영업은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장사는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업종을 불문하고 매장 10곳 중 3년 안에 8곳이 문을 닫는것이 현실이다. 문을 닫은 8곳은 어떤 이유로 문을 닫았을까? 자금이 바닥나서 문을 닫았을까? 돈이라는 건 무한정 있는 것이 아니기에 돈으로 시작한 창업은 지속적인 영업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한다.

 장사는 결국 직접 발로 뛰어야 한다. 직접 발로 뛰어 부동산을 다니면서 몫도 보고 관련 일을 몇 달이라도 해봐야 한다. 인테리어도 전문가에게 사진 한 장 보여주고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을 손수 계획하고 알아보면서 시행착오도 겪어봐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가게의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홍보할 수 있는 내용들이 풍성해지게 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 장사 권프로는 '인생은 장사다’라는 모토를 가지고 무엇이든 잘 파는 방법에 대해서 이 책에서 말해준다. 깨알같은 팁이 많다. 유튜브에서 장사 관련 콘텐츠의 시초가 되는 인물로 ‘장사’를 검색하면 제일 처음 등장한다. 자영업자들에게 장사에 관해 쉽고 재미있는 내용으로 도움을 주고 있다. ‘장사 권프로’라는 채널의 구독자도 10만명에 이른다.
‘똑똑한 사장들의 모임’이라는 네이버 카페도 운영중이며 클래스101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서 최초로 장사 관련 강의를 런칭하기도 했다. 매월 많은 사람들과 온오프라인을 통해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창업에 대한 브랜딩을 도와주고 있다. 

저자가 그의 첫 책이기도 한 「장사 권프로의 인생은 장사다」를 통해 대한민국 자영업자를 위한 자신의 꿀 Tip을 전부 방출하고 있다.

 

장사할 때 버려야 할 5가지 같은 부분에서는

계산적인 모습으로 서비스를 줘야 할 때와 아닐 때를 너무 계산적으로 하면 안된다, 매출 자랑질이다 너무 장사가 잘된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안된다. 경쟁자를 또 불필요한 오해를 만든다. 근무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 매출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실행해보고 또 고치고 해야 한다. 낙담하는 내 자신을 버려야 한다.

처음에는 지저분한 화장실만 봐도 헛구역질이 나서 눈에 눈물이 고이고 한숨에 좌절을 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고 한번 두 번 경험하게 되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위생장갑부터 찾는다. 냉장고나 에어컨이 이상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침착하게 대응한다.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대처하려면 ‘그러려니’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낮은 자존감을 버려야 한다. 지금은 장사를 하고 있지만 더 큰 비전을 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사진 자료 같은 것이 있으면 조금 더 좋았을 것 같다.

 

장사가 잘 되는 집의 비밀과 홍보방법, 장사 잘되게 하는 법 등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지금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 장사를 시작하는 사람 모두 실전의 지식이 필요한 사람이면 반드시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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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넌 도일 - 셜록 홈스를 창조한 추리소설의 선구자 클래식 클라우드 20
이다혜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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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릴 때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 셜록 홈즈 시리즈의 책을 짓고 캐릭터를 창조해 낸 코넌 도일을 《씨네 21》의 이다혜기자가 홈즈의 흔적이 살아 숨쉬는 런던에서부터 우대한 이야기의 창조자 도일의 세계가 탄생한 에든버러까지 소설과 현실의 풍경이 겹쳐지는 그 곳, 영국에서 이야기한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거장"이라고 칭찬했으며, 존 르 카레가 "이야기의 완벽함"이라고 치켜세운 셜록 홈즈 시리즈의 창조자 코넌 도일. 그의 삶은 영국 역사상 가장 번영을 구가하던 빅토리아 시대와 중첩된다. 하지만 당시 영국 인구의 3분의 1은 여전히 가난하게 살았을만큼 범죄와 치안 부재에 노출되어 있었다.

도일은 정치, 경제, 과학기술의 발전이 만들어내는 사회의 다양한 풍경을 날카로운 필치로 그려냈는데, 그 중심에 셜록 홈즈가 있었다.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와의 두뇌 싸움에서 승리하며 완벽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홈즈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문득 이 책을 보면서 런던도 런던이지만 스코틀랜드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에든 버러를 꼭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스코틀랜드의 칼턴힐에서 도보로 10분가량 걸리는 곳에 있던 코넌 도일의 생가는 현재 헐려 없어졌고, 그 자리에 셜록 홈즈 동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코넌 도일과 셜록 홈즈와 관련된 8개의 Spot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첫번째는 에든버러의 피카디플레이스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도일이지만 아버지의 알코올의존증으로 집안 경제가 위태로워지면서 순탄치 않은 유년을 보내게 된다.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들려주는 모험 이야기에서 훗날 작가로써의 자양분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생가는 남아있지 않다.

 

두번째는 에든버러 대학이다. 도일이 공부한 곳이고 스승인 조지프 벨 교수에게서 영감을 받아 훗날 홈스틀 탄생시켰다. 그는 대학에서 만난 이들을 모델로 삼아 홈스 외에도 여러 작품의 주요 캐릭터들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홈즈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린 천재 과학자 챌린저 교수의 모델이 되는 러더퍼드 교수를 만난 곳도 에든버러 대학이다.

 

세번째는 햄프셔의 포츠머스이다. 우리에게는 포츠머스 조약으로 더 잘 알려진 그곳이다. 1882년 병원을 개업했고, 환자가 없을 때 소설을 썼다. 그의 첫 장편소설 <주홍색 연구>도 이곳에서 쓰여졌다. 심령술을 처음 알게 된 곳도 바로 이곳이다.

 

네번째는 스위스 마이링겐의 라이헨바흐목포이다. 도일은 자신의 삶이 오히려 홈즈에게 시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사건>에서 그를 없애버렸다. 숙적 모리아티 교수와 몸싸움을 하다가 죽은 장소로 알려진 곳이 바로 이 폭포다. 이 곳 역시 코넌 도일과장이 조성되어 있고 홈즈 동상과 박물관이 있다.

 

다섯번째는 런던의 셜록 홈즈 박물관이다. 셜로키언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팬이 많았던 사람들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박물관의 실제주소는 239번지이지만 작품의 폭발적 인기에 힘입어 베이커스트리트역 부근에 소설 속 가상 주소인 221B번지로 운영하고 있다.

 

여섯번째는 런던의 라이세움 극장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있었던 단편소설 <보헤미아 왕국 스캔들>과 <마지막 사건>을 바탕으로 한 연국 <셜록 홈즈>의 공연이 이루어진 곳으로 이 연극 각색에 도일이 공동 참여했다. 그의 장편소설인 <네사람의 서명>에도 등장하는 장소로 극장 앞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되고 있다. 

 

일곱번째는 데빈의 다트무어이다. 황량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다트무어를 산책하며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곳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 <바스커빌 가문의 개>다 불가사의한 지옥 개의 전설이 내려오는 베스커빌 가문의 연이은 비극을 다룬 이 작품은 다트무어의 황무지 속 분위기와 어울려 몰입감이 배가 된다고 한다. 

 

마지막 여덟번째는 코넌도일이 잠든 햄프셔의 민스테드교회 묘지이다. 1930년 심령론을 알리는데 힘쓰다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세상을 떠난다. 도일의 시신은 윈들셤 자택의 장미 정원에 묻혔다가 뉴포레스트의 민스테드교회 묘지에 이장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강철처럼 진실하고 칼날처럼 곧게'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저자는 셜록홈스의 소설을 보며 자랐고, 그의 소설에 열광했다. 국내 완역본이 나올 때마다 그것을 기념해(?) 계속 읽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CCTV가 한 집 건너 다 설치되어 있고, 차량 블랙박스, 컴퓨터, 과학수사기법 등이 발전한 오늘은 이제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한다. 과학을 무시한 전개는 반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그런 면에서 셜록 홈즈는 시대를 잘 타고 났다. 한 때 '셜록 홈즈'라는 이름 자체가 '추리하다'와 동급인 적이 있었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다루는 많은 픽션과 논픽션에서 홈즈를 언급한 부분이 많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플라워 문>에서 1920년대 미국 중남부 도시에서 1인당 소득이 가장 높았던 인디언들이 수년에 걸쳐 살해당한 사건을 다룬 논픽션에서 홈즈의 이름이 다섯 번이나 나온다. 

사립 탐정의 수사관행을 설명하기 위해 "셜록홈즈처럼"이라고 하고, 셜록홈즈의 좌우명("불가능한 것을 배제하고 남는 것이 바로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라고 해도 말이지요")을 인용하며, 실제 사건과 홈즈 소설을 비교한다. 도일이 사립탐정 윌리엄 J. 번스에게 "미국판 셜록 홈즈"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셜록 홈즈 시리즈가 만들어져서 인기를 얻는 과정을 영국이라는 나라의 발전과 함께 봐야한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 1기가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생활하게 됐고, 이 도시에서 제대로 된 주거나 복지, 치안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보니 잔악한 범죄가 많이 발생했다.

(영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잭 더 리퍼 사건을 그린 그림)

결국 이러한 잔혹한 범죄에서 영감을 얻어 정의의 사도처럼 만든 것이 코넌 도일이 창조한 셜록 홈즈였고, 홈즈는 창조된 인물이었지만 소설 속 어떤 캐릭터보다 생생함과 멋짐을 폭발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왓슨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한 작업이다.

 

결국 이 책은 코넌 도일과 셜록 홈즈를 함께 따라가는 여정이다. 이 둘은 뗼레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셜록 홈즈 박물관이다. 오늘도 수많은 셜로키언들이 찾고 있는 명소다.

 

코넌 도일은 에든버러 의대를 졸업한 후 많은 돈을 제안한 친구의 병원에서 일을 한다. 하지만 곧 그곳을 떠나 포츠머스로 건너가 자리를 잡고, 그곳에서 의사로서도 작가로서도 새로운 분기점을 맞는다. 포츠머스에서 도일은 말년에 심취하게 되는 심령술을 처음 접했고, 루이자를 만나 결혼했으며, 무엇보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캐릭터인 셜록 홈즈를 창조했다.

 

셜록 홈즈는 어찌 된 영문인지 이 최고의 캐릭터를 죽인다. 주인공이 죽는다. 그것도 거의 전지전능한 사건 해결 능력을 보이던 홈즈가 말이다.

 

1893년 4월 감기에 걸린 도일은 불가에서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고 나서 마지막 홈스 이야기를 쓰고 있음을 어머니에게 밝힌다. 편지에 따르면 홈즈는 이미 미국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그의 명성으로 인해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다.

계속 새로운 더 멋진 이야기를 창작해야 하는 고통이었으리라.

홈즈를 죽일 방법으로 머릿속이 꽉 차 있을 무렵 스위스를 방문했고 라이헨바흐 전망대에서 폭포를 보면서 영감을 떠올렸다.

 

코넌 도일은 첫번째 부인 루이자와 투병 중이던 1897년 두번째 부인 레키를 만났고 루이자가 죽기전인 1906년, 10여년간은 정신적 관계를 유지했다고 도일이 밝히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도일의 이야기다. 

전설적인 악당 모리아티 교수는 애덤 워스라는 실존했던 범죄자를 모델로 했다고 한다. 범죄계의 나폴레옹이라고 불렸던 워스는 독일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었는데, 천재성 뿐 아니라 작은 키에더 있었다고 한다. 워스는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가 행정 오류로 사망자 처리되자, 이름과 직업을 바꾸면서 북미와 유럽을 돌아다니며 범죄를 저지르고 수감된 뉴욕에서는 범죄 수법을 학습해 더 악랄한 범죄를 저지른다. 

하지만 결국 워즈는 홈즈의 어둠의 쌍둥이 같은 존재로 지킬박사와 하이드같이 서로의 천재성을 다투는 인물이다. 

 

홈스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굳히게 만드는 패짓의 삽화와 함께 홈즈 특유의 이미지를 잘 그려냈다. 홈즈는 이 삽화의 위력을 빌린 것도 있다. 그렇게 홈스는 성공할 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게 되었다. 대중의 주목을 받는 새로운 스타일의 잡지와 그에 어울리는 이야기, 캐릭터에 생생한 생명력을 불어넣은 삽화. 소문은 즉시 퍼졌다.

도일의 이름이면 《스트랜드》는 10만 부는 거뜬히 더 찍을 수 있었다. 1891년, 홈스의 인기는 즉각적이었다.

 

여튼 홈즈의 부고는 신문에 실릴만큼 유명했다고 한다. 후에 홈즈를 되살려내기는 하지만 말이다. 

홈즈를 따라 런던여행, 에든버러를 누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코로나 사태가 얼른 끝이 나길...

이후 책은 도일의 삶과 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어머니, 그의 소설 세계, 홈즈를 창조하던 영국 배경 등이 펼쳐진다. 홈즈는 시대의 산물이었다.

홈즈를 좋아하는 셜로키언이라면 그 배경이 될 코넌 도일의 인생을 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책을 사서 보면 어떨까? 

 

코넌 도일의 시대는 과학수사라는 개념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경찰들이 사건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은 탓에 증거들은 오염되거나 유실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도일은 당시 경찰도 모르던 개념을 홈스를 통해 지문, 발자국, 혈흔 등이 실제 사건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실제 음모론을 보면 도일이 그런 범죄자였기 때문에 잘 알 수 있었다는 황당무계한 가설까지 있을 정도로 코넌 도일의 캐릭터 셜록 홈즈의 과학수사 기법은 당시 획기적이었다.

현장에 남겨진 자그마한 단서를 가지고 범인을 밝히는 방식은 1887년 도일이 셜록 홈스즈시리즈의 첫 장편소설인 『주홍색 연구』에서 처음 선보인 것이었다. 한 발 더 나아가 1890년에 발표한 『네 사람의 서명』에서는 지문으로 사건을 수사하는 방식도 그렸다. 가히 천재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그로부터 10여 년이 지나고 나서야 수사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도일이 작품에 선보인 추리법과 관찰은 실세계에 영향을 주며 현대적인 수사법을 탄생시켰다.

 

도일은 1880년대 후반부터 빠져들기 시작한 심령술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였다. 홈스는 증거를 바탕으로 사고하는 합리주의자이지만 동시에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직관이나 추론도 적절히 이용했다. 도일은 삶의 마지막 10여 년간 실제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모은 자료를 영매의 손에 넘기곤 했다. 그는 나름대로 영매를 신중하게 시험해보고 철저하게 선택했다고 알려졌지만, 애초에 영매를 믿었다는 자체가 결국 결말을 보게 만든다.

 

마지막 다시 한 번 정리를 해준다.

코넌 도일의 문학 키워드는 ① 빅토리아 시대로 당시 영국은 대영제국의 번영 속에서도 빈민은 너무나 가난하고 힘들게 또 복지의 사각지대속에 살았다.

② 어머니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를 대신애 어머니는 그의 지지자였으며 동반자였다.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그의 창작에 모티브가 된다.

③ 독서다. 코넌 도일은 열정적인 독서가였다. 책을 통해 많은 소재를 얻고는 했다.

④ 스포츠다. 도일은 볼링, 권투, 크리켓, 축구, 골프 등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며 사회생활을 익히고 사교계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⑤ 셜록홈즈다. 두 말하면 입아픈 코넌 도일의 최고 캐릭터다.

⑥ 생계형 작가다. 글쓰기가 자신이 읽어온 책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을 알고 있었고, 또한 이러한 부수입이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도일은 <셜록홈즈의 명성>으로 부와 명예를 얻고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⑦ 심령술이다. 말년에 심령술에 취해 그는 부와 명성에 흠집이 가게 된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죽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세기의 추리소설 대작가로 그는 여전히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를 통해 영원히 살아가고 있다.

"내 이름은 셜록 홈즈, 다른 사람이 알아내지 못하는 것을 알아내는 일이 내 일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쉬우면서도 간명한 명대사이지 않을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는 언제나 읽어도 재미있고 유익하다. 단점이라면 당장 떠나고 싶게 만든다고나 할까? 나중에 이 책과 함께 런던의 홈즈 자취를 따라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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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관리하는 : 나만의 학생부 만들기 - 2022 대입 꿀팁, 개정판
정동완 외 지음 / 넥서스에듀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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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가 어렵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학부형은 아니라 관심도가 조금 떨어지기도 하지만 정말이지 어렵다.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지금의 입시제도에 심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전형에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말그대로 로또전형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또 한가지는 나는 당연히 현직 대학교수를 부모로 둔 J전 장관 부부보다 입시에 도움을 줄 수 없는 부모가 맞다. 또 나보다 더 연세가 있으신 또는 바쁜 부모, 또는 생업에 바쁜 부모는 나보다 더 관심도가 떨어지거나 정보력이 떨어질 수 있다.

결국 이런 부모의 정보력과 재력, 사회적 지위가 자녀의 대학 등급을 결정짓는 오늘의대학입시제도에 대해서 반대한다.

 

지금 우리는 사다리 자체를 걷어차버리는 구조다. 부모가 사다리를 튼튼한 황금사다리를 만들어 줄 수 있거나 또는 나무 사다리를 만들어 주는 정도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사다리를 3개 정도 가지고 있는 사람 또는 사다리가 없는 사람이 싸워야 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나의 학생부 만들기다. 나는 진정 무기가 되는 독서를 많이 하라고 조언해주고 싶으나, 과연 그것도 도움이 될까, 독서도 사교육이나 컨설팅을 이길 수 없지 않나 하고 생각해본다) 

 

나도 안다. 획일적인 대학입시인 학력고사나 수능시험 100% 전형보다 지금의 전형이 더 다양하고 창의적인 인재를 선발 할 수 있고, 학교 서열도 조금은 흐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아니 지금이 더 하면 안되는 불합리한 사회구조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이미 준계급사회나 실질적 계급사회다. 이런 구조에서 이런 전형은 나같은 가난하거나 정보력이 떨어지는 자녀의 계층간 이동을 원천 봉쇄할 가능성이 많다.

 

 

조선사회가 무너진 것에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한가지 결정적인 이유는 공정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조선은 음서제도가 일부 작동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과거 시험에 의한(양반이라는 계층이면, 이것은 계급사회니까 어쩔 수 없다) 공정한 인재선발 시스템이 작동하는 국가였다. 모든 양반계층은 자녀 공부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그 자녀를 합격하게 만들 수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후 세도정치기가 지나면서 과거시험에 의한 공정한 인재선발이 무너졌고, 사람은 꿈을 잃었고 오히려 조선(대한제국)이 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입시나 인재선발의 핵심은 무엇보다 공정성이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한테는 더욱 큰 가치라 할 수 있다.

과연 오늘의 학생부전형, 수시모집이 그것을 담보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서론이 길었다.

『나만의 학생부 만들기』는 2022년 대입 개편안까지 반영한 최신 학생부종합전형 핵심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차별화된 “나만의 학생부”(사실 나는 이 표현도 마음에 안든다, 이것은 학생이 공부하면서 이것까지 할 수 없다, 부모의 재력,정보력이 개입할 소지가 다분하다)를 만들어 원하는 대학에 입학 할 수 있도록 확실한 가이드를 제시하며, 선생님과 학생 소통지의 실제 기록 사례를 통해 “나만의 학생부”를 만들 수 있는 생생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특징

1. 최신 학생부종합전형을 완벽 반영하고 있고,

2. 나를 브랜딩하는 셀프 브랜딩 전략

3. 생생한 실제 기록 사례

4. 대입 성공을 위한 셀프 브랜딩 워크북을 담고 있다.

복잡한 입시시스템에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이다.

 

Part 1은

대입전형의 이해를 먼저 도와준다. 대입전형의 방향성과 특징, 주요 전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것에 대한 설명과 이를 위한 학생부종합전형 준비하기를 통해 대학별 학생부종합전형 평가 요소를 알아본다.

짧은 시간안에 학업역량이나 전공적합성(전공에 맞는 부분도 솔직히 그 시절에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아마 본인도 모를텐데) 정도는 그래도 알 수 있어도 인성이나 발전가능성을 문서와 짧은 면접시간으로 정확히 알아내는 것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흔히 20년 이상 일할 신입사원을 120분도 안되는 면접으로 선발한다는 것이 과연 맞는가 직장인을 하면서도 많이 생각해본다.  
무엇보다 나만의 학생부 만들기가 중요하다. 

 

Part 2는 학생부에 들어가는 핵심 요령으로 기재 방법과 학교알리미로 학교생활 전문가 되기, 유의사항과 특히 중요한 것이 나를 브랜딩하라인데 나 역시 기업공채에서 가장 주안점을 뒀던 것이 브랜딩이었다.

 

나는 기업마다 중요시한다는 인성을 타깃으로 잡았다. 나에겐 인성에 대한 라이센스와 나를 브랜딩하는 것이 중요해서 입사시험에서 Copy를 뽑아서 일관된 나만의 정체성, 성격을 마케팅했다.

 

Part3는 학생부 소통 심화 내용이다. 특기자 전형과 근면, 성실, 수상, 자격증, 자율활동, 동아리, 봉사활동 등 뭔가 미국 대학을 따라하는 것 같은데 나는 이것을 과연 100% 정확히 분석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은 들지만 어쩌겠는가?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고 학생부 종합전형이 비율도 크고 중요한데 거기에 부합해서 입학하려면 이런 책을 참고해서 공부해야 하는 것을.

수백만원 대학입시컨설팅만큼의 효과를 이 책 한권에 담기 위해 입학사정관 출신, 현직교사 출신 저자들이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은 아래와 같은 특징이 있다.

▶ 3시간 만에 누구나 학종 전문가가 될 수 있는 성공 대입 전략서
▶ 2022 대입제도 개편방안 요약 반영
▶ 학생부종합전형 최신개정안 완벽 반영
▶ 셀프 브랜딩 전략을 통한 차별화된 학생부 만들기
▶ EBS 대표강사가 알려 주는 수시 합격 비법서
▶ 중3~고2 학생, 학부모, 교사를 위한 입시 컨설팅 필독서
▶ 자신에게 꼭 맞는 대입 전략 학생부 포트폴리오
▶ 대입 성공을 위한 셀프 브랜딩 워크북 제공

 

특히 이 책은 선생님과 학생 소통지의 실제 샘플을 통한 생생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나만의 학생부를 직접 만들어보는 선생님과 소통하는 워크북도 수록하고 있다.

 

교육출판 전문 넥서스에듀 교재라 믿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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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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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에 앞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나는 영원한 (소위 말하는) 유홍준빠(매니아)다! 나는 이 책을 읽고나서 하나의 걱정이 생겼다.

 

생님이 수바시절터를 보면서 김정헌 화백이 수바시 절터에서 혼자 뒤떨어져 한참을 있다가 버스로 왔다고 했다. 스케치하느라 늦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보이는대로 그리면 작품이 되겠지만 이 풍광을 보면 볼수록 울컥하는 울음이 복받쳐 그릴 수 없었단다.

이 말을 듣고 내친구 병욱이(안병욱 가톨릭대 국사학 교수님)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렸단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노을 속의 폐허가 마치 자기 인생의 끝자락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슬펐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자 나 또한 코끝이 저려왔다. ---p.262 ~ 263

 

이 대화에서 선생님의 연세가 어느 덧 칠순을 넘겼다는 사실을 새삼 느겼다.

문득 내 나이가 마흔살에 가까워지자(이제 6개월도 안 남았다) 인생이란 무엇이고, 더 멋지게, 더 좋은 사람들과 좋은 것을 경험하면서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시간 가는 것이 너무 아깝고, 나이 드는 것이 아픈데 교수님은 정말 더하겠구나. 그리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언젠가는, 물론 내 바램은 교수님이 김형태 교수님처럼 100살까지 사셔서 이 좋은 책을 계속 발간해 주셨으면 한다. 조금 거짓말 보태서 지금 100만원 할래? 유홍준 교수님이 100세까지 사셔서 이 책을 쓰는 것을 할래? 한다면 나는 후자를 택할 의향이 있다. 그 정도로 이 책 시리즈가 주는 즐거움이 크고, 이번 책도 좋았다.

 

사실 중국편 1~2권을 읽을 때는 '내가 살면서 여기 진짜 가볼 수나 있을까?', '이번 편은 역시나 해박한 지식과 역사적 사실에 너무 재미있지만 그래도 뭔가 조금 동떨어진 느낌이다'라는 것을 생각했는데 이번 3권을 읽고는 정말정말 살면서 실크로드를 한번 쯤은 가보고 싶지만, 설사 못 가더라도 나는 이 책으로 많은 것을 느껴서 좋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그만큼 이 책이 주는 답사기의 현장감, 지식, 그리고 교수님 특유의 술술 잘 읽히는 필치까지 나는 너무나 좋다.

서평에 서론이 길었다. 저 천산산맥과 실크로드 유적지는 무한한데, 문득 교수님의 답사기에도 우리들 인생에도 유한함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저렸다. 그리고 오늘 내가 보내는 이 시간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교수님의 답사기를 십수권이나 읽으며 읽었던 감상평과 달리 너무 좋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헛헛해졌다.

 

이번 편은 실크로드다. 실크로드(라뗴는 비단길로도 배웠다)는 정말 국사, 세계사 가릴 것 없이 나오는 주요 용어로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고, 그만큼 세계인류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장소이다.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 처음 명명한 이래 오늘날에는 '초원의 길', '오아시스의 길', '바다의 길' 등 세갈래를 의미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이번편에서 다녀온 중국 서안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스탄류의 나라를 지나 카슈가르, 파미르고원 등을 거쳐 중동의 시리아까지 연결된 대략 6,400km 구간을 말한다. 

 

중국편 1,2권에서 다른 부분이 동부구간이라면 이번 편에서 다루는 오아시스 도시는 중부구간이다. 

유명한 구간이 629년 현장법사가 돈황 옥문관에서 하미를 거쳐 투르판으로 가는 길로 인도를 다녀왔다. 대당서역기를 함께 읽었는데(다 읽지는 못했지만) 실크로드를 더욱더 가고 싶어졌다. 

13세기 원 제국이 실크로드를 포함해 멀리 동유럽까지 지배하게 되면서 실크로드는 교역과 교류를 위해 오가는 발길이 더욱 바빠졌다. 

유명한 마르코 폴로가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 들어온 것도 이때였다. 

 

서역 36국 중 6개의 연합국가는 이 책에서 유홍준 교수님은 서역 6강이라고 부르며 타림분지 오아시스 도시의 답사대상으로 삼고 있다. 책은 이 체제에 따라서 흘러간다. 6개국은 아래와 같다.

차사국 : 투르판, 뒷날 고창국이 됨

언기국 : 카라샤르

구자국 : 쿠차

소륵국 : 카슈가르

우전국 : 호탄

누란국  : 누란, 뒷날 선선국이 됨

 

이 중 역사속에서 자취가 거의 사라져 버린 언기국은 생략됐다. 반대로 누란은 일찍이 멸망했지만 그 스산한 유적과 미라의 신비한 이야기가 있어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다섯 오아시스를 답사하고 난 후 역사의 자취로 남아있는 황량한 폐허속에 한 때의 영광과 영화가 영상처럼 떠오르며 처연한 감정이 일어났다고 한다. 

'불타는 사막에 피어난 꽃' 그것이 바로 이번 실크로드 답사기의 내용이다. 

 

이 지역은 이후 청나라 건륭제 시기인 1759년 점령하고 '새로 얻은 땅'이라는 의미로 신강(신장)이라 부르며 중국 영토로 편입됐고, 우여곡절 끝에 1955년 위구르 자치구로 오늘에 이루고 있다. 

오아시스 도시와 위구르족은 흉노, 돌궐, 무슬림, 중국 등의 지배국이 변경되면서 한자와 간자, 중국어 발음과 현지 위구르어 발음, 옛 지명까지 뒤섞여 있다. 그만큼 지리적 중요한 위치였고, 복잡다난한 역사가 있는 곳이었다. 

 

1장은 누란이다. 

오늘날 누란에는 상주하는 사람도 없고 '방황하는 호수'라돈 로프노르 호수는 완전히 메말라 버렸다. 누란은 타클라마칸사막의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그곳에 가보지 못하고, 갈 수도 없었던 문인들은 그 그리움을 소설로 이야기하고 시로 읊었다. (중략) 우리나라 시인 김춘수는 <비에 젖은 달>에서 누란을 아련한 시적 이미지로 그려냈다. ---p.20 ~ 21

 

당나라 변새시 중에서 잠삼이 유명한 서예가인 안진경의 서쪽 변방 사행길에 부친 <호가가>, 즉 호인의 피리소리는 곧 누란의 피리소리였다.

 

변방의 성채에선 밤마다 향수에 젖는 꿈 많을 터인데

달을 향한 호인의 피리소리를 누가 반겨 들으리

 

스산한 변방의 서정이 전한다. 역사속에서 감춰져 있던 누란을 독일 지질학자인 니콜라이 프르제발스키와 스벤 헤딘 등 제국주의 학자들이 벌인 'Great game'의 하나로 다시 역사속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일로 인해 누란의 유물 등은 약탈되고 도굴된다. 스벤 헤딘은 대한제국 방문 당시 우리나라에도 왔고 강연을 하기도 했으며,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 중앙아시아관에도 유물이 남아 있다. 누란은 흉노와 한나라 사이에서 고단한 역사를 보냈다. 

누란은 결국 역사속에서 사라졌고, 그 폐허의 유적에서 건조한 날씨 때문에 누란의 미녀인 미라가 발견됐고, 이 이야기 역시 흥미로웠다.  

 

투르판에서 쿰티크 사막 기행은 나 역시 경험해 보고 싶었다.

 

이 쿰티크 사막은 두 가지로 이름 높다. 첫째는 선선 시내 중심가에서 불과 1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세계에서 도심과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사막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이 쿰티크에는 '사부진 녹불퇴 인불천'

모래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녹음은 뒤로 물러나지 않으며, 사람은 옮기지 않고 산다.

둘째는 모래 입자가 아주 고와서 바람에 이동하는 유동 사막으로 모래언덕이 바람결 따라 굽이치는 물결무늬를 그리며 무한대로 펼쳐진다는 점이다. ---p.66 ~67

 

교하고성과 언기, 구자는 그 예전 고선지 장군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들어본 지명 같아서 낯설지가 않았다. 교하고성은 후에 당나라의 안서도호부가 설치되는 곳이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토성이자 세계 유일의 생토 건축 성곽도시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서유기에 나오는 화염산이다. 풀 한 포기 없이 황량한 화염산은 그 형상과 크기 때문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철분이 많이 함유된 붉은 사암이 해에 반사대 마치 불타는 듯 보인다 하여 '화염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중국 특유의 서유기 공원에 현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 조각을 만화처럼 늘어놓았다고 한다.

고창고성, 대불사, 아스타나 고분군 어느 하나 버릴 것 없이 좋은 부분이다. 리뷰에서 다 소개할 수 없어 안타깝다.

 

고요장군의 묘지에서 망국의 한과 약소국의 설움을 다시 느꼈다. 거대한 나라 중국에 있어 우리는 언제나 큰 피해가 많았다. 역사적, 환경적, 지리적 그 어떤면에서든.

고요 장군은 고구려 유민의 후예다. 고구려를 명말시킨 당은 669년 고구려 지바층을 중심으로 28,200호를 중국 땅 산서성 위쪽 오르도스 지역과 감숙성 농땅으로 이주시켰고, 평양에는 어린이와 노인만 남았다고 한다.

그만큼 고구려의 응집력과 용맹한 정신을 두려워 한 결과였으리라.

 

이 고창고성의 전시관 안내판에는 중국에서 국학대사로 칭송받는 지센린 선생의 설명 글이 있다. 간결하면서도 평범한 문장으로 정의하고 있다. 

 

중국문화, 인도문화, 그리스,로마문화, 이슬람 문화는 오랜 역사와 독자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영향관계가 심원하다. 돈황과 신강성은 이 4대 문화가 흘러 모인 곳으로 투르판은 바로 신강성 고대문화의 축소판이고 고창고성은 고대 투르판의 정치, 경제, 문화를 모두 아우르는 4대 문화의 꽃이다. (로 정의하고 있다)---p.138  

 

독일의 도굴꾼에 의해서 철저히 파괴된 베제클리크 석굴에서 중국역사의 아픔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강국으로 전세계 깡패 순위 앞을 다투지만 청나라 말기 아편전쟁 이후 청은 종이호랑이로 변했고, 그 후 국공내전 등을 겪으며 일본에도 상하이까지 밀리는 등 중국 역사상 가장 큰 시련을 겪었고, 그 결과 많은 유물이 약탈, 도굴되기에 이른다. 베제클리크 벽화는 결국 독일에 가서 폭격으로 인해 지금은 그 아름다움을 후세에 전할 수 없는 슬픈 비극적 운명이 있다.

 

이번 실크로드 답사에서 '어느 도시가 제일 좋았느냐'고 물으면 나는 투르판이라 할 것이고, '어느 오아시스 도시가 매력적이더냐'고 물으면 쿠차라고 대답할 것이다. '어디가 제일 인상 깊었냐'고 물으면 타클라마칸 사막을 건너 간 일이라고 말할 것이고, '어느 코스가 제일 감동적이었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천산산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p183 ~ 184

나 역시 2년전 캐나다 여행에서 로키산맥을 비행기로 넘을 때의 그 광경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 산하가 주는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넘어선 그야말로 거대한 스케일 그 자체였다.

천산신비대협곡에서 아예석굴 발견기로 소년이 우연히 비를 피하기 위해 발굴한 문화유적처럼 차라리 서양인들의 눈에 띄지말고 보전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 유적지가 한 둘이 아니었다.

 

키질 석굴 역시 러시아,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열국의 침탈로 그 아름다움을 많이 잃어버렸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인간의 욕심이란.

 

이번 답사기에서 조금 더 자세히 알게 된 쿠마라지바 처음으로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중국어로 번역한 그의 열정과 그의 슬픈 일생을 보며 이 쿠마라지바를 좀 더 알고 싶었다.

이번 독서 이후 나의 숙제는 쿠마라지바와 현장법사의 대당서역기와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서유기 완역본으로 독서를 확장하는 것이다.

쿠차의 수바시 서사, 동사의 폐사지 답사는 앞에 리뷰 초반부에도 썼지만 뭔가 읽으면서 우리 인생의 유한함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본래 페사지에 오면 종교로서 불교의 자취는 희미해지지만 역사의 자취가 풍기는 처연함이 일어난다. 불교가 폐기된 흔적이지만 이슬람이 폐불한 벽화의 자취와는 차원이 다르다. 세월의 흐름 속에 한편으로는 사라지면서 한편으로는 남아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에서 일어나는 스산한 서정이다. 그 폐허에서 살아온 인생과 살아갈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그 나름의 또 다른 종교 감정이 아닐 수 없다. ---p.261

 

유홍준 교수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내가 후배들이나 지인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유하는 것은 그 답사기가 주는 유적지에 대한 설명과 감상, 여행의 Tip도 있지만 무엇보다 문장력이 좋다.

좋은 글이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너무 아름답지도, 너무 짧지도, 기교있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담백하면서도 아름다운 정취를 가진 문체다.

나는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리고 대리만족으로 이 글을 계속 간직하고 읽고 싶다.

 

내가 가진 수천권의 책 중 정리하고 100권으로 추리라고 한다면 나는 정말 좋아하는 고전을 제외한 1순위는 바로 유홍준 교수님의 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간직할 것이다. 

(유홍준 교수님의 책이 거의 다 있다. 심지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2권은 단행본 말고 가제본 책으로 서평단으로 받았는데도 정확한 책을 소장하고 싶어서 다시 구매했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 1~3권과 완당평전, 화인열전 같은 책은 부모님 댁에 있다)

 

고선지 장군에 대한 일화와 두보가 지었다는 고도호 총마행이라는 시는 유명하다. 

고선지의 일대기야말로 오늘날 정말 영화로 만들어도 될 위대한 업적과 아픈 역사적 진실이 있어 우리에게는 가슴 한쪽이 시린 듯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타클라마칸 사막을 지나 호탄에 이르러 이번 답사기는 끝이 난다. 

 

호탄에서도 이 책 중간중간 계속 나오는 유럽인들에 의한 약탈은 끝을 모른다. 스타인이 다녀간 후 많은 서양인이 수많은 유물을 도굴해서 가져갔다. 그 중 용케 버틴 유물 중 하나가 서역의 모나리자라는 아름다운 불화편이다.

서역의 모나리자는 우안칠분, 즉 얼굴 오른쪽을 다 보이고 왼쪽은 4분의 3만 취하는 자세이기 때문에 정면정관의 엄격함이 아니라 인간미가 드러나는데 왼쪽을 바라보는 눈동자와 입가의 가는 미소가 일품이라고 해서 그런 별명을 얻은 것이다. ---p.355 

 

마지막은 혜초스님으로 마무리 된다.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승으로 이 지역이 결코 먼나라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실크로드 편은 답사여행의 대가로 수많은 유적지를 누비고, 문화재청장까지 역임한 유홍준 교수님이 직접 “내 인생에서 가장 감동적인 여행”이라고 평가할 만큼 아름다운 풍광과 인문학적, 미술학적 아름다움이 연달아 펼쳐진다.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오지만 올해는 여행계획조차 세우지 못한다. 여행을 좋아하고, 답사를 좋아하면서 유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외유에 대한 갈증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책으로 대신 해 볼 것을 강력 추천한다.

 

* 창비의 책을 제공받아 올해 읽은 책 중 가장 감동깊이, 재미있게, 열심히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의문화유산답사기』중국편 제3권은 제목 그대로 실크로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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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권력자들 - 그들은 어떻게 시대를 만들었는가
조민기 지음 / 책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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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좋아한다. 특히 그중에서도 조선사를 좋아한다. 조선 왕계표를 외우고, 우리나라 어지간한 위인은 생몰년대부터 그사람의 가계, 주요 업적을 거의 다 외울 정도로 좋아한다. 조선사는 아무래도 사료가 많이 남아있고, 또 우리의 현재시점에서 가장 가까운 역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인물에 대한 애정이 있다. 오늘날의 정치 형태를 보면 과연 이분들도 역사에 기록된 것만으로 봐야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때가 많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좋게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일반인중에서는 정말 손에 꼽을만큼 많은 역사서를 봤다고 자부할 수 있음에도 이 책은 신선한 재미를 준다. 인물에 대해서 너무 시시콜콜하지도 않은, 그렇다고 핵심이 빠지지도 않은 균형있는 서술이 좋다.

사람에 대한 평이야 작가의 주관적인 의견이 당연히 들어갈 수 밖에 없어서 동의하는 부분도 아닌 부분도 있지만 사료에서 벗어나지 않은 평가가 신뢰를 준다.

 

저자의 전작 <조선의 2인자들>을 재미있게 봐서 이번 책도 기대했는데, 인물의 유명함을 따지자면 전작이 더 명성이 클 수 있지만, 인물의 캐릭터나 또 흥미를 자극하기에는 이번 <조선의 권력자들>에 나오는 인물들이 더욱 역사 속에서 무언가 느낄 수 있고, 생각해 볼만한 사람들이라 애정이 갔다.

저자는 무엇보다 시대와 역사속에서 인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시대를 만든 주인공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태평성세가 아니라 조선이 어느 정도 국운이 기운 시기, 또는 저자의 말처럼 '헬조선'속에서 성공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조선의 태평성대는 비교적 빨리 찾아왔고, 그 시기 역시 짧았다. 가까운 중국만 보아도 강건성세라고 하는 강희, 옹정, 건륭황제의 150년의 태평성대에 비해 조선은 세종 ~ 성종까지 약 70년 정도의 융성기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마져도 계유정난이나 세조대 이시애의 난, 예종과 성종대 초반은 그냥 흘러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여기서 나오는 인물들은 연산의 혼란기를 지나 중종, 명종, 선조 연간의 무기력한 조선을 겪고 이후 임진왜란과ㅡ임진왜란까지는 그럴 수 있다 치자, 평화의 달콤함을 통해 내안의 무기가 썩는줄 몰랐으니ㅡ 하지만 병자호란은 임진왜란의 교훈을 통해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고, 명분보다 백성을 생각하면 답이 나왔다. 하지만 우리 위정자들은 오늘에도 그때도 한치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을, 자신들의 정권과 안위만을 먼저 생각한다. 이렇듯이 양난을 겪고 국운이 이미 기울기 시작한 순간의 인물들을 들여다본다.

 

또한 그들중 누군가는 성공함으로 인해 백성의 삶은 힘들어졌다. 이 책에서 나오는 이이첨은 역사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도 흔히 인조반정을 불러 일으킨 간신의 대명사로 통한다. 김자점은 정말 말그대로 간신의 대명사다. 오죽하면 후손인 백범 김구 선생마져 자신의 조상인 김자점으로 인해 폐족이 되었다고 했을 정도다.

송시열은 조선왕조실록에 3,000번이나 등장하고 조선 중기 이후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노론 일당독재와 주자학 유일사상을 강요함으로 인해 결국 나라 전체를 사고의 경직성에 빠트린 장본인으로 한쪽에서는 '송자'로 받들면서 칭송하지만 한쪽에서는 노론 권력의 화신, 망국의 뿌리라고까지 한다.

홍국영 역시 흑두봉조하라는 말처럼 이상하게 권력의 화신이 된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문을 연 김조순은 사실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었으나, 집안 후손들 교육을 잘못한 원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리라.

저자와는 조금 다르지만 나는 흥선대원군은 구시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개혁이라는 것을 빼면 나름 애민정신, 왕권강화, 그 틀안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 했던 개혁가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대원군 역시 권력을 잃고 나서 며느리인 명성황후와 보여준 권력투쟁 과정은 치졸하고, 그의 공적을 다 되돌릴 수 있는 과오를 범한다. 

마지막 영의정이자 총리대신 김홍집은 간신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조금 더 명확한 정세판단과 '책임'이 필요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저자도 이야기했지만 이번 책은 특히 권력이란 것과 오늘날의 정치 시스템에 대입해 보아도 정말 반면교사 할 내용이 많다. 오늘날 위정자들에게 제발 이렇게 되지 말라고 이 책을 좀 보내주고 싶을 정도다.

 

흥분한 마음을 가라 앉히고, 책 자체로만 보면 사료에 바탕이 된 서술, 읽기 쉬운 문체와 서술 방향까지 나무랄 데 없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부분 몇개만 소개한다. 나머지는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사셔서 봐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광릉참봉 이이첨은 사실 권력과 떨어져 있었다. 그는 광주이씨 명문가 자제로 사초에서 자신을 헐뜯었던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공격하면서 무오사화의 원인을 제공했던 당시 실록청 당상 이극돈의 후손이었다. 후에 이극돈은 갑자사화 때 동생인 이극균과 조카 이세좌가 처형되자 이극돈 역시 공신록에서 삭제되고 후손도 유배되었다.

또한 이극돈은 사림파에게는 원흉과도 같은 사람이라 관작 복원도 되지 못했다.

이이첨은 이런 아킬레스건을 안고 있었다.

하지만 임진왜란 시기 그는 봉선사에 있던 세조의 영정을 지켜냈고, 이일로 인해 의기로움을 칭찬받아 요직을 두루 거친다.

선조대의 명재상 이준경, 이이첨, 한음 이덕형이 모두 한 집안이라는 것도 문득 다시 상기하게 됐다. 물론 나는 이들 세명이 광주이씨 극자 돌림 후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머리속에 있었으나, 이번에 다시 상기하게 됐다.

재밌지 않은가? 오성과 한음의 조선의 명신으로 소문난 그 한음 이덕형과 조선의 이인자들에도 나오는 명재상 이준경, 이이첨이 한 집안 사람이라는 것이. 나만 그런가?

특히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는 표와 가계도 등으로 요약해 놓은 것이 읽고 있는 부분을 깔끔하게 정리해 주는 효과를 준다.

하지만 이이첨은 후에 요즘으로 치면 공작정치로 소북 일파를 숙청하고, 김직재의 무옥을 일으켜 선조의 손자 진릉군 이태경 등을 죽였다.

또한 칠서의 옥으로 인목대비의 아버지인 김제남과 영창대군까지 사사시킨다. 후에는 인목대비마져 서궁에 유폐시키는 정치적 잔인함을 보인다.

그는 광해군 대 3개의 공신에 봉해지는 등 막강한 권력자로 정치를 좌우하게 된다.

이이첨은 많은 실정을 저질렀지만 그의 가세는 매우 청빈했다고 한다. 그는 항변할 수 있다. 권력의 기반이 약했던 광해군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숙청했노라고. 자신을 보라고. 자신은 한 점 티끌없이 청빈하지 않냐고.

하지만 인조반정으로 이이첨은 처형되고, 마지막 말은 하늘이 자신의 죄가 무죄인 줄 알것이라고, 살아서는 효자요, 죽어서는 충신이다고 했으나 백성들은 그의 목이 잘리자 달려들어 시신을 찢었다.

그는 뛰어난 현실 감각과 처세술로 권력을 장악했고, 더 큰 권력을 위하여 임금의 불안한 심리를 악용해 정적을 숙청하는 등 조정을 파탄으로 몰아갔다. 또한 광해군의 가장 큰 업적이 될 수 있었던 외교에 강력히 반대했고, 정치적 동지였던 허균을 철저하게 배신했다. 섬기던 임금을 혼군으로 이끈 장본인이자 간신으로 기록된 이이첨은 권의 추악함을 보여주는 거울로, 오늘날을 살아가는 권력자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다. ---p.45

 

책의 Chapter 뒤 마다 더 읽을거리를 통해 역사와 당시 정치에 대해 조금 더 깊이있게 들어가 공부할 수 있게 해준다.

 

김자점은 권력의 화신으로 그가 보여준 처신에서 배울점이 정말 하나도 없기에 책을 읽는 동안은 인조반정의 급박함이나 그 후 어지러운 정세가 재밌어서 잘 봤으나 서평에서는 생략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3천번이 넘게 거론된 인물 송시열, 여든 세살까지 장수하면서(사실 여든세살에 사약을 받는 진기록을 남긴다, 내가 알기로는 연좌제를 제외하고 본인의 죄로는 조선에서 가장 최고령 사약을 받은 인물일 것이다) 네 명의 임금을 섬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산림의 영수로 실질적 노론의 당수였기 때문이다.

그는 임금으로부터 학식을 인정받아 총 167번 부름을 받았으나 그 중 무려 130번을 거절했다. 그러면서 그의 벼슬은 자꾸만 높아졌다.

그는 실질적 권력의 묘미를 아는 사람이었다.

 

얼마 전 김육평전을 사서 함께 읽고 있기에 이 책에서 나오는 김육과 대동법을 이해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김육과 송시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대동법 확대 시행을 둘러싼 김육과 김집의 대립은 김육의 승리로 끝났다. 김집은 낙향했고 송시열도 스승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조정을 떠났다. (중략)

대동법을 지지하는 신하기 필요했던 효종은 송시열에게 실망했으나 산당은 스승의 명예를 지킨 송시열에게 감동했다. 임금보다 스승을, 나라를 위한 대의보다 사적인 의리를 중시하는 것은 이후 산당의 전통이 됐다. ---p.100 ~ 101

 

오늘날 정당정치에서도 자신의 보스를 위해 옳은일도 그르다고 하고, 나라와 국민보다 자당의 이익과 자신의 보스의 출세를 위해 살아가는 정치인이 많다.

이런 부분에 있어 정말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사람보다 나라와 국가, 시스템에 충성하는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

 

송시열은 주자학에 다른 주석을 한 윤휴를 사문난적으로 배척했고,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명예를 더럽히면서 항복문서를 작성한 이경석에게 '수이강'으로 모욕을 주었다.

예송논쟁을 일으켜 나라를 명분 싸움에 빠지게 만들었다. 

송시열에 대한 평가가 다양하지만 나는 자신만의 생각이 옳다는 전형적 '꼰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지가 않는다. 좋게 말하면 의리의 화신인데 사고가 경직됐다고 할까?

 

송시열의 죽음은 장희빈과도 연결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이야기거리를 남긴 인물로 후에 사극 등으로 재조명되어도 재밌을 것 같다. 치열한 권력투쟁 드라마로 말이다. 숙종, 장희빈, 영조, 공작정치의 대가 김석주, 서포 김만중 등 많은 인물들이 출연하는 시기로 재미있을 것 같다.

 

홍국영은 외로웠던 세손 정조를 위해 많은 일을 했으나, 너무 어린 나이에 권력의 맛을 보았고, 전성기 때 그의 벼슬이 말해주듯 많은 권력을 독점하면서 타락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동생 원빈 홍씨를 통해 자신의 조카를 후사에 앉혀서 그야말로 풍산홍씨를 명문으로 만들고 싶었으나 여동생의 이른 죽음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자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정조가 무능한 군주가 절대 아니었기에 홍국영의 가치가 또 그가 흑심을 품었다는 것을 간파하고 물리치기에 이른다.

홍국영은 상계군(철종의 큰아버지)을 완풍군(완산(전주)+풍산)이라는 군호로 개봉하면서까지 자신이 새로운 국왕의 후견자가 되고 싶다는 야망을 보였다.

하지만 정조는 그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흑두 봉조하 홍국영을 탄핵하는 여러 상소에도 정조는 그를 지켜주었으나, 홍국영은 서른 셋 이른 나이에 유배지에서 사망한다. 그의 이른 죽음이 정조를 정치적으로 자유롭게 해주었을 수도 있다.

 

안동김씨 세도정치를 시작하게 만든 장본인 김조순은 실제 우리가 생각하는 권력의 화신, 세도정치를 만든 권력의 화신같이 생각하나, 그는 학문에 밝았고 정조가 총애를 함으로 인해 그 자리가 만들어졌다. 또한 그는 높은 벼슬을 항상 마다하고 근신했기에 당시 노론으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었다.

김조순은 원래 김낙순이었으나, 정조가 친히 이름까지 내려준다. 그리고 소설을 읽고 있던 김조순에게 다른 책을 읽으라고 한 일화까지 정조가 매우 아낀 신하라고 한다.

 

(김조순은 위와 같이 실제 초상화가 남아있다. 나는 이책의 그림에서 약간 표독한 배우 조승우 얼굴이 떠오르는데 나만 그런가? 그림 부분은 좀 더 역사적 사실에 충실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가져본다. 또한 김조순은 저런 냉혹한 눈빛보다는 오히려 약간 근산하는 선비가 어울린다)

김조순 가문이 노론의 핵심으로 떠오르게 된데는 우리가 잘 아는 남한산성의 주인공 좌의정 김상헌과 그의 형 김상용의 공이 컸다. 이들 두 형제는 명과의 의리를 위해 오랑캐인 후금(청)에 끝까지 맞서 싸운 이미지로 인해 또 둘 다 정승의 위치에 오르면서 안동김씨 가문을 충절의 가문으로 만들었다.

또 하나는 삼수육창이라는 형제 정승을 배출하면서 또 김수항, 김창집 부자 영의정이 노론과 남인, 노론과 소론의 극심한 권력 투쟁 과정에서 사사되면서 노론을 지킨 가문까지 나라와 당을 위해 목숨 바친 명문으로 급부상했다.

후에 정조가 점찍은 순원왕후 김씨에 이어 천운까지 도와 풍양조씨나 반남박씨 같은 기타 가문을 멀리하고 순조-헌종-철종 3대 왕비를 독점함으로써 조선 최고 세도가가 된다. 조선은 붕당정치에서 최종 승리한 노론 -> 노론의 유력가문 (안동김씨, 풍양조씨, 반남박씨, 경주김씨 등) -> 안동김씨 일개 가문까지 권력의 범위가 좁혀지면서 나라의 시스템이 붕괴되고, 흔히 삼정의 문란으로 일컬어지는 국정운영의 총체적 난국 속에 망국으로 치닫는다.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권력다툼은 우리 역사에서 지우고 싶은 장면이다. 특히나 구한말 국제정세가 혼란한 틈에 이 부분은 크게 아쉽다.

(흥선대원군 역시 사진과 초상화가 많이 남아있다. 나는 이 그림에서 탤런트 남성진씨 얼굴이 보이는데, 나만 그런가? 좀 더 흥선대원군 특유의 귀여운 얼굴상(실제 흥선은 키는 작지만 미소년으로 알려졌다고 한다)이 있는 좀 더 역사에 가까웠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사실 엄밀히 말하면 왕족중에서도 매우 먼 방계였다. 그의 아버지 남연군 이구는 인평대군의 6대손으로 정조의 아들인 은신군에게 양자로 가면서 남연군이 되었다. 사실 정조대에는 이미 멀어진 왕족으로 이름조차 3자로 써야 하는 왕족이었으나, 다시 권력의 핵심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흥선대원군이 젊은 시절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피하기 위해 파락호로 지냈다는 것은 김동인의 '운현궁의 봄' 등에서 과장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물론 이하전의 죽음으로 흥선이 보신을 택한 것은 맞지만 그는 젊은 시절 이미 20세의 나이에 종1품에 봉해지고, 왕실의 업무를 도맡아 하는 총명함을 보인다.

특히 신정왕후 조씨와 인연은 그의 남편인 효명세자 익종의 무덤을 이장하는 과정에서 일을 원만히 처리하면서 인연을 갖게 되고 그가 조성하 등을 통해 혼인으로도 먼 인척관계였기 때문에 후에 신정왕후 조씨의 도움으로 그의 둘째 아들 고종이 왕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집권 10년기 동안 보여준 개혁을 완수하지 못한 채 일순간 권력에서 멀어졌고, 그 서운함과 배신감으로 결국 아들과 며느리와 권력 투쟁을 벌인다.

후에 고종은 그의 장례식마져 가지 않았을 정도로 사이가 나빠졌다.

조선의 마지막 영의정이자 최초의 총리대신이었던 김홍집은 어지러운 정세에서 조금 더 현명한 판단과 정치력을 보여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선의 막강한 권력자들을 통해 오늘의 정치가 오버랩되는 것이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책 자체는 정말 재미있게 잘 쓰여져 있고, 오늘날에도 재벌과 정계, 언론계 혼맥을 보면 재미있듯이 얽히고 섥힌 조선 후기 일부 소위 말하는 명문가의 가계도가 특히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그들이 누린 권력만큼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는가 묻고 싶은 부분이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삼한갑족 백사 이항복의 직계 후손인 우당 이회영 가문이 보여준 그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안동의 많은 독립운동가 가문,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재산을 아낌없이 썼던 간송 전형필, 경주,울산의 명문가 자제로 대한민국 1호 판사가 될 수 있었던 명예와 안락함을 버리고 대한광복군 총사령이 됐던 고헌 박상진 같은 인물이 있어 우리의 역사는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책을 통해 광해군 대부터 구한말 대한제국시기까지 인물을 통해 역사를 돌아볼 수 있다. 우리 역사를 인물로 재미있게 따라가면서 정리해 보고 싶은 역사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정말 추천한다.

 

* 책비 출판사의 도서 제공으로 재미있게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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