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를 신은 세계사 - 신발로 살펴보는 세계의 역사와 문화 자음과모음 청소년인문 26
태지원 지음 / 자음과모음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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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필리핀의 옛 영부인이자 94세 현역 하원의원인 이멜다 마르코스부터 시작한다.

필리핀은 한 때 우리나라의 박정희 대통령이 필리핀만큼 우리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했던 동남아시아의 부유한 국가였다.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그들의 시스템이나 시설 등을 받아들여 다른 국가보다 먼저 뛰어갔기 때문이다.

이멜다는 값비싼 명품구두를 1,000여 컬레를 수집했다. 이멜다가 원래부터 사치했던 것은 아니다. 이멜다는 남편 마르코스 필리핀 제 10대 대통령의 부인으로 남편의 선거를 도왔고, 그 미모와 특유의 소탈함, 빈민가를 방문하며 내조를 한 덕분에 남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당선되고 난 뒤, 그런 소탈함은 연기인 것이 드러났다. 남편인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21년간 독재를 하며 부당한 권력을 휘두를 때 아내 이멜다 역시 국가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힘과 권력을 과시했다.

그녀는 특히 명품 구두 수집광이어다. 샤넬, 페라가모, 지방시 등 지금도 명품의 위치를 확고히 하는 그 신발을 무려 1,000켤레 넘게 사 모았다.

사실 신발만 1,000켤레인것이지 그 신발 위에 옷이며 가방, 귀금속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녀는 8년 간 매일 구두를 갈아 신었다. 하루도 같은 구두를 신은 적이 없다."는 호주의 한 방송사 보도 내용처럼 그녀는 사치를 즐겼다.

필리핀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 부국이었다. 하지만 마르코스 시절 다른 나라는 치고 나갈 때 필리핀은 안주하다 못해 퇴보했다.

계엄령을 내리기 일쑤였고, 반대파 정치인을 가두고 고문했다. 이멜다는 자신의 아들이나 지인에게 매관매직을 했고, 사치를 일삼았다. 해외계좌에는 천문학적인 돈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필리핀은 '피플 파워'라는 혁명으로 시민혁명을 성공시켰지만 21년간의 독재의 그늘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다.

필리핀 정부는 마르코스 부부의 재산을 압류하고, 그녀의 구두같은 사치품을 몰수했다. 물론 일부분이었을 것이다. 이미 해외로 많이 빼돌린 재산은 찾기 힘들었다.

2001년 문을 연 마닐라의 마리키나 구두박문관에 이멜다의 구두가 남아있다. 구두가 너무 많아 관리가 어려울 지경이라고 한다.

이멜다의 운명은 이후 어떻게 됐을까? 하와이로 망명한 마르코스는 그곳에서 병으로 사망했지만, 이멜다는 필리핀으로 돌아와 남편의 고향인 북일노고라는 지역에서 하원의원으로 있다.

또한 그의 아들인 마르코스 주니어(봉봉 마르코스)는 상원의원을 거쳐 지난해 대통령이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는 <풍요한 사회>라는 책에서 현대인은 필요에 의해서만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한다. 원하는 것을 소비하는 것, 그리고 필요와 욕구가 아닌 타인의 시선, 미디어속 광고에 이끌려 소비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물론 과거에도 지배층이나 부자들은 꼭 필요한 것만 사지 않았다는 것은 뭐 공통이지만 말이다.

마지막에 한걸음 더라는 것으로 경제원리나 어려운 용어를 설명하는 식이다.

한정판 운동화의 힘으로 나이키의 에어 조던 시리즈를 말한다. 잘 안다. 내 세대에는 그 조던 시리즈, 흔히 말하는 에어(신발 뒤 충격 흡수장치)가 있는 신발을 사기 위해 당시 수십만원 하는 농구화(정작 농구는 하지도 않았는데)를 사고, 못사고 또 어떤 농구화를 신느냐에 따라 친구들 사이에서 부러움도 사고, 때로는 따돌림도 당했다.

나이키는 원래 일본의 오니츠가 타이거라는 값싸면서 질좋은 브랜드를 수입해서 팔던 필 나이트가 창업한 브랜드로 이후 조던을 후원하면서 조던의 성공에 힘입어 전세계 스포츠 최고 브랜드로 자리매김한다.

하지만 동남아의 나이키 공장에서 매우 어린 소년들이 착취로 인해 나이키는 값싸게 운동화를 만들어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 것이 비판 받기도 했다.

프랑스의 운동화 회사 베자(Veza)와 같은 공정무역으로 이야기를 마치는 식이다.

책에는 신데렐라의 구두부터 루이 14세의 왕의 권위를 세워주던 하이힐까지 역사적인 구두 이야기도 한다. 구두가 원래는 남자의 신발이었다는 것 예전에 다른 책에서 봤지만 이 책에서도 알려준다. 또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이 예전에는 화장실이 제대로 정리 안되서 밖에 오물이 너무 많아 발을 땅에 최대한 덜 딛기 위한 용도로 하이힐이 쓰였다는 이야기도 많다.

요즘 여름에 많이 신는 크록스 신발의 원조가 네덜란드 신발이었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2010년 미국 <타임>지가 꼽은 최악의 발명품으로 너무나 못생긴 '신발'로 유명한 크록스는 미국의 인기 음악가들이 신어서 화제가 됐고 SNS입소문을 타고, 또 코로나19에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료진들이 밤낮으로 신어 그 실용성이 입증된 인기있는 신발이다.

이 신발은 원래 2002년 미국 콜로라도주에 있는 스콧 사이먼스 등 3명이 의기 투합해 네덜란드 전통 나막신인 클로그(clog)가 보트에서 잘 미끄러지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 것에 착안해 물과 땅 모두에서 생활가능한 악어 이름을 따 크록스라는 브랜드로 만들고 투박한 형태의 신발로 만들었다.

하지만 여름에 수륙양용으로 너무나 편한 신발이었고, 특히 한국에서는 장마철 핫 아이템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책은 단순히 재미나 흥미만 쫓고 있지는 않다. 다뉴브 강변에 놓인 신발 동상의 정체와 유대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전시된 미쳐 주인을 찾아주지 못한 남겨진 신발들, 미국 대통령 얼굴로 날아든 신발과 1987년 이한열 열사의 그 운동화까지 저항의 상징 이야기까지 하며 끝을 맺는다.

재밌게 읽다보면 역사와 경제, 사회문화 등을 한꺼번에 알 수 있는 재밌는 구두 인문학에 관한 책이다.

저자 태지원은 학교에서 여러 사회과목 경제, 사회문화, 역사, 지리 등 다양한 사회과목을 가르쳤다고 하는데(이게 가능한가?) 학생들이 단순히 사회를 암기과목으로 인식하지 않기 위해 재미나게 가르쳐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신발은 우리에게 익숙한 물건이고 꼭 필요한 물건이다. 신발이 담고 있는 역사와 의미 궁금하지 않은가? 이 책을 읽어보자.

#구두를신은세계사 #자음과모음 #구두인문학

* 자음과 모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재밌게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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