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니멀 - 인간과 동물이 더불어 산다는 것
김현기 지음 / 포르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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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 고향이지만, 태어나자마자 도시로 온 나는 살면서 동물을 길러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부모님이 깨끗한 환경을 좋아하시기도 했고ㅡ동물이 있어 지저분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로 키우는 개나 고양이를 키우면 털도 날리고, 똥오줌도 치워주어야 한다, 동물 특유의 냄새도 어쩔 수 없다ㅡ나 역시 앞에서 말한 저런 관리를 잘 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역설적으로 동물원을 가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어릴 때 부산에서 봤던 동물들, 커서 에버랜드(라떼는 용인자연농원이었다), 어린이대공원을 가서 본 호랑이, 사자는 너무 멋지고 좋았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동물을 키우고 싶어할 때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해본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사람간의 왕래가 줄어들고, 비행기가 절반도 안 뜨게 되자 사라졌던 야생동물이 다시 발견된 일, 무분별한 서식지 파괴로 멸종된 동식물이 많아졌다는 것은 이제 ‘생존’의 문제가 아닌 극단적인 방향으로까지 왔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2001년부터 MBC에서 시사교양 PD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있다. 〈MBC 스페셜〉, 〈휴먼다큐 사랑〉, 〈PD수첩〉, 〈닥터스〉, 〈김혜수의 W〉, 〈불만제로〉 등의 프로그램을 꾸준히 제작해왔다. 최근 들어 인간과 세상의 ‘관계’ 및 '삶의 본질’에 주목한 작품들로 시청자에게 강한 울림을 주고 있는 유명 PD님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 다큐멘터리들 속 사자와 코끼리는 대부분 순수한 야생의 동물이 아니다. 이들은 국립공원이나 사파리에 살며 레인저(기습이나 정찰을 위하여 특수 훈련을 받은 부대원, 야생동물의 보호를 위해 훈련받은 특수 조련사의 의미로 쓰였다)

들로부터 24시간을 보호받는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사파리카를 타고 이 동물들을 뒤 쫓는다. 끝없이 터지는 플래시와 탄성속에서 낮잠을 자고 사냥을 하는 이 동물들은 관찰과 촬영에 숙련된 배우와 유사하다.

 

'휴머니멀'은 이런 왜곡된 현장 대신 생존을 위한 냉엄한 투쟁을 포착하는 것을 목표로 인간의 탐욕에 의해 죽어나가고 포획되고, 길들여지는 그런 야생동물을 그리고 있다. 촬영허가를 받기조차 쉽지 않은 상태에서 정말 '날것' 그대로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2018년 12월부터 1년이 넘는 시간동안 4개 대륙 10개나라를 넘나들었다. 아프리카 코끼리부터 태평양의 돌고래까지...보츠와나, 짐바브웨, 케냐, 남아공에서 태국, 일본을 지나 이탈리아, 미국에 이르는 지구 다섯 바퀴의 대장정을 저자는 경험했다.

수많은 PD, 방송관계자, 작가들의 피와 땀이 집약된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사실 이 방송이 한창 나올 때 생후 3개월의 아기들과 씨름하느라 평소 시사다큐, 교양프로그램을 좋아하지만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잊혀져 갔는데, 책으로 만나보니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진실 앞에서 아프고 아팠다. 

 

생후 5개월부터 끔찍한 학대에 시달려 죽을 때까지 관광객을 태우고 묘기를 부리는 아시아의 코끼리는 야생동물이었던 코끼리를 사람의 입맛에 맞게 다루기 위해 어릴때부터 고문같은 훈련을 받는다. 파잔이라고 한다. 

 

산 채로 코가 댕강 잘려나가는 코뿔소, 상아를 뿌리까지 뽑기 위해 살아있는 상태로 코끼리의 얼굴을 도려내가는 밀렵을 보면서는 분노와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착한 이타심이라는 것이 큰 동물도 인간이지만, 가장 잔혹하고, 나쁜 것도 바로 인간이다.

어릴 때부터 먼바다에서 잡혀와 가족을 잃고 모질게 학대당하는 돌고래 쇼의 돌고래와 아프리카의 국민 숫사자 세실, 헌터의 총에 맞아 박제를 위해 사자를 무참히 사살하는 트로피 헌팅의 현장을 보여준다.

오직 탐욕을 위해 동물의 삶을 생태계를 파괴하는 잔혹한 인간들과 한편으로는 위기의 동물을 구하기 위한 착한 사람들의 치열한 사투를 담고있다.

 

영장류 학자 제인 구달은 말했다. 야생동물에 대한 동정, 사랑, 존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인류가 온 힘을 모아 노력해야 한다. 회복이 불가능해 보이는 생태계의 위기를 다함께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코끼리는 아시아권에서 신성의 아이콘으로 등장해 왔다. 불교도가 전 국민의 95%에 달하는 태국에서 코끼리는 국가 공식 상징물로 '영광, 용기, 관용'을 의미한다. 불교전설에 의하면, 부처의 어머니인 마야 왕비는 하얀 코끼리가 자궁으로 들어오는 태몽을 꾼 뒤 붓다를 임신했다고 한다.

 

코끼리는 생각보다 두뇌가 좋다. 뇌가 5kg에 달하는데 IQ는 50~70으로 3~5세 아이 정도이며, 기억력은 침팬지와 돌고래를 넘어 동물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쇼에 동원되는 코끼리들은 대개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는다.

어린 코끼리들은 작은 나무 우리에 가두어서 반항하지 못하도록 꼬리와 귀, 다리를 꽁꽁 묶고 마을사람들이 돌아가며 24시간 내내 때리거나 송곳으로 찌르는 끔찍한 고통을 준다.

물 한 모금 주지 않고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를 그렇게 가둬둔 채 학대를 이어간다.

고통에 울부짖던 아기 코끼리들은 결국 멋대로 움직이기를 체념하고 사람을 무서워하게 된다. 극한의 고통 앞에 현실을 부정하고 기억상실증이 오거나 자아를 잃어버린다. 이런 훈련 과장을 파잔(Phajaan)이라고 한다.  

 

이런 코끼리 쇼에 동원된 코끼리를 구해오는 차일런트 여사와 실태를 보러 간 배우 유해진씨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상아 때문에 산 채로 머리가 통째로 잘려 나가는 코끼리를 볼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짐바브웨의 명물이자 황게 국립공원의 자랑 숫사자 세실은 결국 트로피(전시용) 사냥에 희생당했다.

 

코뿔소의 뿔은 자르면 다시 자라난다. 하지만 밀렵꾼들은 뿔을 최대한 뿌리까지 얻기 위해 코뿔소를 기절시키고, 얼굴 윗부분까지 깊숙이 베어간다. 상아를 얻을 때 코끼리에게 썼던 방법과 마찬가지다. 얼굴이 잘려나간 코뿔소는 고통에 몸부림치다 과다출혈로 죽고 만다. 이렇게 밀렵꾼에게 살해당한 코뿔소가 2015년 한 해에만 1,338마리에 달했다. 지구상 코뿔소 중 가장 큰 뿔을 지닌 종이 사라질 위기에서도, 인간의 잔인한 칼질은 계속되고 있다.

한 때 아프리카에 사자는 45 ~ 50만마리였다고 한다. 하지만 아프리카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점점 사자의 서식지를 침범했고, 그 결과 이제 사자는 2만마리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한다. 곧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 될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궁리해 왔다. 휴머니멀에 참여한 영장류 연구가 제인 구달과 인류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제 “어떻게 더불어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책에는 5부작 방송으로 담지 못한 현장이야기와 인문학적 감상이 들어있다. 인류가 온 힘을 모아 이제 이 동물들을 우리 곁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책을 보는 내내 인간의 잔혹성과 무자비함에 마음이 울컥했고,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이게 진정한 현실이다. 아프지만 소중한 책이다.

 

* 쌤앤파커스 출판사의 제공으로 책을 정성껏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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