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시대 - 로마제국부터 미중패권경쟁까지 흥망성쇠의 비밀
백승종 지음 / 김영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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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를 좋아한다. 최근에 관심있는 분야가 불과 20만명의 인구로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발원해서 세계 최대의 제국을 만들었던 몽골제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어서 몽골제국 역사나 세계적 대제국의 원나라를 일으킨 쿠빌라이 칸 책도 사서 읽었다. 평소 로마나 영국제국 등에 관한 책은 많이 읽기도 했고, 언제나 관심사였다. 어떻게 그들은 세계를 호령했을까? 그러던 찰나에 거의 모든 저서를 가지고 있으면서 재밌게 읽은 백승종 교수님이 세계사를 주도했던 위대한 9개 제국의 흥망성쇠를 통해 역사의 교훈을 찾아 떠난다. 



책에서 소개하는 제국은 사상 최초의 초강대국 로마부터 시작한다. 

로마는 제국 중에서도 매우 특이하다. 무려 2천년도 넘는 시간 전에 왕정, 공화정, 제정 등의 정치 형태를 실험하면서 제국을 만들어갔다. 원로원과 호민관 같은 지금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정치 체제를 만들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카르타고와 그리스 등과 전쟁을 거치면서 당시 물자 이동이 풍부했던 지중해를 내해라고 부를 정도로 지배하면서 국력을 키워갔다. 후에 지금의 프랑스 지역인 갈리아, 히스파니아, 터키, 북아프리카까지 영토를 넓혀가면서 제국을 완성했다. 

특히 로마는 시민이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귀족의 반대 개념이 아닌 로마의 시민은 투표권이 보장되면서 함께 국가를 운영하는 주체로 인정한 것이었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는 수로, 하수도, 건축법, 도로 건설 등의 기술력을 과시하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을 남길 정도로 발전했다. 

그런 세계적인 시스템과 기술력, 법적 제도를 갖춘 로마가 왜 멸망했을까? 

저자는 크게 몇 가지를 말한다. 물론 한가지 사실만으로 거대한 제국이 멸망할리 만무하다. 

모든 일은 그렇게 되려고 했기에 그렇게 흘러갔다. 

먼저 로마 말기 이른바 '후기 고대 빙하기'를 통해 기온이 내려갔고, 화산과 지진활동 등으로 농산물 생산 등이 줄어든다. 또한 로마는 도시 생활을 하는 곳이 많아서 당시 낮은 의료 수준으로 전염병이 돌면 매우 위험한 지형적, 인문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세계적인 제국이나 국가가 자연 재해나 전염병 등으로 멸망한 사례는 많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자연이나 기후가 주는 위험을 깨닫고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다음으로 로마의 인구가 줄어들고 병역의 의무를 질 사람이 적어지자 이민족의 용병을 국경 수비대로 선발했다. 이민족의 침입을 막으려고 이민족을 세워놨던 것이다. 고양이한테 생선창고를 맡긴 것과 비슷하다. 결과는 서로마 제국이 오도아케르라는 게르만 장군에 의해서 멸망하게 된다. 

특히 로마는 양극화가 극심했다. 빈부격차, 사회 시스템과 공정함의 붕괴로 멸망을 부추겼다. 

이는 삼국시대, 고려, 조선, 중국, 일본 등 세계 모든 역사가 보여주는 진리다. 과연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떤지 우리 모두 생각해 봐야 한다. 

이런 위기상황을 지도층과 지배자는 근본적 개혁을 진행하지 않고 임시 방편 또는 포퓰리즘 등으로 해결했다. 

여기서 한가지 로마의 평범한 시민을 대표하던 호민관 그라쿠스 형제가 실은 귀족이었던 것을 아는가? 그라쿠스의 아버지는 대대로 로마의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한 명문가였고 어머니는 그 유명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딸이었다.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모두 민중의 편에 섰지만 사실 민중 계급은 아니었다. 저자는 이들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대중을 이용한 포퓰리스트로 말하기는 하는데 100%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대사회에 도널드 트럼프나 영국의 나이절 패라지 등도 같은 범주에 묶어서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큰틀에서 보면 로마는 기술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굵직한 업적이 많았다. 그들은 고도로 발달한 은행을 만들었고, 관료제 역시 효율적으로 운영하였다. 중앙 난방시설을 갖춘 다층 주택을 건설하는 한편 수준 높은 무기를 생산했다. 식민지의 이교도를 감싸주는 넉넉한 아량도 있었다. 로마에는 탁월한 전략가도, 용감한 군인도 많았다. 하지만 쇠퇴기에 접어든 제국의 운명을 구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로마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현대 미국 사회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오늘날 미국은 세계 각국에 군사기지를 운영하느라 과중한 국방비에 시달리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앞으로 미국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으나, 재정 부담이 과중하면 어느 나라든지 장래가 밝기 어렵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도 로마 말기와 비슷한 위기에 진입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저자뿐만 아니라 나 역시 한다. 특히 한국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5백년의 조선이 망가진 것을 불과 100년도 안되는 세월만에 나라 체계가 무너진 것 같다. 경고음이 울릴 때 우리는 정신을 가다듬고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뼈를 깎는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몽골제국이다. 앞에도 말했지만 당시 인구를 다 합쳐도 20만 밖에 안되는 중앙아시아의 가난한 유목민들은 어떻게 당시 신대륙이 발견되기 전 아프리카를 제외한 세계 거의 대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뛰어난 지도자의 리더십을 들 수 있겠다. 후에 청제국의 누르하치도 그렇고, 몽골제국의 전설적 영웅 칭기즈 칸도 모두 작은 부족의 잠재력은 크지만 오합지졸에 불과했던 소위 말하는 변방의 오랑캐를 세계 최고의 단결된 군대로 만들어서 천하를 호령한 것은 바로 지도자의 통찰이다.

몽골제국은 무엇보다 비단길과 역참을 활용해 동서양의 교류를 이끌어낸 것, 우리가 잘 아는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사실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 책 역시 허풍이 좀 많다) 등을 남겨 당시 생활상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워낙 세계적인 초강대국을 이루다보니 몽골의 화폐인 교초는 지금의 기축통화 달러 같은 역할을 했다. 

이런 몽골이 급작스럽게 망한 것은 몽골족 특유의 후계문제였다. 모든 아들들이 아버지를 떠나 외부로 나가고 막내가 남은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는데 이로 인해 후계구도 자체가 꼬인다. 쿠빌라이칸과 카이두의 대립은 무려 20년 넘게 계속 되었다. 이 과정에서 충선왕이 쿠빌라이를 선택해 고려의 체제를 유지해 줬다는 역사적 사실도 있다.

 

게다가 당시 서양에서 퍼지기 시작한 흑사병으로 유럽에서 철군하게 되고, 지배하던 한인 차별로 농민 반란이 일어나게 되고 결국 주원장에 의해 명나라로 지배권을 넘겨준다. 물론 그 뒤로도 일칸국이나 차가타이 칸 국 등이 중앙아시아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세계적인 대제국 원의 영광은 아니었다. 

몽골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탐욕은 항상 사람을 가난하게 만들고, 온 세상의 풍요로움도 그를 부자로 만들 수 없다." 서로 대립하던 칭기즈칸의 후예들은 주원장의 명 군대가 대궐에 쳐 들어올 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다음은 오스만 제국이다. 나는 일전에 오스만 제국에 관한 책을 읽어서 이들의 흥미로운 후계자 제도를 읽은 적이 있어서 더 몽골제국과 비교된다. 새장제도라고 해서 후계자의 동생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다가 후에 새장이라고 하는 궁궐에 가두게 되는 영화에서 나올법한 소재를 보여준다. 

오스만 제국은 사실 우리 역사랑도 관련이 깊다. 고구려 시절 돌궐족이라고 있었다. 당나라 시대에도 이 돌궐족과 고선지가 나온다. 그 돌궐이 중앙아시아로 넘어가서 투르크로 불리게 됐고 이들은 정복전쟁을 계속하면서 동유럽, 아시아에 걸친 제국을 이뤘다. 위기도 있었다. 

1402년 오스만 제국은 몽골왕자 티무르에게 패배했다. 그 충격은 컸으나 메흐메드 왕자가 나라를 재건하고 곧 술탄이 됐다. 15세기 이후 오스만 제국은 현재의 터키, 발칸반도, 그리스 북부를 통치하게 됐다. 찬란한 이슬람문화를 꽃피우면서 발전하던 오스만제국은 기근이 되풀이되고 민생이 궁핍해졌다. 산업혁명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탓에 제국은 점점 더 다른 열강 제국의 자본에 의존하게 되고 1875년 제국은 파산 상태에 빠진다. 제국은 부채를 관리하는 구실로 오스만 제국의 자치권을 제한하게 된다. 몇 년 뒤 러시아와의 전쟁에도 패배한다. 

그 뒤 근대화가 좌절되고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면서 제국은 해체된다. 

 

다음은 워낙에 유명한 대영제국이다. 해가 지지 않는 세계최고의 제국을 만든 영국의 역사는 워낙에 유명하기에 짧게 쓴다. 영국은 영토로 보나 인구로 보나, 또 유럽의 변방으로 천시 받았다. 한반도와 유사하다. 하지만 19세기를 넘어서며 군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경제,문화적으로도 온 세상을 지배하였다. 과연 그 놀라운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대영제국의 역사를 읽다보면 배울 점이 많다. 역사란 용기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나는 얼마전 주경철 교수님의 바다인류를 통해 바다를 지배한 영국의 강함, 산업혁명을 이끈 과학기술의 발전 등으로 대영제국의 번영을 보았다.

무엇보다 영국의 번영을 이끈 것은 의회 정치의 정착과 그들의 문화, 자신감이었다. 

 

독일제국은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역할이 컸다. 독일은 1800년대까지 유럽의 변방이었다. 하나의 통일된 국가조차 만들지 못했다. 그런 독일의 시작은 프로이센이라는 국가가 성장하면서 여러 봉건제후와 영주 및 자유도시를 하나로 통합해 독일제국을 출범하였다. (1871년)

이후 독일은 집단주의적 문화, 유럽인 중 가장 근면하고 성실한 문화를 통해 빠르게 도약했다. 산업이 발전했지만 시장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미 세계는 영국, 프랑스 등이 식민지를 통해 세계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번영을 위해 결국 전쟁이라는 선택을 하게 됐고 제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지울 수 없는 전범국, 홀로코스트의 만행을 저지른 국가가 됐다. 하지만 일본과 다른 점은 과거를 직시하고 사과하고, 역사를 바로잡으면서 다시 도약했다. 

 

6장은 100년 전의 동아시아 삼국을 돌아본다. 삼국의 격차는 바로 역사적 차이였다. 중국은 만주족의 청나라가 지배하고 있었다. 강건성세를 거치며 세계 초강대국을 자랑하던 중국의 몰락은 가장 달이 찬 그때부터 시작됐다. 사실 100만도 안되는 청 민족이 한족을 지배하는 기형적 구조부터 시작했다. 조선은 더 했다. 조선은 양란을 거치며 지배층의 무능이 극명하게 드러나자 오히려 더 유교 유일사상과 예학을 강조하며 사회를 경직되게 만들었다. 

또한 명의 멸망 후에도 소중화를 자처하며 죽은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강조하고 있었다. 

결국 청나라와 조선이 안에서부터 망하고 있을 때 반면 일본은 다른 길을 걸었다. 일본이 그렇게 된 데에는 난학이라고 해서 이전부터 유럽과 교류를 해 온 것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 물론 일본 역시 막부의 쇄국정책이 있었으나 메이지 천황의 의지와 조슈번 후쿠자와 유키치의 후예들의 개혁으로 근대화를 통해 아시아 최강국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일본 역시 제국을 이룬 뒤 보인 행보로 그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현대적 제국인 소련과 미국, 그리고 중국까지 돌아본다. 냉전시대를 거쳐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세계 경찰국가 체제를 만들었다. 그런 미국의 유일국 체제에 인구 대국, 세계 공장 중국이 따라오면서 G2가 형성되고, 미국은 경제 전쟁을 통해 G2의 추격을 물리치는 추세다. 

 

저자는 역사에 관한 질문으로 끝맺음하고 있다.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과연 무엇인가? 

전쟁,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인류의 내적 정신과 체제를 지배하는 혁명적 변화를 일으킨 기독교, 이슬람교로 대표되는 종교와 민주주의, 공산주의 같은 정치 사상을 말하고 있다. 

또한 약소민족이었던 몽골과 청을 만든 위대한 지도자의 역할을 들 수 있겠다. 칭기즈칸과 누르하치는 리더십으로 역사를 바꾸었다. 

바야흐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세계의 역사가 인류의 삶이 바뀌고 있다. 또한 얼마 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로 인해 또다시 세계대전의 제국주의적 사고가 스멀스멀 나오고 있다.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이러한 비인도적인 전쟁과 전범으로부터 우리의 가치, 미래를 지켜나가야 한다. 

역사는 용기있고 지혜로운 사람이 만들어 간다. 다시 그 위대한 용기와 인류의 지혜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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