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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7년의 전쟁 - <징비록>이 말하는 또 하나의 임진왜란
이종수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1월
평점 :
류성룡, 개인적으로 고향이 안동 근처인 나는 그의 생가와 그를 모신 병산서원을 수차례 가고, 지나쳤다. 풍산 류씨의 중흥조로 영남학파의 거두로 아직까지 칭송받고 있는 그는 우리 민족이 낳은
걸출한 인재 중 한 사람이다.
1542년에 태어나서(이순신보다 3살이 많으나 친구처럼 평생 지기가 된다) 아버지인 류중영(후에 황해도 관찰사를 지냄)의 부임지를 따라다니면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21세때 퇴계의 문인으로 들어가 '신이 내린 아이'라는 칭송을 받을 정도로 학문에 뛰어났다.
사실 학문을 잘하는 사람이 행정을 잘하기 힘든데 류성룡은 양쪽에 모두 재능을 발휘한 인재였다.
25세에 문과에 급제해서 비교적 순탄한 관직생활을 거쳐 임진왜란이 발발하던 1592년 의정부 영의정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다. 그의 나이 51세-비교적 이른 나이에 문과에 급제했더라도 매우 관운이 좋은 케이스로 볼 수 있다.
그는 의도치 않았지만 이미 퇴계의 적통으로 동인의 영수가 되어 있었고, 내외 신망이 두터운 행정가이자 정치가, 학자로 성장해 있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정승이 전란이나 국가 위기시 외직을 겸하는 자리로 오늘날로 치면 임금의 특사격)로 전란을 진두지휘한다.
징비록은 그런 류성룡이 전쟁을 직접 겪으며 진두지휘하면서 쓴 책이다. 그가 직접 겪은일, 장계로 보고 받은일, 들은 일 등을 드라마틱하게 그러면서도 후세에 교감이 될 수 있도록 기록한 책이다.
임란 후 그는 동인 김성일(풍신수길은 결코 전쟁을 일으킬 위인이 아니다)의 편을 들었다는 자책감도 작용하여 임란을 수습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7년의 전쟁에서 이순신을 기용하여 수군을 지켜낸일, 수미법 등을 주장하여 세제나 관제를 개혁한 일 등은 그의 관리로서의 비상함을 보여준다.
징비록에는 많은 전란의 상처와 아픔, 실상을 똑똑히 보여주고 우리에게 있어 어떻게 난세를 펼쳐나가야 할지 고민과 혜안을 주는 책이다.
이제 TV드라마로 방영되면서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해는데 사극의 일장일단이 있긴 하지만 이렇게라도 우리의 옛날을 기억하고 반추하여 미래의 교훈으로 삼는 것도 정말 좋은 일 같다.
징비록과 류성룡의 일대기가 다시 조명되어 미래를 대비하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