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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 인코그니타 - 고고학자 강인욱이 들려주는 미지의 역사
강인욱 지음 / 창비 / 2021년 1월
평점 :
역사를 참 좋아한다. 집에 있는 남자 식구들은 다들 역사를 좋아해서 우리집에는 항상 역사책이 굴러 다녔다. 현실적인 이유로 대부분 전공을 법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집안에서 유일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촌동생이 바로 고고인류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유적지 발굴을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역사를 좋아하면서도 나는 고고학이나 고대사와는 조금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사료의 빈곤이 이 역사는 상상이 많이 개입될 것이다라는 편견을 가졌던 것 같다. 하지만 때로는 누군가의 편집되고, 왜곡되거나 또는 적어도 시각이 개입된 '기록'보다 하나의 유물이 더욱 객관적으로 그 시대를, 사실을 말해줄 때도 있다. 또는 기록으로 전해진 유물이나 역사를 고고학의 발굴이 또는 연구가 증명해 줄 때도 있다. 바로 고고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그러한 매력으로 손을 놓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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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강인욱 교수님이 쓰신 책과 강인욱 교수님이 추천한 고대사 연구에 관한 책을 비슷한 시기에 읽게 됐다)
테라 인코그니타 : 미지의 땅, 가보지 않은 곳이라는 뜻이다.
저자 역시 이야기한다. 고고학은 참 매력적인 학문이라고. 기존의 편견을 벗어나 과거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의 기록이란 결국 승자의 기록, 또는 누군가의 의견이나 취사선택이 개입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문자가 없어 기록을 남기지 못했던 초원의 유목국가들을 막연하게 야만과 미개 또는 무지한 민족이라 경시했던 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고대사는 숱한 외세의 침입과 또한 삼국시대 이전의 기록 유실로 역사기록이 빈약하다. 풍부한 사료가 남은 중국이나 하다못해 우리보다 오랜 역사적 기록을 보존하고 있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많은 일본서기조차도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헌의 부족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고고학이다. 고고학이 전하는 이야기는 새롭고 재미있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유라시아와 신대륙에서 '미개'라는 이름으로 매도되어왔던 여러 민족들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그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문명과 미개라는 이분법적 시각은 현재를 사는 우리가 가진 편견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예를 들면 고대의 사람들은 현대적인 의학지식이 없었지만, 그들만의 경험과 지식으로 전염병과 맞서 살아남았다. 세계 문명사를 이야기할 때 대표적인 유물로 꼽히는 청동기와 옥이 그 예이다. 특히 홍산문화를 비롯해 동아시아 여러 지역은 옥을 선호했다. 고대인들은 옥에서 나오는 음이온 살균효과를 알고 있었다. 홍산문화의 제사를 담당했던 신관들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옥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즐기기 위한 관상용이 아니라 옥에 담긴 치욕의 힘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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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500년 전 이집트 파피루스 문서에는 가슴 통증을 치료하고 음료수 정화하는 청동을 쓴다고 나와있다. 물론 청동에 납이 섞이거나 녹이 슬면 몸에 해롭다는 단점은 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한 청동 화합물이 약으로 사용되었다.
이 책에는 전염병으로 몰살된 홍산문화의 하민망하 유적을 소개하고 있다. 하민망하 사람들은 일부 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풍부한 생태자원 덕분에 수렵과 채집을 주로 했다. 마을의 규모는 계속 커졌고 그러다 약 5000년전 기후가 나빠지고 주변 환경이 안 좋아지면서 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 다행히 그들은 환경의 변화에 적응해서 기존의 사냥감 대신 당시 개체수가 급증한 산토끼와 설치류인 만주두더지를 사냥해서 먹고 살았는데 여기서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침투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결국 이들 중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곳을 버리고 떠난 것이다. 책에는 결국 인류의 역사는 돌고돌아 비숫한 현상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최근 기후 온난화로 북극해가 녹고 있는데 그 속에 잠자고 있던 바이러스들이 다시 출몰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진시황이 서양인 정확히 말하면 융적이라 불리우던 유목민 계열로 이목구비가 뚜렷한 지금의 아랍인과 유사한 외모를 가졌을 수도 있다는 가설은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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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에서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을 넘어 과거를 객관적으로 상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누구나 아는 문무대왕를비와 적석목곽분에서 조금은 생소한 모피와 온돌까지, 교과서에서 접할 수 없지만 새로운 고고학 자료가 증명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우리를 중국에서는 동이족이라 불렀고 한 때 공자를 동이족 출신의 우리와 한 피를 교류하는 인물로 여기는데 저자는 공자의 출생 자체를 밝히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작업이기에 이 가설이 옳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다만 동이족과 중국 고대인들의 관계와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우리가 소중화라는 사상을 강조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기자조선에 대한 실체를 고고학적 관점으로 푸는 것도 재미있었다.
고고학적 관점에서 보면 결국 기자조선을 증명할 무덤이나 궁궐 등 객관적 자료가 부족해서 학문적으로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중국과 조선의 사대주의가 만들어놓은 상상의 나라 기자조선에 대한 실증적이고 체계적인 이해없이 '기족의 제후'라는 글자만으로 한국사에 대한 확증편향을 잇는 것은 우리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저해한다고 말하고 있다.
3부는 약간 시각을 달리해서 고대를 바라보는 현대인의 동상이몽을 다루고 있다. 인디애나 존스부터 티베트, 냉전시대 등 현대사의 순간순간에 등장하는 고대문명을 대하는 우리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현대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페루의 삭사이와만 같은 고대 건축물을 볼 때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탁월한 기술을 가진 문명이 존재했던 건 아닐까 궁금할 수 있다. 마치 인류가 이전에 한 번 더 뛰어난 문명을 만들었을 같은 느낌말이다.
그중 땅속에 묻혀 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미스터리 건축물이 바로 우랄산맥 근처에서 발견된 아르카임 도시 유적이다. 약 4000년 전 유적으로 그 규모가 크다.
편두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궁금하면 꼭 책을 사보시라!
마지막 4부에서는 현재까지 뜨거운 불씨를 안고 있는 역사분쟁과 관련한 고대사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같은 당대의 역사분쟁을 보면 고대사가 결코 옛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한중일은 서로의 역사를 부풀리면서 상대국의 역사를 왜곡, 편집하길 반복하고 있다.
특히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일본이 만들어낸 모순덩어리의 역사를 고고학적으로 밝히는 저자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조선총독부는 가야에 일본군이 주둔하면서 삼국에 영향을 미쳤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입시키기 위해 옛 가야 영토의 많은 유물을 파헤치고 도굴하면서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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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현지 조선인을 앞세워 가야 고분(창녕 제 117호분)을 파헤치는 모습이다..
이러한 고고학 연구가 더욱 활성화되어 그들의 비논리를 논리적으로 또 학문적으로 증명해서 꿈을 깨게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역사란 각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을 '어쩔 수 없는' 한계로만 치부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어떠한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보고 미지의 땅을 바라보는가를 감안할 때에야 비로소 더욱 편견없이 과거를 바라볼 수 있다.
객관적인 과거를 지향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과거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 땅의 모든 역사가 놀랍도록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하면서 글을 맺고 있다,
인간의 기록되지 않은 99.7%의 역사를 찾아 떠나는 고고학의 향연으로 떠나보시라. 역사를 좋아하지만 나 역시 사료가 많고 현재 우리와 가까운 조선이나 고려사에 매몰되어 있었는데 고대역사의 즐거움에 흠뻑 빠진 그런 책이었다.
* 창비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재밌게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