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선택의 재검토 - 최상을 꿈꾸던 일은 어떻게 최악이 되었는가
말콤 글래드웰 지음, 이영래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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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라이어>, <티핑포인트>로 유명한 세계적인 이야기꾼 말콤 글래드웰이 역사 논픽션으로 돌아왔다. 사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이 이야기는 흔한 과거 전쟁사 이야기 정도로 읽혔을 가능성이 있다. 또 기껏해야 역사를 바꿀 어떤 집단의 선택과 어느 것이 옳은가 정도의 윤리관 이야기 정도로 생각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매우 시의적절하면서도 흥미를 끌 수 있는 주제가 됐다. 이것 역시 저자의 시의적절한 선택과 준비된 자에게 주어지는 행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부적 이야기꾼 말콤 글래드웰의 서사는 뛰어나다. 


 

때는 바야흐로 1945년 미군의 '도쿄 대공습'이라는 민간인 학살의 비극을 이야기 하다.  

사실 이 책의 주제와 내용 전개는 간명하다. 1945년 전쟁을 끝내기 위한 미 공군(당시는 미국 육군 소속 육군항공단 이었다. 이는 우리나라 공군도 비슷한 출발을 보여준다) 전략과 선택을 보여주고 있다. 

간명한 주제를 천부적인 이야기꾼 말콤 글래드웰의 추적과 이야기 전개로 전쟁과 윤리적 선택에서 어떤 가치가 우선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는 젊은 준장 헤이우드 헨셀이 지지부진한 일본 본토 공습에 대해 책임지고 경질되면서 커티스 에머슨 르메이 소장이 부임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전쟁은 육군이 탱크나 보병대로 적의 심장부를 점령하는 것이 종전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미 육군 항공대 소속 젊은 장교들은 이 전쟁을 다르게 보았다. 육군의 지상전은 군인의 희생이 컸고, 많은 사람들의 사상이 뒷받침되어야 했으며, 더더욱이 민간인 희생도 많았다. 이를 뒤집기 위해 하늘에서 적의 주요 시설에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다면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미국의 일본 본토 공습은 작전 반경의 한계가 있어서 미미하고 불완전했다. 당시 미 주력인 B-25는 중형 폭격기로 숫자도 많지 않아서 적군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없었다. 

자국의 사기 진작과 전쟁의 종결을 원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새로운 작전을 지시한다.   

하지만 르메이 역시 초기에는 뚜렷한 수가 없었다. 당시 비행기술과 폭탄의 성능, 특히 조준기로는 저 멀리 창공에서 떨어트려 바람과 각종 방해를 딛고 정확한 목표물에 타격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일본의 산업 역량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커티스 르메이 소장은 처음에는 전임자인 헤이우드 핸셀 준장이 그랬던 것처럼 민간인 거주지역을 피해 산업지대에  고고도 상공에서 폭격을 시험해봤지만 결과는 역시 무의미했다.

결국 당시 미군 폭격기가 수행하던 고고도 폭격으로는 폭격의 정확성을 보장할 수 없었다. 당시의 최첨단 정밀 폭격용 조준기인 노든 폭격기(이 노든 폭격기 개발에 관한 이야기가 책에 자세하게 나온다)조차 오차가 커서 조준 성능이 크게 벌어졌던 탓에 특정 타겟을 정확하게 노려서 폭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특히 일본 상공의 제트기류는 매우 거세서 아무리 정밀 조준해서 폭격을 한다 해도 폭탄들이 제트기류에 휘말리면서 폭격 정확도가 떨어졌다.

즉 특정 타겟을 노려서 폭격한다 해도 떨어지는 폭탄들이 바람에 휘말리면서 전혀 엉뚱한 곳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안전하지만 비효율의 극치를 달리는 주간 고고도 폭격은 집어치우고, 대공방어가 취약해지는 야간에 당시 최신 전투기였던 B-29를 대량으로 투입해 저고도에서 한꺼번에 폭탄을 쏟아붓는 것으로 작전을 변경했다.

르메이는 주간 고고도 폭격 전술에 대해 비판을 가하면서도 전임 지휘관인 핸셀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았다. 핸셀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전술 자체에 결함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도쿄 대공습은 1945년 3월 9일~10일 일본제국 수도 도쿄로 진격해 이 일대에 대량의 네이팜탄을 투하한 전략 폭격 작전 펼치게 된다. 

이 공습으로 도쿄 중심부로부터 40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이 파괴되어 약 10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고 ,1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한다. 

특히 저고도에서 떨어트린 네이팜과 소이탄 총 1700톤이라는 엄청난 폭격을 가하게 된다.

또한 당시 미군은 군사시설 뿐만 아니라 의도적으로 민간인 거주지에도 무차별적인 폭격을 가하고 특히나 3월 10일 <예배당 작전>으로 명명된 작전에서는 고의적으로 민간인 피해를 최대한 늘리는 방향으로 작전이 세웠다. 당시 일본 민가가 목조건물로 이뤄져서 소이탄을 투여해 그 공습의 효과를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인륜적인 작전으로 이 공습은 제 2차 세계대전 연합국의 드레스덴 폭격과 함께 많은 비판을 받는다. 

하지만 미 육군항공단은 당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을 빨리 끝내지 않으면 더 큰 군인의 희생과 연합국의 피해가 커질 것이기에 적국의 민간인도(미군은 애써 이 민간인을 군수품을 만드는 후방부대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사살할 수 있다는 대의론을 내세웠다.

 

6시간 동안 300여 대가 넘는 B-29들은 도쿄 상공에 확산탄 수 천발과 M69 소이탄 자탄 50만 개, 네이팜 소이탄 등 총 1,665톤을 투하했다.

하늘에서 쏟아져내린 네이팜탄과 기름뭉치들은 도쿄 시내 수 천 곳에 떨어졌고, 순식간에 불꽃이 밤하늘 30m 높이까지 치솟으며 치명적인 화재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말콤 글래드웰은 이 책을 쓰면서 미 공군 참모총장 등과 저녁을 먹었다. 그러면서 이 책의 서술을 더 완벽하게 하는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을 함께 한 어떤 장군도 이 정밀폭격 혁명이 전쟁을 완벽하게 만들었다거나 전쟁의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하지 않았다. 

거기에는 그것만의 문제점이 분명히 있었다. 지금의 기술은 그때와 다르다. 하지만 지금의 잣대로 그때를 모두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을 수 있지만 전쟁에 이기기 위한 커티스 르메이의 작전을 비판할 수는 있겠다.

커티스 르메이는 전투에서 이겼고, 헤이우드 헨셀은 전쟁에서 이겼다.

하지만 이 공습 역시 전쟁을 끝내지는 못하였다. 그 후 8월 B-29는 다시 일본 상공에 나타났고, 단 두 발의 폭탄으로 이 전쟁을 끝내게 된다. 

우리가 잘 아는 원자폭탄이다. 

 

일본은 결국 본토를 짓밟는 탱크 부대나 엄청난 포병대, 보병의 진격으로 여러 도시가 함락되면서 결국 천황까지 공습을 받는 그런 전쟁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 

미 육군항공단이 꿈꿨던 하늘의 대공습으로 전쟁을 끝내게 만들게 되기는 했다. 

 

이 책은 기술혁신과 진보로 '윤리적 전쟁'이라는 어찌보면 허상의 꿈을 꾼 미군 항공대의 괴짜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최상의 선택이라던 공습은 결국 최악의 결과로 오늘날까지 연합국 최대 민간인 학살로 기록돠어 있다.

이 책 <어떤 선택의 재검토>는 최상을 꿈꾸었으나 최악의 결말로 치달은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말콤 글래드웰은 당시 미군 지휘부가 도쿄 대공습을 결정하기까지 과정을 재검토함으로써 이상과 현실, 의도와 선택의 괴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폭격기 마피아의 모토는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진보한다(Proficimus more irreten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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